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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SF & Fantasy

너무 줄인걸까 -2- [버드 박스, 수사네 비르 감독]

그냥_ 2019. 8. 15. 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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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품 캐릭터


자, 이제 아쉬운 점들을 이야기해 볼까요? 솔직히. 주인공 파티의 캐릭터 구성은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상투적입니다. 뭔가 '이야기'라는 걸 하라면 으레 갖추어야만 할 것 같은 캐릭터들이 기계적으로 군집해 있는 모양새랄까요. 만능에 가까운 잔다르크 주인공과 수다스럽고 정 많은 여동생, 건강하고 밝고 착하면서 희생정신으로 온데 무장한 스테레오 타입의 백마 탄 왕자님과 차분하고 이성적인 게이 집주인, 자기 자신과 자기 가족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백인 중년 마초, 조용하고 지혜로운 할머니와 회의적 허무주의에 빠진 약쟁이, 어설픈 여자 경찰 연수생에, 살찐 오덕 너드, 유약한 임산부까지. 딱히 작가의 애정이 느껴지지 않는 캐릭터들이 주섬주섬 모여 있습니다.


이 인물들은 주인공인 '멜러리'와의 심리적 거리라는 절대적인 기준을 바탕으로 한 명 한 명씩 번호표 뽑듯 리타이어 하는 데, 그 방식 역시 특별할 것 없는 클리셰들에 의존하고 있군요. 인물들 각각의 배경을 매우 긴 호흡으로 진득하게 하나하나 소개할 수 있는 장편소설이라면 이런 식의 구성을 이해할 수 있을지 몰라도, 2시간 안에 치고 빠져야 하는 영화에서 이런 전개는 무책임하고 무신경해 보이는 건 어쩔 수 없습니다. 만, 앞서 말씀드린 대로 이런 캐릭터 쇼의 드라마적 식상함은 급류씬이 메우고 있기는 합니다.











이해할 수 없는 '그것'


영화 중반부 차량을 흔드는 장면과 결말부 환청이 들리는 장면. 솔직히. 이건 아닙니다. 이건 설정에서 벗어나 있다고 봐야죠. 일관성 있는 설정은 이야기에 대한 몰입감의 토대입니다. 장르를 막론하고, 가상의 세계관을 제시하는 작품들이 원 작품의 볼륨에 몇 배나 상회하는 설정집을 만드는 건, 그런 디테일하면서 동시에 일관성 있는 설정이 작품이 존립하는 근거가 되기 때문이죠.


영화 『버드 박스』에서의 초월적 존재는 압도적인 위력을 얻는 대가를 몇몇 페널티로 상쇄하는 존재입니다. 사람들의 눈을 가리게 만드는 이유와, 세이프티 존의 설득력과, 물리력을 행사할 수 있는 추종적 정신이상자들의 존재, 모두 '그것'이 '직접적인 행동은 할 수 없다'라는 페널티 위에서 설득됩니다. 그런데 냅다 차를 흔들어 재끼고 환청을 들려줘 버리면 어떡하자는 건가요. 당장 그럼 5년 전에 베이스캠프에서는 왜 환청을 안 들려준 건가요? 집 밖에서 소리만 들려주는 건 안 되는 건가요? 사람이 가득 찬 차량도 가볍게 흔들어 재끼는 놈들이 그냥 안대만 슬쩍 내리면 안 될 이유가 있나요? 차를 밀듯이 사람들을 밀어 넘어트리면 안 되나요? 집 유리창을 부수는 건 왜 못하는 건가요? 네. 뭔가 설명이 꼬이죠. 설정이 일관되지 않으면 의문이 생기고 의문은 곧 이야기에 집중하지 못하게 만드는 잡생각으로 이어집니다. 


저의 경우엔 '혹시 주인공이 이미 초월자를 봤던 건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면 환청이 설명이 되니까요. 이미 초월자를 봤지만, 여타의 정신이상자들처럼 '멜러리' 역시 자살충동을 받지 않는 정신이상자가 아닐까. 영화 초반, 작업실에서 여동생과 함께 본 기괴한 그림과 집에 잠입한 정신이상자 '게리'의 섬뜩한 그림이 그 접점이 아녔을까. 아이들을 '보이', '걸'로 부를 만큼 관계를 극심하게 터부시 하는 특성이 독특한 정신이상의 일환인 건 아닐까. 일반인들과 정신이상자들의 중간 어딘가에 놓인 '멜러리'의 특별함이 영화의 결말을 이끌 동력이지 않을까.라고 말이죠. 하지만 영화를 보신 분들은 다들 아시는 데로 이건 어디까지나 제 뇌피셜에 불과했고, 딱 이런 뇌피셜을 머릿속에서 굴리는 만큼 전 영화를 집중하지 못한 셈이 되었습니다.











뭐 먹고 살건데?


엔딩에 대한 관객들의 뒷 이야기가 있는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확실히 엔딩은 서사만 못합니다. 어쨌든 결국엔 "시각장애인 학교라 사람들이 '그것'을 볼 방법이 없으니 살아남을 수 있었다." 라는 건데요. 눈을 뜨고 있지만 관계를 올바르게 '보지' 못하는 사람들과, 비록 앞을 볼 수는 없지만 관계를 올바르게 '보는' 사람들 간의 극적인 대조를 통해 윤리적 주제의식을 강화하겠다, 뭐 이런 거 같네요. 디스토피아를 극복하는 근거라는 것이 결국 공동체, 책임감, 미래, 아이들이라는 게 지루하다는 건 차치하고서라도 이건 사실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생각해보면 이 영화를 끌고 가는 동력은 '물자'입니다. 베이스캠프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마트를 향한 것도, 그 과정에서 '찰리'가 죽어나간 것도, '펠릭스'와 '루시'가 차량을 훔쳐 달아난 것도, 외부인의 잠입으로 인해 인물들이 갈등하게 되는 계기도, 결국 정신이상자 '게리'를 들이며 베이스캠프가 풍비박산 나는 것도, 5년 동안 '톰'을 잃을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빈집을 털어야 했던 이유도, 홀로 남은 '멜러리'가 도저히 불가능할 것만 같던 위험천만한 급류 위에 아이들을 실어야 했던 이유 모두, 새로운 '물자'를 확보하기 위해서 아녔던가요?


상식적으로 시각장애인 학교면 사람들이 자생할 수 있을 만큼의 물자를 '생산'할 수 있을 리가 없습니다. 어른들도 제 앞가림하기 버거워 보이는 상황에서 앞도 못 보는 그 많은 아이들이 무슨 수로 자기 밥벌이를 한다는 건가요. 그렇다면 결국 장애인학교 또한 유사시를 대비해 축적한 유한한 자원을 소비하며 버티는 공간일 수밖에 없다는 건데, 이건 설득력 있는 해결책이 아닙니다. 영화의 엔딩이 이렇게 끝나버리면 결국 주인공의 개고생에는 아무런 목적성이나 탈출구가 없는 셈이죠. 주인공의 역경이 오늘 죽느냐, 내일 죽느냐 사이에 놓인 시간 벌기에 불과하다면 관객은 무엇을 위해 긴장감을 느낀 것인가라는 회의감이 들게 됩니다. 이쁜 새 몇 마리 파닥거리며 날린다고 퉁치고 넘어갈 문제가 아니란 거죠.




영화를 보며 "흥미로운 소설을 영화화하는 가운데 분량 다이어트를 하려다 보니 구멍이 숭숭 뚫린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러시아에서 알래스카를 타고 북미로 '그것'이 넘어오는 과정에서 더 많은 이야기가 있었을 것 같은데? 주인공 파티 각각의 인물들에 숨은 이야기가 훨씬 풍부하게 있었을 것만 같은데? 정신이상자들과 '그것' 간의 상관관계에 대한 이야기가 훨씬 더 많이 숨어있을 것만 같은 데? 숲 속 한가운데 덩그러니 놓인 시각 장애인 학교의 존재에 숨은 비밀이 있지 않았을까? 그리고 하필 그곳까지 흘러들어온 의사 '라팸'의 존재도 뭔가 심상치 않은데?라는 찝찝함을 숨길 수 없다고나 할까요.


원작을 보지는 못했습니다만, 소설을 영화화하는 과정에서 알게 모르게 너무 많은 것들이 생략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네요. 소설과 영화란 게 태생적으로 볼륨이 다르니 어느 정도의 다이어트와 어느 정도의 변주는 필요하긴 했겠습니다만, 글쎄요. 이럴 거면 차라리 두 편, 세 편으로 늘렸어도 괜찮지 않았을까요? '수사네 비르' 감독, 『버드 박스』 였습니다.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는 "Daum 영화"와 "IMDb"에 공개된 이미지만을 활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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