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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SF & Fantasy

외롭고 버거운 별들의 맞잡은 손 _ 애드 아스트라, 제임스 그레이 감독

그냥_ 2022. 10. 12.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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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남을 따라서 살 일이 아니다

네 가슴에 별 하나

숨기고 살아라

끝내 그 별 놓치지 마라

네가 별이 되어라

 

- 너는 별이다. 나태주 -

 

 

 

 

 

 

 

 

제임스 그레이 감독,

『애드 아스트라 :: Ad Astra』입니다.

 

 

 

 

 

# 1.

 

우주 SF입니다. 문제적 감독 제임스 그레이가 메가폰을 잡았습니다. 갈수록 멋있어지는 브래드 피트가 주연 '로이 맥브라이드'를 연기하구요, 맨 인 블랙의 K로 익숙하실 토미 리 존스가 로이의 아버지 '클리포드 맥브라이드'를 맡았습니다.

 

지적 생명체 탐사 프로젝트 '리마'를 이끌던 클리포드는 오래전 실종되었다 합니다. 그를 영웅으로 여긴 아들은 아버지를 따라 우주 비행사로 성장하게 되죠. 그러던 어느 날 해왕성 방면으로부터 전류 급증 현상이 초래되어 지구가 위험에 노출됩니다. 사태에 리마 프로젝트가 연관되어 있다 판단한 군은 로이에게 수습을 지시하구요. 로이는 달과 화성을 거쳐 결국 해왕성까지 나아가게 되죠. 그 과정에서 리마 프로젝트의 숨겨진 진실과 영웅이라 믿었던 아버지의 실체를 목도하며 겪는 갈등을 풀어낸 작품입니다.

 

이렇게만 들으면 먼치킨 우주 히어로가 아버지의 위업을 물려받아 미션을 달성하는 SF 어드벤처처럼 들리실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하지만 영화 <애드 아스트라>에서 우주 SF는 그저 환경에 불과합니다. 대부분의 그림들은 (일부의 장르적 효과를 제외하면) 로이의 내면을 시각적으로 투사한 이미지로서 소화되고 있죠. 작품은 브래드 피트의 나지막한 내레이션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데요. 인물의 내면이 변화해 가는 과정을 차분하게 추적하는 심리극의 방식으로 즐기는 것이 보다 자연스러울 작품이라는 생각입니다.

 

 

 

 

 

 

# 2.

 

감독은 로이를 흔들리는 얼굴평온하다는 대사의 대비로 소개합니다. <녹터널 애니멀스>의 오프닝처럼 내외면이 괴리된 인격을 표현하는 정석적인 방법 중 하나라 할 수 있겠죠. 텅 빈 우주로 나 있는 출구를 향해 걷는 동안 주변 동료들을 불편해하는 대목이라거나, 누가 보더라도 위태로운 우주 공간의 사다리에 매달려 편안하다 말하는 장면, 차갑게 침전하는 침실의 디자인과 얼굴 깊게 드리우는 그림자, 런타임 대부분을 우주복을 입고 있는 모습 따위는 '로이'라는 인물은 맹목적인 출구를 향해 건조하게 또 고독하게 걸어가고 있으며 내면에 깊은 모순을 숨겨 두고 있음을 반복적으로 은유합니다.

 

로이는 아내 '이브'가 자신에게 '자기 파괴적인 면'이 있다 말한 것을 상기합니다. 미션을 앞두고 '귀 기울여야 할 때 말했고, 다정해야 할 때 가혹했다' 고백하지만 차마 메시지를 보내지 못합니다. 이브와의 갈등은 가족과의 관계적 갈등이라기보다는 스스로 만들어낸 자기 파괴적 행위의 결과이지만, 로이는 이를 인정하지 못하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역설적으로 영화의 서사란 로이가 자기 파괴적인 이전의 삶을 깨닫고 차마 전하지 못했던 메시지를 이브에게 전달하는 과정이 될 것임을 암시한다고도 볼 수 있겠죠. 오프닝과 달리 평온한 표정으로 커피를 마시는 로이에게 이브가 돌아오는 모습으로 막을 내리는 것은 그런 이유에서 합리적이고 자연스럽다 할 수 있을 겁니다. 어떤 면에선 성장 영화라 말씀드릴 수도 있겠군요.

 

 

 

 

 

 

# 3.

 

로이의 성장이라는 본격적인 이야기에 앞서 짚어야 할 중요한 코드가 있다면 역시나 [심리 진단] 일 겁니다. 감정이 통제 가능한 상태에 있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는 것을 넘어, 검사하고 점검하고 감시하고 관리하는 SF적 세계관이죠.

 

심리 진단 장치를 목덜미에 붙이는 형식으로 표현한 것은 특히 흥미롭습니다. 유사한 설정의 장치들은 대체로 머리에 쓰거나 관자놀이에 붙이는 식으로 묘사되는 것을 생각하면 확실히 이질적이죠. 경동맥이 흐르는 목덜미에 붙이게 함으로써 일련의 검사 장치, 보다 정확히는 검사 장치가 상징하는 논리와 함의에 사람의 목숨줄을 쥐고 있는 듯한 이미지를 부여합니다. 노골적이지 않으면서도 비인간적인 듯한 불쾌감을 함께 전달하는 건 덤이죠. 로이가 사는 방식이란 스스로의 손으로 자신의 목덜미에 감시 기계를 붙이는 것. 심리 진단에 따라 내면을 감추고 출구를 향해 내달리는 삶은 앞서 이브가 말하는 자기 파괴의 보다 구체적 의미라 할 수 있습니다.

 

# 4.

 

기술은 어디까지나 사회를 비춰낸 그림자에 불과합니다. 심리 진단은 세계의 일부일 뿐이죠. 작중 사회적 관계 역시 대부분 감시와 취조와 평가로 귀결됩니다. 로이를 비롯한 모든 인물들은 기능과 성능으로 평가되고, 직급과 허가와 권한으로 행동합니다. 흡음실 장면엥서 지친 로이가 진솔한 이야기를 꺼내자 프로젝트에서 배제되어 버리는 것은 노골적이죠. 주인공이 '정서적으로 도약하는 순간들'은 모두 '허가와 권한을 넘어서는 순간들'과 연결되어 있다는 점에서 작중 심리 진단이 차지하는 비중은 작지 않다 할 수 있습니다.

 

SOS 신호에 따라 우주선 베스타를 탐사하다 유인원을 만나는 장면이 있습니다. 남겨진 유인원의 분노는 고립된 존재의 본능적 분노로 정의됩니다. 로이는 그 분노에 공감한다 말하죠.

 

'두고 가는 누군가에 대한 남겨진 자의 분노. 분노를 걷어내면 상처와 고통뿐이다. 그래서 세상과 담을 쌓았다.'는 고백은 인물을 이해하는 데 있어 중요한 단서라 할 수 있을 겁니다. 곧 죽어도 상관없다는 듯한 로이의 건조한 태도 아래에는 남겨진 자의 분노가 두텁게 깔려 있다는 암시일 테니까요. 건조한 삶을 이어갈 수 있었던 것은 영웅적 아버지의 삶이라는 허구적 출구가 있었기 때문이죠.

 

 

 

 

 

 

# 5.

 

로이는 그 자체로 하나의 로켓과 같다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해왕성이라는 종착점을 향해 뻗어나가는 동안 연료를 다 태워 불필요해진 모듈을 하나씩 하나씩 떨어트리는 서사라고 말이죠.

 

달은 로이라는 로켓의 발사대입니다. 로이가 받아들이는 지구의 의미를 구체화하기 위한 완충적 공간이죠. 로버를 타고 벌이는 카체이싱의 의의는 담당 중위의 죽음이라 할 수 있을 텐데요. 지구에서의 커리어에 관한 대화라거나 로버에 남겨진 가족사진 따위를 생각하면 중위는 곧 로이가 거부하고 떠나고자 했던 지구인을 상징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중위가 죽은 후 시신을 매몰차게 내버리는 장면은, 로이에게 있어 지구인들이 어떤 의미인지를 간결하게 설명합니다. 죽은 지구인의 시체를 뒤로하고 달에서 화성으로 나아가는 연료는 아버지의 영웅적 행보를 따라가겠다는 막연한 목표의식이죠.

 

화성 기지에서 사건의 실체를 알게 되는 순간은 [아버지]라는 연료를 모두 태운 후 첫 번째 모듈을 떨어트리는 지점입니다. 기지 관리소장의 도움에 힘입어 건조한 모습 아래 숨겨두고 있던 분노가 표출되는 최초의 순간이죠. 몰래 세피우스에 탑승하는 동안 물을 거슬러 나오는 장면은 정신적 각성을, 로켓에서 분출되는 화염은 평생을 억눌러온 분노의 에너지가 소진되는 이미지로 연결됩니다.

 

처음 세피우스를 오르던 로이가 평화롭고 자유로운 우주 비행사들의 모습에 편안해하는 장면이 있는데요. 여기서의 우주비행사들의 모습은 '로이가 평생 믿고 있던 아버지와 리마 프로젝트 대원들의 이미지'라 할 수 있습니다. 화성을 거쳐 다시 타는 세피우스는 아버지의 실체를 알게 된 이후이기 때문에 세피우스의 대원들은 로이에게 살해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죠. 뜻하지 않은 폭력의 끝은 [분노]라는 연료를 모두 태운 후 두 번째 모듈을 떨어트리는 지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 6.

 

혼자 있는 게 좋다던 로이는 홀로 남은 고통에 몸부림칩니다. 79일에 걸친 인고의 시간은 세 번째 모듈 속 [고통]의 연료를 태우는 과정입니다. 이전과 달리 긴 시간이 걸린 것은 분노는 폭발적이지만 고통은 천천히 새어나가기 때문입니다. 마침내 리마에 도착한 로이는 아버지 클리포드를 만나게 되는데요. 앞을 잘 보지 못하는 클리포드는 아들에게 아내와 가족, 집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는 잔인한 말을 합니다. 상처인 것이죠. 평생의 이유였던 아버지의 냉혹한 말을 듣고도 그럼에도 사랑한다 말하는 로이는 [상처]의 연료까지 모조리 태우며 마지막 모듈을 떨어트립니다.

 

출구도 분노도 고통도 상처도 모든 것들 떼어낸 로이는 존재의 시작을 의미하는 혈연이라는 연약한 끈에 의지한 채 텅 빈 우주를 떠돌게 되지만, 결국 아버지까지 우주로 떠나보내고 나면 드넓은 우주에 오롯이 고립됩니다. 그 순간 로이의 머리 위로 거대한 해왕성이 지나는 구도가 연출되는데요. 삶은 홀로 텅 빈 우주를 떠돌듯 외로운 것이고, 그러한 삶의 무게란 화면을 뒤덮은 해왕성만큼이나 버겁다는 것을 깨달은 로이는 다시금 지구로 추락합니다.

 

'우주의 끝에서 날아온 강렬한 빛에 의해 지구로 추락하는 로이'의 오프닝은 장대한 서사로 다시금 반복됩니다. 두 번의 추락 모두 대원들이 구하러 다가오지만, 두 번째만큼은 가까이 다가온 대원들의 손이 큼지막하게 조명된다는 점에서 차별됩니다. 일련의 여정이란 아버지를 찾는 것이 아닌 '내미는 손의 의미'를 깨닫는 과정이라 할 수 있는 것이죠. 우주를 떠도는 외롭고 버거운 별과 같은 인생들이 서로의 손을 발견하는 이야기입니다. 영화는 회고적인 내용의 담담한 독백으로 마무리되는데요. 다소 장황할 수도 있을 이야기를 설득할 수 있었던 것은 로이의 여정이 물리적으로도 또 정신적으로도 그만큼 치열했기 때문일 테죠.

 

 

 

 

 

 

# 7.

 

"아버지는 멀고 낯선 세계를 누구보다 섬세하게 기록했다. 그 세계는 아름답고 장엄했다. 경이롭고 신비로웠지. 하지만 그 멋진 겉모습 속엔 아무것도 없었다. 사랑도 미움도 빛도 어둠도 그는 없는 것만 찾았고, 눈앞에 있는 건 보지 못했다."

 

여담으로 클리포드에 대한 이야기를 짧게 해 볼까요. 리마 프로젝트는 지적 생명체가 사는 별을 찾는 프로젝트인데요. 영화 속 유일하게 등장하는 지적 생명체가 사는 별은 다름 아닌 '지구'죠. 스스로 지적 생명체를 찾고 싶다 말하던 클리포드가 지적 생명체로 가득한 지구로는 돌아가지 않겠다 말하는 아이러니입니다. 그는 자신의 집은 리마라 답하죠.

 

클리포드는 지적 생명체 탐구라는 가치를 향해 살아온 사람이 아니라 지적 생명체를 찾는 인생이라는 출구를 향해 맹목적으로 내달렸을 뿐입니다. 도입에서 주변 사람들을 귀찮아하며 우주로 통하는 출구를 향해 걷던 로이와 본질적으로 동일한 것이죠. 허구적 목표에 길을 잃고 말았음은 백내장에 의해 눈이 멀었다는 은유로 연결됩니다. 클리포드는 로이의 출구이기도 하지만 허구적 목표에 매몰된 삶의 끝에 다다른 또 다른 로이라는 중의적 존재이기도 합니다. 맥브라이드라는 이름을 공유하는, 이전의 삶을 관성적으로 살아낸 평행 세계의 로이인 것이죠.

 

# 8.

 

제목 <애드 아스트라>에서 Ad는 향해서, Astra는 별을 뜻하는 라틴어 Astro의 복수형이라고 합니다. <별들을 향해서> 쯤 될 텐데요. 영화에는 무수히 많은 별들이 보이지만 누구도 어떤 별에도 도달하지 못합니다. 애초에 주인공의 목적지가 별인 것도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감독은 자신의 이야기에 별을 향해서라 이름 붙입니다.

 

지적 생명체라는 허구적 목표를 찾느라 자신과 함께 하던 별들을 살해한 아버지. 아버지라는 허구적 목표를 쫓느라 별들에 소홀했던 아들입니다. 우주를 가득 메운 별들은 앤딩의 카페를 가득 메운 사람들로 연결됩니다. 로이의 별은 그를 걱정하던 이브와 손을 내미는 모든 사람들입니다. 물론 로이도, 우리도 모두가 별입니다. 우주처럼 공허하고 해왕성처럼 버거운 삶을 사는 외로운 별 말이죠. 제임스 그레이 감독, <애드 아스트라>였습니다.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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