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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Drama

엄마의 이야기 _ 당신의 부탁, 이동은 감독

그냥_ 2019. 8. 28. 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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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운영 중인 학원은 접었습니다. 사별한 남편은 아직 떠나보낼 준비가 되지 않았습니다. 한평생 잔소리를 쏟아내던 엄마에게 가슴 아픈 말을 내뱉고 말았습니다. 그런 '효진'이 죽은 남편의 하나뿐인 혈육을 거두기로 합니다. 그녀는 16살 아들 '종욱'을 빌어 자신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뭔가를 선택하는 건 포기하는 거야. 그리고 포기한다는 걸 받아들이는 거야.

너가 어떤 선택을 하든 어느 한쪽은 반드시 포기해야 해."

 

 

 

 

 

 

 

 

'이동은' 감독,

『당신의 부탁 :: Mothers』입니다.

 

 

 

 

 

# 1.

 

살다 보면 아프지만 일을 해야만 하는 날들이 더러 있죠. 현실은 마음 같지 않고 숨만 쉬어도 지치고 세상에 홀로 남은 듯 버겁지만 그럼에도 해야만 하는 무언가가 온몸을 짓누르는 듯한 그런 날. 영화는 그런 일상을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의 담백한 독백입니다.

 

책임과 선택의 무게를 이야기합니다. 책임에 당위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선택에 배려는 뒤따르지 않습니다. 스스로 무언가를 선택해야만 하는 상황에 놓인다는 건, 누군가를 책임지는 사람이 된다는 건, 그래서 나이와 상관없이 어른스러워야만 하는 상황에 내몰린다는 건, 엄마가 된다는 건, 생각하는 것보다 더 버겁고 무서운 일이죠.

 

도움을 주겠다고 내민 손조차 너무 무거울 때가 있습니다. 아껴주는 사람들이 건네는 온기조차 데일 듯 뜨거울 때가 있습니다. 위로하겠다고 끌어안는 포옹에 삭신이 쑤시듯 아플 때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매몰차게 밀어내고 미안함에 다시 가슴 아픈 그런 때가 있습니다. 위태로운 사람들끼리 맞대는 손바닥, 데면하게 건네는 눈인사, 무던히 걸어와 옆에 앉는 심심함이 되려 더 편안할 때가 있습니다. 이 영화는 정서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야윌 대로 야위어진 사람들이 서로의 가녀린 손을 버겁게 맞잡는 영화입니다.

 

 

 

 

 

 

# 2.

 

서사의 강렬한 전진보다는 복잡한 사정에 놓인 사람들의 정서적 변화를 진득하게 포착합니다. 한마디 한마디 말에 깊은 피로와 고민이 전달됩니다. 속마음을 털어놓는 순간과 상처 받지 않기 위해 그걸 숨겨야 하는 순간들의 간극을 섬세하게 담아냅니다. 영화는 지극히 단편斷片적이면서, 동시에 단편短篇적입니다. 작품으로서 변주가 풍부하지는 않습니다. 다각적으로 조화된 상황이 덩그러니 놓여 있을 뿐입니다. 일련의 무던함은 장점이자 단점입니다. 감독은 집중력은 관객의 몫으로 넘겨둔 채 온 힘을 끌어모아 느리게 느리게 인물들의 내면으로 걸어갑니다.

 

 

 

 

 

 

# 3.

 

무수히 많은 엄마의 이야기입니다.

 

아이를 사산한 적 있는 '효진'은 16살 장성한 아들의 엄마 노릇을 해야 합니다. '미란'은 처음 하게 될 육아에 걱정과 기대를 함께 품고 있습니다. '명자'는 32살짜리 돌싱 딸은 처음 키워보는 노련한 초보 엄마입니다. '서영'은 신병을 앓다 살기 위해 아이와 가정을 벗어나야 했던 엄마입니다. '주미'는 감당하지 못할 실수로 고립된 미성년자 미혼모입니다. '주미'로부터 아이를 입양하게 될 새부모 역시 나름의 가혹한 사정에 내몰려 있죠.

 

다양한 상황에 놓인 인물들은 '엄마'라는 역할을 고찰하게 합니다. 낳은 사람이 엄마인 걸까. 기른 사람이 엄마인 걸까. 낳은 사람이 엄마라면 '효진'과 '서영'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만약 기른 사람이 엄마라면 '주미'의 눈물은 거짓이 되는 걸까.

 

 

 

 

 

 

# 4.

 

감독은 엄마 다움이란 '낳는 것'과 '기르는 것' 모두로부터 독립된 무언가라 주장합니다. 아이를 위해 무언가를 잃을 각오로 선택하고 그 선택에 대해 책임지는 사람이라 말합니다. 홀로 남을 종욱을 위해 기꺼이 자신의 품을 연 효진도, 10달간 배 아파 아이를 낳고 키워 낼 미란도, 감당하지 못할 아이의 미래를 위해 아이를 부유한 가정에 보내면서 얼굴도 차마 보지 못하는 주미도, 효진의 거친 말에 상처 받고서도 딸의 건강과 끼니를 여전히 걱정하는 명자도, 살아 내기 위해 떠나가버린 아들을 십수 년이 지나도 잊지 못해 미안하다 눈물짓는 서영도 모두 엄마라 말합니다.

 

모두 처음 엄마를 해보는 터라 서툰 사람들이지만 그럼에도 나름의 사랑으로 아이를 대하고 있다 말합니다. 모든 것을 해주지 못한 엄마들의 미안함과 그 미안함에 대한 우리들의 미안함을 말합니다.

 

엄마라는 게 또 삶이라는 게 일방적인 게 아니라 결국 서로 지탱하는 것이라 말합니다. 연쇄적인 것이라 말합니다. 명자의 딸인 효진이 종욱의 엄마를 자처하는 것처럼, 자신이 아이를 책임져 보겠다 말하는 남겨진 아이 종욱처럼. 누군가의 딸과 아들들은 또다시 누군가의 엄마와 아빠가 되어 그렇게 선택하고 책임지고 잃지만 또 나누며 살아갈 것이라 말합니다.

 

 

 

 

 

 

# 5.

 

각기 다른 엄마들을 만들어 모성이란 정서와 역할의 본질을 탐구하려다 보니, 주변에 희생되어 나가는 것들이 없잖아 있기는 합니다. 우선 '김태우'가 연기한 죽은 남편은 졸지에 결혼, 재혼, 삼혼을 하고 배다른 아들과 치매 걸린 어머니만 남긴 채 사고로 요절해 버린 인물이 되었습니다. 각종 엄마들의 설정이란 짐을 혼자 뒤집어쓴 거죠. 대학원생 '정욱'은 "부자 나라에 입양 간 아이들이 부럽다"라는 못된 대사 한마디를 치기 위해 동원된 인물에 불과합니다.

 

주변 인물들 뿐만 아니라 효진을 포함한 모든 엄마들 역시 다소 도구적입니다. 주요 서사와 다소 동떨어진 주미의 이야기는 종욱이 성장했다는 결과를 만들기 위한 데우스 엑스 마키나 같은 느낌도 없잖아 있습니다. 서영이 종욱에게 사과하는 마지막 장면은 앞선 부분들의 톤과 어그러져 이물감이 느껴지기도 하구요. 엄마를 다룰 땐 아이들이 가차 없이 도구적으로 활용되기도 하는데요. 명자를 조명할 땐 주인공 효진마저 그녀를 위한 도구로 전락합니다.

 

 

 

 

 

 

# 6.

 

영화의 한국어 제목은 <당신의 부탁>입니다. 여기서의 '당신'은 누구인 걸까요. 서사 속에서라면 물론 죽은 남편이겠습니다만 생각하기에 따라선 각자의 책임을 만들어낸 모든 등장인물들로, 심지어 조금 더 확장해 본다면 모든 부모들의 책임에 빚져 유지되고 있는 우리 사회 모두가 그 '당신'이라 할 수도 있겠네요. 묘하게 숙연해지는군요. '이동은' 감독, <당신의 부탁> 이였습니다.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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