영화, 좋아하세요? :)

늦은 저녁 맥주 한 캔을 곁들인 하루 한편의 영화, 그리고 수다.
영화 이야기는 언제나 환영입니다.

728x90

영국영화 71

악녀를 보았다 ⅱ _ 레이디 맥베스, 윌리엄 올드로이드 감독

악녀를 보았다 ⅰ _ 레이디 맥베스, 윌리엄 올드로이드 감독 # 0. 뒷모습으로 소개되는 여자. 실루엣을 짓누르는 베일. 앳되고 가녀린 목소리와, 그를 제압하는 고압적인 저음의 성가. 소녀의 연약한 요구와, 그 요구를 거절보다 폭압적인 명령으로 제압하 morgosound.tistory.com # 6. 돌아온 보리스와 함께 코르셋은 다시 채워지지만, 지금의 코르셋은 이전의 코르셋과는 다르고 지금의 캐서린 역시 이전의 캐서린과 다릅니다. 시아버지와 단둘이 나누는 늦은 저녁의 식사. 테이블의 방향으로 조명이 강하게 집중된 공간을 달그닥 소리를 내며 밀고 들어오는 캐서린. 화면의 중앙을 지배한 캐서린은 이전과 다른 자신을 가감 없이 표출합니다. 전에 볼 수 없던 시원한 웃음과 함께 자유롭게 식당을 가로지르는 동..

Film/Drama 2020.04.03

악녀를 보았다 ⅰ _ 레이디 맥베스, 윌리엄 올드로이드 감독

# 0. 뒷모습으로 소개되는 여자. 실루엣을 짓누르는 베일. 앳되고 가녀린 목소리와, 그를 제압하는 고압적인 저음의 성가. 소녀의 연약한 요구와, 그 요구를 거절보다 폭압적인 명령으로 제압하는 남자. 발가벗겨진 소녀를 덩그러니 세워둔 채 돌아 눕는 남편. 이를 담아내는 고전적이고 고정적인 오브제들과, 정제된 채도의 색감과, 이질적인 정도로 옆으로 길게 벌어진 화면. 통상의 긴 화면비는 개방감, 안정감, 수평적 운동성, 평등, 균일감 따위를 의미하지만 이 영화의 경우에는 '수평성의 강조'라기보다는 '수직성의 통제', 즉 위아래로 잘려나간 화면이 인물을 짓누르며 지배하고 있는 공간을 은유하는 것으로 보는 게 더 적절해 보입니다. '명령'과 '규율'과 '제약'과 이를 둘러싼 '균열'과 '파괴'의 서사임을 유추..

Film/Drama 2020.04.01

켠김에 끝까지 _ 지구의 밤, 알렉스 민턴 감독

# 0. 영화를 본다는 건 생각보다 더 피곤한 일입니다. 특히나 저같이 미취학 아동과의 팔씨름도 장담할 수 없는 극심한 운동 부족이자 미운 7살 부럽지 않은 중증 ADHD 환자에게는 더더욱 말이죠. 아무리 하루가 멀다 하고 볼만큼 영화를 좋아한다 하더라도 가끔 쉬어가는 느낌으로 좋으면 좋은 대로 나쁘면 나쁜대로 보는 시리즈물이 하나씩 있으면 썩 유용합니다. 그리고 이런 이상한 용도로 작품을 고를 때는 평소 영화를 볼 때와는 조금은 다른 기준이 필요하죠. '알렉스 민턴' 감독, 『지구의 밤 :: Night On Earth』 입니다. # 1. 너무 길면 곤란합니다. 옴니버스 식으로 각 에피소드들이 따로 놀아주면 더욱 좋죠. 감독이 누구인지보단 돈 많은 제작사 이름값이 더 신뢰할만하구요. 깊은 이야기나 주제의..

갈라파고스의 혁명가 _ 나는 스모 선수입니다, 맷 케이 감독

# 0. 육중하고 단호한 모래산입니다. 화면 너머 한기가 전해질 듯 차갑고 거친 파도입니다. 음울하면서 고압적인 분위기의 짙고 푸른 하늘이 강압적으로 짓누릅니다. 오랜 시간 동안 부서지고 퇴적되었을 보수적인 무언가들과, 잠시도 쉬지 않고 몰아붙이는 거센 풍파가 쉬지 않고 휘몰아치지만 여기 한 명의 스모 선수, 여자 스모 선수 곤 히요리는 굳건히 다리를 내디딘 채 상대를 노려봅니다. 그녀는 상대 선수뿐 아니라 그 뒤의 보이지 않는 사회적인 무언가들까지 모조리 도효 밖으로 밀어내려 합니다.        맷 케이 감독,『나는 스모 선수입니다 :: Little Miss Sumo』입니다.     # 1. 오프닝 연출이 심적적 측면에서도 문학적 측면에서도 사회학적 측면에서도 효과적입니다. 운동선수로서의 모습과, 여..

화가가 만든 영화 _ 러빙 빈센트, 도로타 코비엘라 / 휴 웰치먼 감독

# 0. 그림 그리려고 만든 영화 같습니다. 메시지와 서사와 캐릭터와 플롯과 연출과 대사와 그 외의 모든 영화 안팎의 요소들을 '표현'이 압도합니다. 독창성도 독창성이거니와 화가를 말 그대로 갈아 넣어야만 시도라도 해 볼 수 있는 양식이 절대적인 희소성을 부여합니다. 분명 이 영화가 제공하는 감각을 다른 영화로 비유하는 건 미련한 짓일 겁니다. '도로타 코비엘라', '휴 웰치먼' 감독, 『러빙 빈센트 :: Loving Vincent』 입니다. # 1. 그림에 대한 이야기로 글을 시작할 수밖에 없겠네요. 영화를 보고 난 후 가장 선명한 인상은 (호들갑을 조금 떨자면) 그림이 맞나 싶을 정도로 상당한 생명력이 전달된다는 점입니다. 통상 애니메이션과 차별되는 12 프레임의 이물감 역시, 되려 심장의 박동처럼 ..

Film/Animation 2019.10.29

꼭. 이렇게. 어려워야만. 속이 후련했냐! _ 아니마,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

# 0. 미술관에 갈 때가 있습니다. 친구 없는 찐따가 혼자 다니면서 쪽팔리지 않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곳이죠. 쥐뿔 아는 게 없더라도 온 바닥청소 다하고 다닐 것만 같은 롱코트와 와인색 스웨터에 뿔테 안경을 끼고 한 손엔 스마트폰, 한 손엔 전시 브로셔를 든 채 팔짱을 끼고 천천히 걸으면 손쉽게 지적인 느낌의 쿨한 인싸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꿀팁이니 메모해 두세요. 요즘엔 워낙 갤러리도 많고 양질의 전시도 많다 보니 사진전이나 고전 미술, 조형예술, 행위예술 등 다양한 전시들이 걸리긴 합니다만, 그래도 역시나 가장 흔하게 접할 수 있는 건 만만한 현대미술입니다. 현대미술 전시장의 동선을 따라가다 보면 2/3 지점 즈음 후미진 곳에 영상을 무한 반복해둔 암실 같은 게 곧잘 있는데요. 그런 모퉁이진 곳..

Film/Drama 2019.09.24

물아일체 _ 바다의 사냥꾼 자고, 제임스 리드 / 제임스 모건 감독

# 0. 평생 물질 하며 살아온 노인의 전기물이란 아이스크림 위에, 압도적인 눈뽕이란 에스프레소를 끼얹은 아포가토입니다. 서사성이 강조된 재연 영화와 자연 다큐가 하나처럼 융화되어 있습니다. 극과 극처럼 보이는 생태 다큐와 전기물의 콜라보레이션이라, 독특하군요. '제임스 리드', '제임스 모건' 감독, 『바다의 사냥꾼 자고 :: JAGO a life underwater』 입니다. # 1. 말레이시아 바자우족의 노인 '로하니'가 자신이 살아온 삶을 풀어놓습니다. 증언에 예술적 역량을 더해 환상적인 그림을 선사합니다. 어리고 젊은 시절 '로하니'의 역동성과, 온몸으로 운동하는 인간의 심미성과, 그런 심미적 존재가 대자연과 어우러지는 순간의 감동이 경탄을 자아냅니다. 평온한 인터뷰와 과거의 재연 사이를 반복적..

꽃을 찢고 질문하다 _ 더 랍스터,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

# 0. 독특합니다. 고유의 분위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독창적인 이야기가 관객의 이목을 부여잡습니다. 서사가 어떻게 굴러가게 될지 전혀 예상할 수 없습니다. 대사 한마디 한마디가 귀에 꽂힙니다. 설정은 각자의 영역에서 자기 매력을 지키되 따로 놀지 않습니다. 완성도도 구비되어 있습니다. 이 영화를 통해 얻은 감동을 다른 영화에서 얻기란 매우 힘들어 보입니다. 이 영화는 누군가에겐 요르고스 탄티모스라는 이름을 평생 기억하게 할 계기가 되기에 충분합니다. 반면,        요르고스 탄티모스 감독,『더 랍스터 :: The Lobster』입니다.     # 1. 기괴하고 불편합니다. 특유의 건조한 분위기가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말도 안 되는 설정 위에서 이야기는 밑도 끝도 없이 널을 뜁니다. 서사에 ..

Film/Romance 2019.09.03

Citizens, Be Ambitious _ 브이 포 벤데타, 제임스 맥테이그 감독

# 0. 무엇이 사람들로 하여금 그토록 이 영화에 열광하게 하는 걸까. '제임스 맥테이그' 감독, 『브이 포 벤데타 :: V for Vendetta』입니다. # 1. Revolution도, Revenge도 아닌 Vendetta의 'V' 무엇이 사람들로 하여금 그토록 'V'에 열광하게 하는 걸까요. 낭만적인 언변 때문일까요? 화려한 가면 때문일까요? 유려한 칼솜씨 때문일까요? 아니면 신사적이고 여유로운 태도 때문일까요? 마지막 모습에 담긴 비장미 때문일까요? 아니면 형이상학적인 가치를 지향하는 지적인 존재에 대한 막연한 동경일까요? 그것도 아니면, 부패한 사회에 대한 불만을 투영하는 걸 수도 있겠죠. 글쎄요, 잘 모르겠네요. 어쩌면 그 이외의 것 때문일 수도 그 모든 것 때문일 수도 있겠죠. 다만 분명한 ..

Film/Action 2019.01.17

말하자면 삶은 희망입니다 _ 블랙 아웃, 에바 웨버 감독

# 0. 서아프리카의 빈곤국 기니. 그곳을 살아내는 사람들과 허약한 사회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단편 다큐멘터리 영화입니다. 칠흑같이 어두운 밤 맨발의 어린 학생들이 거리를 헤맵니다. 빛을 찾고 있습니다. 문학적 은유가 아니라 진짜 빛, 조명을 찾고 있죠. 전기공급이 안정적이지 않아 밤을 밝힐 수 없기 때문입니다. 시험을 무사히 치러 졸업장을 따고 다음 단계의 학교로 진학하려면 공부를 해야 합니다. 인프라가 안정적으로 갖춰져 있지 못한 기니에는 대중교통도 도로망도 부실합니다. 밤늦게까지 불 밝히는 시설은 공항과 주유소 정도가 전부네요. 불이 들어오는 기간시설들까지의 거리는 가까워도 6㎞, 7㎞. 가녀린 아이들은 그 거리를 홀로 걸어가고 홀로 돌아와야 합니다. 새벽 3시, 새벽 4시가 지나도록 창백한 조명 ..

그냥 퀸이 깡패임 _ 보헤미안 랩소디, 브라이언 싱어 감독

# 0. 전기 영화는 늘 어렵습니다. 눈 시퍼렇게 뜬 마니아들이 영화가 좋으면 누가 깔까 봐 화가 나 있고, 영화가 안 좋으면 감독을 조지느라 화가 나 있거든요. 실화 영화처럼 대상이 서사면 좀 수정해도 넘어 가지지만, 실존 인물의 전기는 까딱 잘 못 건드리면 부두술사 빙의한 팬들의 저주를 맨몸으로 받을 각오를 해야 합니다. 아슬아슬한 줄타기에 실패하면 인생 조지는 거 한 순간이죠. 그럼에도 전 역적이 될 각오를 했습니다. 백만 퀸덕들이 죽일 듯 한 눈으로 죽창을 들고 있겠지만 이불 안에서라면 제 절개는 쉬이 꺾이지 않죠. 미리 말씀드리건대 전 이 영화에 불만이 많습니다. 브라이언 싱어 감독, 『보헤미안 랩소디 :: Bohemian Rhapsody』입니다. # 1. 우선 제목부터 마음에 안 들어요. 보헤..

Film/Drama 2018.11.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