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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Horror

스포일러 _ 비바리움, 로르칸 피네간 감독

그냥_ 2022. 6. 20.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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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흥미로운 아이디어. 재치 있는 스토리. 감각적인 연출. 자해적 플롯.

 

 

 

 

 

 

 

 

로르칸 피네간 감독,

『비바리움 :: Vivarium』입니다.

 

 

 

 

 

# 1.

 

흥미로운 아이디어입니다. 뻐꾸기의 탁란(托卵, 어떤 새가 다른 종류의 새의 집에 알을 낳아 대신 품어 기르도록 하는 일)에 착안하는 것이죠. 인간을 기생종을 키우게 된 숙주의 상황으로 몰아넣어 보자는 상상은 썩 유쾌합니다. 본능 앞에 스스로 자연의 법칙 밖의 존재라 자만하던 인간의 무기력함을 냉소적으로 조망한다는 아이디어는, 존재론적 회의를 유도한다는 측면에서 호러물로서 충분히 시도해볼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죠.

 

재치 있는 스토리입니다. 보금자리를 찾던 두 주인공을 그 자체로 거대한 생태적 운명을 은유하는 마을 '욘더'에 묶어두는 방식은 기대보다 더 충실합니다. 톰과 젬마가 실행하는 선택들과 그런 선택과 연결된 정서적 변화 모두 풍부한 와중에, 우화로서의 가치를 지킬 수 있도록 작위적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게끔 적절히 통제하고 있기도 하죠.

 

 

 

 

 

 

# 2.

 

감각적인 연출은 영화의 최대 의의라 할 수 있을 겁니다.

 

자연주의적이고 논리적이며 미니멀리즘적이면서도 폐소적인 마을을 시각적으로 구현해 고유의 아이덴티티를 구축합니다. 하늘을 가득 메운 똑같은 모양의 구름이라거나, 살짝 문이 열린 9번 집은 부드러운 디자인과 무관하게 관객을 압도합니다. 관객을 오싹하게 만드는 데 과격함 없이 위화감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걸 증명하는 듯하죠.

 

설명할 수 없는 이유로 땅을 파는 톰.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양육하는 젬마. 유전정보의 지시에 저항하지 못하는 무력함은 단순하고 반복적인 형태로 강렬하게 표현됩니다. 한껏 불쾌하게 만드는 보이의 괴기한 목소리와 행동들, 본능과 불확실성을 중의적으로 은유하는 tv 화면과 붉은 책의 묘사, 육아를 강요하는 귀를 찢는 듯한 괴성 또한 인상적이죠.

 

1년도 채 지나지 않아 장성해 버린 보이를 연기하는 '이안나 하드윅케'의 압도적인 비주얼과, 네발로 성큼성큼 뛰어 보도블록 아래로 미끄러져 숨는 장면의 충격, 인과율을 넘어 지구적 원리를 목격하는 순간의 과격한 운동성과, 결말에 자신의 아이에 의해 짓이겨지는 늙은 마틴의 사운드 등도 흥미롭습니다. 일련의 호러적 연출과 대조되는 자동차 라이트 앞에서 춤추는 부부의 분위기와 젬마의 품에 안긴 톰의 최후의 서정성 등이 더해지면, 작품에 대한 호불호와 별개로 대부분의 장면들이 강렬하게 기억에 남을 만큼 뛰어난 전달력의 작품임은 부정할 수 없을 테죠.

 

 

 

 

 

 

# 3.

 

문제는 서술 방식에 있습니다.

세상에 이렇게 뻔한 영화가 또 있을까요.

 

뻐꾸기로 문을 연 것은 자해하는 것과 같습니다. 감독 스스로의 셀프 스포일러 이상도 이하도 아니죠. 대문짝만 한 뻐꾸기를 보여줘 각인시키는 것도 모자라 어린아이와의 대화를 통해 정확히 '탁란'에 대해 이야기하겠노라 콕 짚어 선언하기까지 합니다. 도입에서 전달받은 정보와, 연구용 인공 사육장을 뜻하는 비바리움이라는 제목이 어우러지는 순간, 이후의 전개란 탁란을 인간에 적용하기 위해 어떻게 변주할 것인가에 대한 누구도 바라지 않았던 친절하고 지루한 동어 반복으로 전락하고 맙니다.

 

장르가 작동하기 위해 묘사 이후에 들어가야 할 설명이 끊임없이 먼저 공개됩니다. 설명이 먼저 나오고 이후 디테일이 추가되는 방식이 런타임 내내 반복됩니다. 서사가 충분히 무르익은 후 이 모든 것이 탁란이었다 공개되었어야 할 작품임에도 시작부터 뻐꾸기를 보여줘 김을 빼고 있구요. 보이가 또 다른 마틴이었다는 반전이 최후에 공개되어야 파괴력이 있을 아이템임에도 어린 보이의 디자인을 마틴과 똑같은 흰 셔츠 2:8 가르마로 잡은 탓에 관객 누구나 진즉 감을 잡고 말았죠. 보이가 또 다른 마틴이라는 걸 알고 있다 보니 내지르는 괴성이나 어른의 목소리, 따라 하기 등 모두 이해할 수 없는 괴기한 행동이 아니라 탁란 되어 숙주를 따라 하며 학습하는 새끼 뻐꾸기에 대한 지루한 디테일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 4.

 

탁란이라는 생태적 테마를 인지한 순간 자연스럽게 이 모든 것이 생식의 굴레 안에 있는 반복적 사슬의 일부라는 것을 추론하게 됩니다. 말인즉 ⑴ 부부는 절대 마을을 탈출하지 못한 채 아이한테 쪽쪽 빨리다가 죽을 것이구요. ⑵ 탁란이니까 당연히 보이가 등장한 이후부터 부부의 아이는 존재할 수 없는 거겠죠. ⑶ 종 특성에 대한 아이템이기에 비단 톰과 젬마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많이 있었어야 할 테구요. ⑷ 장성한 보이는 마틴을 대체하게 될 것이며 ⑸ 그렇게 마틴을 대체하게 된 보이에게 새로운 톰과 젬마들이 낚여 들어올 것이라는 것까지 영화 시작 5분 만에 모조리 예측하게 됩니다.

 

여기서의 예측이라는 것은 장르의 클리셰에 훈련된 마니아층에 국한된 예측이 아닙니다. 최소한의 논리력에 따른 보편의 예측이라는 점에서 더욱 치명적이죠. 제목에서 한방. 뻐꾸기 부화에서 한방. 어린 학생과의 대화에서 한방. 고유의 세계관을 제시하는 것에 기반하는 영화가 시작부터 스포일러를 세 방 먹이고 들어가면 성공할 도리가 없음이 당연합니다.

 

 

 

 

 

 

# 5.

 

사실 자신만만하게 비바리움이라는 제목을 붙일 만큼 다양한 관점에서 유희할 수 있을 법한 풍부함이 녹아있는 시나리오이긴 합니다. 인간의 생애를 축약하고 관찰자 시점에서 조망한다는 측면에서 덩컨 존스 감독의 <더 문>과 유사한 류로 읽을 수도 있었을 테구요. 무수히 뻗어나가는 모듈러 하우스와 욘더의 비즈니스 모델 따위를 근거로 현대 자본주의에서 부동산이 차지하는 비중에 천착해 왜곡되어버린 삶과 가족의 의미에 대해 읽을 수도 있었을 겁니다. 자본에 의해 점점 획일화, 패턴화 되어가는 개인과 이를 가속시키는 사회 시스템에 대한 비판처럼 보이는 면도 있구요. 내내 고립되고 해체되는 관계에 집중해 현대인의 심리적 위태로움을 주시할 수도 있었을 테죠.

 

문제는 장르 영화에서 장르가 망하게 되면 이후 논점들도 함께 휘발되고 만다는 점입니다. 탁란이네? 가 되어버린 순간 그 이상을 요구하기가 쉽지 않아 진다는 것이죠. 안타깝네요.

 

 

 

 

 

 

# 6.

 

집 소개하던 마틴이 스쳐 지나듯 부자연스럽게 젬마의 말을 따라 하는 컷이 있는데요. 그 정도 떡밥이면 충~분했을 겁니다. 개 울음소리를 내며 오열하는 젬마의 모습이라거나, 나는 너의 엄마가 아니다 반복하는 대사, released라는 단어를 활용한 소소한 언어유희. 주제의식에 대한 전달 역시 그 정도면 충~분했을 겁니다.

 

그 외 나머지 모조리 잘라낸 후 결말에 옮겨 붙이는 수준의 간단한 플롯 조정만 했어도 영화에 대한 평가가 배는 좋아졌을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때론 본질적인 이야기보다 이야기를 구술하는 형식과 구조가 더 중요할 수도 있음을 역설적인 형태로 실천하는 작품이라 할 수 있겠네요. 로르칸 피네간 감독, <비바리움>이었습니다.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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