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좋아하세요? :)

늦은 저녁 맥주 한 캔을 곁들인 하루 한편의 영화, 그리고 수다.
영화 이야기는 언제나 환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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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영화 273

세트 메뉴 _ 아폴로 11, 토드 더글라스 밀러 감독

# 0. 필연적으로 '데이먼 샤젤'의 『퍼스트 맨』과 함께 읽힐 수 밖에 없을 텐데요. 『퍼스트 맨』을 기억하며 작품을 보노라면 새삼스레 왜 다큐멘터리가 다큐멘터리로서 사랑받는지, 왜 영화가 영화로서 사랑받는지를 동시에 느끼게 됩니다. 다큐멘터리에 담긴 실제 상황과, 그것이 재연된 『퍼스트 맨』에서의 장면들이 머릿속에서 교차할 때마다 전율이 입니다. 앤딩 크레디트를 보며 길게 할 이야기는 없겠다 싶었습니다. 아니 길게 이야기할 필요가 없다는 게 더 정확하겠군요. 지구라는 행성에 우연히 발생한 털 없는 원숭이가 공포이자 숭배이자 신앙이자 동경이었던 달로 날아가 발을 디뎠다. 라는 인류사에 길이 남을 압도적 사건을 기록하고 기억한다는 명분의 정당성만으로도 충분합니다. '토드 더글라스 밀러' 감독, 『아폴로 ..

총과 피의 테마파크 _ 장고,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

# 0. 언제나처럼 환상적인 오프닝입니다. 지금부터 보게 될 작품이 165분에 달하는 런타임에 걸맞은 긴 호흡의 영화라는 것과, 그 긴 호흡 동안의 모든 서사가 결국 이 잘생긴 노예 한 명을 둘러싼 간결한 이야기로 귀결될 것이라는 선언이 선명한 대조를 이룹니다. 풍부한 음장의 멋들어진 ost Django (by Luis Bacalov) 가 끝남과 동시에 감각을 제한하는 한밤의 숲으로 관객을 초대합니다. 긴장감을 최대한 끌어올리는 멋들어진 장총을 보며 숨이 멎을 것만 같은 찰나. 이빨을 대롱대롱 매달고 다니는 우스꽝스러운 치과의사가 의도된 방심을 연출합니다. 잠깐의 위트를 발판 삼아 다시 무자비하게 집중을 끌어올린 감독은 드디어, 오늘의 주인공을 소개합니다. "What's your name?" '쿠엔틴 타..

Film/Action 2020.04.15

공장제 드라마 _ 와인을 딸 시간, 프렌티스 페니 감독

# 0. 신박한 은유와 리드미컬한 라임의 말장난으로 점철된 수다스러운 흑인 힙합 문화를 가져다 온건한 가족주의라는 주제 의식에 때려 박아 만든 전형적인 할리우드식 공산품 드라마 영화입니다. 물론 이때의 '흑인스러움'이라는 건 어디까지나 주류 사회가 선별적으로 취사선택한 흑인 문화의 솔직함과 유쾌함만을 의미합니다. '프렌티스 페니' 감독, 『와인을 딸 시간 :: Uncorked』입니다. # 1. 영화가 어떻게 굴러갈지를 이해하는 덴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습니다. 인물과 배경 세팅이 끝나는 10여분이면 이후 전개가 어떻게 될지 손바닥에 올려놓은 듯 훤하게 드러나거든요. 소믈리에를 꿈꾸는 아들과, 막 암이 나았지만 차마 가발을 버리지는 못하는 엄마와, 할아버지로부터 이어받아 자식에게까지 물려주고 싶은 가업..

Film/Drama 2020.04.13

무능한 사람의 선량함 _ 시타라, 샤르민 오바이드-치노이 감독

# 0. 나이 많은 남자들에게 팔려가듯 시집가게 되는 파키스탄의 어린 소녀들. 자기실현의 기회를 꽃피워보지도 못한 채 누군가의 아내가 되어 사그라들고 마는 소녀들의 가능성과 폭압적 풍습에 대한 사회고발적인 메시지를 동화적인 애니메이션을 통해 대조적으로 풀어낸 작품. 뭐, 그런 거라는 건데요.        '샤르민 오바이드-치노이' 감독,『시타라 - 렛 걸스 드림 :: Sitara - Let Girls Dream』입니다.     # 1. 메시지고 나발이고 할 말은 해야겠습니다. 무지막지하게 무신경합니다. 어린아이가 눈에 뻔히 보이는 거짓말을 하는 것만 같이 뻔하고 또 뻔뻔한 영화입니다. 감독이 영화를 찍은 이유는 책이나 기사 등의 여타 매체에 비해 관객이 더 많다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애니메이션을 활용한 ..

Film/Animation 2020.04.07

새벽이 오리라 _ 체념 증후군의 기록, 존 햅터스 감독

# 0. 배경지식이 전무한 제게 이 다큐는 근래 가장 충격적인 영화로 기억될 듯합니다. 보고 난 후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무슨 이딴 말도 안 되는 일이 다 있냐."라는 것이었습니다. 당사자들의 고통을 폄하하거나 희화화하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증세와 경과가 너무도 상식을 벗어나 이질적이었기 때문입니다. '존 햅터스', '크리스틴 사무엘슨' 감독, 『체념 증후군의 기록 :: Life Overtakes Me』입니다. # 1. 언젠가부터 나쁜 버릇이 하나 생겼습니다. 작품을 보기도 전부터 자꾸만 앞질러 추측하게 된다는 것이죠. 『주홍색 연구』에서 달리는 마차 안의 '홈즈'는 근거도 없이 앞질러 선입견을 만드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이 없다 했는데요. 제가 딱 그 멍청이가 된 꼴이군요. 무슨 체념에 증후군까지 ..

Documentary/Social 2020.03.28

이 영화는 해로운 영화다 _ 6 언더그라운드, 마이클 베이 감독

# 0.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영화라는 걸 꼭 개연성을 기준으로 봐야 하는 걸까. 말이 좀 안 된다는 게 그렇게 큰 흠인 걸까. 입체적이면서 일관된 캐릭터와 풍부한 주제의식이란 게 그렇게나 중요한 걸까. 디테일이 꼭 살아 있어야만 하나. 화려하고 번쩍번쩍하면 적당히 좋은 거 아닐까. 세간의 평론가 놈들이 주입한 선입견에 휩싸여 있었던 건 아닐까. 머릿속에 '이동진'의 빨간 안경이란 마구니가 든 것은 아닐까. 갓동님께서 지금껏 김치찌개를 끓여 주셨는데 여태껏 된장찌개 맛이 나지 않는다고 혹평을 한 것은 아닐까. 그래서 이번엔 의식적으로 개연성을 ㅈ까라 하고 영화를 봐보려 합니다. 그러다 보면 갓동님의 눈높이에서 영화를 볼 수 있게 될지도 모르죠. '마이클 베이' 감... 아니 갓동님, 『6 언더그..

Film/Action 2020.03.24

괴물과 마주할 수 있을까 _ 고스트 오브 슈거랜드, 바삼 타릭 감독

# 0. 괴물이 되어버린 인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자기 나름의 목적들 이를테면 이념이나 재력, 신념, 권력, 쾌락 따위들을 위해 인간이 인간으로서 존재하기 위한 최소한의 선을 넘어버린 존재들과, 그 존재들을 증언해줄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타인을 가십거리 삼아 평가하고 재단하길 좋아합니다만, 그런 사람들조차도 이런 무지막지한 괴물들에 대해 이야기할 때만큼은 몸을 사립니다. 어떤 인물의 도덕성이 일정 수준 이상으로 훼손되면 입에 담는 것만으로도 거론하는 사람의 도덕성이 시험되기 때문이죠. '바삼 타릭' 감독, 『고스트 오브 슈거랜드 :: Ghosts of Sugar Land』 입니다. # 1. 말로 풀어 놓자니 복잡하게 들리긴 합니다만, 사실 어려울 건 없습니다. 우리에게도 이런 경..

Documentary/Social 2020.03.16

줄리아 폭스 ⅱ_ 언컷 젬스, 샤프디 형제 감독

줄리아 폭스 -1- [언컷 젬스, 샤프디 형제 감독] # 0. 매운 닭발을 스스로 사 먹어 놓고 매워서 별로라고 별점 테러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다람쥐통에 제 발로 올라 놓고 멀미가 심해 쓰레기라 욕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누가 시키지도 않은 morgosound.tistory.com # 10. 복잡 미묘한 감각적 연출과 별개로 메시지 자체는 명쾌합니다. 자기 자신의 가능성을 믿어라. 남의 가능성에 자기 인생을 걸었다간 패가망신한다. 가 그것이죠. '하워드'가 베팅하는 대상은 언제나 타인의 가능성입니다. 그는 경제적인 문제를 돌려 막기 식 부채의 불안정성으로 대처합니다. 세공조차 되지 않은 블랙 오팔에 위기 극복을 전적으로 기대고 있구요. 전문 평가사가 매긴 십만여 달러보다는 정체모를 감정사의 백만 불 ..

방장 사기맵 _ 아메리카 와일드, 그렉 맥길리브레이 감독

# 0. 천조국, 자연, 경관, 눈뽕, 귀르가즘, 돈지랄, 공공, 다큐멘터리입니다. '그렉 맥길리브레이' 감독, 『아메리카 와일드 :: National Parks Adventure』 입니다. # 1. 광활하다는 말이 옹졸해 보입니다. 트여 있다는 말이 답답해 보입니다. 압도적인 경관이 주는 심미성에 처연하면서 웅장하고 섬세하면서 화려한 현악 연주가 곁들여집니다. "그래, 이게 힐링이지!" 싶은 생각을 하며 기대감이 한껏 부풀어 오르려던 찰나! 세기말 1세대 3D 게임의 향수를 물씬 불러일으키는 극악의 그래픽과 함께 작품의 제목이 쓰입니다. 아, 뭔지 알겠네요. 영화 시작 1분 만에 이 영화는 눈뽕과 귀르가즘 원툴일거라는 확신을 가지게 됩니다. 아무런 주제의식도 연출적 완성도도 섬세한 디렉팅도 없을 것이라..

줄리아 폭스 ⅰ _ 언컷 젬스, 샤프디 형제 감독

# 0. 매운 닭발을 스스로 사 먹어 놓고 매워서 별로라고 별점 테러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다람쥐통에 제 발로 올라 놓고 멀미가 심해 쓰레기라 욕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누가 시키지도 않은 에스프레소를 자기 돈으로 사 마시며 쓰다고 물을 타 달라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특별한 사정이라도 있지 않는 한, 우리는 흔히 그런 사람들을 '진상 손님'이라 말합니다. 닭발이 매울 수는 있습니다. 다람쥐통을 타고 멀미를 할 수도 있고 에스프레소를 처음 마시고 깜짝 놀랄 수도 있죠. 다시는 닭발에, 다람쥐통에, 에스프레소에 돈을 쓰지 않겠다 생각할 수도 있고 그건 전혀 잘못이 아닙니다. 다만 그런 이유들로 닭발과 다람쥐 통과 에스프레소를 '잘못된 것'이라 욕하는 건 썩 권장할만한 태도는 아닐 겁니다. 이 영화를 보고..

라이온 킹 리포지드 _ 라이온 킹(2019), 존 파브로 감독

# 0. 한식을 모르는 사람이 한식당을 차립니다. 자동차가 뭔지 모르는 사람이 신제품을 만듭니다. 여권도 없는 사람이 해외여행 가이드를 나서고, 워크래프트를 해 본 적도 없는 사람이 리마스터를 만듭니다. 결과야 뭐... 보나 마나 겠죠. '존 파브로' 감독, 『라이온 킹 :: The Lion King』입니다. # 1. 스스로 뭘 만드는 지조차 이해하지 못한 채 일을 벌이면 이런 참사가 벌어집니다. 원작 시리즈에 대한 이해 이전에 [동물을 의인화한 애니메이션]이라는 세부 장르 자체에 대한 이해가 없는 사람들이 기획한 영화입니다. 팬들에게 이 영화는 깐크래프트 리펀디드 만큼이나 기만적입니다. 핵 잡고 신캐릭을 내놓으란 요구에 2-2-2를 걸어 놓는 오버워치 만큼이나 기만적이죠. 다만 분명히 해야 할 것은 존..

Film/Animation 2020.02.27

원기옥 _ 지옥행 특급택시, D.C 해밀턴 감독

# 0. 그런 영화들이 있습니다. 다 덮어놓고 반전 한방 딱! 보고 미친 듯이 달려가는 영화들 말이죠. 주머니 사정을 가늠케 하는 지극히 단출한 세트와, 이를 가리면서도 최대한의 가성비를 뽑기 위한 다양한 광원과 화각의 화면 연출. 그리 비싼 개런티를 지불하지는 않았을 것만 같은 많아야 세명 안쪽의 주인공 라인업과, 이들의 개인기를 사골처럼 쥐어짜 표정연기와 대사를 쏟아내는 걸로 간신히 버티는 수다스러운 서사 진행. 2/3 지점에서 터지는 한방 반전과, 그 반전을 최대한 거창한 것으로 포장하기 위한 후반부의 호들갑까지. 이렇게만 말하면 혹평을 하는 것처럼 들리지만 사실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말씀드린 2/3 지점에서의 반전만 확실하다면 창의적인 아이템을 활용해 경제적으로 좋은 이야기를 만들어낸 수작이 ..

Film/SF & Fantasy 2020.02.25

구찌 장바구니 _ 거짓말의 발명, 리키 제바이스 감독

# 0. 명품 가방을 장바구니로 쓰는 듯한 영화입니다. 포르셰 사서 동네 마실만 도는 영화입니다. 다금바리를 잡아 어묵을 만들고 해외여행 가서 한식당만 다니는 영화입니다. 누군가는 부잣집 지하실에 사람이 산다는 가벼운 설정만으로 오스카와 칸을 동시에 연성해내지만, 누군가는 거짓말이 없는 세상이라는 거창한 아이디어로 이런 한심한 결과물을 내기도 합니다. 감독의 손에 우연찮게 진주 목걸이가 쥐어졌지만 걸고 보니 안타깝게도 돼지 목이었습니다. '리키 제바이스', '메튜 로빈슨' 감독, 『거짓말의 발명 :: The lnvention Of Lying』 입니다. # 1. 재미없기가 어려운 소재입니다. 거짓말이 존재하지 않는 세상에서 나만 거짓말을 할 수 있으며 그 거짓말은 모든 사회 구성원으로부터 의심받지 않는다라..

Film/Comedy 2020.02.21

구연동화 _ 잭은 무슨 짓을 했는가, 데이비드 린치 감독

# 0. 무서운 영화입니다. 장르적으로 무서운 건 아니구요. 감독이 '데이비드 린치'이기 때문이죠. BBC 선정 21세기 최고의 영화이자 제54회 칸 영화제 감독상 수상작 『멀홀랜드 드라이브』의 그 감독 맞습니다. 살얼음을 내딛는 듯하군요. 까딱 헛소리를 잘못했다간 마니아들에게 영알못이라고 까일 테구요. 별 내용도 없이 좋다고 나댓다간 허세충으로 내몰릴 겁니다. 아! 그래서 감독 이름이 린치인 걸까요? '데이비드 린치' 감독, 『잭은 무슨 짓을 했는가 :: What did jack do?』 입니다. # 1. 이야기는 단순합니다. 닭가슴살 부드러운 여자 친구를 둔 말하는 원숭이가 일흔 넘은 감독에게 취조 당하는 영화죠. 능청스럽게 원숭이 앞에 앉아 온갖 개드립을 세상 진지한 표정으로 십여 분간 주절대다 원..

Film/Comedy 2020.02.17

이런 문제가 있다 _ 3분간의 허그, 에베라르도 곤잘레스 감독

# 0. 늦은 밤 전화를 합니다. 다음날 해가 뜹니다. 약속된 장소에는 행사가 서서히 준비됩니다. 저 멀리 그리운 얼굴들이 보입니다. 누군가는 손을 흔들고, 누군가는 마른 입을 다시고, 누군가는 소리쳐 부르기도 합니다. 드디어 시간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찰나와 같은 3분. 그만 돌아가야 한다는 행사 안내가 울립니다. 차마 놓지 못하는 손을 붙잡은 채 팔을 길게 뻗어 보지만, 그래도 돌아가야만 합니다. 행사는 끝났습니다. 해가 진 저녁. 빈 행사장만이 덩그러니 스크린에 남았습니다. '에베라르도 곤잘레스' 감독, 『3분간의 허그 :: A 3 Minute Hug』 입니다. # 1. 영화는 그렇게 막을 내립니다. 이게 전부입니다. 떨어져 지내는 가족을 만나기 위해 모인 사람들의 모습과 잠시 동안의 만남과 돌아서..

밤의 우유니 사막 ⅱ _ 문라이트, 배리 젠킨스 감독

밤의 우유니 사막 ⅰ _ 문라이트, 배리 젠킨스 감독 # 0. 다소 뜬금없게 들릴지도 모르겠네요. 전 이 영화를 보고 난 후 볼리비아의 우유니 사막을 떠올렸습니다. 낮의 그것도 아닌 야경이 깊게 드리운 우유니 사막 말이죠. 수분이 메마른 건조하고 morgosound.tistory.com # 6. 세 번째 파트는 '블랙'입니다. 파트의 주제는 '순응'이죠. 수줍음이 많던 샤이론은 마약상이 되어 있지만 타락이나 절망감과는 다른 느낌입니다. 성인이 된 샤이론은 누군가의 기대에 부응 보다 정확히는 '복무'하는 인간이 되어 있다는 데 더 가깝습니다. 터렐을 가격한 데 대한 처분을 받고 난 후 샤이론은 멘토 후안과 같은 건장한 남자가 되어 있습니다. 후안 대신 대모 테레사를 아들처럼 듬직하게 지키고 있죠. 엄마 폴..

Film/Drama 2019.12.02

밤의 우유니 사막 ⅰ _ 문라이트, 배리 젠킨스 감독

# 0. 다소 뜬금없게 들릴지도 모르겠네요. 전 이 영화를 보고 난 후 볼리비아의 우유니 사막을 떠올렸습니다. 낮의 그것도 아닌 야경이 깊게 드리운 우유니 사막 말이죠. 수분이 메마른 건조하고 삭막한 사막과 같은 소년의 삶에 쏟아질 듯 슬픔의 비가 내리면 하늘과 땅의 경계가 사라진 온 세상은 푸르른 달빛에 물들게 됩니다. 별이 빛나는 바다에 뒤덮인 사막 한가운데 외로이 서 있는 소년의 숨 막힐 듯한 고독감과 쓸쓸함이 눈앞을 떠나지 않는군요. '배리 젠킨스' 감독, 『문라이트 :: Moonlight』입니다. # 1. 영화는 세 파트의 옴니버스 구조를 가집니다. 각각 소년의 유년기와 청소년기와 성년기에 대응되죠. 파트의 제목은 '리틀', '샤이론', '블랙'입니다. 서사는 '리틀'로 불리던 소년 '샤이론'이..

Film/Drama 2019.12.01

코믹스 맛 _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 밥 퍼시케티 / 피터 램지 / 로드니 로스먼 감독

# 0. 영화에 만화나 소설을 그대로 이식하게 되면 괴작이 되기 십상입니다. 이재용 감독의 , 오기환 감독의 , 덩컨 존스 감독의 , 이 분야 끝판왕 황예유 감독의 과 같이 남들이 무수히 나자빠지는 걸 보면서도 굳이 똥인지 된장인지를 찍어먹어 보던 이 영화들은 그 좋은 예라 할 수 있겠죠. 이런 류와 같이 엮이고 싶지 않은 대부분의 감독들은 코믹스의 캐릭터나 플롯, 주제의식 따위들만을 선택적으로 혹은 부분적으로 가져온 후 영화적 문법으로 재해석하는 방식을 택합니다. 최동훈 감독의 나 박찬욱 감독의처럼 말이죠. '밥 퍼시케티', '피터 램지', '로드니 로스먼' 감독,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 :: Spider-Man Into the Spider-Verse』입니다. # 1. 영화는 앞서 나열할 작품들과는 ..

Film/Animation 2019.11.07

그냥 겁나 재밌어 _ 헤이트풀 8,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

# 0. 소소하게 블로그를 굴린 후로 안 좋은 습관이 하나 생겼습니다. 영화를 분석하듯 또 평가하듯 보게 되었다는 점이죠. 처음부터 그러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요. 언젠가부터 정신줄 놓고 보다가 포스팅할 만한 내용을 발견하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머리 한켠에 가시처럼 박혀 감상을 방해하고 있습니다. 하나뿐인 취미 더 재미있게 즐겨보자고 시작한 짓이 되려 방해가 되고 있다니. 멍청한 일이군요. 근래 들어 이렇게 영화를 봐서 뭐하나 하는 현타가 스멀스멀 몰려오던 중 결국 토드 필립스의 를 리뷰하다 폭발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에라이! 덮어놓고 막보자! 아무것도 발견 못해도 좋고, 유의미한 견해가 없어도 좋으니 최대한 즐기면서 막보자!'는 생각으로 영화 한 편을 골랐습니다. 그것도 겁나 영화 잘 만드는 ..

그게 무슨 의미가 있나 _ 조커, 토드 필립스 감독

# 0. 영화가 시작하면서부터 아니 수개월 전 예고편을 보고 난 후부터 생각했습니다. 죽인다. 예술이다. 기가 막히다. 여태까지 140여 편을 리뷰하는 동안 작품이 너무 좋아서 씬 별로 쪼개가며 돌려 봤던 작품은 알폰소 쿠아론의 와 박찬욱 감독의 뿐이었는데요. 이 영화는 앞선 두 작품만큼이나 노력과 시간을 쏟아붓기에 충분히 매력적인 영화라 생각했습니다. 토드 필립스 감독, 『조커 :: JOKER』 입니다. # 1. 이야기거리는 충분합니다. 팀 버튼이 정의한 유머와 품격의 검은색 조커, 크리스토퍼 놀란이 정의한 혼돈과 공포의 보라색 조커와는 차별화된 불안과 절망의 토드 필립스식 주황색 조커를 영화 전반에 걸친 색감을 중심으로 비교해 이야기할 수 있을 겁니다. 주요 장면마다 나오는 거울에 비친 아서와 그의 ..

컨트리 뮤직 메들리 _ 하늘 높이, 오틸리아 포르틸로 파두아 감독

# 0. 경쾌한 컨트리 음악 같은 다큐멘터리입니다. 현란하면서 푸근한 중저음의 기타 소리, 늘어난 테이프처럼 몸을 기대게 만드는 나무의자, 붉은빛과 노란빛이 연인처럼 뒤엉켜 펼쳐지는 노을, 희끗희끗한 덥수룩 수염의 다소 마초적인 할아버지의 느낌입니다. 하늘을 나는 새들의 자유로움과, 새들이 살아 숨 쉬는 자연의 평화로움과, 그들을 관찰하는 사람들의 여유로움이 37분간 잔잔한 메들리처럼 흐릅니다. '오틸리아 포르틸로 파두아' 감독, 『하늘 높이 - 국경의 철새들 :: Birders』 입니다. # 1. 우리말 제목은 입니다만 원제는 입니다. Bird + er + s. 직역하자면 '새... 사람' 쯤 되려나요? 접미사 '-er'은 행위자를 의미합니다. manager, player, employer 등 대부분 ..

천재감독이 빙의물을 만들면 _ 퍼스트맨, 데미안 샤젤 감독

# 1. 좋아하는 영화감독 있으신가요? 없으시다구요? 저런. 사람들과 이야기 하다 보면 가뭄에 콩 나듯 영화 얘기를 하게 될 때가 있는데요. 그럴 때 배우가 아니라 감독, 그것도 외국 감독 이름을 몇 개 얘기하면 아는 게 없어도 뭔가 있어 보일 수 있습니다. 이름 몇 개 붕권마냥 질러두고 이후엔 다 안다는 듯이 팔짱 끼고 고개만 끄떡이면 지식인의 완성이죠. 메모해 두세요. '존 도'라는 희대의 또라이를 만든 '데이빗 핀처'나 스칼렛 요한슨을 캐스팅해서 목소리만 뽑아 쓰고 버린 her의 '스파이크 존즈', 주드로, 메이슨 총리, 레아 세두, 볼드모트, 에드워드 노턴 같은 배우들을 불러다 단역으로 쓰면서 주연은 웬 처음 보는 과테말라계 미국 배우에게 맡긴 '웨스 앤더슨', 사람 못 죽여서 안달 난 '쿠엔틴 ..

Film/Drama 2019.10.03

꺼졌으면 좋겠네 _ 람다스, 고잉 홈, 데릭 펙 감독

# 0. 솔직히 람 다스가 누군지 모릅니다. 하버드대 교수였다는 데 어디 가봤어야 알죠.         데릭 펙 감독,『람다스, 고잉 홈 :: Ram Dass, Going Home』 입니다.     # 1.  대충 구글 신께 물어보니 뇌졸중으로 쓰러졌다 깨어난 영적 지도자라 그러네요. 영혼도 누가 지도해줘야 하는 건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前 직업이 교수였다니 직무 특성을 살렸나 보군요. 여튼, 그러려니 하겠습니다. 이 양반이 이 다큐멘터리 이전에 어떤 작업을 어떤 태도로 해왔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건 알 바가 아니죠. 전 이 다큐멘터리에 드러난 인상을 바탕으로만 이야기하도록 하겠습니다.  까놓고 말해서 좀 꺼졌으면 좋겠습니다. 다큐멘터리는 약쟁이 노인네가 뇌졸중으로 오늘내일하다가 살아난 후 현타가 왔다는 이..

3분 20초 _ 미드나잇 인 파리, 우디 앨런 감독

# 0. 1970~80년대 모타운 음악들을 좋아합니다. 스티비 원더나 템테이션스, 인챈트먼트, 잭슨 5, 마빈 게이, 슈프림즈 같은 이름들이죠. 리뷰를 쓰는 지금은 'Superstition'으로 유명한 '스티비 원더'의 『Talking Book』 앨범 수록곡 'Lookin' for another pure love'이 흘러나오고 있네요. 서른 줄이 넘어가다 보니 새로운 노래들을 찾는 게 점점 힘에 부친 달까요. 안전하고 이상적이라 생각하는 특정 브랜드에 익숙해져 갑니다. 얼마 전만 해도 이 정도는 아녔던 것 같은데요. 갑자기 서글프네요. 물론 이건 제가 이상한 거구요. 보통 저의 세대에겐 버즈와 SG워너비로 대변되는 소몰이 창법 때의 음악이 향수를 불러 일으킵니다. 저보다 살짝 윗 세대분들은 야다나 얀 같..

Film/Romance 2019.09.27

영상물 _ 걸프렌드 데이, 마이클 폴 스티븐슨 감독

# 0. 『Daum Movie』는 영화를 이렇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불운한 기념일 카드 작가가 불행을 당하는 영상물. 정확합니다. 저 문장이 전부입니다. 주인공은 불운하게 실직한 이혼남이구요. 기념일용 카드 문구를 만드는 작가였구요. 이야기 내내 불행하구요. 결과물은 영화가 아닌 '영상물'이죠. '마이클 폴 스티븐슨' 감독, 『걸프렌드 데이 :: Girlfriend's Day』 입니다. # 1. 고전적 화면비의 기념품 카드 광고. 시도 때도 없이 대문짝만 하게 들이미는 주인공의 얼굴. 과감하다면 과감하고 과격하다면 과격한 설정들. 정적인 구도에서 갑자기 벗어나는 핸드헬드 카메라. 미친놈인가 싶은 부엉인지 올빼민지 모를 닭둘기와 섹스하는 전 마누라에, 월세 대신 맡겨진 짐덩어리 꼬맹이가 제각각 따로 놉니다..

Film/Comedy 2019.09.23

블랙 코미디 _ 첼시의 백인 특권 전격 해부, 알렉스 스테이플튼 감독

# 0. 첼시는 능청스럽게 '백인스러움'을 연기합니다. 여기에서의 '백인스러움'이란 무신경하고 단편적이며 자기 확신이 강하고 자의식이 과잉되어 있고 철없어 보일 정도로 낙관적이고 오지랖을 부리고 무례하게 따지고 드는, 학습된 더 훌륭한 백인으로서의 행동 양식에 따라 기계적으로 움직이는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알렉스 스테이플튼 감독, 『첼시의 백인 특권 전격 해부 :: Hello, Privilege. It's Me, Chelsea.』입니다. # 1. 백인의 특권을 전격 해부 하겠다 말하는 동안 유색인종 가사도우미와 운전기사는 존재 자체로 풍자적입니다. 불편을 감수하지 않는 한도 내에서의 최대한의 도덕적 무장을 위한 위선을 꼬집습니다. 스스로 희화되는 걸 주저하지 않습니다. 그녀가 모른척 뻔뻔하게 연기하는 '..

Documentary/Social 2019.09.22

100년전 코미디 _ 황금광 시대, 찰리 채플린 감독

# 0. 좋은 작품들은 좋은 평가를 받습니다. 한 사람 두 사람 점점 많은 사람들이 만족을 표할수록 인지도는 높아집니다. 일정 숫자 이상의 사람들이 작품의 가치를 인정하면 명작 혹은 걸작이라 불리게 되죠. 작품들이 명작이나 걸작으로 평가받는 근거는 어디까지나 사람들의 감상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문제는 거기서 나아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게 되면 어느 순간부터 가치 역전이 일어나게 된다는 건데요. 사람들이 좋아해서 좋은 작품인 것이 아니라 좋은 작품이기 때문에 좋아해야만 하는 작품이 되는 것이죠. 그때부턴 작품에 대한 감상과 작품의 가치는 이미 결정된 것으로 받아들여집니다. 감상평은 일종의 사상검증으로 전락하죠. '찰리 채플린' 감독, 『황금광 시대 :: the Gold Rush』입니다. ..

Film/Comedy 2019.09.13

조니 뎁 & 케이트 윈슬렛 _ 신비의 바다, 하워드 홀 감독

# 0. 북중미 해양 생태계를 배경으로 한 '아동용' 자연 다큐멘터리입니다. 해양 생물들의 모습이 어른들 눈에도 충분히 신기하지만 그럼에도 이 영화는 어디까지나 아이들의 입에서 '우와' 소리를 내는 걸 목적으로 합니다. 현학적이거나 철학적인 메시지 따위는 추구하지 않고 추구할 수도 없습니다. 요즘 나오는 대부분의 다큐멘터리들이 학술적 정보공유와 정치 담론 혹은 철학적 주제의식을 전달하기 위한 것들이라는 걸 생각할 때, 분명 이질적이긴 합니다. 이 다큐멘터리가 나온 게 2008년인데요. 대체 10년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길래 진지충들이 이렇게나 많아진 걸까요. '하워드 홀' 감독, 『신비의 바다 :: Deep Sea 3D』입니다. # 1. '조니 뎁'과 '케이트 윈슬렛'이 연기하듯 주고받는 내레이션이 인상..

비겁한 감독, 비열한 영화 _ 100세 예술가, 앨리슨 클레이먼 감독

# 0. '카르멘 에레라'가 고령에서야 빛을 발하는 건지, 고령이어서 빛을 발하는 건지 혼란스럽습니다. 감독은 그녀가 어떤 예술을 하고 있는지에 관심이 없어 보입니다. 감독은 그녀가 대단한 예술가라는 결론을 미리 내려놓은 채 이 대단한 예술가가 살아온 과정과 노쇠한 모습을 대조적으로 담아내는 것에만 집중합니다. 그래서 작품의 제목도 가 아닌 . 감독의 눈에 비친 예술가 '카르멘 에레라'의 가장 중요한 정체성은 그녀가 평생 표현하고자 했던 '질서의 예술'이 아니라 100살이라는 나이입니다. '앨리슨 클레이먼' 감독, 『100세 예술가 :: The 100 Years Show』 입니다. # 1. 카르멘 에레라의 예술 세계에 대한 이야기는 빈곤하다 말하는 게 민망할 정도로 전무합니다. "말로 표현할 수 없기 때..

Documentary/Art 2019.09.08

HOMAGE _ 카우보이의 노래, 코엔 형제 감독

# 0. 지금 어딘가에 또 한 명의 아이가 있다. 노래와 총질을 배우며 전설이 되길 꿈꾸는 아이 언제가 그는 그 아이를 만날 테고 다르고도 같은 이야기가 또 생겨날 것이다. 코엔 형제 감독, 『카우보이의 노래 :: The Ballad of Buster Scruggs』입니다. # 1. 죽음의 춤판이 벌어집니다. 한껏 멋 부린 총잡이들이 낡은 기타를 둘러메고 흥겨운 노래를 부릅니다. 어차피 한번 살다 가는 인생. 죽기밖에 더하겠냐는 식의 능동적 허무주의가 6개의 옴니버스를 관통합니다. 부유하는 정체성입니다. 대부분의 인물들에겐 이름이 없습니다. 이름 있는 몇몇 카우보이들은 이름으로 불리기보단 어떤 캐릭터로 기억되길 바랍니다. 첫 번째 에피소드 속 '버스트 스크럭스'는 '샌사바의 노래하는 새'로 불리길 원하지..

Film/Comedy 2019.09.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