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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SF & Fantasy

너무 줄인걸까 -1- [버드 박스, 수사네 비르 감독]

그냥_ 2019. 8. 13. 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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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제목에서처럼 디스토피아 속 사람들 역시 케이지에 갇힌 새의 신세와 다르지 않습니다. 이해할 수 없고, 파훼할 수 없는 압도적 존재 앞에서의 무력감이 영화의 분위기를 육중하게 지배합니다. 극단적인 상황 하에 강제로 발가벗겨진 사람들의 본성과, 관계나 외로움과 같은 인성의 근원에 닿아 있는 관념들에 대한 고찰을 흥미롭게 제시합니다. 영화의 장르는 분명 공포, 서스펜스, 스릴러임에도 불구하고 진중하고 건조한 미스터리 소설과 같은 분위기가 기저에 흐르는 건 이런 철학적 주제의식과도 연관이 있는 거겠죠. 『진격의 거인』의 그것도 얼핏 연상됩니다만, 빌어먹을 쓰레기 극우 작가 놈 때문에 손절한 만화를 다시 떠올리고 싶지는 않으니, 최근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킹덤』을 연상하는 걸로 대신하도록 합시다.









'수사네 비르' 감독,

『버드 박스』 입니다.






공포를 요리하는 치밀한 구조


'산드라 블록'이 연기한 주인공 '멜러리'가 어린아이 둘을 데리고 위태롭게 고립된 현재와, 일련의 사건이 시작된 5년 전의 과거를 오가는 병렬적 구조가 인상적입니다. 서사의 큰 줄기와 설정에 대한 친절한 설명은 과거와 함께 진행되면서, 동시에 충분히 설명되지 않은 현재 상황의 이물감을 통해 집중력을 환기하는군요. 밑도 끝도 없는 급류 타기, 왜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눈에 씌워진 안대, 관계를 함부로 추측하기 힘든 두 꼬마 아이와, 아이의 입에서 나온 전혀 소개받지 못한 '톰'이란 인물, 주인공과는 달리 눈을 가리지 않은 채 달려드는 이상한 남자와, 방향을 알 수 없는 간절한 무전 소리 같은 아이템들은 영화를 끌고 가는 연료로서의 역할을 성공적으로 수행합니다.


영화 중후반부 즈음 각자 달려 나가던 두 이야기가 한데 소집되면서 누적된 의아함이 일거에 해갈되며 서사의 잠재력이 터지는 구조의 힘이 위력적입니다. 특별히 창의적인 방법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다루기 쉬운 방식 또한 아님에도 불구하고 감독은 두 가지 상황에 대한 감각적인 연출과 리드미컬한 편집에 성공합니다.




영화는 총 세 가지의 각기 다른 공포를 다루는데요. 각각의 공포를 두 번에 걸쳐 전이시키는 솜씨가 유려합니다. 초자연적인 존재와 죽음에 대한 공포에서 출발한 영화는, 물리적으로나 정서적으로나 통찰할 수 없는 상황에 대한 공포를 지나 마지막엔 압도적인 고립 공포에 도달합니다.


각각의 공포는 상당히 균형감 있으면서 동시에 구체적으로 묘사됩니다. 주인공과 대조적인 활달한 성격의 여동생 '제시카'가 차분한 걸음으로 차에 몸을 던지는 장면과, 넘어진 '멜러리'를 도우려던 '더글라스'의 딸 '리디아'의 충격적인 자살 장면은, 영화가 제시하는 상황에 직설적이면서 동시에 빠르게 몰입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인물의 성격이나 상황과 아무런 상관없이 '그것'에 노출된 사람은 누구나 절대적인 죽음을 선택하게 된다는 고압적인 설정이 관객을 공포의 한가운데로 인도합니다.


속도감 있는 연출을 통해 세이프티 존 안으로 '멜러리'와 함께 관객을 몰아넣은 감독은 이 급격히 고양된 공포감을 시각적 공포로 이전시키는데요. 아무런 물리적 영향 없이도 시각을 제한당한다는 것이 얼마나 큰 제약인지, 시각이 사라졌을 때 인간이 어디까지 무기력할 수 있는 지를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아이템들과 함께 설명해 냅니다. 그리고 이런 물리적 시각의 차단은 곧 신뢰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인 사람들의 사회적 관계의 차단으로 확장되게 되는데, 이와 같은 일련의 서사를 통해 '눈가리개'는 단순히 이야기를 굴리기 위한 '설정 1'을 넘어 주제를 투영하는 상징물로 승화하게 되죠. 서로 눈을 뜨고 바라보는 사람들은 배신하거나 떠나가는 사람이고, 눈을 감은 채 대하는 사람들은 살아남거나 믿을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서로가 서로를 죽이고 배신하는 극단적인 상황을 지나, 결국 '멜러리'는 의지할 수 있는 모든 사람들을 잃고 책임져야 하는 두 아이만을 보호하게 됩니다. '톰'이 가족을 지키기 위해 자신을 희생한 후 홀로 남게 된 '산드라 블록'의 절규에서 관객들 역시 홀로 남은 인간의 고립 공포를 이입하게 되죠. 여기까지 흘러가는 흐름이 굉장히 자연스럽고 좋네요.











급류를 나는 새


'급류'는 일방향적입니다. 굉장히 위력적이며, 올라탄 모든 존재를 지배하죠. 급류에 아이들과 함께 몸을 실은 '멜러리'는 부유하는 동안 이 일방적인 흐름에 몸을 맡길 수밖에 없습니다. '급류'는 위태로운 사람들을 고압적으로 몰아붙이는 '그것'과 비슷하면서 동시에, 자신의 처지와 슬픔과는 별개로 주어진 모든 것들에 대해 책임지고 앞으로 나아가야만 하는 '멜러리'의 숙명과도 비슷합니다. 급류라는 구체적 조건을 숙명이라는 관념으로 확대한다면 '멜러리'라는 개인 역시 '인류'라는 거대한 개념으로 확대할 수 있을 텐데요. 만약 그렇게 본다면 '어른이 한 명뿐인 상황에서 한 명은 눈을 떠야 한다'는 가혹한 설정을 비단 구체적 상황뿐 아니라 철학적으로 생각해 볼만한 여지가 생길지도 모르겠습니다.


'급류'와 더불어 영화가 차용하고 있는 강렬한 이미지는 역시 '새'겠죠. '그것'의 존재를 알고 두려워하면서, 동시에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어딘가에 갇혀 있는 존재. 급류에 비해 훨씬 직접적, 혹은 친절한 은유라 할 수 있겠네요. '톰'은 두 아이의 앞에서 새와 아이들, 그리고 나무 꼭대기에서 내려다본 풍경을 이야기합니다. '톰'의 이야기로 인해 영화 속에서 새와 아이들과 희망과 관계는 그 경계를 허물게 되죠. 급류를 타는 위태로운 순간에도, 발을 헛디뎌 굴러 떨어지는 순간에도, 환청을 견디며 아이들을 찾아 헤매는 순간에도 '멜러리'의 손에는 새가 들어 있는 박스가 꼭 쥐어져 있습니다. 그리고 그 새들은 새로운 보금자리에서야 비로소 자유롭게 날아오르죠. '급류'와 '새'라는 추상적 이미지를 서사와 주제의 연결고리로 활용한다는 게 특이하면서 동시에 신선하군요.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질감이 상당히 좋습니다. 특히 급류를 타는 장면에서의 연출은 장르적인 냄새가 물씬 풍기는군요. 특유의 높은 색온도의 창백한 색감이 고립의 두려움과 위태로움을 은유합니다만, '황동혁' 감독의 『남한산성』에서의 그것과는 또 다른 느낌입니다. 같은 푸르뎅뎅한 색감임에도 『남한산성』이 육중하고 건조하고 무기력한 느낌이라면, 『버드 박스』는 초자연적인 신비함과 주인공의 의지와 역동성을 함께 전달한달까요. 특유의 정적인 색감과 대응하는 급류의 위력적인 운동량이 두 아이와 주인공을 둘러싼 무형의 존재가 주는 위압감을 은유한다는 인상도 줍니다. 이런 일련의 삭막함은 마지막 시각 장애인 학교 안에서의 생명력을 강조하는 효과도 있구요. 


또한 대사도 제법 좋습니다. 원작 소설이 있는 작품답게 풍부한 형용이 동원된 문어체 느낌의 대사들이 영화의 표현을 한층 풍부하게 합니다. 주제 좋고, 장르적 재미 있고, 대사 좋고, 연출도 좋고. 여기까지만 보면 완벽한 영화처럼 들리는군요. 하지만 아쉽게도 이 영화에도 단점들이 있습니다. 그건 다음 글에 이어 이야기하도록 하죠.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는 "Daum 영화"와 "IMDb"에 공개된 이미지만을 활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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