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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cumentary/Art

비겁한 감독, 비열한 영화 _ 100세 예술가, 앨리슨 클레이먼 감독

그냥_ 2019. 9. 8.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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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카르멘 에레라'가 고령에서야 빛을 발하는 건지, 고령이어서 빛을 발하는 건지 혼란스럽습니다. 감독은 그녀가 어떤 예술을 하고 있는지에 관심이 없어 보입니다. 감독은 그녀가 대단한 예술가라는 결론을 미리 내려놓은 채 이 대단한 예술가가 살아온 과정과 노쇠한 모습을 대조적으로 담아내는 것에만 집중합니다. 그래서 작품의 제목도 <질서의 예술가>가 아닌 <100세 예술가>. 감독의 눈에 비친 예술가 '카르멘 에레라'의 가장 중요한 정체성은 그녀가 평생 표현하고자 했던 '질서의 예술'이 아니라 100살이라는 나이입니다.

 

 

 

 

 

 

 

 

'앨리슨 클레이먼' 감독,

『100세 예술가 :: The 100 Years Show』 입니다.

 

 

 

 

 

# 1.

 

카르멘 에레라의 예술 세계에 대한 이야기는 빈곤하다 말하는 게 민망할 정도로 전무합니다. "말로 표현할 수 없기 때문에 예술인 거야!" 라는 당사자의 인터뷰 하나로 예술과 관련된 모든 이야기들을 대충 뭉갠 후 어릴 적 이야기나 남편과의 결혼, 프랑스와 뉴욕으로의 이민 생활과 이후 남편을 잃었던 순간 등의 살아온 이야기를 하는 데에만 집중합니다. 감독과 '카르멘 에레라'의 주변 인물들이 미리 그녀의 작품이 대단한 것이라는 결론을 내려놓은 후 이걸 관객에게 주입하는 방향으로 다큐멘터리가 흘러갑니다.

 

관객 스스로 작품을 느끼게 하는 과정이 전무합니다. 영화는 단 한순간도 그녀의 대표작을 진득하게 보여주지 않습니다. 단 한순간도 말이죠. 감독은 그녀의 창작물들을 겹치고 겹치며 스크린 위에 배설하듯 쏟아내고 지나갑니다. "이거 봐라. 이 노인이 이렇게나 많이 만들었단다. 대단하지? 이거 대단한 거야! 그런데 이제서야 빛을 발한 거라고! 알았어?"

 

일련의 연출은 주인공을 여타 예술가들과 동등한 출발선에서 경쟁하는 동료 예술가로 보고 있지 않음을 의미합니다. 한 인물이 100년을 살아오고서야 예술가로서 인정받았다는 이야기를 하는 영화가 역설적으로 그녀의 예술가로서의 직업적 생명에 사망선고를 가하는 셈이죠. 전기 영화를 만든 감독이 되려 주인공을 모욕하고 있다니. 감독은 미친 걸까요.

 

 

 

 

 

 

# 2.

 

어떤 면에선 영화 전체가 마치 현대 예술에 대한 자조적 풍자처럼 보일 지경입니다. 만초니의 <예술가의 똥>을 보는 듯 말이죠. 냉정히 말해서 외부적 요인에 의해 경제적 가치가 생겨 버린 작품에 그럴싸한 이름을 붙여 평론을 덧대고 있다는 인상이 강합니다. 예술가의 창조적 결과물이 가지는 내제적 가치에 대한 고찰보다는 이 예술가의 상업적 모멘텀을 북돋우는 과정으로 점철됩니다. 영화는 전반적으로 '100세'라는 브랜드가 매우 가치 있는 무언가 인 것인 양 합리화되는 과정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더군다나 감독이 펼쳐놓는 장난질의 대상이 노년의 여인이라면 더욱 편리합니다.

언더도그마가 작동하기 쉽거든요.

 

사람들은 이미 죽은 사람이나 곧 죽을 가능성이 높은 노인들에겐 불필요할 정도로 관대합니다. 어차피 더 이상 가져갈 게 별로 없으니까요. 말로 차린 성찬이라면 얼마든지 해줄 수 있습니다. 그녀와 그녀를 둘러싼 휘향 찬란한 찬사들에 반하는 다른 의견을 내봐야 그것이 옳냐 그르냐 이전에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 해? 너무 무례한 것 아니야?'라는 반응이 먼저 터져 나올 겁니다. 대놓고 거품을 끼우는데 그 거품이 꺼지지도 꺼트릴 수도 없는 상품. 그녀를 이용하고 싶은 악당들이 군침 흘릴만 하죠.

 

 

 

 

 

# 3.

 

그렇다면 왜 이렇게 영화를 만들었을까요. 왜 주인공을 이토록 도구적으로 폄하하는 걸까요. 감독의 음흉하고 비열한 속셈은 영화 후반부에 너무도 잘 드러납니다. 감독은 여성차별과 관련된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거군요.

 

이 작품은 '카르멘 에레라'라는 예술가를 조명하기 위해 만든 영화가 아닙니다. 여성차별 극복의 아이콘이 필요해서 그녀를 '동원'했을 뿐이죠. 후반부 인터뷰부터 제작자의 숨길 수 없는 열패감이 묻어납니다. 한창 성차별이 만연했을 1950`~60` 뉴욕을 살아왔던 '카르멘 에레라'가 이 부당함을 이야기할 수는 있겠지만, 정작 당사자는 담담한 것과 대조되죠.

 

분명히 합니다. 당연히 성차별은 나쁜 겁니다. 당시에 성차별이 없었던 것이 아님은 너무도 잘 압니다. 그녀의 창작물은 성차별이 만연한 사회에서 부당한 취급을 당한 지점이 있었다는 것은 동의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부당함이 존재했느냐 존재하지 않았느냐, 옳으냐 그르냐라는 것과 한 인물의 전기적 다큐멘터리에서 이런 패악질을 놓아도 되느냐 라는 건 별개의 문제입니다. 제 아무리 의도가 좋다 한이러면 안 됩니다. 이건 무례한 거죠.

 

 

 

 

 

# 4.

 

성차별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면 당당하게 성차별을 주제로 다큐멘터리를 만들면 됩니다. 옛날의 성차별을 증언해줄 사람으로 당시의 여성 예술가였던 '카르멘 에레라'를 인터뷰하는 건 정당하죠. 그런 식으로 일을 진행하는 건 문제가 없습니다. 기꺼이 박수 쳐 줄 수 있습니다.

 

반면 이 영화는 '카르멘 에레라'를 주인공으로 내세우면서 그 뒤로 감독 자신이 하고 싶은 메시지를 숨기고 있습니다. 이건 메시지를 만들어 설득하려는 사람의 자세가 아닙니다. 자신의 메시지를 반대하는 건 곧 이 100살 노인을 모욕하는 것이라는 식으로 노령의 예술가를 방패막이, 총알받이로 이용하는 거죠. 정말이지 역겨움에 침을 뱉어주고 싶군요. '앨리슨 클레이먼' 감독, <100세 예술가>였습니다.

 

' 앨리슨 클레이먼' 감독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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