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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Thriller

7000원에 영화 세편 _ 델마, 요아킴 트리에 감독

그냥_ 2018. 8. 2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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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화의 서사는 간결합니다. 초능력 가진 짱짱녀 딸이 각성 전에 사고를 치고, 딸의 능력을 두려워하는 엄마 아빠가 딸을 담그려 하지만 역관광 당하고, 마침내 능력을 각성한 딸이 여자 친구와 뽀뽀한다는 영화죠. 네. 이 영화는 백하ㅂ...

 

간결한 서사임에도 관객의 머릴 아프게 만드는 건 116분의 런타임 내내 쏟아지는 수많은 상징과 은유 때문입니다. 그것도 적당히 아는 놈 알고 모르는 놈 몰라란 식으로 숨겨두는 것도 아니고 대놓고 쏟아냅니다. 눈앞에다 흔들면서 '야! 이거 암시야, 암시! 뭐게! 맞춰봐!' 라 합니다. 관객들은 놀란만으로도 충분히 벅찹니다. 왜 북유럽 갬성 형님들까지 이러시는 건가요.

 

 

 

 

 

 

 

 

'요하킴 트리에' 감독,

『델마 :: Thelma』입니다.

 

 

 

 

 

# 1.

 

엄마는 하반신 불구입니다. 아빠는 창조론을 믿는 원리주의 기독교 신자인데 직업은 의사입니다. 딸 '델마'는 학교 때문에 따로 사는 과학도입니다. 강의 듣는데 까마귀가 날아들더니 창에 처박힙니다. 기숙사에서 자고 있는데 뱀이 돌아다닙니다. 학교에 겁나 큰 수영장 있습니다. 부럽다. 물이 반복적으로 나오고 그때마다 델마는 물에 들어갑니다. 노골적이죠. 델마와 아냐 커플은 홀딱 벗은 남자들 춤추는 현대무용을 보러 다닙니다. 인싸들은 데이트를 저런 데서 하나 보군요.

 

델마가 생각하면 이루어진답니다. 로또 번호 하나만 쏴 주세요. 영화 내내 눈갱이 쏟아집니다. 초반 Fbi Warning이 괜히 나온 게 아니군요. 동성애 코드도 나오구요. 형제가 무지막지하게 많은 아냐의 가족도 찝찝합니다. 우유에 코피가 쏟아지는 장면도 분명 의도된 연출이겠죠. 언급되지 않던 할머니는 알고 보니 미쳐서 요양병원에 있습니다. 심인성 비뇌전증이라는데요. 우리말인 거겠죠?

 

 

 

 

 

 

# 2.

 

마녀사냥 코드는 특히 노골적입니다. 아빠는 배 타고 호수로 나갑니다. 갑자기 몸에 불이 붙습니다. 물 위에서 불에 타 죽는다라... 의미심장하죠? 델마는 산택을 다니더니 수영을 하고 까마귀를 토합니다. 기독교적인 냄새를 물씬 풍기는 은유와, 중세 마녀사냥에 기반한 제의적인 오컬트 요소가 델마의 삶에 무자비하게 쏟아집니다. 그 덕에 어느 지점에 포커싱 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영화처럼 보이기도 하죠.

 

미리 말씀드리건대, 저는 정답을 내려는 생각이 없습니다. 생각 이전에 능력도 없구요. 성경의 은유와 북유럽 오컬트를 제가 무슨 수로 알까요. 다만 찝찝한 의문들만 던져보며 감상을 공유하고자 합니다. 영화는 암기하고 해석해서 정답을 내는 숙제가 아니라, 궁금해하고 상상해보는 유희니까요.

 

 

 

 

 

 

# 3.

 

파괴적 기독교 영화. 델마

 

상은 델마의 의지에 지배됩니다. 나약한 인간의 몸에 깃든 절대자의 권능이죠. 신성과 인간의 중간 어느 지점에 있는 존재. 어쩌면 델마를 예수로 볼 수 있지 않을까요?

 

그렇다면 아빠는 누굴까요. 영화 초반 델마는 하루 일과를 거짓으로 전하지만 아빠는 이미 홈페이지를 살펴보고 딸의 하루를 꿰고 있습니다. 델마의 하루를 미리 아는 존재. 델마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알려야만 하는 존재. 어쩌면 신이라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요? 델마가 아빠를 만나 잘못을 얘기하는 장면은 아빠에게 고민을 상담하는 딸의 그것이라기보단 절대자에게 비는 고해성사처럼 묘사됩니다. 아빠 역시 혼내거나 같이 고민하는 게 아니라 델마의 행동을 허락하고 용서하죠. 마치 델마의 올바름을 규정하는 신처럼. 선을 밟는 느낌이 살짝씩 들지만 뭐 어때요. 내가 만든 영화도 아니고. 계속 가 봅시다.

 

군데군데 델마 주위를 맴도는 뱀이 나옵니다. 아담과 이브, 선악과와 뱀에 대한 얘기는 어디서 주워들은 기억이 납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뱀은 불길함과 간교함의 상징이라죠. 델마가 갈등하고 유혹받을 때마다 주위를 맴돌던 뱀은 기어코 델마가 담배에 입을 대며 타락하자 입으로 들어갑니다. 예수의 타락? 까지는 너무 간 거 같고요. 시련 정도로 생각하면 적당할 것 같네요.

 

 

 

 

 

 

# 4.

 

앞서 말씀드렸듯 영화는 물은 적극적으로 활용합니다. 수영장이나 호수에 빠져서 발버둥 치는 델마. 보통 물은 생명, 탄생을 상징하곤 하죠. 그렇다면 양수로도 해석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렇다면 말미에 호수에 스스로 들어가 다시 태어나며 까마귀를 뱉어내는 장면은 새로운 탄생이자 부활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까마귀는 무엇을 의미할까요. 영화 중반 아냐와 술 담배를 하던 델마는 "Jesus Satan"이라는 말을 합니다. 전이나 후나 사탄이라는 단어는 다시 등장하지 않아요. 이건 아무래도 감독이 의도적으로 넣은 단어겠죠. 

 

저는 까마귀가 이 사탄을 의미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까마귀가 창에 막혀 델마에 닿지 못하는 건 델마의 신실함에 사탄이 끼어들 여지가 없었단 것은 아닐까요? 타락하며 뱀을 삼켰던 델마가 마지막 호수에서 기어 나와 까마귀를 입에서 내뱉는 건 델마가 사탄의 악의를 극복하고 각성해 부활함을 의미한다 보면 얼추 구색은 갖춰집니다.

 

아빠를 불태워 죽이는 건 신에게서 독립된 자아를 세웠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그렇게 자유로운 초월자가 된 델마가 앉은뱅이 엄마를 일으켜 세우고 집을 나서는 건 자유의지를 실천하며 나아간다는 것으로 볼 수도 있을 겁니다. 만약 이런 식으로 본다면 이 영화는 21세기의 예수, 그리고 기독교는 성경과 교리에 매몰된 원리주의를 극복한 존재여야 한다는 공격적이고 파격적인 제안으로 해석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물론, 아님 말구요.

 

 

 

 

 

 

# 5.

 

비틀린 오컬트 영화. 델마

 

이번엔 델마를 현대에 등장한 마녀로, 그런 델마를 몰아붙여 마녀를 사냥하는 영화로 봅시다. 사실 이쪽이 앞선 기독교 코드보단 훨씬 직설적이고 노골적이긴 합니다. 심인성 비뇌전증에 대해 얘기하면서 대놓고 옛날 마녀로 몰려 죽임을 당했던 사람들과 폐인이 된 할머니 등을 공들여 보여주니까요. 

 

재밌는 건 델마가 억울하게 마녀로 몰린 사람이 아니라 진짜 마녀란 거겠죠. 델마의 권능은 거짓이 아니니까요. 앞서와 달리 뱀이나 까마귀는 이번엔 마녀의 능력을 시각화하는 아이콘으로 볼 수 있을 겁니다. 우유에 코피를 쏟는 장면은 의식적인 행위로, 동생을 얼음 속으로 보내는 장면은 제물이나 마녀 등장의 불길한 징조를 상징한다고 바라보면 굉장히 제의적인 느낌이 들죠. 주사를 준비하는 아빠의 머리 위로 긴 장총이 보이는 연출이나 지옥을 영원히 불에 데이는 고통으로 설명하는 아빠를 불로 죽이는 장면은 옛날의 폭력적이고 맹목적인 마녀사냥에 대한 통렬한 조롱으로 볼 수 있을 겁니다.

 

새로운 마녀 델마는 해석이 불가능합니다. 아빠가 이야기하는 신실함으로도, 의사가 분석하는 의학으로도 델마는 이해되지 않습니다. 자신이 낳은 딸임에도 그녀의 능력이 두려웠던 부모는 딸을 죽이려 합니다. 그런데 혹시 델마를 죽여야겠다고 생각하는 엄마와 아빠에 어느 정도 공감이 되지는 않으시던가요? 전 그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인권, 올바름, 도덕이 어쩌고 하는 인간들도 결국 얼마나 나약한 존재들인가. 이해할 수 없는 압도적인 존재에 대한 막연한 공포에 우리 인간은 얼마나 무기력한 가를 보여주는 건 아닌가 하고 말이죠.

 

 

 

 

 

 

# 6.

 

스릴러의 탈을 쓴 성장드라마. 델마

 

번엔 젊고 여리고 이성과 욕망이 충돌하는 인간 델마의 성장 드라마로 바라봅시다. 델마의 권능은 그런 내적 갈등을 과장하고 증폭하여 과감한 시각화를 이끄는 극화된 장치로 보는 거죠. 아빠는 욕망을 통제하는 종교적 제약으로, 엄마는 전통적인 가족이 주는 불안과 부담으로 해석해 봅시다. 아냐는 통념을 벗어나는 사랑과 그로 인한 내적 갈등을, 친구들은 젊은 시절의 불안하고 충동적인 일탈로 바라보구요.

 

규범과 강요가 충돌하는 가운데 델마는 자신의 솔직한 감정을 부정하고 아냐를 떨쳐 보냅니다. 하지만 그것이 진정 자신을 위한 것은 아님을 알게 되고, 자신의 솔직한 감정을 인정하게 되죠. 기계적인 종교적 제약도, 기능적으로 작동하는 가족도 진정한 성장에는 걸림돌에 불과합니다.

 

이런 식으로 델마가 영화 시작 자신의 삶을 옥죄는 모든 외부 가치들을 극복하고 자아를 찾은 독립된 인간으로 성장하는 과정으로 바라보는 거죠. 영화 내내 델마의 눈앞에서만 머물던 카메라가 마지막에서야 멀리서 델마를 조망하는 건 그녀가 비로소 독립된 주체가 되었음을 보여주는 건 아닐까요?

 

 

 

 

 

 

# 7.

 

어떤가요? 개소리라구요? 저도 알거든요?

 

물론 이 모든 이야기는 대단히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해석이며 많은 부분에서 조악하고 또 작위적이기도 할 겁니다. 다른 분들은 또 다른 영화로 받아들이셨을 수도 있겠죠. 어떻게 바라보든 좋습니다. 다만 정답에 연연하진 않았으면 합니다. 살면서 만나게 되는 많은 것들이 제게 정답을 요구했지만, 적어도 제가 아는 영화란 장르는 그러지 않아서 좋았던 거니까요. 그냥 제가 바라본 영화는 이러했다. 당신은 어떤가요? 정도가 이번 리뷰의 의의겠네요. 썩 유쾌했던 요아킴 트리에 감독의 도발, <델마>였습니다.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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