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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SF & Fantasy

양은 무엇을 보았나 _ 애프터 양, 코고나다 감독

그냥_ 2022. 9. 20.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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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목적의 여백을 발견하는 동안 수리되는 자아, 완성되는 가족

 

 

 

 

 

 

 

 

코고나다 감독,

『애프터 양 :: After Yang』입니다.

 

 

 

 

 

# 1.

 

인간과 인조인간 어쩌구, 뭐 고런 영화입니다. 흔히 스필버그의 A.I. 를 대표적으로 떠올리실 것 같습니다만 개인적으론 이런 류의 영화를 볼 때면 바이센테니얼 맨을 가장 먼저 떠올리곤 하는데요. 로빈 윌리엄스의 애환이 뒤섞인 듯한 미묘한 표정이 뇌리에 깊이 남았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여하튼 통상은 교감을 쌓아나가는 과정을 직접적으로 그리기 마련인데요. 이 작품의 특별함은 인조인간을 죽인 후 시작한다는 점에 있습니다. 인조인간을 통한 가치 탐구를 다룬 영화에서 정서의 종착점을 [애정愛情]이 아니라 [애도哀悼]로 설정하겠다는 아이디어는 과연 특별합니다.

 

중국계 안드로이드 '양'의 죽음은 사실상 사건의 전부입니다. 대부분의 분량은 죽은 양을 어떻게 대하고 바라볼 것인가에 대한 주인공 제이크의 고뇌와, 고뇌의 단초가 되어줄 양의 기억을 열어보는 동안의 플래시백뿐이죠. 양은 처음부터, 아니 제이크 가족과의 처음보다 훨씬 이전부터 그저 양일 뿐입니다. 영화는, 목적으로 단정하고 있던 양의 여백을 산책하는 동안 머리 위 우주를 발견하며 확대되는 제이크의 자아와, 비로소 완성되는 4인의 가족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 2.

 

안드로이드 묘사에 소극적이라는 점은 특기할만합니다. 작품을 따라가는 데 있어 가장 요긴한 설정적 특징이라는 생각이죠. 컴퓨팅 시스템의 연산 속도와 정보 저장 능력 따위의 우월성을 과시한다거나, 역으로 공감과 교감 따위의 정서적 능력이 뒤쳐지는 장면에 대한 묘사 등은 대표적인 클리셰라 할 수 있을 텐데요. 의도적으로 회피하고 있다고 밖엔 볼 수 없을 정도로 거의 발견되지 않거나 희미하게 연출됩니다. 작품을 통해 묘사되는 안드로이드와 인간의 가장 큰 차이는 [목적 혹은 용도의 유무]가 사실상 전부죠.

 

양은 입양된 딸 미카에게 중국계로서의 인종적 문화적 뿌리를 학습시키기 위해 구매됩니다. 이전에도 역시나 같은 목적으로 구매되었었고, 목적에 부합하지 못한다 판단되자 반품되기도 합니다. 에이다는 죽은 사람의 빈자리를 매우기 위한 용도로 만들어진 클론이구요. 이웃의 쌍둥이 딸 역시 최소한 그 시작만큼은 자녀의 역할을 수행할 목적으로 구매된 존재였을 테죠.

 

제이크는 모든 안드로이드를 수단으로써만 평가하는 인물입니다. 양은, 제이크와 카이라가 했어야 할 부모의 역할을 일정 부분 대신하는 보모 로봇이자 중국이라는 문화적 뿌리를 기계적으로 이식하기 위한 소프트웨어 덩어리에 불과합니다. 도입을 채우는 보증과 거래처, 새 제품과 리퍼, 가격과 성능에 대한 코드, 가슴이 열린 모습을 여과 없이 공개하는 장면 따위의 거친 질감은 구체적 사건뿐 아니라 제이크의 인식을 고스란히 나열한 것이기도 합니다.

 

안드로이드를 자녀로 두고 있는 이웃에 강한 거부감을 보이는 대목은 역으로 그에게 양의 존재란 결코 가족이 될 수 없는 도구에 불과했음을 폭로합니다. 미카는 자신의 [오빠]에게 밤마다 물을 마시러 가자 부탁하지만, 제이크는 [안드로이드]에게 물을 가져오라 지시하지 않는 것에 의아해하는 장면은 인식의 격차를 노골적으로 드러냅니다. 적어도 전반부까지의 양은 제이크에게 있어 아이의 정서적 함양을 위해 구매된 [어항 속 물고기]와 본질적으로 동일합니다.

 

전반부에서 가장 흥미로운 시퀀스라 한다면 정체성 갈등을 토로하는 미카에게 접목을 알려주는 대목을 꼽을 수 있을 텐데요. 실제 제이크가 기대한 대로 양은 중국의 문화적 토양을 미카에게 전달하고 있죠. 하지만 그것이 전부인 것일까. 입양된 아이의 정체성에 대해 학습시킨 것이 전부인가 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접목에 대해 설명하는 동안 양의 따뜻한 눈빛과, 이를 받아들이는 미카의 반응과 성장은 제이크의 목적 그 이상의 무언가에 닿아있음이 분명합니다. 어린 미카와 양이 거닐던 과거의 묘목과, 결말에서 제이크가 홀로 거닐게 되는 울창한 숲은 충분한 숙고의 시간이 흘러 도달한 관념적으로 동일한 공간입니다.

 

 

 

 

 

 

# 3.

 

제이크는 양을 수리할 수도 있었지만 결국 박물관에 보존하는 것을 선택합니다. 양이 특정한 기능을 수행하기 위한 도구라면 수리하는 것이 합리적임에도 다른 선택을 했다는 것은 내면에 변화가 생겼음을 의미합니다. 제이크는 양의 기억을 들여다보기 시작합니다. 영화는 기억과, 기억하는 방식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갑니다.

 

두 차례 반복되는 가족사진을 찍는 장면은 같은 상황에 대한 다른 시점과 기억들이 중첩되는 순간입니다. 카메라가 기록하는 가족과, 양이 기억하는 가족과, 제이크가 기억하는 가족과, 이들 모두를 객관적으로 담아내는 화면이 각기 다른 시점 쇼트와 오버랩의 조화를 통해 묘사됩니다. 상황은 같지만 같은 상황을 어떤 눈높이에서 어떤 구도로 어떤 비중으로 기억할 것인가는 모두 다릅니다. 상황과 기억뿐 아니라 기억하는 방식 그 자체가 각 주체를 정의하는 정체성의 조각인 것이죠.

 

가족사진이 원론적이고 미학적인 연출이라 한다면, 차에 대해 이야기하는 대목은 같은 테마에 대한 조금 더 친절한 시퀀스라 할 수 있을 겁니다. 제이크가 기억하는 대화의 순간과 양이 기억하는 대화의 순간은 같지만 미묘하게 다릅니다. 제이크에게 차의 의미란 흙, 식물, 날씨 그리고 삶의 방식과 연결하는 과정이자, '숲 속을 걷고 있고 땅에는 나뭇잎이 깔려 있어 한참 비가 내리다 그쳐서 공기는 아주 축축한 곳을 걷는, 그 모든 것이 담긴 것만 같은 맛'입니다. 반면 양에게 있어 차의 의미란 제이크가 좋아한다는 영화를 같이 보고 싶고, 맛을 느낄 수 없음에도 같은 느낌을 나누고 싶어 기꺼이 차를 넘기는 순간이죠.

 

제이크는 양의 목을 넘어가는 차가운 배수 소리에 그가 [어항 속 물고기]였음을 상기한 듯 크게 실망하지만, 사실 양은 그 순간에 조차 제이크의 삶의 방식과 연결되어 있었던 [모든 것이 담긴 차]였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미 무수히 많은 잎을 가진 숲이었음에도. 숲에서 얻는 잎사귀의 향과 맛을 좋아하던 제이크는 눈앞의 차를 깨닫지 못하고 있었음을 희미하게 자각합니다.

 

 

 

 

 

 

# 4.

 

제이크가 에이다를 찾는 것은 숲을 거닐어 흙과 식물, 날씨가 연결된 찻잎의 모으는 과정입니다. 오빠의 상실에 힘들어하는 미카를 비로소 품에 안고 앙상해져 버린 박물관의 숲을 거슬러 양에게 다가가는 장면은 제이크에겐 커다란 도약인 것이죠.

 

카이라와 나비의 시퀀스는 제이크와 차의 시퀀스의 대구라 이해하면 크게 무리는 없을 겁니다. 나비와 애벌레의 은유라거나 무와 유에 대한 형이상학적인 이야기도 물론 의미가 있습니다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앞서 짚어내는 [솔직한] 이야기라는 한마디입니다. 양은 만들어진 목적의 여백을 매 순간 선명히 향유하고 충분히 공유하고 있었음을 카이라가 떠올렸다는 점입니다.

 

잠든 양을 만난 후 미카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에이다와 대화를 나눕니다. 인간이 되고 싶냐 질문을 건넨 후 면박을 당하는 순간은 도달을 앞둔 제이크의 마지막 찌꺼기입니다. 존재의 의미를 독점한다 착각하던 인간의 오만을 깨우친 제이크는 말합니다.

 

"맞아요. 양은 좋은 오빠였어요. 지금도 훌륭한 오빠예요."

 

# 5.

 

수많은 갈등과 회상을 지난 제이크의 도달입니다. 집으로 돌아온 제이크가 창을 열자 고뇌를 상징하던 관념적인 사운드를 압도하는 빗소리와 새소리가 청량감으로 미려하게 연출됩니다. 제이크는 자신의 얼굴이 비친 창을 지긋이 바라봅니다. 자기 자신과 같은 눈높이에 이른 후에야 비로소 감마 아래에 있던 베타 아래에 있던 알파를 향해 나아갑니다. 양의 모든 기억, 양의 모든 우주를 거슬러 양의 숲에 도달하는 순간입니다. 때론 평범하고 때론 지루한 일상의 잎으로 수놓아진 숲은 곧 '양'입니다. 함께 수년을 살았지만 드디어 진짜 양을 만나게 된 제이크는, 차의 맛과 똑 닮은 기억의 숲을 산책하며 두터운 나무에 손 얹어 인사합니다. 안녕? 안녕.

 

드디어 한 팀이 된 가족입니다. 양의 고장으로부터 시작된 영화는 양 이후의 출발선에 도착하며 마무리됩니다. 제이크가 간신히 도달한 곳에서 처음부터 기다리고 있었던 미카는, 오롯이 양을 위한 양의 언어로 양을 애도합니다. 릴리 슈슈의 모든 것의 ost <Glide>를 부르며 그렇게 막을 내리죠.

 

 

 

 

 

 

# 6.

 

결말을 유심히 보노라면 흘러나오는 노래를 끝으로 잠시 화면이 정지됩니다. 흘러가는 상황이 아니라 기록, 보다 정확히는 [기억]됨을 의미하는 연출이라는 생각입니다. 자신을 진심으로 애도하는 가족의 모습, 거기까지가 양의 생生을 완성시키는 마지막 기억의 편린이라는 결말은 드라마의 깊이입니다. 제이크와 미카의 모습을 담는 카메라 뒤. 영화를 보는 관객인 나와 같은 눈높이에서 제이크 가족의 성장을 지켜보던 양이 뛰어가 미카의 옆에 앉는 모습을 상상하노라면 숙연하면서도 뭉클한 감동이 있습니다.

 

보고 나면 문득 대단히 아름다운 포스터였구나라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무엇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라는 시선과 '어떤 시선에 기억할 만한 가치를 부여할 것인가'가 존재를 정의한다는 작품의 방향성은 네 인물의 각기 다른 시선으로 은유됩니다. 카이라는 제이크를 바라보고 제이크는 미카를 바라보고 미카는 양을 바라보는 동안, 양은 무엇을 바라보고 있었던 것일까라는 질문을 암시하는 구도는 과연 미학적이죠. 좌우로 번지는 스팩트럼은 작품을 관통하는 빛과 다양성의 이미지를, 가운데 연결된 하얀빛은 틈의 이미지와 함께 제이크와 카이라 / 미카를 구분합니다. 그 사이에 물려 위치한 양의 배치와, 그 빛이 양의 머리를 열고 있으며 관객은 그 공간에 집중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소개한다는 측면에서 작품을 압축적으로 잘 보여주는 포스터라 할 수 있겠네요.

 

말 나온 김에 틈에 대한 이야기를 짧게만 남겨 볼까요. 감독은 복도나 문 따위를 반복적으로 활용해 화면에 깊이감과 몰입감을 부여해 이를 양이라는 존재의 의의로 연결하고 있습니다. 틈의 크기와 밝기 따위를 시퀀스의 상황과 인물의 심리에 연동시키는 감각적인 구도 활용이라거나, 정서적으로 기능하는 프레임 인 앤 아웃 또한 리드미컬하죠. 양을 탐구하는 동안 강한 집중을 유도하는 틈과, 양과 무관한 상황에 열리는 화면의 대조도 인상적이구요. 틈의 이미지를 양의 가슴을 여는 이미지와 연결한 후 그 안에 담긴 풍부한 우주로 승화시키는 시퀀스 구성은 환상적입니다. 일련의 연출은 모두, 이 영화 전체가 관객에게 있어 제이크가 쓰고 있는 선글라스를 쓰고 양의 기억을 들여다보는 여정처럼 느껴지게끔 유도하고 있죠.

 

# 7.

 

인조인간이 인간에 도달하는 이야기와 차별된다는 것에 큰 가치가 있다는 생각입니다. 그런 오만은 에이다의 촌철살인으로 이미 지적되고 있으니까요. 인조인간은 스스로 숭고한 존재가 되려는 의지가 없다. 단지 목적 이상의 존재였음을 발견했을 뿐이다. 라는 것은 곧 작품의 드라마적 완성도로 직결됩니다. 죽은 양을 깊게 그리워하는 것이 아니라 두텁게 그리워하게 만드는 정서의 힘입니다. 복잡한 플롯과 중첩된 캐릭터와 기억과 버퍼링이 어지럽지만, 한 발짝 떨어져 생각해 보면 영화의 서사란 평범한 사람들이 평범한 사람들과 이별하며 평범하게 회고하고 추모하는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은 시나리오의 완성도를 그 자체로 상징합니다.

 

수많은 흙과 식물과 날씨와 나뭇잎으로 만들어진 숲이자, 소중한 기억의 별이 은하가 되어 모인 우주. 존재의 누적과 기억의 총체를 통할하는 숭고함이야 말로 존재하는 모든 것들의 본질적 가치라는 애도. 코고나다 감독, <애프터 양>이었습니다.

 

# +8. 오랜 시간을 사용, 아니 공유하고 있는 테이블에 놓인 낡은 랩탑과 카메라가 문득 애틋해지는 느낌적인 느낌이군요. 세상 모든 것을 사랑할 수 있을 것만 같은 감동은 오랫만이네요. :)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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