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좋아하세요? :)

늦은 저녁 맥주 한 캔을 곁들인 하루 한편의 영화, 그리고 수다.
영화 이야기는 언제나 환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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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영화 286

코믹스 맛 _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 밥 퍼시케티 / 피터 램지 / 로드니 로스먼 감독

# 0. 영화에 만화나 소설을 그대로 이식하게 되면 괴작이 되기 십상입니다. 이재용 감독의 , 오기환 감독의 , 덩컨 존스 감독의 , 이 분야 끝판왕 황예유 감독의 과 같이 남들이 무수히 나자빠지는 걸 보면서도 굳이 똥인지 된장인지를 찍어먹어 보던 이 영화들은 그 좋은 예라 할 수 있겠죠. 이런 류와 같이 엮이고 싶지 않은 대부분의 감독들은 코믹스의 캐릭터나 플롯, 주제의식 따위들만을 선택적으로 혹은 부분적으로 가져온 후 영화적 문법으로 재해석하는 방식을 택합니다. 최동훈 감독의 나 박찬욱 감독의처럼 말이죠. '밥 퍼시케티', '피터 램지', '로드니 로스먼' 감독,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 :: Spider-Man Into the Spider-Verse』입니다. # 1. 영화는 앞서 나열할 작품들과는 ..

Film/Animation 2019.11.07

그냥 겁나 재밌어 _ 헤이트풀 8,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

# 0. 소소하게 블로그를 굴린 후로 안 좋은 습관이 하나 생겼습니다. 영화를 분석하듯 또 평가하듯 보게 되었다는 점이죠. 처음부터 그러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요. 언젠가부터 정신줄 놓고 보다가 포스팅할 만한 내용을 발견하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머리 한켠에 가시처럼 박혀 감상을 방해하고 있습니다. 하나뿐인 취미 더 재미있게 즐겨보자고 시작한 짓이 되려 방해가 되고 있다니. 멍청한 일이군요. 근래 들어 이렇게 영화를 봐서 뭐하나 하는 현타가 스멀스멀 몰려오던 중 결국 토드 필립스의 를 리뷰하다 폭발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에라이! 덮어놓고 막보자! 아무것도 발견 못해도 좋고, 유의미한 견해가 없어도 좋으니 최대한 즐기면서 막보자!'는 생각으로 영화 한 편을 골랐습니다. 그것도 겁나 영화 잘 만드는 ..

그게 무슨 의미가 있나 _ 조커, 토드 필립스 감독

# 0. 영화가 시작하면서부터 아니 수개월 전 예고편을 보고 난 후부터 생각했습니다. 죽인다. 예술이다. 기가 막히다. 여태까지 140여 편을 리뷰하는 동안 작품이 너무 좋아서 씬 별로 쪼개가며 돌려 봤던 작품은 알폰소 쿠아론의 와 박찬욱 감독의 뿐이었는데요. 이 영화는 앞선 두 작품만큼이나 노력과 시간을 쏟아붓기에 충분히 매력적인 영화라 생각했습니다. 토드 필립스 감독, 『조커 :: JOKER』 입니다. # 1. 이야기거리는 충분합니다. 팀 버튼이 정의한 유머와 품격의 검은색 조커, 크리스토퍼 놀란이 정의한 혼돈과 공포의 보라색 조커와는 차별화된 불안과 절망의 토드 필립스식 주황색 조커를 영화 전반에 걸친 색감을 중심으로 비교해 이야기할 수 있을 겁니다. 주요 장면마다 나오는 거울에 비친 아서와 그의 ..

컨트리 뮤직 메들리 _ 하늘 높이, 오틸리아 포르틸로 파두아 감독

# 0. 경쾌한 컨트리 음악 같은 다큐멘터리입니다. 현란하면서 푸근한 중저음의 기타 소리, 늘어난 테이프처럼 몸을 기대게 만드는 나무의자, 붉은빛과 노란빛이 연인처럼 뒤엉켜 펼쳐지는 노을, 희끗희끗한 덥수룩 수염의 다소 마초적인 할아버지의 느낌입니다. 하늘을 나는 새들의 자유로움과, 새들이 살아 숨 쉬는 자연의 평화로움과, 그들을 관찰하는 사람들의 여유로움이 37분간 잔잔한 메들리처럼 흐릅니다. '오틸리아 포르틸로 파두아' 감독, 『하늘 높이 - 국경의 철새들 :: Birders』 입니다. # 1. 우리말 제목은 입니다만 원제는 입니다. Bird + er + s. 직역하자면 '새... 사람' 쯤 되려나요? 접미사 '-er'은 행위자를 의미합니다. manager, player, employer 등 대부분 ..

천재감독이 빙의물을 만들면 _ 퍼스트맨, 데미안 샤젤 감독

# 1. 좋아하는 영화감독 있으신가요? 없으시다구요? 저런. 사람들과 이야기 하다 보면 가뭄에 콩 나듯 영화 얘기를 하게 될 때가 있는데요. 그럴 때 배우가 아니라 감독, 그것도 외국 감독 이름을 몇 개 얘기하면 아는 게 없어도 뭔가 있어 보일 수 있습니다. 이름 몇 개 붕권마냥 질러두고 이후엔 다 안다는 듯이 팔짱 끼고 고개만 끄떡이면 지식인의 완성이죠. 메모해 두세요. '존 도'라는 희대의 또라이를 만든 '데이빗 핀처'나 스칼렛 요한슨을 캐스팅해서 목소리만 뽑아 쓰고 버린 her의 '스파이크 존즈', 주드로, 메이슨 총리, 레아 세두, 볼드모트, 에드워드 노턴 같은 배우들을 불러다 단역으로 쓰면서 주연은 웬 처음 보는 과테말라계 미국 배우에게 맡긴 '웨스 앤더슨', 사람 못 죽여서 안달 난 '쿠엔틴 ..

Film/Drama 2019.10.03

꺼졌으면 좋겠네 _ 람다스, 고잉 홈, 데릭 펙 감독

# 0. 솔직히 람 다스가 누군지 모릅니다. 하버드대 교수였다는 데 어디 가봤어야 알죠.         데릭 펙 감독,『람다스, 고잉 홈 :: Ram Dass, Going Home』 입니다.     # 1.  대충 구글 신께 물어보니 뇌졸중으로 쓰러졌다 깨어난 영적 지도자라 그러네요. 영혼도 누가 지도해줘야 하는 건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前 직업이 교수였다니 직무 특성을 살렸나 보군요. 여튼, 그러려니 하겠습니다. 이 양반이 이 다큐멘터리 이전에 어떤 작업을 어떤 태도로 해왔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건 알 바가 아니죠. 전 이 다큐멘터리에 드러난 인상을 바탕으로만 이야기하도록 하겠습니다.  까놓고 말해서 좀 꺼졌으면 좋겠습니다. 다큐멘터리는 약쟁이 노인네가 뇌졸중으로 오늘내일하다가 살아난 후 현타가 왔다는 이..

3분 20초 _ 미드나잇 인 파리, 우디 앨런 감독

# 0. 저는 모타운 음악들을 좋아합니다. 우디 앨런 감독,『미드나잇 인 파리 :: Midnight in Paris』입니다. # 1. 스티비 원더나 템테이션스, 인챈트먼트, 잭슨 5, 마빈 게이, 슈프림즈 같은 이름들이죠. 리뷰를 쓰는 지금은 Superstition으로 유명한 스티비 원더의 『Talking Book』 앨범 수록곡 Lookin' for another pure love이 흘러나오고 있네요. 서른 줄이 넘어가다 보니 새로운 노래들을 찾는 게 점점 힘에 부친 달까요. 안전하고 이상적이라 생각하는 특정 브랜드에 익숙해져 갑니다. 얼마 전만 해도 이 정도는 아녔던 것 같은데요. 갑자기 서글프네요. 물론, 이건 제가 이상한 거구요. 보통 저의 세대에겐 버즈와 SG워너비로 대변되는 ..

Film/Romance 2019.09.27

영상물 _ 걸프렌드 데이, 마이클 폴 스티븐슨 감독

# 0. 『Daum Movie』는 영화를 이렇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불운한 기념일 카드 작가가 불행을 당하는 영상물. 정확합니다. 저 문장이 전부입니다. 주인공은 불운하게 실직한 이혼남이구요. 기념일용 카드 문구를 만드는 작가였구요. 이야기 내내 불행하구요. 결과물은 영화가 아닌 '영상물'이죠. '마이클 폴 스티븐슨' 감독, 『걸프렌드 데이 :: Girlfriend's Day』 입니다. # 1. 고전적 화면비의 기념품 카드 광고. 시도 때도 없이 대문짝만 하게 들이미는 주인공의 얼굴. 과감하다면 과감하고 과격하다면 과격한 설정들. 정적인 구도에서 갑자기 벗어나는 핸드헬드 카메라. 미친놈인가 싶은 부엉인지 올빼민지 모를 닭둘기와 섹스하는 전 마누라에, 월세 대신 맡겨진 짐덩어리 꼬맹이가 제각각 따로 놉니다..

Film/Comedy 2019.09.23

블랙 코미디 _ 첼시의 백인 특권 전격 해부, 알렉스 스테이플튼 감독

# 0. 첼시는 능청스럽게 '백인스러움'을 연기합니다. 여기에서의 '백인스러움'이란 무신경하고 단편적이며 자기 확신이 강하고 자의식이 과잉되어 있고 철없어 보일 정도로 낙관적이고 오지랖을 부리고 무례하게 따지고 드는, 학습된 더 훌륭한 백인으로서의 행동 양식에 따라 기계적으로 움직이는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알렉스 스테이플튼 감독, 『첼시의 백인 특권 전격 해부 :: Hello, Privilege. It's Me, Chelsea.』입니다. # 1. 백인의 특권을 전격 해부 하겠다 말하는 동안 유색인종 가사도우미와 운전기사는 존재 자체로 풍자적입니다. 불편을 감수하지 않는 한도 내에서의 최대한의 도덕적 무장을 위한 위선을 꼬집습니다. 스스로 희화되는 걸 주저하지 않습니다. 그녀가 모른척 뻔뻔하게 연기하는 '..

Documentary/Social 2019.09.22

100년전 코미디 _ 황금광 시대, 찰리 채플린 감독

# 0. 좋은 작품들은 좋은 평가를 받습니다. 한 사람 두 사람 점점 많은 사람들이 만족을 표할수록 인지도는 높아집니다. 일정 숫자 이상의 사람들이 작품의 가치를 인정하면 명작 혹은 걸작이라 불리게 되죠. 작품들이 명작이나 걸작으로 평가받는 근거는 어디까지나 사람들의 감상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문제는 거기서 나아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게 되면 어느 순간부터 가치 역전이 일어나게 된다는 건데요. 사람들이 좋아해서 좋은 작품인 것이 아니라 좋은 작품이기 때문에 좋아해야만 하는 작품이 되는 것이죠. 그때부턴 작품에 대한 감상과 작품의 가치는 이미 결정된 것으로 받아들여집니다. 감상평은 일종의 사상검증으로 전락하죠. '찰리 채플린' 감독, 『황금광 시대 :: the Gold Rush』입니다. ..

Film/Comedy 2019.09.13

조니 뎁 & 케이트 윈슬렛 _ 신비의 바다, 하워드 홀 감독

# 0. 북중미 해양 생태계를 배경으로 한 '아동용' 자연 다큐멘터리입니다. 해양 생물들의 모습이 어른들 눈에도 충분히 신기하지만 그럼에도 이 영화는 어디까지나 아이들의 입에서 '우와' 소리를 내는 걸 목적으로 합니다. 현학적이거나 철학적인 메시지 따위는 추구하지 않고 추구할 수도 없습니다. 요즘 나오는 대부분의 다큐멘터리들이 학술적 정보공유와 정치 담론 혹은 철학적 주제의식을 전달하기 위한 것들이라는 걸 생각할 때, 분명 이질적이긴 합니다. 이 다큐멘터리가 나온 게 2008년인데요. 대체 10년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길래 진지충들이 이렇게나 많아진 걸까요. '하워드 홀' 감독, 『신비의 바다 :: Deep Sea 3D』입니다. # 1. '조니 뎁'과 '케이트 윈슬렛'이 연기하듯 주고받는 내레이션이 인상..

비겁한 감독, 비열한 영화 _ 100세 예술가, 앨리슨 클레이먼 감독

# 0. '카르멘 에레라'가 고령에서야 빛을 발하는 건지, 고령이어서 빛을 발하는 건지 혼란스럽습니다. 감독은 그녀가 어떤 예술을 하고 있는지에 관심이 없어 보입니다. 감독은 그녀가 대단한 예술가라는 결론을 미리 내려놓은 채 이 대단한 예술가가 살아온 과정과 노쇠한 모습을 대조적으로 담아내는 것에만 집중합니다. 그래서 작품의 제목도 가 아닌 . 감독의 눈에 비친 예술가 '카르멘 에레라'의 가장 중요한 정체성은 그녀가 평생 표현하고자 했던 '질서의 예술'이 아니라 100살이라는 나이입니다. '앨리슨 클레이먼' 감독, 『100세 예술가 :: The 100 Years Show』 입니다. # 1. 카르멘 에레라의 예술 세계에 대한 이야기는 빈곤하다 말하는 게 민망할 정도로 전무합니다. "말로 표현할 수 없기 때..

Documentary/Art 2019.09.08

HOMAGE _ 카우보이의 노래, 코엔 형제 감독

# 0. 지금 어딘가에 또 한 명의 아이가 있다.노래와 총질을 배우며 전설이 되길 꿈꾸는 아이언제가 그는 그 아이를 만날 테고다르고도 같은 이야기가 또 생겨날 것이다. 코엔 형제 감독,『카우보이의 노래 :: The Ballad of Buster Scruggs』입니다. # 1. 죽음의 춤판이 벌어집니다. 한껏 멋 부린 총잡이들이 낡은 기타를 둘러메고 흥겨운 노래를 부릅니다. 어차피 한번 살다 가는 인생. 죽기밖에 더하겠냐는 식의 능동적 허무주의가 6개의 옴니버스를 관통합니다. 부유하는 정체성입니다. 대부분의 인물들에겐 이름이 없습니다. 이름 있는 몇몇 카우보이들은 이름보단 캐릭터로 기억되길 바랍니다. 첫 번째 에피소드 속 '버스트 스크럭스'는 '샌사바의 노래하는 새'로 불리길 원하지만..

Film/Comedy 2019.09.02

조슈아 영웅전 ⅱ _ 우산혁명, 조 피스카텔라 감독

조슈아 영웅전 ⅰ _ 우산혁명, 조 피스카텔라 감독 # 0. 오프닝부터 분위기를 잡고 들어갑니다. 검은 화면, 쏟아지는 박수소리, 절절한 구호와 이들을 노려보는 경찰들이 연이어 카메라에 담깁니다. 1500여 명의 시민 앞에 어른들은 대체 다 어디 있 morgosound.tistory.com # 5. 닷새째 되는 날 해 뜰 무렵 동쪽에서 나타난 '간달프'가 몰고 온 로한의 기사들처럼. '조슈아'는 '렁춘잉'의 국민교육이란 군대를 멋지게 물리칩니다. 하지만 말씀드린 대로 그는 중간보스에 불과합니다. 우리는 '사루만'이 아니라 '사우론'을 물리쳐야 하죠. 누가 뭐래도 이 사단의 끝판왕은 '시진핑'입니다. 감독은 '렁춘잉'이 폐퇴하기 무섭게 긴장감을 한껏 조성하는 장중한 음악과 함께 끝판왕을 소개합니다. 늙고 ..

조슈아 영웅전 ⅰ _ 우산혁명, 조 피스카텔라 감독

# 0. 오프닝부터 분위기를 잡고 들어갑니다. 검은 화면, 쏟아지는 박수소리, 절절한 구호와 이들을 노려보는 경찰들이 연이어 카메라에 담깁니다. 1500여 명의 시민 앞에 어른들은 대체 다 어디 있느냐 일갈하는 깡마른 소년, 우리는 지금 시대의 문제를 다음 세대에까지 넘기지 않겠다 선언하는 소년이 연단에 서 있습니다. 감독은 지금의 시위를 둘러싼 문제가 이해관계 충돌의 정치 쟁점이 아닌 과거와 미래의 삶의 방식을 결정하는 가치의 문제라 규정합니다. 연설이 끝나기 무섭게 광장으로 쏟아지는 시민들에게서 강렬한 현장의 에너지를 전달받습니다. 거부할 수 없는 시대적 소명과, 그럼에도 결코 쉬운 길은 아니라는 것을 시각적으로 구체화합니다. 감독은 오프닝을 통해 소년으로 대표되는 시민들의 인식과 제작진의 인식이 합..

소년의 앞날에 축복을 _ 창 너머 춤을, 랄프 마치오 감독

# 0. 할머니 손에 맡겨진 아이는 창 너머의 댄서를 봅니다. 댄서의 유려한 자태를 동경하게 됩니다. 아름다운 움직임을 사랑합니다. 보지 못하는 날이면 슬픔에 잠깁니다. 슬퍼할 때면 함께 가슴 아파합니다. 목소리를 듣고 싶어 합니다. 눈빛을 보고 싶어 합니다. 댄서와의 춤을 꿈꾸며 좁은 방 음악도 없이 홀로 춤을 춥니다. 댄서를 보고 난 후 아이는 그 전까지와는 다른 사람이 되어갑니다. 사랑과 동경과 질투와 슬픔과 분노와 호기심과 꿈. 이 모든 정서들의 총합을 한마디로 정의하라 한다면 '성장'이라 할 수 있겠죠. 네. 이 영화는 부모의 그늘에서 보살핌 받던 아이가 소년으로 성장하는 영화입니다. '랄프 마치오' 감독, 『창 너머 춤을 :: Across Grace Alley』 입니다. # 1. 곁눈질로 엿볼..

Film/Drama 2019.08.17

너무 줄인걸까 -2- [버드 박스, 수사네 비르 감독]

이전글 : 너무 줄인걸까 -1- [버드 박스, 수사네 비르 감독] 공산품 캐릭터 자, 이제 아쉬운 점들을 이야기해 볼까요? 솔직히. 주인공 파티의 캐릭터 구성은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상투적입니다. 뭔가 '이야기'라는 걸 하라면 으레 갖추어야만 할 것 같은 캐릭터들이 기계적으로 군집해 있는 모양새랄까요. 만능에 가까운 잔다르크 주인공과 수다스럽고 정 많은 여동생, 건강하고 밝고 착하면서 희생정신으로 온데 무장한 스테레오 타입의 백마 탄 왕자님과 차분하고 이성적인 게이 집주인, 자기 자신과 자기 가족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백인 중년 마초, 조용하고 지혜로운 할머니와 회의적 허무주의에 빠진 약쟁이, 어설픈 여자 경찰 연수생에, 살찐 오덕 너드, 유약한 임산부까지. 딱히 작가의 애정이 느껴지지 않는 캐릭터들이 주..

Film/SF & Fantasy 2019.08.15

너무 줄인걸까 -1- [버드 박스, 수사네 비르 감독]

영화의 제목에서처럼 디스토피아 속 사람들 역시 케이지에 갇힌 새의 신세와 다르지 않습니다. 이해할 수 없고, 파훼할 수 없는 압도적 존재 앞에서의 무력감이 영화의 분위기를 육중하게 지배합니다. 극단적인 상황 하에 강제로 발가벗겨진 사람들의 본성과, 관계나 외로움과 같은 인성의 근원에 닿아 있는 관념들에 대한 고찰을 흥미롭게 제시합니다. 영화의 장르는 분명 공포, 서스펜스, 스릴러임에도 불구하고 진중하고 건조한 미스터리 소설과 같은 분위기가 기저에 흐르는 건 이런 철학적 주제의식과도 연관이 있는 거겠죠. 『진격의 거인』의 그것도 얼핏 연상됩니다만, 빌어먹을 쓰레기 극우 작가 놈 때문에 손절한 만화를 다시 떠올리고 싶지는 않으니, 최근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킹덤』을 연상하는 걸로 대신하도록 합시다. '수사..

Film/SF & Fantasy 2019.08.13

엔진 없는 자동차 _ 허쉬, 마이크 플래너건 감독

# 0. 덜떨어진 살인마가 힘케 여주에게 잘못 걸려 개털리는 영화입니다. '마이크 플래너건' 감독, 『허쉬 :: HUSH』입니다. # 1. 살인마의 패널티는 무엇인가 살인마와 사냥감의 대결입니다. 무시무시한 살인마가 주인공을 위협하는 동안의 공포와, 극적으로 탈출하는 순간의 카타르시스를 즐기는 장르물이죠. 당연히 살인마와 사냥감의 파워 밸런스는 무너져 있기 마련인데요. 시나리오의 완성도는 런타임을 벌기 위한 '살인마의 패널티를 어떻게 설득할 것인가'에 달려있다 할 수 있습니다. 상황을 풀어내기 위해 한껏 위험한 인물로 만든 살인마에게 다시 족쇄를 채우는 거죠. 살인마는 한 명인데 주인공 파티는 너무 많아 똘똘 뭉쳐 있으면 나타나기 어렵다거나, 살인을 일삼음에도 사회적으로는 건실한 사람인 척하고 있기에 정..

Film/Horror 2019.08.08

귀차니즘 ⅱ _ 시크릿 옵세션, 피터 설리반 감독

귀차니즘 ⅰ _ 시크릿 옵세션, 피터 설리반 감독 # 0. 관객 친화적이지 않습니다. 장르 친화적이지도 않습니다. 주제에 친화적이지도, 공급자 친화적이지도, 심지어 돈줄인 제작자들에 친화적이지도 않습니다. 영화는 엽기적일 정도로 감독에게 morgosound.tistory.com # 7. '페이지' 형사는 딸을 실종으로 잃은 인물로 소개되는데요. 이 설정이 서사에 기여하는 바가 없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없습니다. 딸이 실종된 이유에 대한 설명도, 형사가 하필 이 사건에 매달리는 이유에 대한 설득도 전혀 없습니다. 딸을 유괴한 범인이 알고 보니 제니퍼의 가짜 남편과 동일인물이라거나, 러셀이 딸 실종사건의 주요 참고인이라거나, 실종사건과 제니퍼 사건의 유사성이 있어 기시감이 사명감을 자극한다거나, 제니퍼가..

귀차니즘 ⅰ _ 시크릿 옵세션, 피터 설리반 감독

# 0. 관객 친화적이지 않습니다. 장르 친화적이지도 않습니다. 주제에 친화적이지도, 공급자 친화적이지도, 심지어 돈줄인 제작자들에 친화적이지도 않습니다. 영화는 엽기적일 정도로 감독에게만 친화적입니다. 모든 캐릭터는 감독의 게으름에 복종합니다. 모든 장치들은 감독의 편의에 복무합니다. 모든 서사는 무책임하게 방치됩니다. 이따위 시나리오로 투자를 받고 돈을 벌 수 있다는 건 자본주의의 신이 감독에게 내린 최고의 축복이자 관객에게 내린 최악의 형벌입니다. 관객에 대한 고민은 전혀 없습니다. 장르적 재미란 무엇이며, 그걸 어떻게 전달할까라는 고민 역시 전무하죠. 감독이 영화를 통해 하고 싶은 이야기는 '없다'라고 보셔도 무방합니다. 영화를 못 만드는 정도를 평가할 수 있다면 이 영화의 성취는 기념비적이라기에..

ZIONT _ 레슬러 자이언 클라크, 플로이드 러스 감독

# 0. 오프닝은 환상적입니다. 강렬한 도입으로 간결하게 설명합니다. 치열한 레슬링에 이어 경기장 한가운데 양팔로 우뚝 선 남자의 모습이 여느 훌륭한 장편 다큐멘터리의 감동을 압도합니다. 인간의 삶이 그 자체로 이렇게나 경건하고 엄숙할 수 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플로이드 러스' 감독, 『레슬러 자이언 클라크 :: ZION』입니다. # 1. 이해와 동정의 차이, 공감과 선의의 거리 자이언 클라크는 태어날 때부터 하반신이 없었습니다. 다리가 있는 게 어떤 건지 알지 못한다 말하죠. 그에겐 하반신이 없는 지금이 정상입니다. 어릴 적 낳은 부모로부터 버림받습니다. 보육원에서 자라는 동안 폭력과 학대를 겪어야 했습니다. 삐뚤어져도 이상하지 않은 환경에서 삐뚤어질 뻔했던 유년기를 붙잡아 줬던 건 레슬링이..

선량함을 충전하고 싶을 때 _ 브루스 올마이티, 톰 새디악 감독

# 0. 170,057명의 희생자가 나왔습니다. 자전차왕 엄복동에 휩쓸린 관객의 수죠. 이렇게 빨리 VOD로 넘어갈 줄 알았더라면 극장에 가서 보지 말 걸 하는 후회가 드는군요. 보름이 넘는 시간이 지났지만 여전히 내상은 심각합니다. 영화를 보며 얻은 내상, 리뷰하며 곱씹어 보느라 다시 얻은 내상, 엄복동 리뷰가 가장 높은 조회수를 거뒀다는 사실이 준 내상이라는 개노답 3형제의 크리티컬 한 다단 히트의 여파는 쉬이 가시질 않습니다. 하... 저는 지금껏 무엇 때문에 영화들을 리뷰를 했던 걸까요. 정지훈의 억지 눈웃음과 정석원의 탄탄한 엉덩이에 가위가 눌리는 나날들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지구가 평평하다 믿는 멍청이들의 다큐멘터리와, 이세계 로맨스물 팝콘무비, 여배우 둘이서 팬티 들고 뽀뽀하는 단편을 한편 봤..

Film/Drama 2019.03.18

개콘식 공감물 _ 어쩌다 로맨스, 토드 스트라우스 슐슨 감독

# 0. 원래 계획은 를 리뷰하려 했습니다. 근데 관뒀어요. 창밖 미세먼지를 보자니 집 밖으로 한 발자국도 나가기 싫었기 때문이죠. 해도 해도 너무하네요. 편서풍대라고 대놓고 서해안 쪽에다 온갖 공단에 쓰레기 소각장까지 몽땅 몰아다 지어놓고 우리더러 국내 요인이나 찾아보라 말하는 중국의 뻔뻔함에 없던 암까지 생길 것 같습니다. 안 되겠네요. 오늘은 중국과 미세먼지가 없는 이세계물이나 하나 봐야겠습니다. '토드 스트라우스 슐슨' 감독, 『어쩌다 로맨스 :: Isn't It Romantic』입니다. # 1. 인기 없는 건축가였던 내가 이세계에선 로코 히로인? 이 영화는, 로맨틱 코미디를 극혐 하는 뚱실한 건축가 주인공이 훤칠한 소매치기를 지하철에서 우연히 만나 명치에 꽂힌 팔콘 펀치와 중요부위 어퍼컷을 맞교..

Film/Comedy 2019.03.08

신앙, 과학, 철학 _ 그래도 지구는 평평하다, 다니엘 J 클라크 감독

# 0. 가볍게 사상검증부터 하고 시작할까요. 여러분은 지구가 둥글다고 생각하시나요, 평평하다고 생각하시나요. 혹시 원반 주변으로 빙하에 둘러싸여 있다고 믿는다거나 아날로그시계처럼 '달'과 '해'라는 등불이 원반 위를 돈다고 믿으시진 않으신가요? 아마 대단히 높은 확률로 구체라고 생각하시겠죠.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당연한 이야기죠. 지구가 둥글다는 건 영국이 섬나라라는 걸 누구나가 알고 있는 것처럼 상식적인 이야기입니다. '다니엘 J. 클라크' 감독, 『그래도 지구는 평평하다 :: Behind the Curve』입니다. # 1. 지구는 구가 맞습니다. 의심의 여지가 없는 과학적 근거가 차고 넘치죠. '지구가 평평한 원반 모양이다'라는 명제는 분명 거짓입니다. 하지만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는 사람(이후..

파국이다 _ 이제 그만 이혼해, 클리어 듀발 감독

# 0. 적당히 제한된 공간 보통은 누군가의 집이죠. 얼추 예닐곱 명 정도의 인물들을 한데 몰아넣고 옹기종이 주야장천 수다만 떨게 하다가 끝나는 영화들이 있습니다. 적당한 몸값의 배우들 우르르 불러다가 반쯤 즉흥적인 대사를 서로 쏟아내는 걸로 런타임을 때우는 식의 이런 독립영화들을 멈블코어인지 덤블도어인지라고 부른다고 합니다만, 뭐 역시 그런 어려운 건 잘 모르겠네요. 자세한 내용이 궁금하신 분들은 알아서들 꺼무위키를 찾아보시길 바랍니다. '클리어 듀발' 감독, 『이제 그만 이혼해 :: The Intervention』입니다. # 1. 옹기종기 모여있는 사람들 사이로 기깔나는 미장센에 쏟아지는 대사와 낭자하는 피를 끼얹으면 , 기발한 SF적 상상력을 동반한 심도 있는 종교철학과 벽난로를 끼얹으면 , 센스 ..

Film/Comedy 2019.02.25

완벽 ⅱ _ 그래비티, 알폰소 쿠아론 감독

완벽 ⅰ _ 그래비티, 알폰소 쿠아론 감독 # 0. 천재 감독이 인생 역작을 만들면 이런 결과물이 나옵니다. '알폰소 쿠아론' 감독, 『그래비티 :: Gravity』입니다. # 1. 관객을 가지고 노는 솜씨는 예술입니다. 영상을 만드는 사람이 기술을 동 morgosound.tistory.com # 7. 잠깐의 휴식이 끝나고 스톤 박사와 코왈스키의 눈앞에 우주정거장 ISS가 보입니다. 버틸 듯 말 듯 아슬아슬한 산소와 연료가 긴장감을 더하죠. 중력을 잃고 표류한다는 건 위태롭고 숨 막히는 일입니다. 충분하지 못한 연료 탓에 안정적으로 ISS에 닿지 못한 두 사람. 우주 공간으로 튕겨나가려는 찰나 가까스로 박사의 발에 끈이 걸립니다만 헐거운 끈은 두 사람의 체중에 부합하는 운동량을 버텨내지 못합니다. 이대로..

Film/SF & Fantasy 2019.02.22

완벽 ⅰ _ 그래비티, 알폰소 쿠아론 감독

# 0. 천재 감독이 인생 역작을 만들면 이런 결과물이 나옵니다. '알폰소 쿠아론' 감독, 『그래비티 :: Gravity』입니다. # 1. 관객을 가지고 노는 솜씨는 예술입니다. 영상을 만드는 사람이 기술을 동원해 시각과 청각을 흔들 수 있는 방법을 이상적인 형태로 총집합시켜놓은 듯 한 영화입니다. 영화는 '600km 상공에선 생명이 사는 게 불가능하다'는 상투적인 문구와 함께 시작합니다. 사실 일련의 문구들은 큰 의미는 없습니다. 그저 관객이 스크린을 가까이에 있는 평면으로 받아들이게끔 하기위해 동원된 문장에 불과하죠. 관객의 등을 의자에서 떼어 내 스크린 앞으로 끌어당긴 감독은 연이어 600km 상공에서 내려다본 지구를 압도적인 스케일로 보여줍니다. 눈 앞에 있던 평면에 어마어마한 깊이감이 생깁니다...

Film/SF & Fantasy 2019.02.20

셀프 디스 _ 벨벳 버즈소, 댄 길로이 감독

# 0. 미리 말씀드리건대 공포물 아닙니다. 넷플릭스에서는 스스로 스릴러라 규정하고 있습니다만 개뿔. 웃기지도 않는 소리죠. 포스터 위로 주르륵 흘러내리는 핏자국 글귀는 훼이크입니다. 예고편에서의 묘하게 섬뜩한 제이크 질렌할의 눈빛도 훼이크죠. 화가의 피에 대한 이야기도, 정신병원에 대한 썰도, 악령과 움직이는 그림에 대한 떡밥도 몽땅 훼이크입니다. 공포물이란 기준에서 이 영화가 만들어 내는 긴장감은 0에 수렴합니다. 차라리 신서유기 인물퀴즈가 더 쫄깃쫄깃할 정도죠. 뭔가 등골 서늘한 공포물을 기대하셨다면 이 영화는 어지간해선 당신을 만족시킬 수 없을 겁니다. 그래서 이 영화를 봐도 좋을까라 물으신다면 글쎄요. 일단 들어보고 판단하시죠. 댄 길로이 감독, 『벨벳 버즈소 :: Velvet Buzzsaw』입..

걸작보다 뛰어난 범작 _ 스트레인저 댄 픽션, 마크 포스터 감독

# 0. 앞날을 알고 싶으신가요? 어떤 직업을 가지고 어떤 일을 겪으며 어떤 사람과 사랑을 하고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게 될지 궁금하신가요? 자신의 삶이 어떻게 굴러가게 될지 알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아직 찾아오지 않은 내일을 미리 알 수 있다면 모르긴 몰라도 사는 게 훨씬 안전하게 느껴지겠죠. 물론 혹시나 엉망진창이면 어쩌나 하고 살짝 불안해지기도 하지만 그래도 모르는 것보단 역시 아는 게 낫다 싶기도 합니다. 더구나 그렇게 쓰여질 자신의 앞날이 역사에 길이 남을 만큼의 완벽한 걸작이라면 어떨까요. 기승전결이 완벽한 서사와 훌륭한 내러티브로 짜여진 소설과도 같은 삶. 사람들이 두고두고 회자할 만큼 멋들어진 그런 삶을 살아낸 인간이라니. 더할 나위가 없을 것만 같네요. 네? 근데 그 걸작이 비극이라..

Film/Comedy 2019.02.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