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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Drama

의심에 대하여 _ 다우트, 존 패트릭 셰인리 감독

그냥_ 2022. 3. 7.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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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쉽게 내린 선택에 대한 대가는 미래에 치르게 되죠."

 

 

 

 

 

 

 

 

'존 패트린 셰인리' 감독,

『다우트 :: Doubt』입니다.

 

 

 

 

 

# 1.

 

의심(Doubt)은 대상의 불확실성을 자신의 확신으로 예단하는 기작입니다. 아귀는 고니의 패를 직접 보지 못하기에 의심할 수 있었던 것이구요. 동시에, 보지도 않은 고니의 패에 손모가지를 걸 수 있었던 건 고니가 장난질을 했을 거라는 자기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죠. 타인은 모호하게 부도덕하고 나는 분명하게 도덕적이다. 모순적이고, 그래서 이기적인 감정입니다.

 

이야기의 배경은 '교회'와 '학교'입니다. 교회는 교리와 위계에 지배받는 단호한 공간입니다. 학교는 당위의 존재들을 위한 도덕적 공간이죠. 단호한 공간에서 벌어진 일조차 이렇게나 불확실합니다. 도덕적 공간에서 조차 윤리적 판단을 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그보다 더 불확실한 현실에서, 점점 더 불확실해져 가는 현실에서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의심할 것인가 되묻습니다.

 

의심할 수밖에 없는 불확실한 사회와 확신을 가지고 의심하는 자의 모순입니다. 규정 지을 수 없는 것들을 자기 기준에서 단죄하려는 자의 아집과 파열과 파멸입니다. 관객은 강렬한 에너지로 밀고 나가는 갈등의 롤러코스터를 지나 불확실한 결말과 결정할 수 없는 도덕 경계 한가운데 방치됩니다. 영화의 핵심은 '메릴 스트립'과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이라는 두 배우의 폭발적 열연보다, 104분에 걸친 런타임 내내 의심하고 또 의심함에도 확신으로 변하지 않는 불확실성에 닿아있습니다.

 

 

 

 

 

 

# 2.

 

등장인물들은 의심을 대하는 방식들을 대변합니다.

 

밀러의 엄마는 의심을 부정합니다. 부인이 쏟아내는 대사와 '비올라 데이비스'의 빛나는 연기보다 인상적인 것은 동선입니다. 사무실에 있던 두 사람은 부인의 근무지를 향해 걸으며 대화하게 되는데요. 마치 달아나는 밀러 부인을 알로이시스 수녀가 추궁하듯 포위하듯 묘사되죠. 압박당하던 부인은 끝내 6월까지만 견디면 된다는 자신의 모순을 눈물로 실토하게 됩니다. 밀러의 아빠는 의심을 배제합니다. 등장하지는 않지만 동성애자인 아들 도널드를 폭행하는 듯하죠. 의심하고 검증하기보다는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힘으로 배제하는 선택입니다. 올바르다 할 수는 없겠으나 분명 몇몇 사람들이 의심스러운 대상을 통제하는 방식 중 하나임엔 틀림이 없습니다.

 

제임스 수녀는 의심을 외면합니다. 그녀는 스스로 결정하기보다는 갈등이 종료될 수 있다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든 상관없다는 듯 행동합니다. 거침없이 플린 신부에 대한 의심을 심화시키다가도 그와 나눈 한마디 대화에 금세 아무 일 없었던 것이라 말하기도 합니다. 당사자의 안위나 실체적 진실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그저 벗어나고 싶을 뿐이죠. '에이미 아담스'의 초롱초롱한 눈망울처럼 겁쟁이지만, 사실 영화에 등장하는 그 누구보다 이기적인 인물이기도 합니다.

 

 

 

 

 

 

# 3.

 

알로이시스 수녀는 의심을 신뢰합니다.

때로는 신앙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죠.

 

수녀는 교회나 원칙을 지킨다기보다는 자신의 보수성과 의심의 효용성에 대한 확신 그 자체를 지키는 사람에 가깝게 묘사됩니다. 시력이 떨어져 가는 수녀를 위해 거짓말을 한다거나, 교인임에도 고해성사를 부정한다거나, 신부의 전 근무지 수녀에게 전화를 걸었노라 거짓말하는 대목 등은 이 인물이 기계적인 원칙론자와는 결이 다름을 의미합니다.

 

플린 신부를 몰아내는 데 성공한 후, 교정엔 가득하던 아이들의 웃음소리 대신 차가운 눈뿐입니다. 시종일관 차갑던 알로이시스 수녀가 무너져 내리는 것은 타인을 의심하던 자신의 불확실성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누군가를 단죄하는 자신은 그만큼 종교적으로나 도덕적으로나 합리적인가. 타인을 압박하던 시선으로 스스로 의심하게 되어버린 자의 비극이군요.

 

 

 

 

 

 

# 4.

 

알로이시스 수녀와 밀러 부인과 제임스 수녀 모두 충분히 도덕적이면서 충분히 비도덕적인 인물입니다. 관객은 자신의 학생을 니그로라 말하는 알로이시스의 무례함과, 내-외면의 폭행에 노출되는 아들의 상처를 외면하는 밀러 부인의 비겁함과, 스스로의 내적 평안을 위해 이리저리 휘둘리는 제임스의 나약함을 적나라하게 목격하게 되지만, 그럼에도 이들을 마냥 비난하기도 쉽지 않은 것 역시 분명합니다.

 

밀러 부인과 제임스 수녀는 어떤 면에선 관객으로 하여금 의심과 갈등으로부터 달아날 도피처라 할 수 있습니다. 관객은 의심을 부정하는 부인의 방식으로, 혹은 의심을 외면하는 제임스의 방식으로 갈등에서 이탈할 수 있지만 그와 같은 선택은 부도덕하다는 압박을 느끼게 됩니다. 학생 도널드에게 죄를 짓는 것 같기도 하지만, 그 못지않게 의심스러운 사건의 실체가 궁금하기 때문이죠. 관객 역시 불확실한 사회에서 의심하길 즐기는 현대인이니까요.

 

 

 

 

 

 

# 5.

 

플린 신부는 의심스러운 사건의 불확실성뿐 아니라

여러 가치를 통할한 '변화' 그 자체를 상징하기도 합니다.

 

여기서의 변화(혹은 진보)란 도덕적이라거나 정의롭다는 뜻은 포함하지 않습니다. 가치중립적인 양상만을 의미합니다. 그의 마지막이 승진이라는 점은, 불확실성의 확대란 막을 수 없는 필연이라는 것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습니다. 

 

몇 차례에 걸친 신부의 설교는 고조되어가는 불확실성과 비가역성에 대한 경고로 점철되는데요. 마을 사람들과 수녀에게 경고하는 듯 하지만 사실 관객에게 경고하고 있는 것이기도 합니다. 당신의 되돌릴 수 없는 의심은 확신할 수 있는가 묻습니다. 알로이시스 수녀의 방식도 밀러 엄마의 방식도 아빠의 방식도 제임스 수녀의 방식도, 그 어떤 것도 플린 신부를 충분히 설명하지 못했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무엇보다 도널드를 행복하게 하지 못했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 6.

 

이야기는 평탄합니다.

뭐랄까, 마치 격투기 같달까요.

 

메시지에 대한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고 간단히 영화 얘기로 마무리할까요. 의심하는 인간과 의심받는 인간이 대결적으로 연출됩니다. 한 명이 고립되면 한 명은 교류하고, 한 인물이 내려다보면 한 인물은 올려다보는 식이죠. 식사 장면이라거나 손톱을 다듬는 태도에 투영된 인생철학, 설교 내용을 받아내는 유리창 안의 수녀와, 고양이와 쥐의 비유, 갈등의 양상과 연동된 날씨 변화, 차에 설탕을 넣는 모습, 상석을 차지하는 구도, 비스듬히 기울어진 화면 등은 대표적이라 할 수 있을 겁니다. 다소 기계적이지만 그래서 친절하고 편안한 맛도 있는 연출들이죠.

 

두 인물은 대칭적인 메타포들의 조력을 받아 각자의 공간과 상황을 지배해 나갑니다. 중반 즈음 알로이시스 수녀가 플린 신부에게 의심을 고백하는 장면은 서로 주먹을 내보이는 '계체량'쯤 된다 할 수 있습니다. 후반부 두 주연이 각각 제임스 수녀와 밀러 부인과 대화를 나누는 장면은 가벼운 '스파링' 쯤 된다 할 수 있겠죠. 이 스파링이 없었더라면 <헬로우 고스트>처럼 너무 늦게 나온 짜장면이 될 뻔도 했습니다만, 다행히 비올라 데이비스와 에이미 아담스의 호연이 관객의 집중을 적절히 방어하는 데 성공합니다.

 

 

 

 

 

 

# 7.

 

그리고 마지막 한방입니다. 앞서 미주알고주알 떠들었지만, 그럼에도 영화는 두 주인공이 쏟아내는 누적된 스트레스와 에너지를 분출하듯 치고받는 연기의 향연입니다.

 

과연 대단한 연기입니다만 배역 간 밸런스는 썩 불공정하다는 생각입니다. 수녀가 능동성을 독점하는 동안 신부는 수동적인 포지션을 전담할 수밖에 없으니까요. 결투는 이런 상황적 불균형에 힘입어 '메릴 스트립'의 넉넉한 낙승이었다는 생각입니다. 물론 졌지만 잘 싸운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에게도 흔쾌히 박수를 보낼만합니다. 과연 명경기라 할법하죠. '존 패트린 셰인리' 감독, <다우트>였습니다.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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