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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SF & Fantasy

꿀노잼 성장드라마 _ 범블비, 트래비스 나이트 감독

그냥_ 2019. 1. 7. 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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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마이클 베이의 막장 트랜스포머 시리즈의 리부트, 그 첫 번째 작품입니다. 이를테면 트랜스포머 홈커밍이랄까요. 딱히 새로운 아이디어가 없으면 리부트 하는 게 트렌드인가 보죠. 영화도 리부트, 드라마도 복고풍, 게임도 M, 디아블로도 이모탈. 그럼에도 세태에 편승하지 않고 내적 성장에 자체 슬로모션이 걸려버린 망해버린 자식 놈을 리부트 시키지 않으시는 우리의 부모님들께 감사 인사를 드리며 황급히 영화 얘기로 넘어가 봅시다.

 

 

 

 

 

 

 

 

'트래비스 나이트' 감독,

『범블비 :: Bumblebee』입니다.

 

 

 

 

 

# 1.

 

시작부터 설 연휴마다 펼쳐지는 어설픈 발음과 어울리지 않는 한복 차림의 외국인 노래자랑만큼이나 상투적인 오토봇 진영과 디셉티콘 진영의 축제 한마당이 펼쳐집니다. 전작에 비하면 상당히 소소해진 총알 주고받기 티키타카가 끝나기 무섭게... 엥? 형이 왜 거기서 나와?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장난전화의 주인공 존~~~~~ 시나가 갑툭튀 하더니 비비탄 총을 갈기며 어색한 막 개그를 던지는데요. 영화 10분도 채 안된 그 순간 전 깨달았죠. 이거 '그런' 영화구나.

 

이 영화는 따뜻함, 정의로움, 규율, 헌신, 보호, 어린이, 가족애, 공동체 이런 거 할 겁니다.

 

갑자기 그도서관이 튀어나오는 개꿀잼 몰카 식 막장 시나리오라든지, 뭐가 뭔지 모를 휘황찬란 슬로 모션 대환장 파티라든지, 카메라로 메간 폭스의 다리를 직접 핥는 듯한 선정적인 연출 따위는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으리란 데 손모가지를 걸 수 있습니다. 쫄리면 뒈지시던가. 미제 꼬맹이들의 살아있는 슈퍼히어로 존 시나가 나와 범블비 뚝배기를 날리고, 사춘기 여자아이에게 F.U. 를 꽂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지구 상에 단 한 명도 없을 테니까요. 스톤 콜드의 스터너 같은 화끈함에 대한 기대는 깔끔하게 버리고 들어갑시다.

 

 

 

 

 

 

# 2.

 

무럭무럭 자라 남의 차량 위에서 방방을 뛰고 하숙집 살림을 박살 내다 못해 교통법규 위반에 체포 불이행, 도주, 살인미수 등을 일삼게 되는 범법행위 계의 음바페, 범블비를 팔자에도 없이 입양한 우리의 주인공 찰리는 아빠를 심장마비로 잃고 새 가족과의 관계를 정립하지 못하는 불안정한 사춘기 소녀입니다. 전직 다이빙 선수인 소녀는 아빠의 갑작스러운 상실을 받아들이지 못한 채 삶의 목적을 잃고 방황하죠. 아빠와의 추억이 깃든 고장 난 자동차에 집착하는, 과거에 머물러 내적 성장이 정체된 인물입니다. 우연히 만나게 된 자신보다 더 고립된 처지의 사고뭉치 입양아를 키우는 과정을 통해 돌아가신 아빠라는 과거의 속박에서 풀려나 이별을 수용할 수 있는 성숙한 존재로 성장한다는... 뭐 그런 이야기죠. 여기까지만 들으셔도 각이 딱 보이시죠? 이 영화는 SF도 액션도 어드벤처도 아닙니다. 성장드라마네요.

 

부모를 잃어 불완전한 성장기를 보낸 사춘기 인격이 자신보다 더욱 미숙한 존재를 만나 부모-자식 관계에서 자식이 아닌 부모의 역할을 맡게 되고 그 과정을 통해 큰 내적 성장에 도달한다... 뭐 그런 영화들 있잖아요? 엘런 페이지의 <주노>로 대표될 법한 온갖 어린 미혼모, 혹은 편부모 영화들이나 <ET>, <킹콩>, 조금 더 넓게 보면 <정글북> 같은 영화들과도 궤를 같이 합니다.

 

 

 

 

 

 

# 3.

 

드라마로의 퀄리티는 썩 훌륭합니다.

 

아빠와의 추억을 회상하는 매개로서 고장 난 차량과 음악을 잡아 범블비와의 자연스러운 교감을 구성합니다. 찰리의 헌신적인 보호를 통해 사회에 적응해 나가는 범블비는 그 특유의 사랑스러움과 만나 더욱 감성적인 존재로 다가오게 되죠. 현실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하는 아빠에 대한 갈증을 다이빙이란 형태로 시각화하고, 그렇게 시각화된 다이빙에 대한 트라우마를 클라이맥스에서 깔끔하게 회수하는 것도 시나리오의 짜임새가 훌륭함을 보여줍니다.

 

범블비가 목소리를 잃는 과정과 그 과정을 극복하는 방식이나 기억을 잃게 되는 동기와 같은, 인과의 개연성을 깨알같이 쌓는 솜씨도 나름 훌륭합니다. 물론 멀쩡한 차를 고치는 걸 도와줄 돈도 없는 박봉의 간호사 엄마가 전망 죽이는 저택에 살고 있다던지, 십 대 소녀의 차고에 멋들어진 오픈카 한대쯤은 당연히 있으며 수리만 하면 멀쩡히 굴러가는 비틀까지 무려 공짜로 받아 2 차량 오너가 되었으면서도 불행하다고 징징대는 꼬라지에 얼탱이가 승천하지만, 뭐 천조국식 동화란 게 다 이 모양이니 그러려니 합시다.

 

 

 

 

 

 

# 4.

 

영화를 따라가다 보면, 아... 이거 평론가들이 좋아 죽겠구나 하는 생각이 딱! 듭니다. '병렬적 구조의 성장드라마'라는 장르 자체가 원래 평론가, 혹은 모 영화 리뷰 사이트의 유저들에겐 별점 3개 반 이상 무조건 먹고 들어가는 장르거든요. 모르긴 몰라도 '그' 사이트엔 '아아- 우리가 그토록 마이클 베이를 참아왔던 이유'라거나 '범블비에게 바치는 가장 따사로운 헌사'라거나 정 그런 말도 못 지을 것 같으면 대충 감독 이름 따다가 '트래비스 나이트의 인상적 시도' 같은 게 달려있을 걸요?

 

여하튼 나쁘게 말하면 진부합니다만 좋게 말하면 새로운 시리즈의 시작으로서 안전한 선택입니다. 가족 소중한 거 모르는 사람 없지만 가족 소중하단 거 싫어하는 사람도 없으니까요. 전작들의 어처구니없는 설정 충돌과 같은 참사 역시 찾아보기 힘들고 미군 짱짱맨 식의 국뽕 코드도 깔끔하게 도려냈습니다. 눈뽕밖에 남는 게 없는 할리우드식 돈지랄 블록버스터물로 전락했던 시리즈에 인간성을 훌륭히 불어넣은 셈입니다. 그간 이런 잠재력을 가진 IP로 시밤쾅이나 찍어댔다니. 마이클 베이는 역시 위대합니다.

 

 

 

 

 

 

# 5.

 

표현에서는 뭐랄까요. 약간 스티븐 스필버그스럽습니다. 아기자기하면서 말랑말랑한 그러면서도 편안하고 특유의 온기를 잃지 않는 연출이 가득합니다. 캐릭터들은 찰리와 범블비를 제외하면 하나같이 동화적이라 직관적으로 받아들이기 편합니다.

 

남은 여력은 두 주인공의 묘사에 쏟아붓습니다. 기억과 말을 모두 잃은 범블비의 불완전함에 대한 표현이나 캐릭터 특유의 귀여움과 사랑스러움을 대단히 섬세하게 잘 묘사합니다. 목소리를 잃은 범블비가 음악을 통해 말을 대신하는 것도 위트와 감성을 함께 건드리는 좋은 연출이네요. 전 이 시리즈의 코어 한 팬이 못됩니다만 제작진이 영화와 범블비에 들인 정성을 보건대 아마 애정이 깊으신 팬들도 만족감을 표하기에 부족하지 않으셨을 것 같습니다.

 

액션의 디테일은 그야말로 괄목할만합니다. 이전 시리즈의 시밤쾅하는 스펙터클은 찾아보긴 힘들지만 대신 디테일을 얻었습니다. 오브제 자체가 대단히 번잡할 수밖에 없는 메카들 임에도 액션씬마다 주변부를 어둡게 날리면서 오브젝트의 명도를 충분히 확보해 움직임을 인지하기 쉽습니다. 마치 프로레슬링을 떠올릴 듯한 아크로바틱 한 액션들 모두 눈이 빠져라 집중하지 않아도 잘 전달될 만큼 동세와 질감에도 공을 많이 들인 티가 납니다.

 

 

 

 

 

 

# 6.

 

여기까지 들어보면 상당히 좋은 영화 같네요. 시나리오 깔끔하고 팬들도 좋아하고 전 시리즈에서 비판받던 단점들도 잘 메워내면서 자기만의 색깔도 잘 만들었습니다. 주제의식도 훈훈하고 범블비의 매력도 잘 살리고 액션씬도 좋고 다 좋네요. 그런데... 영화관을 나서는 뒷맛이 영 찝찝합니다. 다 좋긴 좋아요. 다 좋은데...

 

아! 재미가 없었네요. 진짜 다 좋은데 장르물로서의 재미가 없어요.

 

영화의 가장 큰 문제는 개봉 연도입니다. 지금이 시리즈가 처음 나왔던 2007년이 아니라 2019년이라는 거죠. 스필버그 식의 90년대 갬성이 통하기엔 우린 이미 <다크 나이트>의 치밀함과 <장고>의 박력과 <그래비티>의 압도적 경험과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의 미장센과 <문라이트>의 철학을 봤다는 겁니다. 지금의 기준에선 이 영화의 장르적 매력은 너무 밋밋합니다. 재미가 없어요. 드라마로서의 매력은 그래도 어찌어찌 살아있을지언정 장르물로서의 매력은 그냥 없다시피 합니다. 스크린을 메우는 압도적인 로봇 액션의 쾌감이라는 작품의 최소한의 존재 이유가 되어줄 엔진이 빠져있습니다.

 

그래서 이 영화는 마치 면접, 논술, 합숙, 인턴쉽 준비는 완벽하게 다해뒀는 데 예선 서류심사에서 떨어진 영화 같습니다. 일단 장르물로서의 재미가 있어야 그다음에 다른 매력들이 살아날 텐데 그러지 못합니다. 20년 전 공포영화를 보는 기분이에요. 당시에는 무서웠겠죠. 하지만 20년 전 30년 전 공포영화를 지금 보려고 하면 무섭기는커녕 조악한 분장에 실소를 금하기 어렵습니다. 오프닝만도 못한 클라이맥스 액션씬의 푸닥 거림에 감동하기엔 관객의 눈높이가 너무 높아진 거죠. 수많은 장점들이 있음에도 이 하나의 단점을 가리기는 글쎄요. 쉽지 않아 보입니다.

 

(덩실 덩실)

 

 

 

 

 

# 7.

 

하연수의 마리텔이나 신세경의 유튜브 같은 영화입니다. 재미는 없어요. 슈밤쾅하는 것도 없고 흔해빠진 성장드라마를 내가 왜 여기서 봐야 하나 싶지만 그렇다고 딱히 안 볼만한 불편한 이유도 없어서 범블비의 매력으로 끝까지 쭉 보게는 되는데, 또 다 보고 나면 남는 것도 없고 시간 버린 거 같아서 뒷맛이 찝찝합니다?

 

제 능력으론 이 영화를 한 문장으로 평하기가 쉽지 않네요. 잘 만들었는데... 열심히 만들었는 데... 완성도도 높은 데... 그만큼의 재미는 없는. 이를테면 꿀노잼 평론가용 영화랄까요. '트래비스 나이트' 감독, 『범블비』 였습니다.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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