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좋아하세요? :)

늦은 저녁 맥주 한 캔을 곁들인 하루 한편의 영화, 그리고 수다.
영화 이야기는 언제나 환영입니다.

Film/SF & Fantasy

솜사탕 _ 핑크 클라우드, 이울리 제르바지 감독

그냥_ 2022. 1. 2. 06:30
728x90

 

 

# 0.

 

될 놈은 어떻게 해도 됩니다. 2017년에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해 19년에 제작 들어간 작품이 코로나에 제대로 얻어걸렸습니다. 독특한 설정과 빈약한 설득력에도 불구하고 현실의 펜더믹이 관객의 몰입을 상당 부분 커버합니다.

 

 

 

 

 

 

 

 

'이울리 제르바지' 감독,

『핑크 클라우드 :: A Nuvem Rosa』입니다.

 

 

 

 

 

# 1.

 

분홍색 독구름이 생긴 세상입니다.

 

무슨 이유로 만들어진 건지, 어떤 기작으로 문제를 일으키는 건지 알 수 없지만 어쨌든 둥실둥실 떠다니는 분홍색 구름에 접촉하면 10초 이내에 사망하게 된다. 뭐, 그런 설정입니다. 대기 성분인 구름이 창문 닫는 정도로 집 안에 못 들어온다는 게 말이 되나 싶지만 적당히 넘어갑니다. 물자 문제는 집집마다 비닐 튜브를 연결하는 것으로 뭉개고 넘어갑니다. 수십 년 간 생산활동이 중단됨에도 물건이 어떻게 만들어지는 지도 무시합니다. 병리적 문제들 역시 약 먹고 주사 놓으면 된다는 식으로 지나갑니다.

 

심지어 감독 스스로 자기 영화의 허점을 고백하고 있는데요. 본인도 알고 있지만 썩 중요하지 않으니 넘어가 달라 부탁하는 셈입니다. 감독은 개연성 문제에 능동적으로 대응하는 걸 포기합니다. 자신이 만든 특이한 세계관을 흥미롭게 탐구한다기보다는,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를 위해 설정 전개라는 숙제를 해치운다는 감각에 훨씬 가깝게 연출됩니다.

 

따라서 나이브한 설정에 몰입이 방해받는다 느끼실 수 있고, 그 지적은 분명 정당합니다. 다만 '안느 퐁텐'의 <투 마더스>의 리뷰에서도 말씀드렸듯 개인적으론 소재의 파격성으로 승부를 보는 작품에서 지나치게 배경 설정의 합리성을 진단하는 건 썩 무의미하다는 생각입니다. 비현실적인 설정을 과도하게 검증하는 건 창작자에게 너무 가혹할뿐더러 결과적으로 관객에게도 좋을 게 없는 일이죠.

 

 

Skip _ 투 마더스, 안느 퐁텐 감독

# 0. 두 절친 아줌마가 서로의 아들을 바꿔 연애하는 영화, 즉 불륜물입니다. 관객에 따라선 작품을 보기도 전부터 소재의 파격만으로 혀를 찰는지도 모르겠습니다만, '박훈정' 감독의 『V.I.P.』

morgosound.tistory.com

 

 

 

 

 

# 2.

 

재난의 설정과 일상의 디테일을 구체적으로 묘사하지 않는다는 점은 감독의 관심이 재난과 그 재난을 극복하는 과정에 있지 않음을 의미합니다. 재난 영화가 아니라는 뜻이죠. 설정의 빈약함을 차치하고서라도 실제 영화 내내 주인공은 안락한 집을 벗어날 이유도 없고, 벗어나려 하지도 않으며, 안전을 위협받지도 않습니다. 되려 등장인물들은 밖으로 나가는 것을 제외한 거의 모든 변수로부터 최대한 보호받습니다.

 

핑크 클라우드는 일종의 실험실 플라스크에 불과합니다. 변인을 조작해 인간과 사회의 대응을 관찰하는 이야기의 가설에 불과합니다. 사고 실험을 유도하는 영화라는 거죠. 실험 목적을 파악하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조작 변인이 무엇인가 살펴보는 것일 텐데요. 여기선 핑크 클라우드의 의의가 되겠죠.

 

 

 

 

 

 

# 3.

 

핑크 클라우드는 사회를 마비시킵니다. 단절과는 다르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회적 관계를 말살시켜 개인 단위로 분리된 인간의 고립감을 탐구하는 건 감독의 목적이 아닙니다. 사람들은 랜덤한 형태의 소사회로 분리됩니다. 홀로 남겨진 '사라'도 있었고, 우연히 원나잇을 즐긴 '야고'와 '지오바나'도 있었죠. 하필 파티장에 있던 여동생 '줄리아'는 다수와 함께 뒤섞여 있기도 하구요.

 

핑크 클라우드의 의의란 '관계 변화의 동결'이라 할 수 있습니다.

 

실제 영화에서 가장 고통받는 '지오바나'는 관계를 잃는 사람은 아니죠. 남편도 있고 자녀도 있습니다. 매일같이 연락하는 친구도, 여동생도, 교감하는 창 밖의 남자도 있죠. 그녀가 갈증을 느끼는 건 '변화'입니다. 한계에 다다른 부부 관계를 극복하기 위해 지오바나가 제안한 대안이라는 것이 가상의 인격을 새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역할극'이었음은 핑크 클라우드라는 재난의 성격을 보다 선명히 합니다. 말인즉 변화 없는 작은 관계 안에서 인간은 어떤 반응을 보이는가를 탐구하는 작품이라는 뜻이죠.

 

 

 

 

 

 

# 4.

 

첫 번째 피드백은 윤리와 가치관의 재정립입니다. 사라의 사회에선 정신병원에서 처방받는 약이 일상화됩니다. 야고와 지오바나는 결혼해 아이를 낳습니다. 줄리아의 사회에선 불균형한 성비에 맞춰 일부다처제를 수용합니다. 또 다른 공간에선 일처다부제가 생겼을지도 모르죠. 갈등을 조정하지 못해 나름의 규범을 확립하지 못한 소사회는 도태됩니다. '야고'의 아버지와 간병인의 집이죠.

 

두 번째 피드백은 각기 다른 현실 인식입니다. 다섯 명의 주요 인물들은 분리된 사회에 다른 태도를 보입니다. 고는 긍정합니다. 그는 내향적 인간으로 사회적 관계에 지쳐있습니다. 그에게 핑크 클라우드가 동결한 소사회는 안식이죠. 지오바나는 부정합니다. 그녀는 외향적 인간으로 관계의 전환에 목말라 있습니다. 그녀에게 집 안은 지옥이죠.

 

친구 사라는 절망합니다. 변화 이전에 관계의 존재 그 자체에 절실합니다. 여동생 줄리아는 순응합니다. 처음엔 우울했지만 시간이 흐름에 따라 현실을 인정하게 됩니다. 핑크 클라우드의 세상에서 태어난 아들 '루이'는 모든 것이 그저 좋고 자연스럽습니다. 시스템에 대한 태도는, 사라 < 지오바나 < 줄리아 < 야고 < 루이 순으로 긍정적이라 할 수 있겠죠.

 

관객은 그럴싸한 재난과 대응을 발판 삼아 영화에 안착합니다. 충분히 합리적이고 또 현실적인 다양한 소사회의 모습과 이에 대한 다양한 반응을 장르적으로 관찰합니다. 동시에 야고, 지오바나, 사라, 줄리아, 루이 모두의 모습에서 인격적 가치가 공격당하는 것만 같은 불쾌감을 발견합니다. 영화가 끝나고 난 후 관객은, '본인의 성향'과 '인간 사회의 의의'와 '관계의 중요성'을 순차적으로 곱씹게 됩니다. 흥미롭죠.

 

 

 

 

 

 

# 5.

 

다만 아이템의 파괴력에 전력한 여타의 작품들처럼

뒤로 갈수록 지루해지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메시지에 집중하는 동안 전개는 나태합니다. 설정이 공개된 순간부터 뻔히 예상되는 전개 그대로 흘러가 그대로 귀결됩니다. 캐릭터는 이전 단락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너무 기능적입니다. 몇몇 상황 변화에 따라 감정 낙차를 보이긴 합니다만 그럼에도 부여된 역할에서 벗어나진 못합니다. 인상적인 색감으로 만든 세계관이 흥미를 끄는 데 성공하지만, 영화 내내 변주되지 못해 어느 순간 피곤하고 식상합니다.

 

결말은 특히 실망스럽습니다. 지오바나가 수십 년 동안의 격리 대신 10초 동안의 자유를 선택한다는 것인데요. 이를 통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가가 영 희미합니다. 관념적으로 이해한다기엔 지오바나의 죽음은 메시지로 승화되지 못합니다. 드라마의 기준으로 본다기엔 이전까지의 런타임이 지오바니의 정서에 투자되어 있지 않습니다.

 

# 6.

 

 

솜사탕 같은 영화입니다.

 

매력적이고 이쁘고 달콤하고 풍성하고 재미있지만 먹다 보면 질리고 씹는 순간 허무하게 녹아내립니다. 다 먹고 나면 찝찝한 끈적임이 손에 묻어나기도 하구요. 차라리 간식(단편)이었다면 나쁘지 않았을 것 같다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식사(장편)를 만들고 싶었다면 더 든든한 주재료(이야기)를 준비했어야 합니다. '이울리 제르바지' 감독, <핑크 클라우드>였습니다.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 본 블로그는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글에서 다루는 작품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댓글", "포스트를 자신의 블로그로 유인하는 데 이용하려는 댓글", "무분별한 맞팔로우 신청 댓글" 등은 삭제 후 IP 차단될 수 있습니다.

 

 

"좋아요", "댓글""구독"

 

은 블로거에게 큰 응원이 됩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