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좋아하세요? :)

늦은 저녁 맥주 한 캔을 곁들인 하루 한편의 영화, 그리고 수다.
영화 이야기는 언제나 환영입니다.

728x90

미스터리 65

랩탑 무비 _ 블레어 위치, 다니엘 미릭 / 에두아르도 산체스 감독

# 0. 시리즈를 연이어 보다 보니 문득 요런 류의 영화가 땡기더라구요. '다니엘 미릭', '에두아르도 산체스' 감독, 『블레어 위치 :: The Blair Witch Project』입니다. # 1. 코시국이라 곤란하긴 합니다만 그래도 어지간하면 영화는 극장에서 보는 편이 좋습니다. 호러든 코미디든 드라마든 멜로든 스릴러든. 압도적인 스크린 크기가 주는 박력과 디테일한 화질, 전문가들이 세심하게 설계한 음향 등 감독의 의도에 최적화되어 있는 환경이 주는 경험의 퀄리티는 결코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죠. 오가는 데 필요한 유무형의 비용이 만만치 않고 집 안 소파에 비해 좌석도 불편하며 다른 무엇보다 에티켓을 담보할 수 없는 불특정 다수와 함께 볼 수밖에 없다는 치명적인 단점들에도 불구하고, 영화를 좋아하시는..

Film/Horror 2021.07.19

번뇌와 번민에 빠진 건 누구? _ 제8일의 밤, 김태형 감독

# 0. 애매하게 여러 가지를 동시에 하기보단 각 잡고 하나를 제대로 하는 편이 낫습니다. 특히나 데뷔작이라면 더더욱 말이죠. 영화는 크게 불교, 오컬트, 범죄 스릴러라는 세 축을 중심으로 전개되는데요. 안타깝게도 어느 것 하나 속 시원하게 작동하지 못하는데 그 원인은 각각의 코드가 서로의 발목을 붙잡기 때문인 듯 보입니다. '김태형' 감독, 『제8일의 밤 :: The 8th Night』입니다. # 1. 시작과 동시에 부처님은 눈깔 뽑기 장인이 됩니다. 흔히 불교 하면 떠올릴법한 자비나 참선 등의 이미지와 배치된 다소 폭력적인 설정이지만, 뭐 그럴 수 있죠. 감독은 이 부분의 문제를 후반부 관념화를 통해 극복합니다. 빨간 눈깔은 번뇌하는 눈, 검은 눈깔은 번민하는 눈이라는 건데요. 확실히 이 토대에서라면..

Film/Horror 2021.07.07

사장님, 스릴러 1인분 추가요 _ 침입자, 손원평 감독

# 0. 주인공은 보통 두 명입니다. 멜로라면 20대를 캐스팅하겠지만 중량감도 조금 필요한 스릴러에선 30~40대 배우를 섭외하는 게 정석이죠. 한 명은 영화 내내 물리적으로든 정서적으로든 서사적으로든 잡으러 다닐 테구요. 나머지 한 명은 영화 내내 도망 다닐 겁니다. 둘 중 한 명은 놀래키는 역할, 다른 한 명은 놀라는 역할일 텐데요. 도망가는 쪽이 놀랄 수도 있고 쫓기는 쪽이 놀랄 수도 있습니다. 요 정도는 감독의 재량이죠. '손원평' 감독, 『침입자 :: intruder』입니다. # 1. 도망가는 애는 싸움을 겁나 잘하든 돈이 겁나 많든 머리가 겁나 좋든 쪽수가 겁나 많든 아니면 아싸리 만능약이 있든. 뭐가 되었든 특별한 능력이 있어 저게 말이 돼? 싶은 난관들을 아주 손쉽게 돌파합니다. 쫓아가는 ..

직업병 _ 사라진 시간, 정진영 감독

# 0. 문소리 감독은 를 통해 배우라는 직업을 선택한 사람의 치열한 현실과 페이소스를 묘사합니다. 김윤석 감독은 을 통해 배우의 시선에서 캐릭터를 해석하는 방식을 풍부하게 표현합니다. 그리고 정진영 감독 역시 지금 이야기하려는 영화 을 통해 배우가 필연적으로 겪게 될 정체성 갈등을 전개합니다. 배우, 특히 배테랑 배우가 영화를 만들면 첫 작품에서 배우 이야기를 하고 싶어 지는 건 어쩔 수 없는 건지도 모르겠네요. '정진영' 감독, 『사라진 시간 :: Me and Me』입니다. # 1. 영화 초반 이영은 세 인격에 빙의됩니다. 돌아가신 수혁의 어머니와 코미디언 이주일, 레슬러 역도산이죠. 얼핏 세 인물은 아무 관계가 없어 보입니다. 백종렬 감독의 처럼 저녁이면 랜덤 하게 찾아오는 각기 다른 인격의 예시인..

Film/Drama 2021.06.23

주인공만 3명 _ 조안, 김지산 / 유정수 감독

# 0. 이젠 제법 익숙한 소셜 미디어 까는 영화입니다. '김지산', '유정수' 감독, 『조안 :: Joan』입니다. # 1. 일반적으로 떠올릴 법한 소셜 미디어의 비판적 문제의식을 소집해 하나의 이야기 속에 녹여낸 단편입니다. 제프 올롭스키의 나, 츠노 메구미의 와 유사한 문제의식 위로 불쾌하고 섬뜩한 미스터리 호러의 장르적 재미를 살짝 더한 작품 정도로 이해하시면 적당하겠군요. 영화에는 총 세 인물이 등장합니다. 조안과, 소개팅남, 그리고 이름 모를 내레이터죠. 이야기는 조안이 남자 친구와 헤어진 후 데이팅 어플을 통해 새로운 남자와 소개팅한다는 내용입니다. 그 과정을 소셜 미디어의 의인화로서 내레이터가 전개하는 구성이죠. 각 인물들은 저마다 다른 소셜 미디어의 폐해를 비판적으로 대변합니다. '조안'..

미장센의 배신 _ 우먼 인 윈도, 조 라이트 감독

# 0. 미장센이 어쩌구... 메타포가 저쩌구... '조 라이트' 감독, 『우먼 인 윈도 :: The Woman In The Window』입니다. # 1. 요즘의 영화들 특히 과 의 웨스 앤더슨이나, 와 의 박찬욱 감독의 그것처럼 엄격한 규칙과 과감하면서 관능적인 색감이 만들어내는 인공적 미감의 미장센이 대두된 이후, 영화판의 메타가 마치 누가 더 아름다운 미장센을 뽐내느냐를 경쟁하는 카드게임화 되어버린 감이 없잖아 있습니다. 오프닝에서 주인공이 가운데 있으니 1점! 화면을 두꺼운 선이 가로지르고 있으니 1점! 하는 식으로 말이죠. 물론 기하학적 구도에 대한 감화가 쉽게 되는 탓에 온갖 리뷰를 미장센에 대한 호들갑으로 떡칠하는 제가 이런 이야기를 한다는 게 희극적이기는 하지만요. # 2. 이 영화 역시 ..

통제력의 상실 _ 리틀 조, 예시카 하우스너 감독

# 0. 꽃가루가 이렇게 무섭습니다. 연인과 꽃구경하는 대신 고고하고 시크한 싱글 라이프를 택한 이유죠. 애인 사귈 능력은 되냐구요? 그게 중요한가요? 누가 너랑 사귀겠냐구요? 손님, 싸울래요?! '예시카 하우스너' 감독, 『리틀 조 :: Little Joe』입니다. # 1. 굳이 말하자면 공포 스릴러 영화... 이긴 한데요. 솔직히 무섭다기보다는 '찝찝한 영화' 쪽에 조금 더 가깝습니다. 각기 다른 세 층위의 정서가 하나의 이야기 속에 중첩되어 있는데, 그 실체는 구체적 공포보다는 일련의 과정이 낳게 될 미래에 대한 잠재적 공포에 닿아있기 때문이죠. 가장 표면의 테마라 한다면, 역시 유전자 조작 기술과 과학자의 윤리적 일탈로 인한 리스크가 될 테구요. 그다음은 확인할 수 없는 것에 대한 강요된 판단과 ..

설명충이 반전물을 만들면 _ 대최면술사, 진정도 감독

# 0. 엄청 극단적인 영화입니다. 진짜 괜찮은 시나리오인데 진짜 못 만들었거든요. 반전 미스터리 스릴러를 만들기엔 감독이 너~~무 소심하고 너~~무 순박하고 너~~무 착합니다. 진정도 감독, 『대최면술사 :: 催眠大師』입니다. # 1. 캐릭터 괴랄합니다. 디렉팅을 한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정신과 의사랑 환자가 상담하는 영환데 톤은 무협물에 맞춰져 있습니다. 논리와 호소로 대화하고 소통해도 모자랄 판에 주인공 둘이서 몸만 안 썼다 뿐 영화 내내 싸우고 있죠. 연기, 과장되고 어색합니다. 볼살 빵빵한 동안의 계란 머리 주인공이 처음부터 끝까지 센 척을 하는데 이렇게 말해 미안하지만 그냥 웃기기만 합니다. 책상에 다리 올리고 신문 펴 보는 등장 씬은 감독의 부실한 연출 역량을 가늠케 하기 충분하죠. 그나마..

악마인 듯 악마아닌 악마같은 너어어 _ 나인 마일즈 다운, 앤소니 월러 감독

# 0.  악마인 듯 악마 아닌 악마 같은 너어어바람인 듯 바람 아닌 바람 같은 나아아        앤소니 월러 감독,『나인 마일즈 다운 :: Nine Miles Down』입니다.     # 1.  덮어놓고 반전 한방 딱! 보고 미친 듯이 달려가는 영화입니다. 주머니 사정을 가늠케 하는 지극히 단출한 세트와, 이를 가리면서 최대한의 가성비를 뽑기 위한 다양한 광원과 화각의 연출. 그리 비싼 개런티를 지불하지는 않았을 것만 같은 많아야 세명 안쪽의 주인공 라인업과 이들의 개인기를 사골처럼 쥐어짜는 걸로 간신히 버티는 수다스러운 진행. 2/3 지점에서 터지는 반전 한방과 그 반전을 최대한 거창한 것으로 포장하기 위한 후반부 호들갑으로 채워집니다. 작품의 성패는 당연히 반전의 퀄리티에 의해 결정됩니다. 이 반..

탐정놀이의 목적 _ 레베카, 벤 휘틀리 감독

# 0. 히치콕 감독의 리뷰 말미에 말씀드린 대로 불필요한 선입견 없이 기대를 가지고 작품을 보려 노력했습니다만 안타깝게도 기대는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이 영화는 레베카가 아닙니다. '벤 휘틀리' 감독, 『레베카 :: Rebecca』입니다. # 1. 히치콕 감독의 작품이 원작으로서 완벽하기에 이후 창작되는 는 모두 1940년 작품 속 설정을 무조건 따라야 한다는 식의 순혈주의를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서두에 말씀드린 레베카가 아니다라는 표현은 레베카라는 인물의 존재를 극의 중심에 놓고 전개되는 영화가 아니라는 뜻이죠. 이 영화는 오히려 입니다. 릴리 제임스가 연기한 '나' 말이죠. 영화에는 무수히 많은 부실함이 발견되는데요. 그 대부분은 이야기는 레베카를 중심으로 구성되어 ..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_ 레베카,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

# 0.  넷플릭스의 를 보려 했습니다. DELING님의 댓글 덕에 뮤지컬이 있다는 건 알고 있었는데요. 살펴봤더니 리메이크 작이더군요. 원작은 무려 1940년 작, 그것도 히치콕 감독의 할리우드 진출작이라기에 까흠짝 놀랬더랬죠. 더 놀라운 건 그 마저 1939년에 출간한 다프네 뒤 모리에의 소설을 각색한 작품이었다는 점이었습니다. 역시 무식하면 놀랄 일이 이렇게나 많습니다. 80년 전 책을 찾아보기엔 너무 게으르고 뮤지컬은 볼 방법이 없다는 핑계로 작품에 대한 감상은 영화 두 편 연이어 보는 것으로 적당히 갈음하려 합니다. 기대되는군요. 오래전 명곡을 리메이크 버전과 비교해 듣는 재미가 있듯 영화 역시 같은 서사를 다루는 두 창작자의 시각을 적절히 비교해 가며 보는 재미가 쏠쏠하니까요.        알..

더 클래식 _ 12인의 성난 사람들, 시드니 루멧 감독

# 0.  짧게 할게요. 얼른 써 놓고 자기 전에 한번 더 볼꺼거든요.        '시드니 루멧' 감독,『12인의 성난 사람들 :: 12 Angry Men』입니다.     # 1.  명성이야 익히 들어 알고 있었습니다만 봐야지, 봐야지, 하면서도 제법 오랫동안 미뤄뒀던 영화입니다. 고전 영화도 나름대로의 맛이 있기는 합니다만 그럼에도 특유의 이물감이 관람을 짐짓 주저하게 만들기 때문이죠. 연출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히치콕의 영화들만 하더라도 부분적으로나마 어색한 점이 느껴될 정도니, 이건 뭐 어쩔 수 없는 거라 봐야 할 겁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다릅니다. 믿기지 않을 정도로 세련된 작품입니다. 대부분의 고전영화들에게서 느낄 수 있는 '뭘 하고 싶었는지는 충분히 유추할 수 있으나 기술적-경제적 한계 혹..

흙을 먹일 수 있을까 ⅱ _ 스왈로우, 카를로 미라벨라 데이비스 감독

이전글 : 흙을 먹일 수 있을까 ⅰ _ 스왈로우, 카를로 미라벨라 데이비스 감독 # 0. 인정합니다. 이 글은 다른 글에 비해 유독 공정하지 않을 겁니다. 제가 '헤일리 베넷'의 열렬한 팬이거든요. 그녀가 조연으로 잠깐 출연했던 만 하더라도 몇 번을 다 morgosound.tistory.com # 12.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이죠. 일련의 연출법은 난해한 아이템을 이해시키는 덴 성공합니다만, 안타깝게도 장르와 합치되는 데에는 실패하고 맙니다. 압박감의 성격보다 더 우선시되는 압력의 크기. 인물을 포위하는 듯한 엄격한 연출의 통제. 주인공의 심리적 상황보다 심미성에 더 많이 할애되는 듯한 메타포. 사건이 고조되는 순간의 과격한 표현 따위 등은 전형적인 스릴러의 작법들인데 반해 이 영화의 메시지는 누가 뭐래..

흙을 먹일 수 있을까 ⅰ _ 스왈로우, 카를로 미라벨라 데이비스 감독

# 0. 인정합니다. 이 글은 다른 글에 비해 공정하지 않을 겁니다. 제가 '헤일리 베넷'의 열렬한 팬이거든요. 그녀가 조연으로 잠깐 출연했던 만 하더라도 몇 번을 다시 볼 정도로 좋았었는데요. 단독 주연작이라면 더 말할 나위가 없는 거겠죠. 영화가 뭐 어떻다구요? 그래서 므요, 으쯔라구요. 1시간 30분 여신 영접했으면 된 거 아닌가요? '카를로 미라벨라 데이비스' 감독, 『스왈로우 :: Swallow』입니다. # 1. 영화에 대한 쓸데없는 이야기들은 잠시 치워두고 작품의 알파이자 오메가인 주연 배우 얘기부터 해 봅시다. 제 아무리 작가주의적 작품을 좋아하는 관객이라 하더라도 캐스팅만으로 주저 없이 티켓값을 지불하게 만드는 배우들이 다들 몇 명씩은 있죠. 저는 우리나라 여배우 중에선 '전도연'과 '문소..

로코풍 스릴러 _ 맨해튼 미스터리, 우디 앨런 감독

# 0. 살인사건을 다룬 미스터리 스릴러라고 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시나요? 소름 돋게 만드는 서늘한 감각이 떠오르기도 하구요. 의지하게 만드는 주인공의 카리스마가 생각나기도 하는군요. 끔찍한 살인마의 잔혹함도 필수요소인 듯하고, 살인 사건에 얽힌 실체가 밝혀지는 순간의 웅장한 마무리 또한 생각이 납니다. '우디 앨런' 감독, 『맨하탄 미스테리 :: Manhattan Murder Mystery』입니다. # 1. 대체로 위와 같은 접근들은 모두, 미스터리 스릴러라는 장르가 지향하는 바를 달성하기 위한 정석적 방법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고요하고 오싹해야 관객이 긴장감을 가지고 영화에 몰입할 수 있을 테구요. 주인공에게 카리스마가 있어야 감정이입이 수월하겠죠. 살인마가 잔혹해야 사건이 빨리 해결되었으면 하..

Film/Comedy 2021.01.21

변호사 사무소의 의자 _ 세 번째 살인,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 0. 통상의 범죄물은 관객을 형사의 발 위에 올려놓습니다. 흉악 범죄 사건을 오프닝에 배치해 물리적 폭력성을 직관적인 긴장감으로 연결한 후 이 포악한 범인과 열혈 형사의 쫓고 쫓기는 다이내믹한 움직임을 징검다리 삼아 서사를 전개해 나가죠. 4885 씬으로 유명한 나홍진 감독의 는 좋은 예라 할 수 있겠네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세 번째 살인 :: 三度目の殺人』입니다. # 1. 범죄 스릴러의 수작 를 예로 들었듯 이 방법이 잘못된 방식이라는 의미는 결코 아닙니다. 많은 감독들이 비슷한 장르물을 만들며 같은 선택을 하는 건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 법이죠. 스릴러는 기본적으로 긴장감을 즐기는 장르고 2시간은 생각보다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며 사람들은 보통 사회적 맥락에 대한 이해가 요구되는 서..

나의 의미 _ 내가 누구인지 말해주오, 에드 퍼킨스 감독

# 0. 사고로 기억을 잃은 '알렉스'. 쌍둥이 형제의 과거를 대신 기억하는 '마커스'. 알렉스는 잃어버린 기억을 찾고 싶어 합니다. 마커스는 잊고 싶은 기억을 덮어두고 싶어 합니다. 오래도록 미뤄왔던 두 사람의 만남과 대화를 담은 다큐멘터리입니다. 숨겨진 유년기를 다루는 작품이니만큼 사건의 실체를 알고 보면 감흥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일종의 반전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아직 이 영화를 보지 않으신 분이라면 글을 읽기 앞서 영화를 먼저 보실 것을 권합니다. '에드 퍼킨스' 감독, 『내가 누구인지 말해주오 :: Tell Me Who I Am』입니다. # 1. 당사자에겐 외람된 이야기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부모의 도덕성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 건 시시합니다. 설마 하니 알렉스 마커스 형제 부모의 비도덕..

싸가지 _ 에놀라 홈즈, 해리 브래드비어 감독

# 0.  무례합니다. 영화가 싸가지가 없어요. 메시지, 보다 정확히는 특정한 이념을 위해 서사와 캐릭터와 표현과 연출 심지어 관객 경험까지 복무시키는 영화입니다. 이럴 거면 왜 굳이 힘들게 영화를 하나요. 그냥 시민운동을 하시지.        '해리 브래드비어' 감독,『에놀라 홈즈 :: Enola Holmes』입니다.     # 1.  현시대의 성갈등에 대한 개개인의 가치판단 여하와는 별개로 19세기 런던을 배경으로 한 여성의 자기실현은 충분히 창작자의 구미를 당길법한 소재임엔 분명합니다. 윌리엄 올드로이드의 『레이디 맥베스』와 같은 영화들은 다시 봐도 강렬하고 매혹적이죠. 하지만 당위만으론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가치를 어떻게 쟁취하고 실현하고 설득할 것인가가 본질이죠. 드라마의 감동은 특정 가치와..

히치콕의 고양이 -2- _ 39계단,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

이전글 : 히치콕의 고양이 -1- [39계단,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 # 10. 좁은 공간에서 속도감 있게 몰아붙이는 전개는 이 정도면 충분합니다. 더 이상은 넌센스죠. 감독은 의도적으로 대조적인 도시 외곽으로 장소를 옮깁니다. 역동적인 어드벤처에서 적막 속 스릴러로의 이동이군요. 하지만 그럼에도 '해석의 차이'라는 작품의 테마는 일관되게 유지됩니다. 농가에서 역시 각 인물들이 상황을 받아들이고 해석하는 기준은 모두 다릅니다. '해니'의 머릿속은 자신을 쫓는 경찰들로 가득합니다. 아낙은 매정한 남편과는 달리 잘생기고 신사적인 '해니'에 대한 이성적 호감에 기반한 막연한 선의를 가지고 있죠. 남편은 이들을 불륜에 빠진 남녀라 오해하고 있구요. # 11. '해니'가 경찰의 추격이라는 물리적 압박에 집중하는 ..

히치콕의 고양이 -1- _ 39계단,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

# 0. 슈뢰딩거의 고양이(Schrödinger's cat)는 양자역학의 코펜하겐 해석을 비판하기 위하여 슈뢰딩거(E. Schrödinger, 1887-1961)가 1935년 고안한 사고 실험이다. 중첩으로 설명할 수 있는 양자 대상이 측정장치(일반적으로는, 인과적으로 연결된 고전 대상)를 함께 고려하면 결국 측정장치도 중첩을 일으켜야 한다는 역설이다. 중첩된 파동 함수가 측정하는 순간 환원된다는 것에 대한 문제 제기이다. 출처 [물리학백과 : 슈뢰딩거의 고양이]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 『39계단 :: The 39 Steps』입니다. # 1. 사실 없는 해석은 무의미합니다. 해석되지 않은 사실은 지루합니다. 사건은 개인적 입장에 따른 주관적 관점을 통해 해석되는 순간에서야 비로소 생명력을 가집니다. ..

스타일리스트의 매력 그리고 한계 _ 메기, 이옥섭 감독

# 0. 에헤이~ 상상력이 많으면 그 인생 고달퍼~ '이옥섭' 감독, 『메기 :: Maggie』입니다. # 1. 교회의 십자가는 누군가의 바람에 의해 병원이 됩니다. 재개발지의 푸른 장막은 누군가의 사명감에 의해 해수욕장이 됩니다. 타인의 성기가 찍힌 X-ray는 누군가의 부끄러움에 의해 주인이 뒤바뀝니다. 병원 식구들의 병가는 누군가의 의심에 의해 섹스 스캔들을 면피하기 위한 꾀병이 됩니다. 펜던트의 사진은 누군가의 선입견에 의해 딸의 것으로 오해됩니다. 어린 소녀는 얼토당토않은 소문에 의해 살인미수라는 오명을 쓰지만, 그녀 역시 친구가 아빠에게 떠밀려 건물에서 떨어진 것이라 근거 없이 확신하고 있습니다. 사과를 깎다 다쳤다 말하는 사람의 말을 믿었지만 그의 배에서 나온 건 총알이었고, 사람을 믿어야 ..

Film/Comedy 2020.07.27

영화에 관한 영화 ⅱ _ 이창,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

영화에 관한 영화 ⅰ _ 이창,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 # 0. 유명 감독의 대표작들을 볼 때면 그러지 않아야지 하면서도 살짝 움츠러드는 느낌을 받곤 합니다. 무언가 이 대단한 영화가 왜 대단한 건지를 알아 모셔야만 할 것 같은 압력 같은 게 느껴진 morgosound.tistory.com # 4. 대단히 엄격한 구조의 작품입니다만 동시에 대단히 '파괴적인' 작품이기도 합니다. 수많은 종(縱)적인 레이어들과 각각의 레이어 안에서 다시 횡(橫)적으로 분절되는 물리적-서사적 프레임들이 만드는 입체적인 볼륨 위를 주요 인물들이 자유롭게 넘나드는 동안 대단한 속도감과 긴장감이 구현됩니다. 명징하게 직조된 일련의 구조를 일탈적으로 넘나드는 순간 마다마다 관객 역시 대단한 해방감을 경험하게 됩니다. 각자 장르를 대변..

영화에 관한 영화 ⅰ _ 이창,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

# 0. 유명 감독의 대표작들을 볼 때면 그러지 않아야지 하면서도 살짝 움츠러드는 느낌을 받곤 합니다. 무언가 이 대단한 영화가 왜 대단한 건지를 알아 모셔야만 할 것 같은 압력 같은 게 느껴진달까요.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주제 파악 만큼은 자신 있습니다. 스스로 영화와 관련된 소양이 한없이 빈곤하다는 걸 너무도 잘 알고 있죠. 아는 것도 없고 통찰할 능력도 없는 인간의 글이라는 걸 솔직하게 고백하고서 마음 편하게 거장이 만든 오래된 테마파크를 즐겨보겠습니다.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 『이창 :: Rear Window』입니다. # 1. 줄거리는 단순합니다. 다리를 다친 사진작가 '제프리'가 치료하는 동안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창밖의 이웃들을 관찰하며 시간을 보내던 중, 이웃 '쏜월드'의 행동에 의아함을 ..

줄리아 폭스 ⅱ_ 언컷 젬스, 샤프디 형제 감독

줄리아 폭스 -1- [언컷 젬스, 샤프디 형제 감독] # 0. 매운 닭발을 스스로 사 먹어 놓고 매워서 별로라고 별점 테러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다람쥐통에 제 발로 올라 놓고 멀미가 심해 쓰레기라 욕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누가 시키지도 않은 morgosound.tistory.com # 10. 복잡 미묘한 감각적 연출과 별개로 메시지 자체는 명쾌합니다. 자기 자신의 가능성을 믿어라. 남의 가능성에 자기 인생을 걸었다간 패가망신한다. 가 그것이죠. '하워드'가 베팅하는 대상은 언제나 타인의 가능성입니다. 그는 경제적인 문제를 돌려 막기 식 부채의 불안정성으로 대처합니다. 세공조차 되지 않은 블랙 오팔에 위기 극복을 전적으로 기대고 있구요. 전문 평가사가 매긴 십만여 달러보다는 정체모를 감정사의 백만 불 ..

줄리아 폭스 ⅰ _ 언컷 젬스, 샤프디 형제 감독

# 0. 매운 닭발을 스스로 사 먹어 놓고 매워서 별로라고 별점 테러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다람쥐통에 제 발로 올라 놓고 멀미가 심해 쓰레기라 욕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누가 시키지도 않은 에스프레소를 자기 돈으로 사 마시며 쓰다고 물을 타 달라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특별한 사정이라도 있지 않는 한, 우리는 흔히 그런 사람들을 '진상 손님'이라 말합니다. 닭발이 매울 수는 있습니다. 다람쥐통을 타고 멀미를 할 수도 있고 에스프레소를 처음 마시고 깜짝 놀랄 수도 있죠. 다시는 닭발에, 다람쥐통에, 에스프레소에 돈을 쓰지 않겠다 생각할 수도 있고 그건 전혀 잘못이 아닙니다. 다만 그런 이유들로 닭발과 다람쥐 통과 에스프레소를 '잘못된 것'이라 욕하는 건 썩 권장할만한 태도는 아닐 겁니다. 이 영화를 보고..

이런 위로도 있다 _ 내 몸이 사라졌다, 제레미 클레팡 감독

# 0. 그로테스크한 표현과 육중하게 침전되는 감각, 독특한 상상력과 따뜻한 주제의식이 인상적입니다. 어려서 부모를 잃은 소년 '나오펠'의 곤궁하고 허무한 삶의 여정, 해부학실을 탈출한 '손'의 위태롭고 불안한 모험이 분리된 서사의 물리적 결합을 넘어 적극적으로 정서를 주고받는 화학적 결합에 다다릅니다. 직접적이고 말초적인 불쾌감과 사회적이고 관계적인 불쾌감을 교차적으로 매칭 하는 방식이 효과입니다. 비 내리는 저녁의 피자배달, 나무로 만든 옥상의 이글루, 돌고 돌아 몸 옆에 자리하는 손, 차갑고 위태롭게 서있는 타워 크레인의 모습들 마다마다 서정성이 상당합니다. '제레미 클레팡' 감독, 『내 몸이 사라졌다 :: J'ai perdu mon corps』 입니다. # 1. '나오펠'의 삶은 보통의 드라마들처..

Film/Animation 2019.12.04

화가가 만든 영화 _ 러빙 빈센트, 도로타 코비엘라 / 휴 웰치먼 감독

# 0. 그림 그리려고 만든 영화 같습니다. 메시지와 서사와 캐릭터와 플롯과 연출과 대사와 그 외의 모든 영화 안팎의 요소들을 '표현'이 압도합니다. 독창성도 독창성이거니와 화가를 말 그대로 갈아 넣어야만 시도라도 해 볼 수 있는 양식이 절대적인 희소성을 부여합니다. 분명 이 영화가 제공하는 감각을 다른 영화로 비유하는 건 미련한 짓일 겁니다. '도로타 코비엘라', '휴 웰치먼' 감독, 『러빙 빈센트 :: Loving Vincent』 입니다. # 1. 그림에 대한 이야기로 글을 시작할 수밖에 없겠네요. 영화를 보고 난 후 가장 선명한 인상은 (호들갑을 조금 떨자면) 그림이 맞나 싶을 정도로 상당한 생명력이 전달된다는 점입니다. 통상 애니메이션과 차별되는 12 프레임의 이물감 역시, 되려 심장의 박동처럼 ..

Film/Animation 2019.10.29

다섯 번째 유령 ⅱ _ 퍼스널 쇼퍼, 올리비에 아사야스 감독

다섯 번째 유령 ⅰ _ 퍼스널 쇼퍼, 올리비에 아사야스 감독 # 0. 삶의 이유를 지배하는 유령. 불안함과 두려움을 대변하는 유령. 금기에 대한 숨겨진 욕망을 끄집어내는 유령. 희망과 안식의 도피처로서의 유령. 그 한 가운데 표류하는 주인공의 내면에 morgosound.tistory.com # 7. '모린'의 정체성은 다면적입니다. 영매가 주목될 수도 있었구요. 쌍둥이가 핵심이 될 수도 있었죠. 날아다니는 혼령에 대한 이야기를 심화할 수도 '루이스'에 엮인 가족애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낼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감독은 굳이 영화의 제목으로 를 결정합니다. 타인을 위해 물건을 대신 구매해주는 사람. 그런 직업적 역할 관계를 내면화한 삶과 영혼에 대한 내제적 접근을 풀어 보겠노라 규정합니다. 돌이켜 보면 영..

다섯 번째 유령 ⅰ _ 퍼스널 쇼퍼, 올리비에 아사야스 감독

# 0. 삶의 이유를 지배하는 유령. 불안함과 두려움을 대변하는 유령. 금기에 대한 숨겨진 욕망을 끄집어내는 유령. 희망과 안식의 도피처로서의 유령. 그 한 가운데 표류하는 주인공의 내면에 대한 집요한 탐구입니다. 매력적인 반전까지 있다면 더할 나위가 없죠. '올리비에 아사야스' 감독, 『퍼스널 쇼퍼 :: Personal Shopper』입니다. # 1. '모린'은 '키라'의 퍼스널 쇼퍼입니다. 모린은 그녀에게 직업적으로 경제적으로 복무합니다. 모린의 시간과 땀은 키라의 삶을 더욱 화려하고 편리하게 만들기 위해 존재합니다. 값비싼 보석과 화려한 드레스를 구매하는 순간엔 마치 주인이라도 되는 양 결정을 내리곤 하지만 사실 이 모든 것들은 그녀의 것이 아닙니다. 어차피 가질 수 없는 거라면 볼 일 없었더라면 ..

본건 있어 가지고 _ 대만 TV 시리즈 괴기특급

# 0.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건지 알 수 없습니다. 어떤 느낌을 전달하고 싶은 건지 알 수 없습니다. 감독은 뭐하는 사람인지 이전에 존재하는 건지조차 알 수 없습니다. 193분에 걸쳐 방향성 없는 이미지 과잉이 펼쳐집니다. 중2병 돋는 앵글에 뒤틀린 어미 같은 과장된 연기가 담깁니다. 구청에서 찍어낸 관광지 기념품 같은 싼마이 질감과, 스노우 어플 느낌의 뽀샤시 필터와, 난... ㄱㅏ끔... 눈물을 흘릴... 것만 같은 싸이월드 감성 흑백처리가 애저녁에 죽은 기괴함을 살려보려 인공호흡을 합니다. 감독 자신조차 뭘 하고 싶은 건지 모르는 듯합니다. 어디선가 본 멋있어 보이는 것들을 마구잡이로 수집해 카피하고 있다는 인상입니다. 대만 TV쇼 넷플릭스 시리즈, 『괴기특급 :: Til Death Do 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