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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Thriller

미장센의 배신 _ 우먼 인 윈도, 조 라이트 감독

그냥_ 2021. 5. 20.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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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미장센이 어쩌구... 메타포가 저쩌구...

 

 

 

 

 

 

 

 

'조 라이트' 감독,

『우먼 인 윈도 :: The Woman In The Window』입니다.

 

 

 

 

 

# 1.

 

요즘의 영화들 특히 <문라이즈 킹덤>과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의 웨스 앤더슨이나, <박쥐>와 <아가씨>의 박찬욱 감독의 그것처럼 엄격한 규칙과 과감하면서 관능적인 색감이 만들어내는 인공적 미감의 미장센이 대두된 이후, 영화판의 메타가 마치 누가 더 아름다운 미장센을 뽐내느냐를 경쟁하는 카드게임화 되어버린 감이 없잖아 있습니다. 오프닝에서 주인공이 가운데 있으니 1점! 화면을 두꺼운 선이 가로지르고 있으니 1점! 하는 식으로 말이죠. 물론 기하학적 구도에 대한 감화가 쉽게 되는 탓에 온갖 리뷰를 미장센에 대한 호들갑으로 떡칠하는 제가 이런 이야기를 한다는 게 희극적이기는 하지만요.

 

 

 

 

 

 

# 2.

 

이 영화 역시 그런 기준에서 대단히 '현대적인' 영화이기는 합니다.

 

캐릭터 간 역학관계를 표현하는 과감한 화각, 저택을 십분 활용하는 구도, 매 시퀀스의 성격을 달리 정의하는 현란한 카메라 워크, 주제의식과 조응하는 기하학적 프레임, 인물을 고립시키는 대칭적 구도, 심리상태를 구체화하는 몇몇의 메타포 등이 관객으로 하여금 이 영화를 뛰어난 완성도의 작품인 것처럼 느끼게끔 유도합니다. 쉽게 말해 떼깔은 충분히 좋다는 거죠.

 

거기다 히치콕의 <이창>이 연상될 수밖에 없는 영화 아니랄까 봐 차고 넘치다 못해 흘러내리는 오마주들이 감독이 얼마나 영화를 많이 알고 있으며 그 오마주를 적용할 수 있는 기술적 역량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 과시적으로 전시되고 있기도 합니다. 애초에 조 라이트가 이 정도를 못할 감독은 절대 아니죠.

 

위와 같은 기교 위로 과하다 싶을 정도의 화려한 캐스팅이 더해집니다. 주연으로 에이미 아담스를 쓰는 것까지야 그렇다 친다 하더라도 몇 컷 채 나오지 않는 조연으로 무려 줄리안 무어와 게리 올드만을 등장시키다 못해, 10마디 채 하지 않는 사실상 단역에 가까운 배역으로 제니퍼 제이슨 리까지 동원해 관객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합니다.

 

이후 이 영화가 얼마나 엉망인지(...)에 대해서 이야기하겠습니다만 그런 것을 모두 차치하고서라도 게리 올드만이 아들의 뺨을 때린 후 에이미 아담스를 몰아붙이는 씬의 박력이나, 자신의 유언을 촬영하는 동안 조울躁鬱을 오가는 애나의 감정 연기 등의 몇몇 장면만으로도 시간이 아깝지는 않다 생각할 수 있을 정도로 배우들의 연기력이 작품의 완성도를 방어하고 있다는 것 역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죠.

 

 

 

 

 

 

# 3.

 

아름답고 현란하고 화려하면서 미술적인 표현 위로 환상적인 배우들이 환상적인 연기를 수놓는 이 작품의 가장 큰 문제는 사건을 추론하는 스릴러로서의 이야기가 없다는 점입니다. 주인공이 건너 집 살인사건을 목격한 후 추론을 전개하는 과정 자체가 너무 부실할 뿐 아니라 그 부실하고 파편적인 단서들마저 차곡차곡 적층 되며 실체에 다가간다는 감각이 매우 희미합니다.

 

실제 영화 속 사건의 미스터리는 1시간 10분에 걸친 약물 중독자의 쌩쑈가 아니라 하필 케서린과 잠을 잔 데이비드의 장황한 상황 설명에 의해 해소됩니다.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서사 역시 영화 속에 녹여져 있는 것이 아니라 등장인물들이 돌아가며 설명충에 빙의해 해결하고 있죠.

 

# 4.

 

애나가 과거를 떠올린 후 사과하는 장면을 보며 눈을 의심하게 됩니다. 작가는 진심으로 그 장면을 본 관객들이 실제 살인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고 그저 이 여자의 환각일 뿐이었구나! 라 생각하길 기대한 걸까요. 누가 보더라도 애나의 정신적 불안과 무관하게 실제 살인 사건은 일어났다로 넘어갈게 뻔하지 않나요?

 

한 발짝 더 나아가자면 데이비드와 엘리스테어는 이전까지 너무 과격한 캐릭터인 탓에 오히려 범인이 아닐 거라는 것 역시 관객 대부분 눈치챌 겁니다. 왜 명탐정 코난 같은 거만 봐도 너무 노골적인 용의자는 범인이 아니기 마련이니까요. 제니퍼 제이슨 리 역시 대사도 뭐도 아무것도 없으니 범인은 아닐 테고. 그럼 당연히 하나 남은 아들 이슨이 범인이겠죠. 그리고 딩동댕! 정답! 아니 이걸 어떻게 즐기라는 거냐구요!

 

 

 

 

 

 

# 5.

 

중후반부 애나의 과거 사고가 공개되는 장면 역시 사건이 제 아무리 충격적이라 한들 현시점의 살인사건과 아무런 관련이 없기에 흥미가 있을 수 없습니다. 사고 대신에 경찰을 비롯한 사람들이 애나를 신뢰하지 못하게 할 법한 이유라면 그 어떤 것으로 대체되어도 상관이 없죠. 사실 애나가 로이스 레인으로 분장해 슈퍼맨의 가슴팍에 크립토나이트를 꽂아 넣었던 과거가 드러나 믿을 수 없게 되었다!! 였어도 영화의 전개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거든요. 그만큼이나 이야기가 느슨하고 전개가 뜬금없다는 거죠.

 

안 그래도 부실한 스릴러에 오마주는 넘쳐나다 보니 되려 오마주를 적용하기 위해 이야기가 흔들린다는 인상마저 느껴지게 됩니다. 결말부 익숙한 레퍼런스들이 떠오를 것만 같은 비 오는 옥상의 삼지창 액션씬이나, 현기증을 불러일으킬 것만 같은 나선 계단에 떨어져 죽은 사람의 모습 따위를 찍기 위해 만든 영화라는 누명을 뒤집어쓴다 해도 할 말이 없을 수준이죠.

 

거기에 마지막 스마트폰 먼저 본 후 영상 지우게 해주는 무능하지만 따뜻한 도시 경찰의 자비심이라는 나태한 사족과, 얼굴에 구멍이 3개 생기자 혈자리가 뚫렸는지 갑자기 온갖 정신이상이 한방에 치유되었다는 무책임한 출구전략까지 더해지면, 관객을 짜증스러운 얼굴을 만들기 위한 조건이 모두 갖춰집니다.

 

 

 

 

 

 

# 6.

 

이 같은 총체적 난국이 발생한 이유는 시나리오의 포커스는 창 밖을 바라보는 '나'에 놓여 있는데, 연출의 방점은 내가 바라보는 '창문'에 찍혀있었기 때문입니다.

 

히치콕의 영화 제목은 <이창>입니다. 창문이 주인공이고 그 창문 너머의 사건에 대한 이야기라는 거죠. 반면 이번 영화의 제목은 <The Woman In The Window>. 창문 안에 갇힌 여자에 대한 영화라는 뜻입니다. 프레임 너머의 사건이 아니라 프레임 '안에' 갇혀버린 인격의 불안한 내면을 탐구하고 극복하는 과정을 따라가는 서사라는 거죠. 앞선 단락들에서 말씀드린 스릴러라는 기준에서라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온갖 종류의 괴랄한 전개 대부분은 주인공의 시선에 밀착한 심리 드라마라는 기준 하에서는 설명이 가능합니다.

 

 

 

 

 

 

# 7.

 

연출이 시나리오의 성격을 보다 강하게 따라갔어야 합니다. 제인 살인 사건은 인물의 인격을 겉으로 끄집어내는 폭력적 계기, 정도의 선에서 강하게 통제되었어야 합니다. 최대한 창밖의 사건이 아니라 주인공 애나의 눈높이에서 그녀의 심리 묘사에 공들였어야 합니다. 철저하게 집 밖의 사건에 집착하고 흔들리는 애나의 영화였어야 합니다. 그래서 관객의 머릿속에

 

 

살인사건이 있는지 없는지, 범인이 누군지는 내 알바 아니고,

주인공 '애나'는 대체 어떤 사람인거지?

 

 

라는 걸 가장 궁금하게 만들었어야 합니다.

 

# 8.

 

네모난 프레임을 반복적으로 등장시켜 인물을 가두는 방식, 특히나 긴 복도의 실들을 넘나드는 통로를 활용해 여러 겹의 프레임으로 주인공을 감싼 후 인물이 각 프레임을 넘어서는 동선과 내면을 연결 짓는다거나. 되살아난 기억 속 사고의 순간을 통채로 가져와 프레임 안에 담고 이를 주인공이 들여다보게 만드는 구도 등은 시나리오의 목적에 부합하는 근사한 연출입니다.

 

고전 영화 속 장면과 그걸 보는 현실 간의 경계를 무너트림으로써 주인공이 강박적으로 보는 영화에서 어떤 정서를 추출하고 있는가를 구현한다거나, 자살을 앞두고 스스로의 유언을 스마트폰 카메라 화면이라는 또다른 프레임 안에 가두는 방식, 나선 계단을 내려다보는 시선 등에서 감독이 주인공의 내면을 다뤄야 한다는 작품의 맥락을 어느 정도 잡고 있다는 건 발견됩니다그 정도론 관객을 심리 드라마에 묶어두기엔 역부족이었죠.

 

창 밖의 사건 또한 최대한 건조하게 죽일 필요가 있었을 텐데요. 되려 감독은 무려 게리 올드만까지 불러다 창밖의 사건을 너무 강렬하게 만드는 실수를 하고 맙니다. 때문에 창 밖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을 통해 여자를 이해하는 영화가 되었어야 할 시나리오가, 이해할 수 없는 여자가 창 밖에 벌어진 살인사건에 질척되는 영화가 되고 만거죠.

 

 

 

 

 

 

# 9.

 

시나리오의 방향성과 충분히 조응하지 못한 미장센의 무기력함을 실천적으로 증명하는 작품이라는 생각입니다. 미장센이 영화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실천적으로 증명하는 작품이라는 생각입니다. 나름의 떼깔에도 불구하고 영화를 보신 많은 분들이 이 좋은 배우들을 데려다 이렇게 만든다고? 라 반응하시는 게 전혀 이상하지 않다는 뜻이죠. '조 라이트' 감독, <우먼 인 윈도>였습니다.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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