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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Romance

수박 겉 핥기 _ 이퀄스, 드레이크 도레무스 감독

그냥_ 2022. 7. 8.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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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수박 겉을 핥습니다. 심지어 천~천히 핥습니다.

 

 

 

 

 

 

 

 

드레이크 도레무스 감독,

『이퀄스 :: Equals입니다.

 

 

 

 

 

# 1.

 

빌어먹을 세상이 또 멸망했습니다. 만세.

 

어찌어찌 멸망했다 하는 데 자세히 모르셔도 무방합니다. 어쨌든 망했다는 것만 알아도 충분하죠. 기성의 국제 사회는 깡그리 망하고 '선진국'과 '반도국'으로 이분화된 세상입니다. 선진국은 불필요한 소모를 유발하는 것으로 취급된 감정을 제거함으로써 근로 효율을 극대화하는 데 성공한 인간들의 사회입니다. 이곳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평준화를 의미하는 '이퀄'이라 불리죠. 반도국은 현생 인류와 같은 감정을 가진 사람들의 사회입니다. 선진국의 이퀄들은 그들을 (지극히 이퀄의 관점에 따라) '결함인'이라 부릅니다. 감독은 감정의 제거라는 폭력적 방법론을 물질적 보상으로 설득합니다. 영화가 묘사하는 선진국은 이름에 걸맞게 최첨단의 과학 기술 문명인데 반해, 반도국은 콘크리트 잔해에 뒤엉킨 상대적 야만으로 그려지고 있죠.

 

감정을 제거한 이퀄들은 이성적이고 이지적인 존재들입니다. 각자는 최적의 성능을 발휘할 수 있는 역할에 배치되어 사회에 기여하고 있죠. 풍요롭고 편리하고 위생적인 공간에서 엄격하지만 합리적인 시스템의 통제 하에 생활합니다. 자동화와 획일화가 완벽히 안착한 시스템에 대한 묘사들을 지나, 우주 너머 인류의 거처를 탐험한다는 대목까지 나아가면 궁핍하게 생존 투쟁 중인 반도국과 얼마나 큰 효율성의 격차가 있는지 실감하게 되죠.

 

 

 

 

 

 

# 2.

 

하지만 이퀄들의 유전자 조작 역시 완벽하지는 못합니다. 가끔 어떤 이퀄들은 감정을 억제하던 유전자가 깨어나며 감정을 느끼기 시작하는데요. 이를 SOS, Switched-on-Syndrom 우리말로 '감정 통제 오류 증상'이라 부릅니다.

 

감정이 깨어나 버린 이퀄들은 약을 먹으며 감정을 억누르다 일정 시기가 지나면 안전부에 의해 격리되어 치료 감호소에 수용됩니다. 대부분의 SOS 환자들은 버티지 못하고 자살하지만, 자살하지 않은 이퀄들은 적당한 명분과 적당한 절차를 핑계로 제거됩니다.

 

그리고 선진국에서 태어난 이퀄, 사일러스와 니아 입니다. 주인공이죠. 어느 날 SOS에 걸리며 감정을 느끼게 되어버린 사일러스와, 오래전부터 감정을 느낌에도 살해당하지 않기 위해 숨기며 살고 있는 니아가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며 사랑에 빠지는 멜로입니다. 꼼냥꼼냥 비밀 연애를 즐기던 두 사람은 결국 발각당하게 되고, 이를 극복하는 동안의 가슴 절절한 시련과 갈등과 사랑 뭐 고런 작품이라 할 수 있겠죠.

 

 

 

 

 

 

# 3.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간략히 드렸는데요. 대부분의 내용이 '설정'이라는 것을 눈치채셨을 겁니다. 말인즉, 감독이 어떤 의도를 가지고 이야기를 만드는 가와 무관하게 설정의 힘으로 밀고 나갈 수밖에 없는 작품이라는 뜻이죠.

 

영화가 제시하는 세계의 가장 큰 특징이라 한다면 감정이 비윤리적인 것으로 합의되어 있다는 점일 겁니다. 여타의 비밀 연애물들과의 가장 도드라진 차별점이라 할 수 있죠. 일반적인 경우 감정을 통제할 것을 강요하는 악의 무리들 틈바구니에서 감정을 나누고자 하는 선량한 인간성의 투쟁이라는 식으로 전개됩니다만, 영화 이퀄스의 세계에서 감정은 소모적이고 비합리적이라 인류의 패망을 가져온 '비윤리적'인 것으로 합의되어 있습니다. 절멸의 역사와 압도적인 풍요로움은 더할 나위 없는 완벽한 논거가 되어주고 있죠.

 

현실의 관객에게 감정은 도덕적이지만 영화 속 등장인물들에게 감정은 부도덕합니다. 그렇게 상정된 세계니까요. 그곳에서 사랑을 느끼는 주인공 무리는 '악당의 세계에 등장한 히어로'가 아니라 '선량한 세계에 등장한 악당'이라는 것을 명확히 자각해야 합니다. 윤리는 논리 체계니까요. SOS에 걸린다 하더라도 훼손되어선 안 되는 것이죠. 주인공 커플이 반도국으로 달아나겠다는 것은 현실의 우리로 치자면, 도벽이 도진 커플이 마음껏 도둑질을 해도 되는 세상으로 달아나겠다는 것과 같습니다. 언제나 같은 방향으로 걸어가리라 확신하던 윤리와 감정을 정반대로 나아가게 만들어 유리되는 순간의 위화감이 알파이자 오메가인 세계관이라 할 수 있죠.

 

 

 

 

 

 

# 4.

 

영화 <이퀄스>의 문제는 감독부터가 자신의 세계관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사일러스와 니아를 비롯한 등장인물들은 선진국에서 나고 자라 우연히 SOS에 걸린 사람들이 아니라, 감정이 제거된 인조인간들 사이에 뚝 하고 떨어진 현실의 일반인의 행동양식으로 작동하고 있죠. 윤리와 감정의 분리라는, 고유의 SF적 세계관이 휘발되고 나면 덩그러니 남겨진 건 식상한 멜로 뿐입니다. 싱싱한 수박을 수확해 놓고 감독이 열심히 겉을 핥고 있는 셈이니 재미가 있을 도리가 있나요.

 

감각적이고 미학적인 공간 연출을 선보이지만 서사와 조응하지 못하는 디자인은 허무합니다. 화려하고 상징적인 색상과 빛을 선보이지만 세계로 확장되지 못하는 기교 역시 허무합니다. 덩어리감과 실루엣이 조화를 이루지만 고찰로 연결되지 못하는 화면은 허무합니다. 니콜라스 홀트와 크리스틴 스튜어트의 가슴 절절한 사랑은 두 배우의 연기력과 무관하게 왜 이들의 사랑이 SOS에 걸린 이퀄스의 사랑인 것인가를 전혀 설득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가령 <더 랍스터>를 예로 들자면, 연애하지 못하면 동물이 된다는 설정은 황당하지만 영화 속 당사자들은 '당연하다는 듯'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일련의 세계가 당연하다는 전제에 합의하고 있기에 연인을 만들기 위한 가짜 연기들이 전개될 수 있었던 거죠. 그리고 그와 같은 전개가 가능하려면 감독 요르고스 란티모스 역시 연애하지 못하면 동물이 되는 사회를 당연하다는 듯 온전히 수용해야 합니다. 그래야 각본이 나올 수 있는 것이죠.

 

 

 

 

 

 

# 5.

 

인물의 정서나 관계가 세계관과 조응하지 못하고 대립하다 보니 독특한 설정은 '재난' 따위로 격하됩니다. 실제 영화의 배경을 첩보물과 같은 '두 주인공이 연애하지 못하게끔 가로막는 무언가'로 대체되어도 플롯의 전개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는 수준이죠.

 

설정에서 동력을 얻어야 할 스토리에서 설정이 휘발되면 창의적인 전개나 출구를 마련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시종일관 걸어 다니기만 하는 안 그래도 느리고 지루한 영화를 더욱 답답하게 만드는 데에는 식상한 스토리도 한몫하고 있음에 분명하죠. 냉소적 태도의 동료가 결정적인 순간 자신을 희생한다는 식의 클리셰라거나, 거참 공교롭게도 약속 시간에 맞춰 의무 출산을 하게 되는 니아 등을 지나, 결말을 로미오와 줄리엣에 처박아 넣는 순간에 다다르면 한숨을 푹 내쉬게 됩니다. 이야기 해석이나 주제의식 탐미에 전혀 기여하지 못하는 나태한 열린 결말까지 더해지노라면, 이전까지의 미술적 성취마저 그림을 위한 그림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라는 의심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게 되고 말죠.

 

결국엔 사랑이 짱이에요. 라는 뻔한 멜로입니다. 선남선녀 주인공의 정석적 멜로에 대한 감상과, 스파이크 존즈의 <그녀>가 얼마나 잘 만든 영화인지 새삼 확인하게 한다는 것이 이 작품의 유이한 의의라 할 수 있겠네요. 글쎄요. 이런 나태한 전개로 낭비하기엔 세계관과 미술적 성취가 너무 아깝지 않았을까요. 드레이크 도레무스 감독, <이퀄스>였습니다.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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