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좋아하세요? :)

늦은 저녁 맥주 한 캔을 곁들인 하루 한편의 영화, 그리고 수다.
영화 이야기는 언제나 환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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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개봉 63

팔자 좋네 _ 리틀 포레스트, 임순례 감독

# 0. 팔자 좋은 영화입니다. 임용고시를 준비하는 건지 요리사를 준비하는 건지 알 수 없는 애늙은이 '혜원'이나, 수틀린다고 회사 때려치우고 고향 내려가 번듯한 과수원 사장님이 된 '재하'나, 지 승질 못 이기고 부장 머리에 탬버린을 내려쳐도 별 탈 없는 '은숙' 모두 팔자가 좋습니다. 하나뿐인 자식 내팽개치고 훌쩍 집 나가 버린 엄마도, 반찬 몇 개 던져주고 농사일에 조카를 부려먹는 고모도 모두 팔자 좋은 인물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가장 팔자가 좋은 사람은 감독입니다. 이 영화에서 가장 게으른 사람은 감독이거든요. 임순례 감독, 『리틀 포레스트 :: Little Forest』 입니다. # 1. 살다보면 몸이 안 좋을 수도 있고 지갑이 빈곤할 수도 있습니다. 마음이 야윌 수도 시간에 쫓길 수도 있습니..

Film/Drama 2019.09.05

HOMAGE _ 카우보이의 노래, 코엔 형제 감독

# 0. 지금 어딘가에 또 한 명의 아이가 있다. 노래와 총질을 배우며 전설이 되길 꿈꾸는 아이 언제가 그는 그 아이를 만날 테고 다르고도 같은 이야기가 또 생겨날 것이다. 코엔 형제 감독, 『카우보이의 노래 :: The Ballad of Buster Scruggs』입니다. # 1. 죽음의 춤판이 벌어집니다. 한껏 멋 부린 총잡이들이 낡은 기타를 둘러메고 흥겨운 노래를 부릅니다. 어차피 한번 살다 가는 인생. 죽기밖에 더하겠냐는 식의 능동적 허무주의가 6개의 옴니버스를 관통합니다. 부유하는 정체성입니다. 대부분의 인물들에겐 이름이 없습니다. 이름 있는 몇몇 카우보이들은 이름으로 불리기보단 어떤 캐릭터로 기억되길 바랍니다. 첫 번째 에피소드 속 '버스트 스크럭스'는 '샌사바의 노래하는 새'로 불리길 원하지..

Film/Comedy 2019.09.02

엄마의 이야기 _ 당신의 부탁, 이동은 감독

# 0. 운영 중인 학원은 접었습니다. 사별한 남편은 아직 떠나보낼 준비가 되지 않았습니다. 한평생 잔소리를 쏟아내던 엄마에게 가슴 아픈 말을 내뱉고 말았습니다. 그런 '효진'이 죽은 남편의 하나뿐인 혈육을 거두기로 합니다. 그녀는 16살 아들 '종욱'을 빌어 자신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뭔가를 선택하는 건 포기하는 거야. 그리고 포기한다는 걸 받아들이는 거야. 너가 어떤 선택을 하든 어느 한쪽은 반드시 포기해야 해." '이동은' 감독, 『당신의 부탁 :: Mothers』입니다. # 1. 살다 보면 아프지만 일을 해야만 하는 날들이 더러 있죠. 현실은 마음 같지 않고 숨만 쉬어도 지치고 세상에 홀로 남은 듯 버겁지만 그럼에도 해야만 하는 무언가가 온몸을 짓누르는 듯한 그런 날. 영화는 그런 일상을 살아가..

Film/Drama 2019.08.28

부러우면 지는건가 _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 유아사 마사아키 감독

# 0. 보는 것만으로 취할 것 같은 술잔과 안주로 곁들여진 환상의 밤거리가 스크린을 수놓습니다. 몇 모금 삼키다 보면 언제부턴가 술이 술을 마시는 것마냥 잔이 절로 넘어가듯, 영화 역시 술에 술 탄 듯 물에 물 탄 듯 호로록 넘어가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검은 머리 아가씨가 응큼한 변태에게 펀치를 날리는 순간, 정신 차려보면 어느새 선배의 자취방을 건너 야속하게 오르는 스탭롤을 보게 되실 겁니다. '유아사 마사아키' 감독,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 :: 夜は短し歩けよ乙女』 입니다. # 1. 능글맞은 변태에게 얻어먹는 술과, 화려한 등불의 축제 거리와, 삼삼한 인생을 조미하는 궤변과, 힘차게 내딛는 달리기와, 어제의 당신과 오늘의 우리를 묶어줄 헌책의 바다와, 한눈에 반한 사랑이 담긴 사과로 내리는 비..

Film/Romance 2019.08.23

너무 줄인걸까 -2- [버드 박스, 수사네 비르 감독]

이전글 : 너무 줄인걸까 -1- [버드 박스, 수사네 비르 감독] 공산품 캐릭터 자, 이제 아쉬운 점들을 이야기해 볼까요? 솔직히. 주인공 파티의 캐릭터 구성은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상투적입니다. 뭔가 '이야기'라는 걸 하라면 으레 갖추어야만 할 것 같은 캐릭터들이 기계적으로 군집해 있는 모양새랄까요. 만능에 가까운 잔다르크 주인공과 수다스럽고 정 많은 여동생, 건강하고 밝고 착하면서 희생정신으로 온데 무장한 스테레오 타입의 백마 탄 왕자님과 차분하고 이성적인 게이 집주인, 자기 자신과 자기 가족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백인 중년 마초, 조용하고 지혜로운 할머니와 회의적 허무주의에 빠진 약쟁이, 어설픈 여자 경찰 연수생에, 살찐 오덕 너드, 유약한 임산부까지. 딱히 작가의 애정이 느껴지지 않는 캐릭터들이 주..

Film/SF & Fantasy 2019.08.15

너무 줄인걸까 -1- [버드 박스, 수사네 비르 감독]

영화의 제목에서처럼 디스토피아 속 사람들 역시 케이지에 갇힌 새의 신세와 다르지 않습니다. 이해할 수 없고, 파훼할 수 없는 압도적 존재 앞에서의 무력감이 영화의 분위기를 육중하게 지배합니다. 극단적인 상황 하에 강제로 발가벗겨진 사람들의 본성과, 관계나 외로움과 같은 인성의 근원에 닿아 있는 관념들에 대한 고찰을 흥미롭게 제시합니다. 영화의 장르는 분명 공포, 서스펜스, 스릴러임에도 불구하고 진중하고 건조한 미스터리 소설과 같은 분위기가 기저에 흐르는 건 이런 철학적 주제의식과도 연관이 있는 거겠죠. 『진격의 거인』의 그것도 얼핏 연상됩니다만, 빌어먹을 쓰레기 극우 작가 놈 때문에 손절한 만화를 다시 떠올리고 싶지는 않으니, 최근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킹덤』을 연상하는 걸로 대신하도록 합시다. '수사..

Film/SF & Fantasy 2019.08.13

미소를 잃은 사람들 ⅱ _ 소공녀, 전고운 감독

미소를 잃은 사람들 ⅰ _ 소공녀, 전고운 감독 # 0. 화려한 싱글라이프와 프로 가사도우미 '미소'의 등장입니다. 배우 이솜의 신비로운 마스크와 앳된 얼굴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희끗희끗한 흰머리와 전동 드릴에 걸린 진한 분홍색 청소솔이 morgosound.tistory.com # 8. 힘든 사람들만을 조명하게 되면 자칫 경쟁에서 패배한 개인을 질책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인물들을 과장된 문법으로 표현함으로써 어떤 군상의 표상처럼 다루고자 하는 작품의 기조를 생각할 때 곤란한 일이죠. 감독은 마지막으로 미소를 으리으리한 대궐 같은 집에 살고 있는 전직 기타리스트, '정미'의 집으로 보냄으로써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합니다. 어디 부자는 늘 행복할 수 있는지 지켜보자는 거죠. 정미와의 첫 대화에서부터..

Film/Drama 2019.05.20

미소를 잃은 사람들 ⅰ _ 소공녀, 전고운 감독

# 0. 화려한 싱글라이프와 프로 가사도우미 '미소'의 등장입니다. 배우 이솜의 신비로운 마스크와 앳된 얼굴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희끗희끗한 흰머리와 전동 드릴에 걸린 진한 분홍색 청소솔이 도드라지는군요. 이목을 끄는 인상적인 오프닝입니다. 미소가 청소하는 곳은 친구의 집이었네요. 커피 한잔 하자는 말을 냉정하게 거절당하면서도 천연덕스레 쌀을 빌려달라 말하는 미소. 한심한 듯 쳐다보는 친구의 시선과 그런 난처한 상황에서의 곤란함으로 전혀 인지하지 않는 미소의 대사와 표정에서 굉장한 캐릭터성을 읽게 됩니다. 친구에게 빌린 (이라 쓰고 동냥받은 이라 읽을) 쌀을 허술하게 비둘기에게 모이로 주고서 별 수 없다는 듯 고즈넉한 바에서 담배에 위스키를 즐기는 여기까지 3분. 감독은 독특하고 독보적인 캐릭터를 멋지게..

Film/Drama 2019.05.13

단편영화가 외면받는 이유 _ 차장님은 연애 중, 안지희 감독

# 0. 단편영화를 권하는 이유라는 제목으로 강제규 감독의 을 리뷰했었는데요. 이 영화는 그와 정반대 되는 영화라 할 수 있겠네요.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단편영화에 대한 선입견들이 없지 않죠. 이 영화는 그 모든 부정적인 선입견들의 집합이라 할 법합니다. '안지희' 감독, 『차장님은 연애 중 :: Boss in Love』입니다. # 1. 좋은 퀴어영화는 몰입해 보다 보면 어느새 퀴어로서의 속성이 느껴지지 않도록 만든 영화들입니다. 사랑이나 우정과 같은 감정의 보편성이 육체적, 정신적 성별이나 지향성을 아득히 극복한다는 것을 정서적으로 증명함으로써 막연한 선입견과 차별이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가를 보여주는 영화들이죠. 평등은 결과의 양적 균형만을 위해 다양성이 말살된 세상에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성의 ..

Film/Comedy 2019.03.11

신앙, 과학, 철학 _ 그래도 지구는 평평하다, 다니엘 J 클라크 감독

# 0. 가볍게 사상검증부터 하고 시작할까요. 여러분은 지구가 둥글다고 생각하시나요, 평평하다고 생각하시나요. 혹시 원반 주변으로 빙하에 둘러싸여 있다고 믿는다거나 아날로그시계처럼 '달'과 '해'라는 등불이 원반 위를 돈다고 믿으시진 않으신가요? 아마 대단히 높은 확률로 구체라고 생각하시겠죠.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당연한 이야기죠. 지구가 둥글다는 건 영국이 섬나라라는 걸 누구나가 알고 있는 것처럼 상식적인 이야기입니다. '다니엘 J. 클라크' 감독, 『그래도 지구는 평평하다 :: Behind the Curve』입니다. # 1. 지구는 구가 맞습니다. 의심의 여지가 없는 과학적 근거가 차고 넘치죠. '지구가 평평한 원반 모양이다'라는 명제는 분명 거짓입니다. 하지만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는 사람(이후..

꿀노잼 성장드라마 _ 범블비, 트래비스 나이트 감독

# 0. 마이클 베이의 막장 트랜스포머 시리즈의 리부트, 그 첫 번째 작품입니다. 이를테면 트랜스포머 홈커밍이랄까요. 딱히 새로운 아이디어가 없으면 리부트 하는 게 트렌드인가 보죠. 영화도 리부트, 드라마도 복고풍, 게임도 M, 디아블로도 이모탈. 그럼에도 세태에 편승하지 않고 내적 성장에 자체 슬로모션이 걸려버린 망해버린 자식 놈을 리부트 시키지 않으시는 우리의 부모님들께 감사 인사를 드리며 황급히 영화 얘기로 넘어가 봅시다. '트래비스 나이트' 감독, 『범블비 :: Bumblebee』입니다. # 1. 시작부터 설 연휴마다 펼쳐지는 어설픈 발음과 어울리지 않는 한복 차림의 외국인 노래자랑만큼이나 상투적인 오토봇 진영과 디셉티콘 진영의 축제 한마당이 펼쳐집니다. 전작에 비하면 상당히 소소해진 총알 주고받..

Film/SF & Fantasy 2019.01.07

영화 - 배우 = 0 _ 마약왕, 우민호 감독

# 0. 벌써 2018년도 다 지나갔네요. 야심한 밤, 미떼 광고 속 아저씨들처럼 스웨터 차림에 핫초코 한잔 뽑아 들고 창가에 서서 지난 한 해를 떠올려 봅니다. 영화를 좋아하시는 분들에게 2017년은 아마도 김수현 주연 의 광풍이 마음에 깊은 상처를 남기고 간 해로 기억되시겠죠. 곱게 눈이 내리는 화이트 크리스마스 날 모텔로 향하는 커플을 본 솔로의 마음처럼 너덜너덜 해진 팬들에게, 12월 끝자락에 혜성같이 나타난 장준환 감독의 은 1달 만에 뽑기 성공한 무신사 할인 쿠폰처럼 따뜻하셨을 겁니다. 다행히 올해 2018년은 과 같은 인피니티 건틀렛 장착한 타노스가 나타나진 않았습니다만, 슬프게도 유례를 찾기 힘든 망작의 다단 히트에 멍든 한 해로 기억됩니다. 관상과 이승기 팬덤 빨로 날로 먹으려다 체한 이..

Film/Thriller 2018.12.20

20% 부족할 때 _ 아메리카 타운, 전수일 감독

# 0. 미군부대 근처에 만들어진 기지촌, 그곳에서 자의 반 타의 반의 성매매를 했던 소위 '양공주'들과 그런 양공주에게 첫사랑을 느낀 사진관 소년의 비극입니다. 오프닝의 콘돔이 버려진 차갑고 건조한 벌판, 그 위를 가르는 찢어질 듯한 비행기 소리처럼 일관되게 삭막하고 투박합니다. 모든 순간에 온기도 정서도 없습니다. 다들 나름의 절실함을 살지만 그들 모두는 방치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사는 게 당연한 줄만 알았던 시대, 그렇게 사는 게 당연한 줄만 알았던 공간을 다룹니다. 아이템은 매력적이죠. 아이템만 매력적이란 게 문제지만요. 전수일 감독, 『아메리카 타운 :: America Town』 입니다. # 1. 냉정히 만족스러운 점수를 주진 못할 것 같습니다. 주조연 가릴 것 없이 배우들의 억양이나 대사처리에..

Film/Drama 2018.12.18

두 글자로, 손절 [성난황소, 김민호 감독]

전작 『동네사람들』 리뷰에서 '김새론' 양을 너무 심하게 까서 였을까요. 납치에도 고작 셀프 이발만 했던 아저씨가, 웬 듣도 보도 못한 리뷰어 따위에게 아끼던 동네 꼬맹이가 털리는 걸 보더니 머리끝까지 화가 나 벌크업을 잔뜩 하고 장첸에게 죽은 장이수를 예토 전생시켜 옆구리에 차고 득달같이 쫒아옵니다. 정신 나간 불수능에 야귀가 되어버린 수험생들을 현빈마냥 무찌르며 가까스로 도착한 극장에서 거친 숨을 몰아 쉬는 찰나. 기어코 그곳까지 쫒아온 아저씨는 범죄도시, 원더풀 고스트, 동네사람들이라는 탄환을 제 멘탈의 방탄유리에 꽂아 넣고 선 이렇게 말합니다. "아직 한발 남았다." '김민호' 감독,『성난황소』 입니다. 클리셰를 찾아라 예상하시는 그 영화, 그 대로입니다. 그 배우 주연, 그 배우들 조연. 그 플..

Film/Action 2018.11.26

섹시한 가영씨 _ 밤치기, 정가영 감독

# 0. 영화를 좋아합니다. 좋은 감독들이 정성스레 준비한 이야기를 듣노라면 고작 두어시간 동안만에 수십년의 인생을 덤으로 사는 느낌이 든 달까요. 문지방을 넘는 데만 성공하면 수백명의 사람들이 수백억의 돈과 수년여의 시간을 들여 만든 온전한 세계를 단돈 만원에 접할 수 있습니다. 엘프와 드워프가 오크 머릿수를 세는 헬름 협곡을 지나, 수다스러운 조지 클루니와 함께하는 우주를 건너, 시가를 비스듬히 문 제이미 폭스의 묵음 D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거 될 수 있는 환상적인 취미죠. 매주 새로운 영화가 개봉하기 무섭게 영화관을 찾는 건 아직 영화보다 더 남는 장사를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영화보다 영화관이란 공간을 조금 더 좋아합니다. 사랑하는 커플들과 사랑하려는 사람들, 외로운 솔로들과 자녀 ..

Film/Romance 2018.11.15

너무 비겁한 거 아닌가요? _ 동네사람들, 임진순 감독

# 0. 또 마동석이 또 적당히 개그 치다 또 적당히 아이를 만나 또 적당히 빡치다가 또 나쁜 놈들 후드려 패는 영화입니다. 임진순 감독, 『동네사람들 :: Ordinary People 』입니다. # 1. 카톡은 하지만 SNS는 하지 않는 신기한 시골에서 여고생이 실종되고, 옥상에서 감성 셀카 어플의 파스텔 톤으로 빨래를 하던 김새론이 사라진 친구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지만 세상 누구도 도와주지 않고, 슈퍼히어로 마동석이 나타나 어른들은 몰라요! 몸뚱이가 2배로 불어난 아저씨와 친구를 찾지만 주검으로 돌아오고, 피납치 전문가 김새론이 cctv와 사람이 드글드글한 병원 한복판에서 납치되자 빡친 마동석이 이보영 남편 후드려 패고, 장광 코앞까지 가서 친절하게 유리문 열어준다는 영화입니다. 은 액션 스릴러입니..

Film/Action 2018.11.11

어린이용 엽떡 순한 맛 _ 벽 속에 숨은 마법시계, 일라이 로스 감독

# 0. 판타지물로서는 반지의 제왕 시리즈의 등장 이후, 액션 어드벤처물로서는 아이언맨의 개봉 이후, 동화라는 장르도 어른들의 주요 소비분야가 되면서 정작 어린이들을 위한 시장은 쪼그라들고 말았습니다. 미취학 꼬꼬마들이야 아빠가 들려준 스마트폰 속 뽀로로나 보면 된다지만 취학 아동이면서 아직 15세 물을 소비할 수는 없는 나이, 이때의 아이들은 오히려 영화 시장의 사각지대에 놓이게 되었다고도 할 수 있겠죠. 겨울왕국의 엽기적인 흥행엔 다 이유가 있습니다. 일라이 로스 감독, 『벽 속에 숨은 마법시계』입니다. # 1. 뭐랄까요. 어린이용 엽기떡볶이, 순한 맛 같습니다. 아시다시피 엽기떡볶이는 매운 음식 브랜드죠. 이 영화도 매워요. 아니, 정확히는 매운맛을 보여주려 노력은 합니다. 근데 타깃이 애들이어서 ..

Film/SF & Fantasy 2018.11.08

아시발꿈 _ 완벽한 타인, 이재규 감독

# 0. 시작부터 독특합니다. 누구나 유해진들이 나올 줄 알았을 텐데 웬 아이들이 물고기 낚시를 하거든요. 늦은 밤 강가에 모여 물고기를 구우며 월식을 구경하면서 그곳이 강인지 바다인지로 다툼을 벌입니다. 쉽게 규정할 수 없는 타인과 개인의 경계를 슬며시 은유하며 이후 어른이 된 캐릭터들도 은근히 들이밉니다. 능구렁이 같네요. 재밌습니다. '이재규' 감독, 『완벽한 타인 :: Intimate Strangers』입니다. # 1. 수십 년이 지나 친구들이 모입니다. 석호의 집들이 겸 월식 구경 겸 식사 모임이네요. 유해진과 염정아, 조진웅과 김지수, 이서진과 송하윤 등의 낯익은 얼굴들이 앞다퉈 스크린에 등장해 무섭게 대사를 쏟아냅니다. 바삐 대화가 오가는 사이 인물들의 배경과 관계, 성격에 대한 소개가 이루..

Film/Comedy 2018.11.05

그냥 퀸이 깡패임 _ 보헤미안 랩소디, 브라이언 싱어 감독

# 0. 전기 영화는 늘 어렵습니다. 눈 시퍼렇게 뜬 마니아들이 영화가 좋으면 누가 깔까 봐 화가 나 있고, 영화가 안 좋으면 감독을 조지느라 화가 나 있거든요. 실화 영화처럼 대상이 서사면 좀 수정해도 넘어 가지지만, 실존 인물의 전기는 까딱 잘 못 건드리면 부두술사 빙의한 팬들의 저주를 맨몸으로 받을 각오를 해야 합니다. 아슬아슬한 줄타기에 실패하면 인생 조지는 거 한 순간이죠. 그럼에도 전 역적이 될 각오를 했습니다. 백만 퀸덕들이 죽일 듯 한 눈으로 죽창을 들고 있겠지만 이불 안에서라면 제 절개는 쉬이 꺾이지 않죠. 미리 말씀드리건대 전 이 영화에 불만이 많습니다. 브라이언 싱어 감독, 『보헤미안 랩소디 :: Bohemian Rhapsody』입니다. # 1. 우선 제목부터 마음에 안 들어요. 보헤..

Film/Drama 2018.11.04

모두에 대한 모욕 _ 창궐, 김성훈 감독

# 0. 면전에 대놓고 욕을 들으면 이런 기분일까요. 감독이 나타나 얼굴에 침을 뱉고 도망가면 이런 기분일까요. 아닙니다. 그래도 이거보단 기분이 덜 나쁠 것 같습니다. 영화를 보는 동안 얼마들지 않은 관객 중 1/3이 중간에 일어났습니다. 몇몇으로부터는 욕하는 소리도 들었습니다만 그게 제가 한 소린지 나가는 사람들이 한 소린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남은 관객들은 주요 인물들이 죽어나갈 때마다 실소를 터트리거나 짜증을 냅니다. 앞의 관객이 휴대폰을 꺼내도 아무도 화를 내지 않습니다. 누가 전화 통화를 하며 큰 소리로 "야! 지금 ㅈ같은 영화 보고 있어!"라 소리쳐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여러모로 대단한 영화를 봤습니다. 하고 싶은 얘기가 많습니다. 빨리 가죠. '김성훈' 감독, 『창궐 :: Ram..

Film/Horror 2018.10.30

물이 반이나 있네 _ 스타 이즈 본, 브래들리 쿠퍼 감독

# 0. 약쟁이 록스타 남편이 마누라 키워놓고 승천하자 마누라가 이제 다신 사랑 안 해 하는 영화입니다. 1937년 처음 시작한 뮤지컬 영화의 4번째 작이라고는 하는데요. 제일 최신작이 1976년 작이라는군요. 그러니까 일제강점기 때 처음 만들어서 박정희 총 맞기 3년 전에 리메이크하고 이번에 새로 만들었단 거네요.... 이 정도면 사실상 새 영화라 봐야겠죠. 브래들리 쿠퍼 감독, 『스타 이즈 본 :: Star is born』입니다. # 1. 감독은 섹시가이 브래들리 쿠퍼입니다. 돈이 썩어 나는 배우가 포커페이스 누나 데리고 영화 찍었습니다. 결과물은 뭐라 설명하기 힘들 정도로 애매합니다. 본인이 스타라 그런지 화려한 셀럽의 삶과 이면의 어둠을 섬세하게 표현하기는 하는데 연출에서의 장점은 딱 그거밖엔 없..

Film/Drama 2018.10.27

방치된 사람들에 대한 진중한 시선 [미쓰백, 이지원 감독]

영화는 소외된 사람들의 상처, 그리고 그 모두에 대한 연민을 이야기합니다. 주요 인물들은 모두가 소외되고 고립된 사람들입니다. 미쓰백과 지은은 물론이거니와, 미쓰백에게 절망적인 유년기를 물려준 엄마 정명숙, 심지어 지은의 아비 김일곤과 그 애인 주미경도 악인이긴 하지만 어찌 되었든 의지할 곳을 상실한 사람들이죠. 그들의 서로에 대한 폭력과 냉소의 연쇄, 대물림의 참상이 이어집니다. 그 사슬을 끊어낼 수 있을까. 그럴 수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여기에 대한 감독 나름의 대답을 이야기의 형식으로 풀어갑니다. '이지원' 감독,『미쓰백』 입니다. 지옥같은 연쇄를 끊어낼 수 있을까 감독은 사각지대에 방치된 위태로운 삶을 이야기합니다만, 아이러니하게도 상처받은 인물들 사이사이로 각자의 일상을 사는 평범한 사람들..

Film/Drama 2018.10.16

Your Friendly Neighborhood [베놈, 루벤 플레셔 감독]

베놈이 단독시리즈 주인공으로 나온다고 합니다! 그것도 무려 믿고보는 배우 톰 하디와 함께!! 기대가 안될 수가 없죠. 데드풀 게 섯거라! 소니-형 안티히어로가 간다! 분명 피 칠갑하는 쿨간지 내뿜는 빌런의 모습을 보여줄 겁니다. 쿨 시크하게 귀찮게 하는 놈들이라면 착한 놈이든 나쁜 놈이든 다 때려잡는 박력! 짐승과 괴물의 중간 어딘가의 괴기한 움직임! 멀리서 지켜보는 스파이디의 뒷모습을 쿠키영상으로 땋! 흥미진진한 새로운 유니버스의 시작!!! 응? PG-13이라고요? 그럼 15세란 거잖아? 베놈인데? 설마! 또 닦을 거라고? 아니야!!! 이 기생충 녀석, 내 머리에서 나가!!!!! '루벤 플레셔' 감독,『베놈 :: Venom』 입니다. 사랑꾼, 베놈 영화를 보고, 인정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더 이상 당..

Film/SF & Fantasy 2018.10.07

범죄 3, 드라마 7 [암수살인, 김태균 감독]

개인적으로는 지금까지 본, 올해 개봉한 한국 상업영화들 중에선 이게 의심의 여지 없이 1등, 1등이라 생각합니다. 사실 이 영화도 한 해를 대표할 최고의 영화... 라고 하기면 좀 빠지는 점들이 없잖아 있긴 하지만, 그래도 이거보다 나은 영화는 없었다. 라고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끽해야 뒤를 이을 괜찮은 영화라면 공작, 안시성, 버닝, 곤지암, 너의 결혼식 정도 될까요? 지갑에 수북이 쌓인 도장 찍힌 티켓들을 보며, 한국영화에 때려 박은 티켓값을 생각하니. 새삼, 씨X이네요. 여튼, 그런 이유로 이 영화는 최대한 스포일러를 피해 리뷰하려 합니다. 같은 돈 써야 한다면 이런 영화에 돈을 써야 한다고 생각하니까요. '김태균' 감독,『암수살인』 입니다. 웰-메이드 범죄 드라마 스스로 살인을 저질렀다..

Film/Drama 2018.10.06

게으르거나 안일하거나 [원더풀 고스트, 조원희 감독]

오늘은 쓸데없는 얘기를 줄이겠습니다. '죽이고 싶은'의 조원희 감독이 이미 죽은 귀신 장르를 데리고 죽이고 싶은 영화를 가지고 왔거든요. 덕분에 영화를 보고 나서 이걸 예매한 절 죽이고 싶었죠. 명절. 감동. 코미디. 어후 지겨워. 저 세 글자만 들어도 딱 각이 나오시죠? 꼰대가 제 멋대로 정의한 훈훈한 청춘, 닭똥 같은 눈물 뚝뚝 흘리는 이쁘장한 아역, 양산형 아침드라마에서나 볼법한 가족과 연인의 어색한 콜라보, 삼류 양아치 팔뚝에 새겨진 '차카게 살자' 식의 권선징악, 억지로 접붙인 공동체와 '씨X 제발 좀 감동해주면 안 될까?'라는 2시간에 걸친 감정 구걸. 배우 이미지와 개인기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억지 개그. 네, 정답. 아냐! 이 영화는 명절. 감동. 코미디에 귀신을 더했다고! 아~ 귀신~~?..

Film/Action 2018.10.04

마리오네트 _ 협상, 이종석 감독

# 0. 윤제균 제작자님에 대한 세간의 오해가 너무나도 많습니다. 가슴 아픈 일이죠. 추석 시즌만 되면 영화관에 쓰레기 같은 마이너카피작들 걸어서 돈 빼먹으려 든다라거나, 관객을 대화 상대가 아닌지 주머니 속 호구 물주로만 본다라거나, 사람들을 감정적으로만 자극하는 삼류 신파극만 만든다라거나 하는 식인데요. 이런 비겁한 날조가 아직도 판치다니. 심각한 문제가 아니지 않지 아니할 수 없지 않습니다? 윤제... 아니, 이종석 감독의 『협상 :: THE NEGOTIATION』 입니다. # 1. 감독님에 대한 오해들을 볼 때면 너무나도 마음이 무겁습니다만 제 이런 부질없는 걱정에도 불구하고 우리 한국영화산업의 수호자, 대한민국 크리에이터의 자존심, 매번 참신한 시도로 새로운 시대를 여는 혁명가, 윤제균 감독님은..

Film/Thriller 2018.09.28

캐릭터를 생성하시겠습니까?_ [안시성, 김광식 감독]

영화 제목을 듣는 순간부터, 우리 모두는 이 영화가 어떻게 흘러갈지 알고 있습니다. 당 태종 이세민이 15만 대군을 우르르 몰고 와서 안시성을 공격하다 우주 방어 전문가 양만춘에게 막혀 열폭하고, 에라이하고 토성 쌓았더니 양만춘이 토성 낼름 뺏어가면서 눈깔 주고 GG친다는 내용이죠. 네? 그걸 어떻게 아냐고요? 저처럼 수업시간에 조셨나 보군요. 이럴 땐 순진하게 모르는 티를 내기 전에 저처럼 꺼무위키를 켜 안시성 전투를 찾아보는 게 좋습니다. '김광식' 감독,『안시성』 입니다. 공들여 만든 전쟁신 물론 그렇다고 2시간 내내 전쟁만 할 수는 없겠죠. 그럴만한 사료도 충분치 않거니와, 사료가 충분하다 하더라도 2시간 내내 전쟁만 하면 추석 기념으로 자식 손주들 거느리고 영화관을 찾은 어르신들이 당 태종보다 ..

Film/Action 2018.09.24

땅의, 땅에 의한, 땅을 위한 _ 명당, 박희곤 감독

# 0. 월세 15만 원짜리 반지하 단칸방에서 종부세 기사들을 읽으며 현타가 오던 차에, 민족의 명절 추석을 맞아 조물주 위의 건물주가 되고 싶은 수많은 사람들의 염원을 담아, 돈 많은 인간과 권력 잡은 인간과 왕손 금수저가 비싼 땅을 놓고 2시간 동안 싸우는 영화를 만들었다기에 보고 왔습니다. 역시 현실도피엔 대리만족만 한 게 없죠. 문제는 이 영화가 대리만족도 제대로 못시켜주는 영환 줄은 몰랐단 거지만요. '박희곤' 감독, 『명당 :: FENGSHUI』입니다. # 1. 요약이랄 것도 없습니다. 이 영화는 그냥 땅이에요. 모든 게 땅입니다. 이원근이 고생하는 이유도 땅 때문이고, 조승우가 망한 것도 땅 때문이고, 백윤식이 잘 나가는 것도 땅 때문이고, 김성균이 막 나가는 것도 땅 때문이고, 지성이 고종..

Film/Drama 2018.09.24

욕망의 항아리 _ 아이 엠 러브,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

# 0. 캐스팅만으로 영화가 예상되는 배우들이 있습니다. 김명민이 아빠랍니다. 재난 터지고 가족 구하러 발버둥 치겠죠. 류승룡이 주연입니다. 약자를 바보로 묘사하다 얻어터지면서 눈물 짜내는 영화겠군요. 강하늘, 박서준 같은 배우들은 감독이 강요하는 '건강한 젊은이'를 기계적으로 연기할 겁니다. 조진웅은 바바리에 올백머리로 등장할 테고, 김윤석은 면도 안 하고 2시간 내내 뛰어다니겠죠. 임원희는 얼굴개그를 할 테고, 박철민은 말장난을 할 테고, 김정태는 누군가를 때리다가 마지막엔 역관광 당할 테고, 뭐가 됐든 고창석은 그 옆에서 귀엽게 웃고 있을 겁니다. 갑수 옹은 돌아가실 타이밍을 재고 있을 테고, 이경영은 두 상영관에 동시 출현 중일 테고, 김민교와 정상훈은 굳이 스크린에서까지 SNL을 찍고 있겠죠. ..

Film/Drama 2018.09.03

7000원에 영화 세편 _ 델마, 요아킴 트리에 감독

# 0. 영화의 서사는 간결합니다. 초능력 가진 짱짱녀 딸이 각성 전에 사고를 치고, 딸의 능력을 두려워하는 엄마 아빠가 딸을 담그려 하지만 역관광 당하고, 마침내 능력을 각성한 딸이 여자 친구와 뽀뽀한다는 영화죠. 네. 이 영화는 백하ㅂ... 간결한 서사임에도 관객의 머릴 아프게 만드는 건 116분의 런타임 내내 쏟아지는 수많은 상징과 은유 때문입니다. 그것도 적당히 아는 놈 알고 모르는 놈 몰라란 식으로 숨겨두는 것도 아니고 대놓고 쏟아냅니다. 눈앞에다 흔들면서 '야! 이거 암시야, 암시! 뭐게! 맞춰봐!' 라 합니다. 관객들은 놀란만으로도 충분히 벅찹니다. 왜 북유럽 갬성 형님들까지 이러시는 건가요. '요하킴 트리에' 감독, 『델마 :: Thelma』입니다. # 1. 엄마는 하반신 불구입니다. 아빠..

Film/Thriller 2018.08.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