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좋아하세요? :)

늦은 저녁 맥주 한 캔을 곁들인 하루 한편의 영화, 그리고 수다.
영화 이야기는 언제나 환영입니다.

Film/Thriller

변호사 사무소의 의자 _ 세 번째 살인,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그냥_ 2020. 11. 10. 06:30
728x90

 

 

# 0.

 

통상의 범죄물은 관객을 형사의 발 위에 올려놓습니다. 흉악 범죄 사건을 오프닝에 배치해 물리적 폭력성을 직관적인 긴장감으로 연결한 후 이 포악한 범인과 열혈 형사의 쫓고 쫓기는 다이내믹한 움직임을 징검다리 삼아 서사를 전개해 나가죠. 4885 씬으로 유명한 나홍진 감독의 <추격자>는 좋은 예라 할 수 있겠네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세 번째 살인 :: 三度目の殺人』입니다.

 

 

 

 

 

# 1.

 

범죄 스릴러의 수작 <추격자>를 예로 들었듯 이 방법이 잘못된 방식이라는 의미는 결코 아닙니다. 많은 감독들이 비슷한 장르물을 만들며 같은 선택을 하는 건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 법이죠. 스릴러는 기본적으로 긴장감을 즐기는 장르고 2시간은 생각보다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며 사람들은 보통 사회적 맥락에 대한 이해가 요구되는 서사적 긴장감보다는 본능의 영역에 훨씬 가까운 물리적 긴장감에 쉽게 몰입하니까요. 관객을 장르 경험의 테마파크로 이끌어야 할 책임이 있는 감독에게 있어 최선의 방법을 선택하는 건 언제나 바람직한 일입니다. 하지만,

 

독특하게도 이 영화는 관객을 변호사 사무소의 의자 위에 앉혀 놓습니다.

 

서사의 중심이 되는 오프닝 살인 사건 씬을 제외하면 그 어떤 식으로도 부담스러운 긴장감을 유도하지 않습니다. 비슷하게 범인을 잡아놓고 들어가는 영화 <암수 살인>의 경우만 하더라도 밤의 택시 장면과 같이 물리적 묘사의 시퀀스를 군데군데 삽입해 장르적으로 조미하고 있습니다만 이 영화는 그런 류의 연출이 전무합니다. 오히려 힐링 드라마 못지않은 따뜻한 표현들이 다수 등장하죠.

 

 

 

 

 

 

# 2. 

 

감독은 범죄 스릴러로서는 이례적일 정도로 끊임없이 대화하고 소통하고 정리합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생각하는 듯합니다. 사건을 엮어내는 시나리오의 퀄리티와 이를 영화로 표현하는 연출 방법과 도달하게 될 메시지의 힘에 대한 창작자의 강한 확신이 전달됩니다. 덕분에 영화는 범죄 스릴러라는 장르물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고요하고 또 편안합니다. 기호를 탈 수 있는 폭력적 묘사가 없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다른 영화에서라면 의도적으로라도 누적시켰을 스쳐 지나는 의아함을 그때그때 해갈합니다. 심지어 사건을 추론하는 데 있어 관객에게 힌트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를 배경지식을 툴팁처럼 넉넉하게 던져주기까지 하죠.

 

구도나 배치 모두 관객의 입장과 생각과 시야에 최대한 친화적으로 연출됩니다. 관객들이 두 가지 생각을 겹쳐할 법한 순간엔 각각을 대변하는 두 명의 변호사를 동시에 화면에 담아 생각의 정리를 시각적으로 보조합니다. 유족들의 극단적인 정서에 관객이 함께 함몰되지 않도록 해야 하는 장면에선 대상을 바라보는 변호사의 모습만을 담아 간접적으로 필터링하지만, 역으로 관객이 감정적으로 몰두해 사건을 둘러싼 진실을 추궁해야 하는 장면에선 변호사 시케모리와 용의자 미스미를 강하게 대립시켜 고조를 돕습니다. 기능적 캐릭터로서 설명충을 하나 두는 것이 아니라 다수의 인물들이 각각의 캐릭터에 맞춰 적절히 나눠가며 정보를 소화하게 해 이물감을 최소화하기도 합니다. 카와시마라는 배역을 만들어 관객이 쉬어갈 틈을 열어두는 것 역시 섬세한 배려라 할 수 있겠죠.

 

이처럼 다소 어지러울 수도 있는 모호한 사건을 다루는 작품임에도 관객이 큰 스트레스 없이 이야기를 따라갈 수 있는 건 연출이 관객을 최대한 편안하게 배려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장르의 보편적 방법론을 기계적으로 따르는 것이 아니라 시나리오의 성격에 맞춰 자유로운 형식을 선택할 수 있다는 점에서 히로카즈 감독의 연출력을 새삼 확인하게 된달까요.

 

 

 

 

 

 

# 3.

 

자극적인 표현도 없습니다. 사건은 친절하게 떠먹여 줍니다. 그럼 이 작품의 동력은 뭘까요. 네. 앞 단락에서 살짝 말씀드린 대로 사건을 둘러싼 진실의 모호함입니다. 감독은 영화 내내 적어도 변호사 시게모리의 입장에서 취득할 수 있는 모든 정보를 아낌없이 관객과 공유합니다만 그럼에도 관객을 포함한 그 누구도 끝까지 사건의 전말을 알지 못합니다. 본질적으로 당사자가 아니고서는 확신할 수 없는 사건의 모호함을 설득하는 것으로 승부를 보는 작품인 것이죠.

 

으레 그러했듯 관객은 결말을 통해 나름의 진실을 알 수 있을 것이라 자만하지만 그 자만은 클라이맥스에서 장렬히 부서져 내립니다. 마지막 미스미의 태도와 대사는 관객 역시 주관적으로 믿고 싶은 대로 사건을 해석했을 뿐 그 해석 역시 진실과는 동떨어져 있을 수 있다는 점을 자백하게 합니다.

 

 

 

 

 

 

# 4.

 

영화의 제목은 <세 번째 살인>. 기수가 아닌 서수라는 것이 중요합니다. 영화는 30년 전 살인을 저지른 전과자 미스미에 관한 이야기도, 이츠오 살인사건에 대한 이야기도 아닌 세 번째 살인. 사형수 미스미를 살해할 사법살인에 대한 이야기라는 것이죠. 네. 사형 폐지론에 관한 영화라 보는 게 합당합니다.

 

직무 평가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는 판사의 입장에 관한 대목이나, 역할만 다를 뿐 검사, 판사, 변호사 모두 법조인이라는 같은 배를 탄 사람들이라는 대사. 힘을 실어 내뱉는 소송경제에 관한 이야기는 감독이 사법체계의 본질적 불완전성을 강하게 주장하는 대목이라 할 수 있습니다. 구체적 사건을 수임하게 된 변호사이자 판결을 내리는 배심원으로 관객을 초청해 사형제도를 포함한 사법 제도과 사회철학적 메시지를 질문하는 영화라 할 수 있겠네요.

 

개인적으론 감독이 강한 메시지를 주장하는 영화보다는 화두를 던져줄 수 있는 영화가 조금 더 좋은 영화라고 생각합니다만... 뭐, '본질적으로 완벽할 수 없는 사법체계의 한계'라는 아이템부터가 메시지에 종속될 수밖에 없다는 걸 감안하면 어쩔 수 없다는 생각도 들긴 합니다. 특히나 동의 여하와는 별개로 영화가 메시지를 다룸에 있어 폭압적인 태도보다는 친절하게 설득하려 노력하고 있다는 점 또한 인정해야 할 테죠. 그래요. 이 정도 완성도와 이 정도 고찰 그리고 이 정도의 태도라면 관객 역시 감독의 주장과 흔쾌히 대화할 수 있습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세 번째 살인>이었습니다.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 본 블로그는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글에서 다루는 작품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댓글", "포스트를 자신의 블로그로 유인하는 데 이용하려는 댓글", "무분별한 맞팔로우 신청 댓글" 등은 삭제 후 IP 차단될 수 있습니다.

 

 

"좋아요", "댓글""구독"

 

은 블로거에게 큰 응원이 됩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