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좋아하세요? :)

늦은 저녁 맥주 한 캔을 곁들인 하루 한편의 영화, 그리고 수다.
영화 이야기는 언제나 환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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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71

넓게 잡고 얕게 판다 _ 보이저스, 닐 버거 감독

# 0. 이렇게 얕을 거라면 왜 우주까지 끌고 가서 그 난리를 피운 거지? 닐 버거 감독, 『보이저스 :: Voyagers』입니다. # 1. 이제는 조금 식상하기까지 한 우주 배경의 사고 실험물입니다. 인간 군상을 집어넣은 가상의 실험실을 만든 후 계를 분리시키기 위해 냅다 우주로 던져버리는 식이죠. 인터스텔라 같은 유명 작품뿐 아니라, 얼마 전 창세기를 거꾸로 뒤집어 놓은 것 같다 말씀드린 바 있는 하이라이프 같은 영화들도 비슷한 접근법을 공유하는 작품이었더랬습니다. 언제나처럼 인류의 미래를 짊어진 최후의 희망. 뭐, 고런 식으로다가 적당히 당위를 만드는 과정에서 고증 오류가 듬성듬성 발견되기도 합니다만, 역시나 그런 오류에 집중하는 것은 썩 무의미합니다. 애초에 감독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건 어드벤처가..

Film/SF & Fantasy 2022.12.16

김치피자탕수육 _ 유로파 리포트, 세바스챤 코르데로 감독

# 0. 파운드 푸티지 베이스에 아마겟돈식 영웅 서사랑 크리쳐 앤딩을 비비면?!        세바스챤 코르데로 감독,『유로파 리포트 :: Europa Report』입니다.     # 1. 이상하겠죠. 실제 이상한데요. 그런데 생각보다는 또 볼만합니다.  명작은커녕 수작도 조금 버겁습니다만 컬트적인 재미가 없다 말하는 것은 그것대로 가혹합니다. 세상 건조하고 차가운 파운드 푸티지에 동료애 넘치는 뜨뜻한 갬성 서사를 더하고, 고증이 핵심인 우주 탐사 SF와 개 뜬금 판타지 크리쳐물을 비벼놨는데 덜컹거리긴 해도 어찌어찌 돌아는 갑니다. 다양한 요소들이 충돌함으로 인한 불가분의 장단점이 매우 뚜렷합니다. 극단적인 퓨전 요리인 탓에 빈말로라도 대중적이라 말할 순 없지만 동시에 좋아하시는 분들은 맛있게 드시기도 하..

Film/SF & Fantasy 2022.12.04

외롭고 버거운 별들의 맞잡은 손 _ 애드 아스트라, 제임스 그레이 감독

# 0. 남을 따라서 살 일이 아니다 네 가슴에 별 하나 숨기고 살아라 끝내 그 별 놓치지 마라 네가 별이 되어라 - 너는 별이다. 나태주 - 제임스 그레이 감독, 『애드 아스트라 :: Ad Astra』입니다. # 1. 우주 SF입니다. 문제적 감독 제임스 그레이가 메가폰을 잡았습니다. 갈수록 멋있어지는 브래드 피트가 주연 '로이 맥브라이드'를 연기하구요, 맨 인 블랙의 K로 익숙하실 토미 리 존스가 로이의 아버지 '클리포드 맥브라이드'를 맡았습니다. 지적 생명체 탐사 프로젝트 '리마'를 이끌던 클리포드는 오래전 실종되었다 합니다. 그를 영웅으로 여긴 아들은 아버지를 따라 우주 비행사로 성장하게 되죠. 그러던 어느 날 해왕성 방면으로부터 전류 급증 현상이 초래되어 지구가 위험에 노출됩니다. 사태에 리마 ..

Film/SF & Fantasy 2022.10.12

통제와 오차 _ 듀얼 : 나를 죽여라, 라일리 스턴즈 감독

# 0. 통제의 교차로에 갇혀버린 삶 오차를 누린 자의 풍요로운 죽음 라일리 스턴즈 감독, 『듀얼 : 나를 죽여라 :: Dual』입니다. # 1. 죽음을 앞둔 사람들이 남겨진 사람들을 위해 자신과 같은 유전자의 클론을 만드는 SF적 세계관입니다. 작품은 클론을 '더블'이라 부르죠. 시한부 판정을 받게 된 주인공 '세라'는 자신을 대신할 더블을 구매하기로 결정합니다. 남은 시간 동안 '세라 더블'에게 자신의 습관과 취향과 성향,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 따위를 전달하며 대체를 준비합니다. 그런데 10달이 지나도 죽지를 않습니다. 이상하게 여긴 세라는 병원을 찾아가는데 의사로부터 불치병이 나았다는 황당한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자신의 삶을 되찾아야겠다 생각한 세라는 더블을 폐기하기로 하는데요. 이미 너무 많은 ..

Film/SF & Fantasy 2022.09.26

양은 무엇을 보았나 _ 애프터 양, 코고나다 감독

# 0. 목적의 여백을 발견하는 동안 수리되는 자아, 완성되는 가족 코고나다 감독, 『애프터 양 :: After Yang』입니다. # 1. 인간과 인조인간 어쩌구, 뭐 고런 영화입니다. 흔히 스필버그의 A.I. 를 대표적으로 떠올리실 것 같습니다만 개인적으론 이런 류의 영화를 볼 때면 바이센테니얼 맨을 가장 먼저 떠올리곤 하는데요. 로빈 윌리엄스의 애환이 뒤섞인 듯한 미묘한 표정이 뇌리에 깊이 남았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여하튼 통상은 교감을 쌓아나가는 과정을 직접적으로 그리기 마련인데요. 이 작품의 특별함은 인조인간을 죽인 후 시작한다는 점에 있습니다. 인조인간을 통한 가치 탐구를 다룬 영화에서 정서의 종착점을 [애정愛情]이 아니라 [애도哀悼]로 설정하겠다는 아이디어는 과연 특별합니다. 중국계 안드..

Film/SF & Fantasy 2022.09.20

애정결핍 _ 외계+인 1부, 최동훈 감독

# 0. 대체 관객인 내가 영화 속 무엇을 좋아하길 바랬던 걸까. 최동훈 감독, 『외계+인 1부 :: Alienoid part.1』입니다. # 1. 영화만큼 장르라는 말을 많이 쓰는 분야도 없는 것 같습니다. 장르라는 게 뭐예요? 라는 질문에 사람마다 다양한 대답이 가능할 텐데요. 문외한인 저는 관객에게 주고 싶은 감동의 유형 정도로 대충 이해하고 있습니다. 관객을 웃게 하고 싶으면 코미디, 감동시키고 싶으면 드라마, 무섭게 하고 싶으면 호러라는 식이죠. 거기에 어떤 방식으로 어떤 종류의 감동을 줄 것인가라는 세세한 구분이 더해지면 소장르쯤 될 테구요. 다양한 감동을 동시에 느낄 수 있으면 퓨전 장르라는 식으로 부를 수 있겠죠. 어찌 되었든 장르물이란 것이 관객에게 감동을 전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면,..

Film/SF & Fantasy 2022.08.02

수박 겉 핥기 _ 이퀄스, 드레이크 도레무스 감독

# 0. 수박 겉을 핥습니다. 심지어 천~천히 핥습니다. 드레이크 도레무스 감독, 『이퀄스 :: Equals』입니다. # 1. 빌어먹을 세상이 또 멸망했습니다. 만세. 어찌어찌 멸망했다 하는 데 자세히 모르셔도 무방합니다. 어쨌든 망했다는 것만 알아도 충분하죠. 기성의 국제 사회는 깡그리 망하고 '선진국'과 '반도국'으로 이분화된 세상입니다. 선진국은 불필요한 소모를 유발하는 것으로 취급된 감정을 제거함으로써 근로 효율을 극대화하는 데 성공한 인간들의 사회입니다. 이곳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평준화를 의미하는 '이퀄'이라 불리죠. 반도국은 현생 인류와 같은 감정을 가진 사람들의 사회입니다. 선진국의 이퀄들은 그들을 (지극히 이퀄의 관점에 따라) '결함인'이라 부릅니다. 감독은 감정의 제거라는 폭력적 방법론을..

Film/Romance 2022.07.08

스포일러 _ 비바리움, 로르칸 피네간 감독

# 0. 흥미로운 아이디어. 재치 있는 스토리. 감각적인 연출. 자해적 플롯. 로르칸 피네간 감독, 『비바리움 :: Vivarium』입니다. # 1. 흥미로운 아이디어입니다. 뻐꾸기의 탁란(托卵, 어떤 새가 다른 종류의 새의 집에 알을 낳아 대신 품어 기르도록 하는 일)에 착안하는 것이죠. 인간을 기생종을 키우게 된 숙주의 상황으로 몰아넣어 보자는 상상은 썩 유쾌합니다. 본능 앞에 스스로 자연의 법칙 밖의 존재라 자만하던 인간의 무기력함을 냉소적으로 조망한다는 아이디어는, 존재론적 회의를 유도한다는 측면에서 호러물로서 충분히 시도해볼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죠. 재치 있는 스토리입니다. 보금자리를 찾던 두 주인공을 그 자체로 거대한 생태적 운명을 은유하는 마을 '욘더'에 묶어두는 방식은 기대보다 더 충실합..

Film/Horror 2022.06.20

돈키호테의 선택 _ 더 플랫폼, 갈데르 가스텔루-우루티아 감독

# 0. 상승과 하강으로 과격하게 축조해낸 원론적이면서 허무한 계급 우화?! 갈데르 가스텔루-우루티아 감독, 『더 플랫폼 :: El Hoyo』입니다. # 1. 선입견이라 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개인적으로 유럽 영화하면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 되나 싶은 걸 굳이 그렇게까지 하는 영화들이라는 이미지가 생각나곤 합니다. 가끔은 미술적이고 미학적이어야 한다는 강박 같은 것이 느껴지기도 하는 한국의 영화들과 달리 얘네는 무슨 생각으로 사는 건가 싶을 정도로 뒤 없이 내지르는 맛이 있곤 하죠. 이를테면 봉준호가 음흉한 지하실을 숨기고 있는 고급스러운 저택과 똥물이 역류하는 반지하를 섬세하게 계획하는 동안, 갈데르라는 이름의 스페인 감독은 냅다 333층짜리 탑을 쌓아 버리는 식입니다. 미친놈인가 싶죠. # 2. 황당할..

Film/SF & Fantasy 2022.06.06

손가락 _ 자이고트, 닐 블롬캠프 감독

# 0. 오츠 스튜디오(Oats Studios)를 아시나요.         닐 블롬캠프 감독,『자이고트 :: Zygote』입니다.     # 1. 의 닐 블롬캠프 감독이 설립한 실험 영화 제작사입니다. 감독 특유의 성향이 물씬 묻어나는 단편들을 적당히 뿌려 간을 보다가 각이 나온다 싶으면 장편으로 태세 전환하려는 응큼한 속셈의 프로젝트죠. 이렇게 말하면 뭔가 온갖 감독들의 사적 프로젝트들을 줄줄이 꿰고 있는 듯 보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제까짓 게 그런 걸 어떻게 알겠어요. 넷플릭스 긁어보다 얻어걸린 거 맞습니다. 좋은 세상입니다. 적당한 광고 시청을 지불하면 어지간한 단편 영화나 고전 영화들은 공짜로 볼 수 있는 세상이죠. 앞서 넷플릭스에서 보았다 말씀드렸습니다만 오츠 스튜디오의 작품들은 유튜브와 스팀에..

Film/Horror 2022.05.22

상하 좌우 반전 _ 하이 라이프, 클레어 드니 감독

# 0. 우주 SF입니다. 디테일한 미술과 세심한 설정과 쫀쫀한 서사로 빚어낸 환상의 공간을 여행하는 아이 씐나! 어드벤처 물이거나, 철학적이거나 제의적이거나 관념적인 코드들로 이리저리 엮어낸 교수님스러운 스릴러 드라마인 경우가 일반적이죠. 물론 세부적으로 나누자면야 더 많은 분류가 가능할뿐더러 위의 두 분류 역시 칼같이 나눠지지 않고 겹쳐 들어가는 경우가 허다합니다만, 알잘딱 넘어가도록 합시다. '클레어 드니' 감독, 『하이 라이프 :: High Life』입니다. # 1. 후자의 교수님스러운 영화 그중에서도 매운맛입니다.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이미지와 분위기에 주력하고 있을 뿐 디테일은 과감히 생략하고 있기도 하구요, 펜로즈 과정 따위를 잠시 찍먹 하긴 하지만 그마저도 몰입을 위한 과학적 디테일이라기..

Film/SF & Fantasy 2022.03.14

참을 수 없는 존재의 외로움 _ 별의 목소리, 신카이 마코토 감독

# 0. 감독의 날것 그대로를 맛보고 싶다면 언제나 데뷔작 만한 게 없죠. '신카이 마코토' 감독, 『별의 목소리 :: ほしのこえ』입니다. # 1. 다양한 장르의 이야기를 자유롭게 풀어놓으며 스펙트럼을 과시하는 감독들도 있습니다만, 자신의 작품 세계를 하나의 브랜드처럼 만들어 반복적으로 가다듬고 심화시키는 감독들도 있습니다. 때론 지루하다거나 심지어 자기 복제 아니냐라는 가혹한 평을 듣기도 하지만 대신 필모그래피를 천천히 따라가는 동안 한 인간의 철학과 깊이 있게 소통하는 감동 역시 무시할 수 없는 매력이죠. '신카이 마코토'는 대표적인 감독 중 하나라 할 법합니다. 그중에서도 데뷔작 는 작품 철학의 원형이라 할 수 있겠죠. 심각하게 못생긴 인물 작화 정도를 제외하면(...) 이후 반복적으로 발견하게 되..

Film/Animation 2022.01.29

솜사탕 _ 핑크 클라우드, 이울리 제르바지 감독

# 0. 될 놈은 어떻게 해도 됩니다. 2017년에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해 19년에 제작 들어간 작품이 코로나에 제대로 얻어걸렸습니다. 독특한 설정과 빈약한 설득력에도 불구하고 현실의 펜더믹이 관객의 몰입을 상당 부분 커버합니다. '이울리 제르바지' 감독, 『핑크 클라우드 :: A Nuvem Rosa』입니다. # 1. 분홍색 독구름이 생긴 세상입니다. 무슨 이유로 만들어진 건지, 어떤 기작으로 문제를 일으키는 건지 알 수 없지만 어쨌든 둥실둥실 떠다니는 분홍색 구름에 접촉하면 10초 이내에 사망하게 된다. 뭐, 그런 설정입니다. 대기 성분인 구름이 창문 닫는 정도로 집 안에 못 들어온다는 게 말이 되나 싶지만 적당히 넘어갑니다. 물자 문제는 집집마다 비닐 튜브를 연결하는 것으로 뭉개고 넘어갑니다. 수십 ..

Film/SF & Fantasy 2022.01.02

영화에 대한 한숨 _ 낯설고 먼, 트라본 프리 / 마틴 데스몬드 로 감독

# 0. 역사에 대한 울분. 영화에 대한 한숨 ★★✩✩✩이동진, 영화 한줄평      트라본 프리, 마틴 데스몬드 로 감독,『낯설고 먼 :: Two Distant Strangers』입니다.     # 1.  인종차별, 그중에서도 흑인에 대한 경찰의 과잉진압을 다룬 영화입니다. 시작부터 등장하는 제임스 볼드윈이라는 저명인사의 이름과, 경찰이 주인공을 제압하는 모습을 보며 떠올리게 될 조지 플로이드라는 이름이 작품의 메시지를 분명히 하죠. 유색인종에게만 차별적으로 작동하는 공권력의 폭력적 사례를 모아 루프 속에 갇힌 한 인간에게 소집시켜 극으로 재구성합니다. 귀여운 강아지의 모습이 본래의 평온한 일상을 은유합니다. 미모의 여성 페리와의 하룻밤이 설레는 매일을 상징합니다. 흑인 작가이자 인권운동가였던 제임스..

Film/Drama 2021.08.10

고립은 인간을 죽일 수 없다 _ O₂, 알렉산드르 아야 감독

# 0.  아무래도 로드리고 코르테스 감독의 가 생각나지 않을 수는 없겠죠. 간신히 사람 몸하나 뉘일 공간에 갇혀 있는 인물의 공포를 다룬 다른 모든 영화들처럼요. 해당 영화를 리뷰하며 극단적으로 제한된 공간이 역설적으로 서사를 진행함에 있어 압도적인 자유도를 부여한다 말씀드렸었는데요. 이 영화는 그 압도적인 자유도라는 게 어디까지 펼쳐질 수 있는가를 실천적으로 증명하는 작품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알렉산드르 아야 감독,『O₂ :: Oxygène』입니다.    # 1.  영화는 두 번의 국면 전환으로 나눠진 세 파트로 구성됩니다. 첫 번째는 제한적인 시간, 좁은 공간에 갇힌 사람의 폐소 공포와 탈출을 위한 실마리를 수집해 나가는 스릴러로 전개되구요. 두 번째는 이전까지의 목적의식 자체를 부정..

Film/SF & Fantasy 2021.05.16

SF는 거들 뿐 _ 스토어웨이, 조 페나 감독

# 0. SF 물로서의 배경 묘사가 얼마나 디테일하고 논리적인가는 그닥 중요하지 않습니다. 되려 여러분께서 그런 디테일을 주의 깊게 보시게끔 만들었다는 것, 그게 문제죠. ‘조 페나’ 감독, 『스토어웨이 :: Stowaway』입니다. # 1. 자식이 아픈 부모를 위해 약을 구해오는 영화가 있다면 우린 그 영화를 '효'에 대한 영화라 말할 겁니다. 올챙이가 개구리를 돕는 영화라거나, 아기 다람쥐가 엄마 다람쥐를 위해 도토리를 구해오는 영화, 로봇이 자신을 만든 박사를 구출하는 영화 모두 소재만 다를 뿐 '효'라는 같은 주제를 다룬 유사한 작품들이라 할 수 있겠죠. 만약 올챙이나 다람쥐가 나온다고 해서 '동물 영화'라 정의한다거나 로봇이 나온다고 해서 'SF 영화'로 이해한다면 이는 작품의 맥락을 전혀 짚지..

Film/SF & Fantasy 2021.05.14

천재사용설명서 _ 더 프로디지, 알렉스 호게이 / 브라이언 비달 감독

# 0. 2018년에 개봉한 테일러 실링 주연, 니콜라스 맥카시 감독 작 에 대한 글이 아닙니다. 그보다 한해 앞서 개봉한 동명의 다른 작품에 대한 리뷰죠. '알렉스 호게이', '브라이언 비달' 감독, 『더 프로디지 :: The Prodigy』입니다. # 1. 영화뿐 아니라 대부분의 서사 중심 창작물에서 가장 만들기 어려운 캐릭터를 꼽으라 한다면 단연 1순위는 천재 캐릭터일 겁니다. 여타 모든 종류의 캐릭터들과는 달리 설정이나 연출로 적당히 뭉개고 넘어갈 수 없기 때문이죠. 슈퍼맨보다 더 쎈 캐릭터를 만들어야 한다면 그냥 쎄다고 하면 됩니다. 까짓 거 한 대 맞자마자 날아가는 슈퍼맨을 보여주기만 해도 설득은 충분하죠. 플래시보다 더 빠른 캐릭터를 만들고 싶다면 플래시를 앞지르는 모습만 연출하면 됩니다. ..

예상한 대로 _ 승리호, 조성희 감독

# 0. 상상해 봅시다. 여러분이 영화 시나리오를 썼어요. "우주에서 쓰레기를 주으며 산다. 꿈은 아득하기만 하다. 2092년, 기댈 곳 없는 낙오자 넷. 그들이 천진한 인간형 로봇을 손에 넣는다. 때가 왔다, 위험한 거래를 개시한다"는 내용으로 말이죠. 일단 미래 우주가 배경이네요. 쓰레기 주으며 사는 밑바닥 낙오자 무리에 대한 이야기면 아이템에서부터 어느 정도 중량감은 필연적이겠군요. 폭탄 어쩌구 하는 내용도 보이고 그걸로 거래를 하겠다는 걸 보니 배드 에스 기믹의 주인공 파티가 벌이는 유쾌 상쾌 통쾌 스페이스 오페라, 뭐 고런 타입의 영화를 썼다고 칩시다. '조성희' 감독, 『승리호 :: SPACE SWEEPERS』입니다. # 1. 자, 여러분이라면 이 시나리오의 주연배우로 누구를 캐스팅하고 싶으신..

Film/SF & Fantasy 2021.02.07

유지 보수 완료 _ 엄브렐라 아카데미 시즌 2, 스티브 블랙먼 감독

# 0. 히어로가 되고 싶은 찐따들이 종일 징징대다 시밤쾅 달 날려버리고 빤스런하는 드라마, 『엄브렐라 아카데미』의 두 번째 시즌입니다. 이전 시즌의 리뷰에서 '시즌 2는 보고 싶어서가 아니라 수습을 위해서라도 만들어야 한다'라 말씀드렸었는데요. 어쨌든 차기 시즌은 나왔고. 이번에도 보고 말았습니다. 역시, 본전 생각이 이렇게나 무섭습니다. '제라드 웨이' 원작, '스티브 블랙먼' 감독, 『엄브렐라 아카데미』 시즌2 입니다. # 1. 리뷰에 앞서 지난 시즌의 글을 다시 읽어 봤습니다. 지배적인 설정과 큰 줄기만 잡아 놓은 채, 무지막지하게 조잡한 요소들을 무지막지하게 많이 모아 모자이크처럼 붙여 놓았다 말씀드렸었네요. 시리즈를 지배하는 가장 큰 정서는 죽은 사이코패스 아빠에 대한 '징징거림'이며, 전체 ..

Series/SF & Fantasy 2020.08.18

허무한 이미지, 건조한 메시지 _ 9 : 나인, 셰인 액커 감독

# 0. 멋들어진 시각적, 철학적 이미지 몇 개만으로 80분짜리 장편 영화를 비벼보려 합니다만 에이... 그게 그렇게 쉽게 될 리가 있나요. '셰인 액커' 감독, 『9 : 나인』입니다. # 1. 감독이 뭘 하고 싶었던 건지 이해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1. 심미적 디자인의 봉제인형 몇 개가 고군분투하는 코즈믹 호러 풍의 포스트 아포칼립스 배경 위로, 2. 거대 기계를 상대로 다양한 직업군의 파티가 레이드를 뛰는 액션 어드벤처를 장르적 동력으로 삼아, 3. 각 캐릭터에 투영된 인간 본연의 철학적 가치들의 본질과 소중함을 역설하겠다. 는, 뭐 고런 영화죠. # 2. 문제는 이게 전부라는 점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3개의 중심축을 엮어 흥미로운 스토리텔링으로 구현하는 데 실패합니다. 상징은 상징에 머물러..

Film/Animation 2020.07.03

로스트 같은 거 _ 어둠 속으로, 제이슨 조지 제작

# 0.  태양에 갑작스러운 변화가 생겨 해가 뜨면 전자레인지 안에 있는 것 마냥 맛있게 구워지게 되는 재난이 발생함에 따라, 살아 남기 위해 비행기 타고 지구 자전 역방향으로 겁나 빨리 빤스런을 하면서, 육지에선 파밍하고 비행기 내에선 투닥거리거나 썸을 타는 드라마입니다.        'Netflix Original 벨기에 TV 시리즈',『어둠 속으로 :: Into the Night』입니다.     # 1.  범지구적 재난과 불안정성 높은 환경으로 인해 여러 문제들이 속출합니다. 그럴 때마다 사람들 모두 각자 나름의 방식으로 갈등과 협력을 강요받게 되죠. 일련의 과정을 거친 후 각각의 인물들은 서로에 대해 이해와 용서를 조금씩 넓혀가게 되고 그 결과에 따라 성장하거나 혹은 책임지게 됩니다. 이 일관된 ..

원기옥 _ 지옥행 특급택시, D.C 해밀턴 감독

# 0. 그런 영화들이 있습니다. 다 덮어놓고 반전 한방 딱! 보고 미친 듯이 달려가는 영화들 말이죠. 주머니 사정을 가늠케 하는 지극히 단출한 세트와, 이를 가리면서도 최대한의 가성비를 뽑기 위한 다양한 광원과 화각의 화면 연출. 그리 비싼 개런티를 지불하지는 않았을 것만 같은 많아야 세명 안쪽의 주인공 라인업과, 이들의 개인기를 사골처럼 쥐어짜 표정연기와 대사를 쏟아내는 걸로 간신히 버티는 수다스러운 서사 진행. 2/3 지점에서 터지는 한방 반전과, 그 반전을 최대한 거창한 것으로 포장하기 위한 후반부의 호들갑까지. 이렇게만 말하면 혹평을 하는 것처럼 들리지만 사실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말씀드린 2/3 지점에서의 반전만 확실하다면 창의적인 아이템을 활용해 경제적으로 좋은 이야기를 만들어낸 수작이 ..

Film/SF & Fantasy 2020.02.25

천재감독이 빙의물을 만들면 _ 퍼스트맨, 데미안 샤젤 감독

# 1. 좋아하는 영화감독 있으신가요? 없으시다구요? 저런. 사람들과 이야기 하다 보면 가뭄에 콩 나듯 영화 얘기를 하게 될 때가 있는데요. 그럴 때 배우가 아니라 감독, 그것도 외국 감독 이름을 몇 개 얘기하면 아는 게 없어도 뭔가 있어 보일 수 있습니다. 이름 몇 개 붕권마냥 질러두고 이후엔 다 안다는 듯이 팔짱 끼고 고개만 끄떡이면 지식인의 완성이죠. 메모해 두세요. '존 도'라는 희대의 또라이를 만든 '데이빗 핀처'나 스칼렛 요한슨을 캐스팅해서 목소리만 뽑아 쓰고 버린 her의 '스파이크 존즈', 주드로, 메이슨 총리, 레아 세두, 볼드모트, 에드워드 노턴 같은 배우들을 불러다 단역으로 쓰면서 주연은 웬 처음 보는 과테말라계 미국 배우에게 맡긴 '웨스 앤더슨', 사람 못 죽여서 안달 난 '쿠엔틴 ..

Film/Drama 2019.10.03

너무 줄인걸까 -2- [버드 박스, 수사네 비르 감독]

이전글 : 너무 줄인걸까 -1- [버드 박스, 수사네 비르 감독] 공산품 캐릭터 자, 이제 아쉬운 점들을 이야기해 볼까요? 솔직히. 주인공 파티의 캐릭터 구성은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상투적입니다. 뭔가 '이야기'라는 걸 하라면 으레 갖추어야만 할 것 같은 캐릭터들이 기계적으로 군집해 있는 모양새랄까요. 만능에 가까운 잔다르크 주인공과 수다스럽고 정 많은 여동생, 건강하고 밝고 착하면서 희생정신으로 온데 무장한 스테레오 타입의 백마 탄 왕자님과 차분하고 이성적인 게이 집주인, 자기 자신과 자기 가족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백인 중년 마초, 조용하고 지혜로운 할머니와 회의적 허무주의에 빠진 약쟁이, 어설픈 여자 경찰 연수생에, 살찐 오덕 너드, 유약한 임산부까지. 딱히 작가의 애정이 느껴지지 않는 캐릭터들이 주..

Film/SF & Fantasy 2019.08.15

너무 줄인걸까 -1- [버드 박스, 수사네 비르 감독]

영화의 제목에서처럼 디스토피아 속 사람들 역시 케이지에 갇힌 새의 신세와 다르지 않습니다. 이해할 수 없고, 파훼할 수 없는 압도적 존재 앞에서의 무력감이 영화의 분위기를 육중하게 지배합니다. 극단적인 상황 하에 강제로 발가벗겨진 사람들의 본성과, 관계나 외로움과 같은 인성의 근원에 닿아 있는 관념들에 대한 고찰을 흥미롭게 제시합니다. 영화의 장르는 분명 공포, 서스펜스, 스릴러임에도 불구하고 진중하고 건조한 미스터리 소설과 같은 분위기가 기저에 흐르는 건 이런 철학적 주제의식과도 연관이 있는 거겠죠. 『진격의 거인』의 그것도 얼핏 연상됩니다만, 빌어먹을 쓰레기 극우 작가 놈 때문에 손절한 만화를 다시 떠올리고 싶지는 않으니, 최근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킹덤』을 연상하는 걸로 대신하도록 합시다. '수사..

Film/SF & Fantasy 2019.08.13

갑자기 분위기 기독교 _ 나의 마더, 그랜트 스퍼토어 감독

# 0. 신뢰는 연역적 결과인 걸까요 귀납적 결과물인 걸까요. 영화는 두 견해의 극단적이고 구체적인 충돌을 다룹니다. 믿음직스러운 행동을 하는 신뢰할 수 없는 존재와, 의심스러운 행동을 하는 신뢰할 수 있는 존재가 경쟁적으로 딸의 마음을 사기 위해 대립합니다. 각각을 대변하는 '마더'와 '여자'라는 강렬한 대척점에 사이에서 딸은 갈등합니다. '그랜트 스퍼토어' 감독, 『나의 마더 :: I am Mother』입니다. # 1. '마더'는 분명 딸을 헌신적으로 보살폈습니다. 동시에 프로그래밍에 의해 작동하는 로봇이기도 하죠. 마더가 딸을 지극정성으로 보살핀 것은 엄연한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여타의 인간과 같이 존재론적인 측면에서 자신의 딸을 지지하는 것은 아닙니다. 딸을 보살피는 행위는 여러 가지 목적으..

Film/SF & Fantasy 2019.07.06

꿀잼 ⅵ _ 애니메이션 앤솔로지 러브, 데스 + 로봇

꿀잼 ⅴ _ 애니메이션 앤솔로지 러브, 데스 + 로봇 꿀잼 ⅳ _ 애니메이션 앤솔로지 러브, 데스 + 로봇 꿀잼 ⅲ _ 애니메이션 앤솔로지 러브, 데스 + 로봇 꿀잼 ⅱ _ 애니메이션 앤솔로지 러브, 데스 + 로봇 꿀잼 ⅰ _ 애니메이션 앤솔로지 러브, 데스 + morgosound.tistory.com # 28. 아이스 에이지, 팀 밀러 감독 팀 밀러는 치사하게 실사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제작자라 땡깡이라도 부린 걸까요. 남들은 뼈 빠지게 그래픽 만들고 디테일을 다듬고 작화를 하는 동안 제작자 팀 밀러는 배우 '토퍼 그레이스'와 '메리 엘리자베스 윈스티드', 작은 집 한 채를 섭외하는 것으로 영화 한 편을 날로 먹는 데 성공합니다. 역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갑질이 이렇게나 무섭습니다. 성에가 두껍게 낀 ..

Series/Animation 2019.05.06

꿀잼 ⅴ _ 애니메이션 앤솔로지 러브, 데스 + 로봇

꿀잼 ⅳ _ 애니메이션 앤솔로지 러브, 데스 + 로봇 꿀잼 ⅲ _ 애니메이션 앤솔로지 러브, 데스 + 로봇 꿀잼 ⅱ _ 애니메이션 앤솔로지 러브, 데스 + 로봇 꿀잼 ⅰ _ 애니메이션 앤솔로지 러브, 데스 + 로봇 # 0. 모든 계획이 틀어졌습니다. 한 편만 보 morgosound.tistory.com # 23. 행운의 13, 제롬 첸 감독 행운의 13입니다. 등장하는 비행기의 별칭이죠. 그리고 이 작품 그 자체이기도 합니다. 앤솔로지의 13번째 작품인 이 단편을 본 사람들에게 이 영화는 행운이 되어줄 테니까요. 이전 단편과 달리 실사에 그래픽을 입혀 놓은 작품입니다.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익숙한 얼굴과 함께 주요 인물들의 모습과 배경의 경계가 묘하게 이질적이죠. 상당한 디테일의 그래픽으로 공중 교전 특..

Series/Animation 2019.05.02

꿀잼 ⅳ _ 애니메이션 앤솔로지 러브, 데스 + 로봇

꿀잼 ⅲ _ 애니메이션 앤솔로지 러브, 데스 + 로봇 꿀잼 ⅱ _ 애니메이션 앤솔로지 러브, 데스 + 로봇 꿀잼 ⅰ _ 애니메이션 앤솔로지 러브, 데스 + 로봇 # 0. 모든 계획이 틀어졌습니다. 한 편만 보고 자려고 했는데 정주행 하느라 밤을 새웠습니다. morgosound.tistory.com # 18. 늑대 인간, 가브리엘 펜나치올리 감독 신화적 아이템을 활용해 미국 사회에 깊게 뿌리내린 사회문제를 다룬 에피소드입니다. 감독은 탈레반과 교전 중인 미군에서 용병으로 뛰게 된 늑대 인간을 통해 차별이란 행위와 차별하고자 하는 인간의 욕구에 대해 다양한 질문을 건넵니다. 작품 속 늑대 인간들은 제대로 된 보호구는커녕 군화조차 지급받지 못합니다. 일상화되어버린 종과 관련된 직접적인 모욕을 늘 감내해야 하죠..

Series/Animation 2019.04.29

꿀잼 ⅲ _ 애니메이션 앤솔로지 러브, 데스 + 로봇

꿀잼 ⅱ _ 애니메이션 앤솔로지 러브, 데스 + 로봇 꿀잼 ⅰ _ 애니메이션 앤솔로지 러브, 데스 + 로봇 # 0. 모든 계획이 틀어졌습니다. 한 편만 보고 자려고 했는데 정주행 하느라 밤을 새웠습니다. 딱히 리뷰 할 생각이 없었지만 리뷰를 안 하곤 못 morgosound.tistory.com # 12. 독수리 자리 너머, 도미니크 보이든 감독 외 3인 와 정반대 되는, 현실적이고 디테일한 묘사가 돋보이는 실사 지향 애니메이션입니다. 화면의 디테일이 시작부터 기대감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합니다. 16분여 남짓에만 쓰이고 끝난다는 게 아쉬울 만큼 황홀한 우주 SF 묘사와 압도적인 코즈믹 호러풍 연출을 관객에게 선사합니다. 우주 항로 설정 오류로 인해 지구와 한참 떨어진 독수리자리 근처로 표류되어버린 '톰' ..

Series/Animation 2019.04.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