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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SF & Fantasy

갑자기 분위기 기독교 _ 나의 마더, 그랜트 스퍼토어 감독

그냥_ 2019. 7. 6. 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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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신뢰는 연역적 결과인 걸까요 귀납적 결과물인 걸까요. 영화는 두 견해의 극단적이고 구체적인 충돌을 다룹니다. 믿음직스러운 행동을 하는 신뢰할 수 없는 존재와, 의심스러운 행동을 하는 신뢰할 수 있는 존재가 경쟁적으로 딸의 마음을 사기 위해 대립합니다. 각각을 대변하는 '마더'와 '여자'라는 강렬한 대척점에 사이에서 딸은 갈등합니다.

 

 

 

 

 

 

 

 

'그랜트 스퍼토어' 감독,

『나의 마더 :: I am Mother』입니다.

 

 

 

 

 

# 1.

 

'마더'는 분명 딸을 헌신적으로 보살폈습니다. 동시에 프로그래밍에 의해 작동하는 로봇이기도 하죠. 마더가 딸을 지극정성으로 보살핀 것은 엄연한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여타의 인간과 같이 존재론적인 측면에서 자신의 딸을 지지하는 것은 아닙니다. 딸을 보살피는 행위는 여러 가지 목적으로 설명 가능한 수단에 불과합니다. 마더는 자신의 헌신적 행위가 자신에 대한 신뢰를 절대적으로 지지한다 믿습니다. 마더는 딸에 대한 자신의 플랜과 목적을 구태여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마더는 당당하게 "자신이 한 번이라도 '딸'에게 해로운 행동을 한 적이 있느냐" 묻습니다. 그걸로 충분하다 생각하기 때문이죠.

 

반면 '여자'는 존재적 우위를 가집니다. 그녀는 일단 인간이거든요. 그의 동기는 올바르냐 그렇지 않으냐 와는 별개로 훨씬 순수하고 솔직하고 직설적입니다. 등장에서부터 흘러나오는 붉은 선혈과 거친 숨소리, 흥건한 땀은 마더는 절대 전할 수 없는 강렬한 생명력을 암시합니다. 인간이라는 고유의 종이 가지는 DNA 레벨의 생존 본능과 사회적 관계에 대한 갈증을 대단한 호소력으로 어필하죠. 하지만 그녀는 딸과 신뢰를 구축할만한 어떠한 기회도 얻지 못했음은 분명합니다.

 

'딸'은 둘 사이에서 끊임없이 갈등합니다. 감독은 이 갈등 속으로 관객을 불러들입니다. 영화를 보는 동안 관객 역시 딸과 같은 시험을 강요받습니다. 수십 년간 딸을 키워온 마더를 믿느냐, 처음으로 살을 맞댄 인간 여자를 믿느냐. 서사가 진행되는 동안 마더와 여자는 각각의 목적을 위해 몇 차례의 거짓말을 하게 되는데요. 그때마다 어느 쪽을 더 신뢰할 것인지에 대해 장르적으로 흔들리게 됩니다.

 

 

 

 

 

 

# 2.

 

딸이 신뢰할 존재를 결정짓는 순간, 즉 보호소를 탈출하는 시점에서 관객 역시 선택을 강요받게 되는데요. 여러분은 누구를 선택하셨나요? 저는 딸과 같이 마더를 의심하고 말았습니다. '그래도 같은 값이면 로봇보단 사람을 믿어야지.'라는 막연한 선입견이 작동되었달까요. 하지만 영화를 보신 분들이라면 그녀의 목적이 순수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죠. 우린 속은 겁니다. 그 순간 되돌아보게 되죠. "잠시만, 내가 왜 이 '여자'를 믿었던 거지? 믿음이란 무슨 감정인 거야?"

 

두 인격 모두 각자 순수하지 못한 혹은 솔직하지 못한 동기에 의해 '딸'을 이용하고 있다는 게 밝혀지고, 결국 딸은 여자를 벗어나 마더에게 총을 겨누며 홀로 자립합니다. 새로운 세상을 함께 열어나갈 갓난아이를 품고 스스로 마더가 된 딸의 단호한 눈빛은, 신뢰했던 대상에게 속아 방어적으로 변해버린 존재가 아니라 스스로에 대한 거대한 '신뢰'를 품게 된 새로운 인류입니다. 영화의 마지막 딸의 눈앞에 펼쳐진 거대한 숙명 앞에서 단호하게 정면을 응시하는 딸, 아니 '새로운 마더'의 눈빛은 대단히 인상적입니다.

 

 

 

 

 

 

# 3.

 

종반부 직전까지 준수하던 SF 심리 스릴러는 마무리에 들어가며 삼천포에 빠지고 맙니다.

뜬금 기독교 코드가 끼어들거든요.

 

사실 좀 쎄하긴 했습니다. 제목에서부터도 그러하거니와 어린 시절 육아방에 떨어지는 은은하고 포근한 빛이 너무 종교적이었거든요. 묘하게 시선처럼 보이는 창문의 모양에서 안도 다다오의 '빛의 교회'와 같은 인상을 받았달까요. '마더'의 정체가 드러나는 종반부에서 그는 대단히 전지전능하며 모든 존재들과 연결된 독보적이고 유일한 무형의 정신체라는 것이 밝혀집니다. 또한 타락한 인간에 대한 가혹하고 엄정한 최후의 심판을 내리며 그럼에도 인류에 대한 사랑을 한껏 품은 자애로움을 보여주죠. 여지없이 '야훼'네요.

 

 

 

 

 

 

# 4.

 

일련의 결말 탓에 이전까지 두 가지 상반된 '신뢰'라는 개념에 대한 사유가 몽땅 희석되고 맙니다. 함부로 우열을 가릴 수 없는 동등한 위계를 가지는 견해 사이에서의 갈등이 아니라, 선한 신과 타락한 인간의 갈등으로 추락합니다.

 

특히나 마지막 여자의 컨테이너에 마더가 찾아가는 부분은 진짜 너무하더군요. 여자의 등장과 치료, 이후의 딸의 갈등과 행동까지 이 모든 것들이 마더의 계획이었다는 건데, 이러한 전개는 주인공이 너무 힘을 받지 못합니다. 특히나 주인공과 함께 동화되어 영화를 따라온 관객 또한 마더의 손바닥 위에 놀아버린 듯한 인상을 받고 말죠.

 

 

 

 

 

# 5.

 

마더가 만든 기계 요람과 여자에게 이끌려 나온 바깥세상이라는 공간 연출은 인상적입니다. 빛과 안개, 높은 옥수수 숲과 같은 시각적 제약들을 통해 자극적이고 직접적인 연출을 피하면서도 충분한 긴장감을 형성하는 솜씨가 제법 유려합니다. 이야기의 큰 줄기는 특기할만한 요소가 없더라도 디테일한 설정들을 조정하는 솜씨 역시 훌륭합니다. 정전을 일으킨 쥐를 작은 병 안에 잡아 가두는 장면은 바깥세상에서 만나게 된 큼지막한 강아지와 대조를 이루는 장치이면서, 동시에 먼저 죽어나간 '실패작'들에 대한 복선처럼 보이기도 하는군요. SF 장르의 오락영화로서 이 정도면 훌륭합니다.

 

넷플릭스 영화가 웬일인 걸까요. 보통 시시껄렁한 팝콘무비나 파편적인 아이디어로 이목만 끌어당긴 후 용두사미로 끝나는 졸작들이 대부분이었는데, 이 영화는 다르네요. 근래에 나온 오리지널 중에선 <로마> 이후로 가장 재미있게 본 작품인 것 같습니다. SF 한 숟가락에 심리 스릴러 열 숟가락 듬뿍 담아 맛깔나게 비벼두긴 했지만, 뜬금없는 예수님 한 숟가락이 거슬린다는 건 영화를 보시기 전에 염두에 두셔야겠네요. '그랜트 스퍼토어' 감독, 『나의 마더』 였습니다.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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