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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Drama

미소를 잃은 사람들 ⅰ _ 소공녀, 전고운 감독

그냥_ 2019. 5. 13. 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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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화려한 싱글라이프와 프로 가사도우미 '미소'의 등장입니다. 배우 이솜의 신비로운 마스크와 앳된 얼굴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희끗희끗한 흰머리와 전동 드릴에 걸린 진한 분홍색 청소솔이 도드라지는군요. 이목을 끄는 인상적인 오프닝입니다. 미소가 청소하는 곳은 친구의 집이었네요.

 

커피 한잔 하자는 말을 냉정하게 거절당하면서도 천연덕스레 쌀을 빌려달라 말하는 미소. 한심한 듯 쳐다보는 친구의 시선과 그런 난처한 상황에서의 곤란함으로 전혀 인지하지 않는 미소의 대사와 표정에서 굉장한 캐릭터성을 읽게 됩니다. 친구에게 빌린 (이라 쓰고 동냥받은 이라 읽을) 쌀을 허술하게 비둘기에게 모이로 주고서 별 수 없다는 듯 고즈넉한 바에서 담배에 위스키를 즐기는 여기까지 3분. 감독은 독특하고 독보적인 캐릭터를 멋지게 소개하는군요.

 

 

 

 

 

 

 

 

'전고운' 감독,

『소공녀 :: Microhabitat』입니다.

 

 

 

 

 

# 1.

 

미소는 남자 친구 '한솔'과 함께 작은 골방에 있습니다. 애인이 보고 싶었으니까요. 꼬마 때나 하던 손바닥 치기를 합니다. 심심하니까요. 주황색 캐리어를 엎어놓고 그 위에서 하는군요. 마땅한 테이블이 없으니까요. 갑자기 섹스를 하려 합니다. 한지 제법 됐으니까요. 막상 옷을 벗더니 이내 관두기로 합니다. 너무 춥거든요. 그리곤 봄에 하자고 말합니다. 그땐 안 추울 테니까요. 커플은 세상 행복한 표정으로 서로를 끌어안습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좋으니까요.

 

두 사람의 표정엔 사랑 이외의 감정, 이를테면 아쉬움이나 속상함이나 부러움 혹은 질투심 따위가 아무것도 엿보이지 않습니다. 모든 말과 행동은 직관적이고 감정적이고 말초적이며 직접적이고 순수하며 또 솔직합니다. 미소네는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1초 1초의 현재를 사는 커플이죠.

 

앞서 오프닝 씬에서 미소를 본 관객이 그녀의 정체성을 혹여나 '염치없음'으로 읽을까 싶어 조금은 더 직접적으로 묘사하는 장면이라 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녀와 그녀의 남자 친구는 괴짜로 보일만큼 너무할 정도로 소박하고 또 솔직한 사람들입니다. 다만 다음날 출근을 위해 집으로 나선 한솔을 마중 나온 미소와의 대화에서 두 사람의 가치관에 조금의 차이가 있음이 엿보입니다. 복선이죠.

 

 

 

 

 

 

# 2.

 

미소가 세 들어 사는 방의 집주인이 자신을 '주인'이라 칭합니다.

미소 역시 거리낌 없이 그를 '주인'이라 부르죠.

 

어색합니다. 감독은 의도적으로 삽입한 일반적이지 않은 대사로 관객을 불편하게 합니다. 집을 가진 사람은 집의 주인이 아니라 집을 가지지 못한 사람들의 주인인 세상입니다. 감독이 정의한 뒤틀린 세상에서 집은 주인이 타인을 소유하고 있음을 증명하는 족쇄에 불과합니다. 그런 세상에서 남의 집을 다듬는 미소는 '자산으로서의 집'이 아니라 '주거공간으로서의 집'을 온전히 바라보는 유일한 사람입니다. 어떤 이들에겐 하찮은 일을 하는 사람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정작 뒤틀린 세상에서 '사람'으로 살아가는 유일한 사람입니다.

 

 

 

 

 

 

# 3.

 

감독은 집주인과의 은유를 다시 한번 강조합니다. 업소녀 '민지'의 존재가 그것이죠. 영화 속 업소녀의 웃음과 몸을 파는 일은 불법적 행위로써의 성매매라기보단 '인간다움을 판매하는 행위에 가깝게 묘사됩니다. 돈을 주는 주인에게 종속된 인격인 것이죠. 집세를 올려달라는 주인의 말에 방법을 찾아보겠다는 미소와 업소녀 민지를 연이어 보여주는 건 두 사람 간의 접점을 병렬적으로 강조하기 위함입니다.

 

민지에게 고용된 미소는 너저분하고 자극적인 창부의 옷에 파묻혀 있던 깨끗한 표정에 학사모를 한 민지의 사진을 곱게 꺼내놓습니다. 화려한 겉치레를 위해 본래 가지고 있던 소중한 것을 잃어버린 사람과 가지고 있던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 소박한 것마저 포기하는 사람. 두 사람의 공유하는 바와 대조하는 바가 각기 상반된 감정을 불러일으킵니다. 문학적으로 은유하고 직접적으로 묘사하고 다시 문학적으로 은유하고 직접적으로 묘사하는 영화의 리듬은 흥미롭습니다.

 

뭇사람들에게 2015년 새해는 희망이지만 미소에겐 그렇지 않았습니다. 담배값이 올랐거든요. 미소는 담배도 위스키도 약값도 포기할 수 없습니다. 별수 있나요. 집을 빼야지. 영화는 지금부터 시작입니다.

 

 

 

 

 

 

# 4.

 

지낼 곳이 사라진 미소는 오래전 친구들을 찾아 나섭니다.

 

'문영'은 회사를 다닙니다. 과거를 청산하고 혹 필요할까 싶어 조무사 자격증도 따고 피나는 노력 끝에 번듯한 회사도 다니고 수시로 스스로의 팔에 링거를 꽂으며 더 큰 회사로의 이직을 꿈꾸는 견실한 청년이죠. 마음껏 담배를 퍽퍽 피던 과거는 말해선 안 되는 것을 넘어 존재하지 않았던 것보다 정확히는 '존재하지 않아야만 하는 것'이 되었습니다. 담배와 밴드는 '견실한 청년'에게 우리 사회가 허락한 것이 아니니까요.

 

곤란한 처지의 미소에게 건네는 "바람 든 것 같다", "스탠더드는 아니다."라는 건조한 말보다 마음에도 없는 "멋있는 것 같다야."라는 말이 듣는 사람의 가슴을 더 얼어붙게 합니다. 문영은 이후의 친구들 중 유일하게 미소를 자신의 집에 잠시도 들이지 않는 사람입니다. 의미심장하죠.

 

 

 

 



# 5.

 

정 많은 '현정'은 유부녀가 되었습니다. 갑작스러운 결혼을 하는 바람에 행복하지 않은 삶을 사는, 목적을 잃고 방황하다 결국 자기 자신마저 잃은 사람이죠. 잘하고 좋아하던 키보드는 창고방에 처박아 둔 채 할 줄도 모르는 요리를 하며 하루하루를 간신히 살아내고 있습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 미소는 그녀에게 젊은 날의 증명과 같습니다. 비좁은 창고방에서 미소의 곁에 함께 누은 현정은 마치 몇 날 며칠간의 목마름을 해갈하기라도 하듯 과거의 기억을 더듬어 가죠.

 

현정은 과거밖에 남은 것이 없는 사람입니다. 결혼하고 나서야 엄마가 보고 싶다 말하는 현정은 주변의 성실한 아내들입니다. 그녀를 미소 짓게 할 추억과 피아노는 작은 창고방 신세를 면하지 못합니다. 화려한 키보디스트로서의 과거는 '성실한 아내'에게 허락된 것이 아니죠. 마치 '문영'을 뒤집어 놓은 것만 같은 인물이군요.

 

미소는 세상 순수한 말투로 "그거 가끔 들었었는데. 곡도 진짜 잘 썼는데. 요즘도 써?"라며 그리운 옛날을 이야기하지만 현정은 현실에 치여 미소의 말을 듣지 못한 채 잠이 듭니다. "대단하다."라는 미소의 혼잣말은 어쩔 수 없이 성실해져 버린 아내들에게 건네는 위로이자 연민이자 사랑입니다. 친구들 중 유일하게 진짜 미소를 원했던 현정이지만 무거운 그녀의 삶에는 차마 염치가 없어 미소가 끼어들 틈이 없습니다. 떠나기 전 미소가 차린 밥상과 현정을 걱정하는 편지는 그녀가 결혼을 하고서야 보고 싶어 졌다던 엄마의 그것처럼 따뜻합니다.

 

 

 

 

 

 

# 6.

 

전직 드러머 막내 '대용'을 찾아갑니다. 번듯한 집에 안정적인 직장과 널널한 공간도 있지만 정작 마음이 비어있는 사람입니다. 밤이면 술 없이 잠을 이루지 못하는 이혼의 상처를 깊게 가진 사람입니다. 매일 해가 지는 밤이면 슬픔에 빠져들어 눈조차 쉽게 마주치지 못하는 대용의 모습은 관객의 가슴을 시리게 합니다.

 

밤새 고통에 몸부림치지만 낮이 되면 정상적인 사람처럼 보이는 대용의 모습이 대조를 이룹니다. 번화한 도시를 배회하는 무수히 많은 평범한 직장인들. 아픈 대용은 그들 일반을 대변합니다. 평범해 보이는 사람들은 말 못 할 아픔을 마음속 깊은 곳에 품고 삽니다.

 

얼핏 보기에 대용은 마치 성공한 직장인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그는 이혼의 아픔이 깃든 집에 월 100만 원의 빚을 20년간 갚으며 살아야만 하죠. 지낼 곳이 없는 미소와 감옥에 갇힌 대용. 사람들을 이 막다른 길로 향하는 이지선다에 내몬 건 누구의 책임일까요. 그렇게 노래를 노래를 부르던 아파트가 새처럼 날아가버렸다는 절규가 앤딩 크레디트가 올라가는 순간까지 귓가에 맴돕니다. 친구들 중 유일하게 미소와 담배를 태우는 대용이지만 두 사람이 피는 담배의 맛은 너무 다릅니다. 대용의 마음은 결국 미소를 감당해내지 못합니다.

 

 

 

 

 

 

# 7.

 

노총각 '록이'네입니다. '화목한 가정'처럼 보이지만 그 화목함이란 인위적으로 연출된 환상에 불과합니다. 노총각 아들이라는 흠결을 메워낼 부속품으로서 며느리가 필요한 노부부의 억지스러운 표정과 대사가 관객마저 숨 막히게 만듭니다. 가족이 한데 모여 '즐거운 나의 집'을 연주하고 부르는 장면은 압권이죠.

 

하지만 마냥 무례하게만 보이지는 않습니다. 이 가족 역시 무언가에 쫓기는 불쌍한 사람들이니까요. 그 무언가라는 게 통속적인 가족상일 수도 타인들의 시선일 수도 귀한 내 새끼를 노총각으로 살다 죽게 만들 수 없다는 욕심일 수도 있습니다. 중년의 노총각 록이가 담담한 말투로 전하는 안정감과 현실에 대한 타협에 관한 이야기가 굉장히 무례함에도 동시에 묘하게 편리하게 들리는 건 그런 이유에서 겠죠. 여타의 친구들이 미소를 밀어낸 것과 달리 이 가족은 필요에 의해 미소를 가두고 또 가지려 합니다. 하지만 결국 미소는 달아나버렸죠. 화목한 가정이 부르는 즐거운 나의 집에 진짜 미소는 없습니다.

 

오래전 친구들은 '미소'가 있었지만 지금은 '미소'를 품을 여유가 없습니다. 각박한 세상 속에서 친구들은 하나같이 미소를 잃었습니다. 미소가 집을 잃은 것이 아니라 집이 미소를 잃었습니다. 어느새 친구는 한 명만이 남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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