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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Drama

천재감독이 빙의물을 만들면 _ 퍼스트맨, 데미안 샤젤 감독

그냥_ 2019. 10. 3.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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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좋아하는 영화감독 있으신가요? 없으시다구요? 저런. 사람들과 이야기 하다 보면 가뭄에 콩 나듯 영화 얘기를 하게 될 때가 있는데요. 그럴 때 배우가 아니라 감독, 그것도 외국 감독 이름을 몇 개 얘기하면 아는 게 없어도 뭔가 있어 보일 수 있습니다. 이름 몇 개 붕권마냥 질러두고 이후엔 다 안다는 듯이 팔짱 끼고 고개만 끄떡이면 지식인의 완성이죠. 메모해 두세요.

 

'존 도'라는 희대의 또라이를 만든 '데이빗 핀처'나 스칼렛 요한슨을 캐스팅해서 목소리만 뽑아 쓰고 버린 her의 '스파이크 존즈', 주드로, 메이슨 총리, 레아 세두, 볼드모트, 에드워드 노턴 같은 배우들을 불러다 단역으로 쓰면서 주연은 웬 처음 보는 과테말라계 미국 배우에게 맡긴 '웨스 앤더슨', 사람 못 죽여서 안달 난 '쿠엔틴 타란티노' 정도면 썩 나쁘지 않습니다. 최근에 이 그럴싸하게 보이기 위한 외국 영화감독 리스트에 한자리를 추가했는데요. 영화까지 나왔다는 군요.

 

 

 

 

 

 

 

 

'데미안 샤젤' 감독,

『퍼스트 맨 :: First Man』 입니다.

 

 

 

 

 

# 1.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그래비티가 '우주'를 체험하는 영화라면,

퍼스트맨은 '우주를 체험하는 사람'을 체험하는 영화입니다.

 

데미안 샤젤 감독은 철저히 닐의 감각을 쫓고 닐의 내면을 조명합니다. 정확히는 가능한 모든 것들을 배제하면서까지 닐의 내면'만'을 조명하죠. 달에 처음 발자국을 찍은 인류사적 영웅의 일대기가 아니라 꿈꾸는 한 인간의 불안함과 두려움을 섬세하게 묘사합니다. 앞서 '배제되는 모든 것'들에는 놀랍게도 우주와 달도 포함됩니다. 제아무리 웅장한 우주도, 장엄한 지구도, 화려한 우주선도 닐의 시야에서 벗어난 부분은 일절 보여주지 않습니다.

 

닐의 상황이나 타인을 보여줄 때는 무난하게 상반신이나 전신을 잡더라도 닐의 내면이 집중되는 씬에서는 눈만 겨우 보일 정도로 굉장히 타이트하게 화면을 잡습니다. 관객을 닐의 내면 그 안으로 데리고 들어가려고 끊임없이 노력하는 거죠. 닐의 표정과 시선을 보여주고 이어서 닐의 시야를 보여주는 1인칭 적인 연출을 끊임없이 반복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입니다. 달에 발을 딛기 위한 갖은 노력만큼이나 동료의 죽음, 가족과의 갈등을 중요하게 다루는 것 역시 같은 이유에서입니다. 사운드 또한 슬프거나 기쁘거나 하는 식의 정서를 규정하는 음악들을 철저히 배제합니다. 감독은 닐 암스트롱을 초대해 그의 내면으로 이끄는 길잡이일 뿐, 그 안에서의 체험은 오롯이 관객의 몫으로 남겨둡니다.

 

 

 

 

 

 

# 2.

 

달에서 지구로 돌아올 때의 모든 장면은 과감히 생략됩니다. 도킹에 성공하느냐 실패하느냐로 '마션'을 떠올릴 법한 그럴싸한 스펙터클, 얼마든지 만들 수 있거니와 감독으로서 충분히 유혹이 들 수 있었을 텐데 일절 그러지 않습니다. 왜? 그 상황에서의 닐은 그냥 무사히 지구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뿐이었을 테니까요. 상황이 아무리 위태롭다 하더라도 내면은 단편적일 테니 내 영화에 그런 이야기는 쓸데없다는 거죠. 죽이네요. 능력이 받쳐주는 독선이 때론 멋있게 보이기도 합니다.

 

지구로 귀환하고 나서도 영웅의 대서사라는 식으로 촌스럽게 마무리하지 않습니다. 떠들썩한 바깥세상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영화를 마무리하는 게 아니라, 쥐죽은 듯 조용한 검역소에서 아내와 단둘이 대면하는 모습으로 영화를 정리합니다. 화려한 바깥소식은 이 검역소에서의 상황을 강조하기 위한 곁다리일 뿐이죠. 부부는 긴 대사도 없습니다. 대성통곡하거나 얼싸안거나 하지도 않습니다. 그저 유리창에 손끝을 댄 채 지긋이 서로를 쳐다봅니다. 감독은 끝까지 자신의 길을 잃지 않습니다.

 

말씀드린 데로 이 모두는 감독이 관객으로 하여금 우주나 달 따위가 아닌 '인간 닐 암스트롱'을 체험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물론 달에 도착하는 순간은 대단히 압도적으로 묘사됩니다만, 이는 달이 그 자체로 압도적이여서가 아니라, 닐에게 달이 압도적으로 느껴지기 때문일 뿐입니다. 달에 첫발을 딛는 한 인간을 수많은 관객이 구경하는 영화가 아니라 이 영화를 본 관객 숫자만큼의 수많은 사람들을 달에 첫발을 딛게끔 하려는 영화인 거죠. 따라서 관객은 화면을 관람하면 안 되고, 화면을 통해 전달받은 내면화된 닐 암스트롱의 정서를 자신의 마음속에서 펼쳐놓고 관람해야 합니다. 대단히 독특한 방식의 발칙한 영화가 만들어진 거죠.

 

 

 

 

 

 

# 3.

 

인류가 현실적인 문제들에도 불구하고 이상으로 나아간다는 이야기와, 자연인 닐이 가족과 동료의 죽음이나 안정되고 안락한 삶을 뒤로하고 목표를 향해 나아간다는 이야기를 끊임없이 교차시킵니다. 인류사에 남을 우주비행사 '닐 암스트롱'과, 아빠이자 남편, 동료로서의 자연인 '닐'을 병렬적으로 구성해 인물에 대한 밀착감을 높이는 거죠. 아무래도 아빠나 남편, 동료가 우주비행사보다야 이해하고 공감하기 쉽잖아요? 임신한 아내는 새로운 출발, 캐런의 팔찌는 과거에 대한 집착 혹은 미련, 따뜻한 톤으로 묘사되는 일상은 현실과 회의감, 동료의 죽음은 고독과 불안함 따위에 대응됩니다.

 

연출에서 독특한 지점 중 하나는 마치 역사라는 길게 늘어선 캐비넷의 일부분을 뚝 잘라다 영상으로 만든 것처럼 영화를 만들었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 절단면을 억지로 숨기지 않고 그대로 노출합니다. 정적인 장면에서까지 일부러 쓰이는 불안정한 핸드헬드, 화질이 열화되는 것에 아랑곳하지 않는 투박한 줌인과 거친 카메라 워크가 여과 없이 표현됩니다. 덕분에 부분 부분에서 마치 '블러디 선데이'마냥 풍부한 현장감과 사실감을 얻어 관객의 몰입도를 높이지만, 영화 특유의 불친절함이 더욱 부각되는 부작용도 생기긴 했습니다.

 

 

 

 

 

 

# 4.

 

그럼에도 '인류 최초로 달에 착륙한 사람'이라는 게 공감하기 쉬운 삶일 수는 없습니다. 손쉬운 내면화는 고백했다가 차인다거나, 여자친구한테 차인다거나, 꿈에서 차인다거나, 고백하기 전에 차인다거나 하는 경우에나 잘 되는 거죠. 따라서 닐 암스트롱을 온전히 내면화하는 데 성공하느냐 못하느냐에 따라 영화평은 극단적으로 갈리게 됩니다. 안타깝게도 이 작업에 실패한 관객에겐 위에서 장황하게 나열한 모든 장점 혹은 특징들이 몽땅 짜증 나고 불쾌한 애로사항으로 꽃피게 됩니다.

 

런타임이 무려 140분이 넘는데, 그동안 하는 이야기라곤 '닐 암스트롱이 훈련하고 달갔다.'가 전부입니다. 그마저도 관객은 이미 그 사실을 알고서 영화를 보고 있죠. 덕분에 서사로서의 매력은 한없이 0에 수렴합니다. 우주 영화라니 눈뽕이라도 좀 시켜주려나? 싶어도 죄다 쥐똥만 한 창문으로 깔짝거리고 맙니다. 2018년에 나온 영화가 군데군데 화질은 뭐가 이래? 카메라는 뭐 또 이렇게 흔들어 대는 거야? 음악이라도 좀 시원한가 하고 들어봐도 쿵쿵대기만 하지 뭐 이렇게 심심해? 에라 모르겠다 잠이나 자자. 이렇게 되는 거죠. 이렇게 영화를 보신 분에게 이 영화가 좋은 영화일 수는 도저히 없을 겁니다. 물론 이는 결코 관객의 잘못이 아닙니다.

 

 

 

 

 

 

# 5.

 

분명 관객의 관대함과 성의를 요구하는 영화입니다. 박하게 표현하면 오락영화 주제에 건방지고 불친절한 영화라 할 수도 있을 겁니다. 그래비티나 아마겟돈 식의 몸 축 늘어트리고 편하게 팝콘 먹으며 봐도 좋은 오락영화로 생각하면 2시간 20분 동안 비싼 돈 내고 꿀잠 자게 되는 영화일 수 있습니다. 

 

대신, 말씀드린 대로 닐의 상황을 내면화하는 데 성공할 수만 있다면, 다른 그 어떤 영화에서도 겪어보지 못한 풍성한 재미와 체험을 얻을 수 있는 영화가 되실 겁니다. 장편 필모그래피를 위플래시로 시작해 라라랜드로 이어받는 천재감독은 전기 영화를 하나 만들어도 이렇게 재수 없으면서 멋있게 만드는군요. 퍼스트맨을 만나는 영화가 아닌 당신을 퍼스트맨으로 만드려는 영화, '데미언 샤젤' 감독 <퍼스트 맨>이였습니다.

 

사족으로, 영화의 크래딧이 거의 끝나갈 무렵. 칠흑같이 어두운 극장에 실제 암스트롱의 교신이 아주 작게 울려 퍼집니다. 감정 이입이 풀리지 않은 상황에서 들리는 그 교신이 주는 감동은 상당하더군요. 크래딧이 지나고 나서 영화의 여운을 즐기는, 그 방심한 순간에 터지는 클라이막스라니. 여러모로 골때리는 영화였습니다.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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