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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Comedy

구연동화 _ 잭은 무슨 짓을 했는가, 데이비드 린치 감독

그냥_ 2020. 2. 17.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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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무서운 영화입니다. 장르적으로 무서운 건 아니구요. 감독이 '데이비드 린치'이기 때문이죠.

 

BBC 선정 21세기 최고의 영화이자 제54회 칸 영화제 감독상 수상작 『멀홀랜드 드라이브』의 그 감독 맞습니다. 살얼음을 내딛는 듯하군요. 까딱 헛소리를 잘못했다간 마니아들에게 영알못이라고 까일 테구요. 별 내용도 없이 좋다고 나댓다간 허세충으로 내몰릴 겁니다. 아! 그래서 감독 이름이 린치인 걸까요?

 

 

 

 

 

 

 

 

'데이비드 린치' 감독,

『잭은 무슨 짓을 했는가 :: What did jack do?』 입니다.

 

 

 

 

 

# 1.

 

이야기는 단순합니다. 닭가슴살 부드러운 여자 친구를 둔 말하는 원숭이가 일흔 넘은 감독에게 취조 당하는 영화죠. 능청스럽게 원숭이 앞에 앉아 온갖 개드립을 세상 진지한 표정으로 십여 분간 주절대다 원숭이 노래 한차례 듣고, 예토 전생한 닭을 보고 깜짝 놀란 후 감독과 원숭이가 총을 들고 나 잡아봐라 한다는 내용입니다.

 

스스로 미스터리 드라마라 우기고 있지만, 실상은 누아르를 흉내 낸 코미디에 훨씬 가깝습니다. 대사 속에 나름의 위트가 상당수 숨어 있습니다만 안타깝게도 대부분 영미식 말장난인 데다 불행히도 넷플릭스의 번역이 샤론 최의 그것만큼 유려하지는 못하기에 우리 관객들 입장에서 폭소를 자아낼만하지는 못하는군요. 그나마 영화에서 가장 감동적인 부분은 메이드 옷을 입은 커피 서빙녀의 미모뿐입니다. 4:00. 감사인사는 댓글로 달아주세요.

 

# 2.

 

오히려 연출에서 찝찝한 냄새가 풍겨오는 게 인상적입니다. 어색한 입모양의 원숭이가 어그로를 잔뜩 먹고는 있습니다만, 그 이면에 취조하는 경찰과 용의자가 함께 나오는 풀샷이 거의 없다는 점이 너무 이상하거든요. 아무리 짧은 단편이라지만 카메라 구도가 이 정도로 단순한 건 이례적입니다. 감독은 왜 이런 선택을 한 걸까요? 글쎄요. 인터뷰를 보거나 하지는 못해 정확하지는 않습니다만, 전 원숭이의 모션을 먼저 따 놓고 이후에 대사를 만들어 붙인 것이 아닐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영화의 초반부 자신의 동공이 커졌냐고 되묻는 대목이나, 대화를 주고받는 동안의 부자연스러운 리듬이 의심에 확신을 더하는군요.

 

즉, 시나리오를 쓰고 배역을 결정하고 화면을 구성한 후 촬영하고 편집한다라는 일반적인 영화의 작업순서와 달리, '기차 칸에 원숭이가 앉아있다'라는 상황만 덩그러니 놓고, 원숭이가 뿌리는 불특정한 패턴의 다양한 모션을 촬영한 후, 감독의 상상력으로 대사를 부여하고, 그렇게 만들어진 대사를 짜깁기 해 서사를 만든 후, 이를 이어 붙이기 위해 감독 자신이 맞은편에 앉아 말을 주고받는 식으로 영화를 만들지 않았겠냐라는 거죠.

 

 

 

 

 

 

# 3.

 

추측이 맞다면 영화의 대사는 사실 원숭이의 행동과 표정, 시선처리에 의해 결정된 셈입니다. 감독은 그저 원숭이의 행동이라는 불확실한 변수가 자유롭게 펼쳐지는 걸 소집해 상황과 대사를 결정했을 뿐이죠. 마치 창의적인 화가가 꼬리에 물감을 바른 강아지를 캔버스 위로 자유롭게 돌아다니게 한 후, 그 흔적을 그림으로 승화시키는 것과 같습니다. 창의적인 음악가가 주변의 소음이나 무색무취한 비프음 따위를 수집해 악상을 창조해 내는 것과도 같습니다. 『잭은 무슨 짓을 했는가』라는 제목 속의 '무슨 짓'은 서사적인 측면에서 '잭'이 누군가를 죽였는지에 대한 취조이면서 동시에, 영화를 만들고 결정하는 감독질로도 볼 수 있는 중의적인 제목이라 할 수 있겠죠.

 

이 방식 하에서라면 이건 말로만 영화지, 감독이 동물을 데려다 의인화 해 더빙을 하며 함께 논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꼬마 아이들이 장난감 가지고 놀며 자기 입으로 슝~ 펑~ 으악! 하는 것들 말이죠. 흔히 아동용 프로그램이나, 동물 예능 따위에서 성우를 불러다 더빙을 덧붙이고, 자막을 달아 감정을 부여하는 연출들을 하곤 하잖아요? 그것을 영화적으로 표현했다고 생각하면 적당할 겁니다. 일흔이 훌쩍 넘은 할아버지의 구연동화인 셈이죠. 이 무슨 창의성이며 이전에 이 무슨 귀여움인가요.

 

특히 재미있는 지점은 원숭이에게 사람의 입을 붙이는 방식입니다. 이거 꼭 대사 치는 자기 입 대충 잘라다가 얹은 것 같거든요. 현대의 영화기술을 생각할 때 마음만 먹었다면 원래 원숭이의 입으로 얼마든지 자연스럽게 처리할 수 있었을 텐데도 불구하고 감독은 굳이 그러지 않습니다. 감독에게 이 영화는 공들여 완성해야 하는 작품이라기보다는 재기 발랄하고 호기롭던 시절로 돌아가게 만드는 찰흙놀이에 가깝기 때문이죠. 흑백의 화면 역시 기술적인 측면에서 부자연스럽고 불편한 지점을 가리면서 동시에 대사와 인물의 관계에 주목하게 하는 기술적 기능도 하고 있습니다만, 그런 것들을 모두 차치하고서라도 그가 처음 영화를 만나던 시절의 것과 같은 노스탤지어로 읽히기도 합니다. 

 

# 4.

 

... 언젠가부터 나이를 먹고 나잇값 하는 것도 참 어렵습니다만, 나이를 먹고도 나잇값에 얽매이지 않는 것이 그것보다 조금 더 어려운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요. 저 나이에 이런 놀이를 즐길 수 있는 내면은 무척이나 부럽네요. '데이비드 린치' 감독, 아니 어쩌면 '잭' 감독, 『잭은 무슨 짓을 했는가』 였습니다.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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