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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SF & Fantasy

넓게 잡고 얕게 판다 _ 보이저스, 닐 버거 감독

그냥_ 2022. 12. 16.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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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이렇게 얕을 거라면 왜 우주까지 끌고 가서 그 난리를 피운 거지?

 

 

 

 

 

 

 

 

닐 버거 감독,

『보이저스 :: Voyagers』입니다.

 

 

 

 

 

# 1.

 

이제는 조금 식상하기까지 한 우주 배경의 사고 실험물입니다. 인간 군상을 집어넣은 가상의 실험실을 만든 후 계를 분리시키기 위해 냅다 우주로 던져버리는 식이죠. 인터스텔라 같은 유명 작품뿐 아니라, 얼마 전 창세기를 거꾸로 뒤집어 놓은 것 같다 말씀드린 바 있는 하이라이프 같은 영화들도 비슷한 접근법을 공유하는 작품이었더랬습니다. 언제나처럼 인류의 미래를 짊어진 최후의 희망. 뭐, 고런 식으로다가 적당히 당위를 만드는 과정에서 고증 오류가 듬성듬성 발견되기도 합니다만, 역시나 그런 오류에 집중하는 것은 썩 무의미합니다. 애초에 감독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건 어드벤처가 아니기 때문이죠.

 

 

상하 좌우 반전 _ 하이 라이프, 클레어 드니 감독

# 0. 우주 SF입니다. 디테일한 미술과 세심한 설정과 쫀쫀한 서사로 빚어낸 환상의 공간을 여행하는 아이 씐나! 어드벤처 물이거나, 철학적이거나 제의적이거나 관념적인 코드들로 이리저리 엮어

morgosound.tistory.com

 

# 2.

 

영화를 보신 분들이라면 아무래도 <창세기>와 <파리대왕>이 떠오를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리처드가 모든 아이들의 아버지와 같은 존재라거나, 일관되게 희생적이면서 자애적인 면모를 보인다거나, 세계(탐사선) 속 진실을 독점하고 통제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다거나, 자신의 음성을 기록의 방식으로 남겨두고 있다거나 하는 대목들은 종교적 존재에 대한 은유일 것이라 추측하기에 충분합니다. 그런 리처드에 대해 의심하고 질투하다 끝내 살해하기에 이르는 아들들이라는 전개까지 이어지고 나면 기독교적 해석 외엔 다른 판단을 불가능하게끔 하죠. 선악과를 뒤집어 놓은 듯한 '블루'라는 약물을 통해 평화롭고 순수하던 존재들이 금기를 어기며 욕망에 눈 뜨게 된다는 설정은 특히 노골적이구요.

 

중반부 지나 우주선 모듈을 수리하던 리처드가 예기치 못한 사고로 인해 목숨을 잃고 만 상황. 신의 통제력이 사라진 상황에서 아이들(인간)의 억눌린 본성이 다각적으로 발현됩니다. 폭력과 질투와 과시와 욕망과 지배와 음모 따위의 이기심을 발견하게 되는 아이들의 변화가 작품의 후반부를 이끌고 있다 보니 역시나 파리대왕이 떠오를 수밖에 없으셨을 테죠.

 

 

 

 

 

 

# 3.

 

'창세기를 가져왔다.', '파리대왕을 우주 환경으로 치환했다.'

만 있다면 시시합니다. 그다음 단계의 왜? 가 있어야 하죠.

 

결국 영화가 주목하고 있는 바는 인간 본성에 대한 다양한 질문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구태여 휴매니타스 호의 아이들을 처음부터 지구의 영향에서 원천적으로 분리한 이유랄까요. 성장 배경에 영향을 받지 않는 통제된 조건을 제시한 후, 다양한 스펙트럼의 인간들 내면엔 어떤 본성들이 내재되어 있는가. 그 본성은 어떤 기작을 통해 어떤 식으로 어떤 것들이 선별적으로 발현될 수 있는가. 각자의 이기심에 따른 이기적 선택들이 만드는 정치적 행위들과, 정치적 목적을 관철하기 위한 폭력을 불사하는 갈등의 전개 따위에 몰입하는 데 최적화된 환경이라는 것이죠. 하지만...

 

안타깝게도 영화는 먹음직스러운 질문들을 앞에 두고 끝내 주변 언저리를 배회하다 길을 잃고 마는데요. 원인은 아이템의 크기에 비해 감독의 통제력이 한계를 드러냈기 때문이라는 생각입니다. 창세기와 파리대왕이라는 거대한 판 위로 서른 명씩이나 되는 캐릭터를 뿌려둔 데 반해, 이를 제각기 통제할 자신이 없어서 질문들로부터 도망 다니느라 생긴 사단이라고 보는 것이죠.

 

 

 

 

 

 

# 4.

 

주요 인물 중 자신의 의지를 가진 것으로 묘사되는 인물은 대여섯 남짓뿐입니다. 그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캐릭터들은 선택받은 몇몇의 지도자에 합류했다 이탈했다를 반복하며 세를 과시하는 도구로 전락할 뿐이죠. 최대한 다양한 인종, 다양한 성향의 사람들을 모아놓았음에도 인간의 보편성이 공생과 공멸의 갈림길에서 어떤 길을 선택할 것인가를 탐구하는 것이 아니라, 특별히 악한 개인(잭, 카이)과 특별히 선한 개인(크리스토퍼, 셀라)의 대립이라는 평면적인 갈등으로 대신하다 보니 작품이 전반적으로 유치하게 느껴지고 말았습니다.

 

하다 못해 잭과 크리스토퍼와 셀라라는 세 주인공에게 충분한 디테일이라도 있었다면 구도를 단순화하기 위함이라 이해할 수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블루를 끊음으로 인해 세 인격이 분화되는 과정과 분화된 인간상의 입체성에 대한 디테일이 충실했더라면 이후 외계인이라는 가상의 위험이 정치적 - 종교적 권력으로 확장되는 과정에서 흥미를 주었을지도 모르죠. 하지만 영화 속 캐릭터 구도가 워낙 평면적인 탓에 후반부 갈등은 모두 유치한 힘겨루기로 전락합니다. 불쌍해 보일 정도로 수많은 악행을 홀로 짊어지게 된 잭의 카리스마 역시 설득된 카리스마가 아닌 만들어진 카리스마에 불과하다는 점도 작품을 중2병 아이들의 유치 찬란 듀얼처럼 보이게 만드는 데 크게 기여합니다.

 

선동하는 소수의 주연과 휩쓸리는 다수의 엑스트라라는 인물 구도는 군중에 대한 비하처럼 보이는 감도 있습니다. 엘리트들의 수준 낮은 선동에도 이리저리 휩쓸리는 우매한 대중들에 대한 조롱을 지나, 이들의 폭주를 막기 위한 대안으로써 인간성의 고찰 대신 승리를 쟁취한 우월한 엘리트가 올바른 규율을 정해 대중을 지도해야 한다는 결말에 도달하고 나면 대체 감독은 영화를 통해 무엇을 주목하고 싶었던 걸까라는 회의감마저 느껴지고 말죠.

 

 

 

 

 

 

# 5.

 

철학적 토양 위로 드라마의 씨앗을 뿌렸지만 영화는 어느 순간부터 리처드의 죽음과 에일리언이라는 미스터리와, 총 빵야빵야 쏘는 액션 스릴러, 크리스토퍼와 셀라의 달콤 로맨스라는 샛길로 달아납니다. 아이템이 가지는 잠재적 질문들은 모조리 회피한 채 총과 날붙이들의 물리적 긴장감으로 도망 다니다 끝내 권선징악 미사일 드롭킥이라는 결말에 다다릅니다. 그런 상황에서 뻔뻔스럽게 다시 드라마로 돌아와 어쨌든 다 살았으니 됐잖아요. 인간은 위대해요. 파이팅! 이라는 메시지를 결말이랍시고 내던지는 모양새라 무례합니다. 그러니까 감독은 평화를 위해 나쁜 애들이 보이면 드롭킥을 날려 배제시켜 버려라. 라는 말을 하고 싶었다는 걸까요.

 

"자기가 원해서 태어난 사람은 없어. 그래도 삶의 방식은 자기가 정해야지" 라는 둥의 자유의지를 암시하는 듯한 거창한 대사에도 불구하고 전개에서 선택이라는 것이 아무런 가치를 점유하지 못한다는 것 역시 황당합니다. 부차적이긴 합니다만 모집단의 다양성을 과시하기 위해 다양한 배우를 모아 놓고 정작 리더십 그룹인 리처드, 크리스토퍼, 셀라, 잭은 모두 스테레오 타입의 백인인 것도 솔직히 치졸하죠.

 

 

 

 

 

 

# 6.

 

그래도 장점을 꼽으라 한다면 크리스토퍼 역의 '타이 쉐리던'의 연기는 긍정적입니다. 우주선 내부의 디자인도 미술적 성취뿐 아니라 내러티브와 연동된 미학적 성취를 겸비하고 있구요. 블루를 끊고 각성한 아이들이 느끼는 감정 변화의 폭발력을 적절한 시점 쇼트와 속도감으로 치환하겠다는 아이디어도 칭찬할만합니다만, 그 정도의 기교로 수습되기엔 이야기의 완성도가 너무 연약합니다.

 

[새로운 미래로 나아가야 할 인간 본성에 대한 실험적 통찰] 씩이나 되는 거창한 판을 깔았다면 그에 걸맞은 깊이를 마련했어야 합니다. 터는 넓게 잡고 깊이는 얕아 버리니까 역으로 이렇게 얕을 거라면 왜 우주까지 끌고 가서 그 난리를 피운 거야? 라는 비아냥 앞에 초라한 작품이 되고 말았군요. 별들로 가득한 우주와 새로운 행성의 눈뽕 위로 적당한 고전 레퍼런스의 향기를 풍기는 것만으로도 먹어주던 시절은 수십 년 전에 끝났다는 걸 다시금 확인하게 했다는 것이 영화의 최대 의의라는 생각입니다. 닐 버거 감독, <보이저스>였습니다.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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