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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Drama

범죄 3, 드라마 7 [암수살인, 김태균 감독]

그냥_ 2018. 10. 6.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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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는 지금까지 본, 올해 개봉한 한국 상업영화들 중에선 이게 의심의 여지 없이 1등, 1등이라 생각합니다. 사실 이 영화도 한 해를 대표할 최고의 영화... 라고 하기면 좀 빠지는 점들이 없잖아 있긴 하지만, 그래도 이거보다 나은 영화는 없었다. 라고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끽해야 뒤를 이을 괜찮은 영화라면 공작, 안시성, 버닝, 곤지암, 너의 결혼식 정도 될까요? 지갑에 수북이 쌓인 도장 찍힌 티켓들을 보며, 한국영화에 때려 박은 티켓값을 생각하니. 새삼, 씨X이네요. 여튼, 그런 이유로 이 영화는 최대한 스포일러를 피해 리뷰하려 합니다. 같은 돈 써야 한다면 이런 영화에 돈을 써야 한다고 생각하니까요.






암수살인 포스터




'김태균' 감독,

『암수살인』 입니다.






웰-메이드 범죄 드라마


스스로 살인을 저질렀다 주장하는 범인, 실적에 도움 안 되는 범인 찾기를 꺼리는 경찰, 범죄자가 아닌 피해자를 쫓는 형사, 경찰을 의심하는 검사, 죽지 않은 살인 피해자, 이미 죽은 실종자가 한데 뒤엉켜 나오는 영화입니다. 골 때리죠. 


증거와 증언은 하나같이 믿을 수 없지만, 동시에 모든 실마리도 그 증거와 증언 안에 있습니다. 그렇다고 이런 꼬이고 뒤틀린 서사를 만드느라 막, 되지도 않는 억지를 부리지도 않습니다. 멍청한 감독들이 똑똑한 척하려고 자기가 한 말도 까먹는 다른 영화들과는 달리 말이죠. 예를 들면 공조라거나, 아니면 꾼이라거나, 그것도 아니면 협상이라거나... 응?


김윤석의 시선으로 진행되는 영화를 따라가는 덴 관객의 집중력을 제법 요구하긴 합니다만, 실타래가 풀리고 나면, 실체는 제법 명쾌하고 인물들의 의도 역시 선명하게 전달됩니다. 희생부활자나 목격자처럼 주인공의 서사에 복무하기 위해 동원된 이율배반적인 인물 역시 하나도 없습니다. 어떻게 보면 너무 당연한 거긴 한데요. 가슴 아프게도 이걸 칭찬해야 하는 게 엄연한 한국영화의 현실이기도 합니다.


흔한 범죄영화에서 쉽게 휘발되어버리는 피해자에 대한 이야기를 합니다. 형사에게 범인을 잡는 행위는 수단일 뿐, 피해자들에 대한 위로와 인간의 삶에 대한 존중에 그 본질이 있음을 이야기합니다. 스펙터클을 즐기기 전에, 그 안에 살아가는 '선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영화죠. 멋있지 않나요? 와일드카드가 형사들의 외형적인 애환을 섬세하게 다룬 영화라면, 이 영화는 그 형사들의 내면을 차분히 조명하는 영화인 셈입니다.




전체적으로 장르 영화로서의 연출은 의도적으로 배제한 듯합니다. 보통의 범죄드라마 영화들이 범죄 7, 드라마 3이라면 이 영화는 범죄 3, 드라마 7인 셈이죠. 애초에 범인을 감옥에 넣어놓고 시작하다 보니 모든 인물이 안전한 상태라 억지로 분위기를 잡는 게 더 이상할지도 모르긴 합니다. 여하튼, 2시간 내내 살인, 살인, 살인 노래를 부르는데, 노골적인 살인 장면도 끽해야 한두 컷, 그것도 짧게, 그나마도 회상씬으로 나오고 치웁니다. 그렇게 벌어놓은 런타임은 주인공의 발자취를 진중하게 쫓는데 오롯이 씁니다.


전체적으로 영화의 감정선이 다운되어 있어 심심하다 평하시는 분들도 계실 수 있습니다만, 전 되려 담담하고 묵묵하게 걸어가는 맛이 더 현실감 있어 몰입하기 좋았습니다. 아무래도 이 점은 취향을 타긴 할 것 같군요. 포스터만 보고 나홍진 감독 스타일의 스릴 넘치는 장르 영화를 기대하신다면 분명 실망하실 수 있습니다.




암수살인 A

암수살인 B








훌륭한 연기, 아쉬운 전달


스포일러는 자제하겠다 했으니, 배우 얘기나 조금 해볼까요. 이 영화에서 김윤석은... 그냥 혼자서 한국형 범죄드라마라는 장르 자체를 한번 정리하는 것 같습니다. 마치 최민식이 한국형 누아르, 그 자체가 된 것처럼 말이죠. 에이, 김윤석 또 범인 쫓아? '거북이 달린다'나 '추격자'에서 본 그거? 라고 생각하신다면 오산입니다. 그전까지는 범인을 쫓는 것에 집중하는 독사 같은, 날 것 느낌이 물씬 풍기는 형사였다면, 이번엔 돈 걱정 없이 온실 속 화초처럼 큰 형사, 그래서 이상주의적이면서 다소 서정적인 형사를 연기하거든요. 그 사소하면서도 섬세한 정서의 차이를 포동포동해진 배우의 볼살만큼이나 풍부하게 묘사합니다.


주지훈은 영화상의 표현대로 '감정 불가'의 캐릭터를 분합니다. 마냥 계산적인 두뇌 싸움 형 사이코패스도 아니고, 그렇다고 조커처럼 되는 데로 사는 혼돈형 정신병자도 아니고, 그렇다고 인생 막사는 망나니도 아닙니다. 무언가, 정의하기 힘든... 괴기한, 회색적인 인물이죠. 어렵네요. 혹자는 주지훈의 연기에 박한 평을 하는 듯도 합니다만, 배역의 난이도를 감안하면 이만하면 훌륭했다 생각합니다. 사투리 연기는 좀 어색하긴 합니다만... 그건 제가 부산 사람이라 그런지도 모르겠네요. 물론 김윤석은 그냥 현지인입니다.


진선규도 좋은 연기를 합니다. 영화 자체가 김윤석과 주지훈이 지배하다 보니 무난한 연기를 할 수밖에 없긴 합니다만, 그래서 오히려 이 배우가 얼마나 기본기가 좋은 지를 알 수 있었습니다. 사이사이 완급 조절용 개그들도 깨알같이 숨어 있고, 스트레스를 분산해주는 카메오 배치도 영리합니다. 고창석은 언제봐도 귀엽네요. 아 참, 우정 출연이란 미명하에 납치당해 거의 주조연급으로 연기 당하시는 문정희 배우도 역시 훌륭합니다.


주지훈의 사투리와 발음, 특히 전달력에서 얘기가 좀 있는 것 같던데, 확실히 잠깐만 놓쳐도 뭐라고 했는지 모를 정도로 잘 안 들립니다. 공작 때도 그렇고. 발성 연습은 하셔야겠어요. 다만, 전 이 문제가 배우의 딕션만큼이나 감독의 디렉팅과 편집 과정에서 음향을 덜 만진 탓도 있어 보였습니다. 주지훈과 별개로 몇몇 장면에서 분명 같은 장소에서 대화하는 데도 배우들 간에 음향의 질감이 틀어져 있는 게 느껴져 거슬렸거든요. 안 그래도 부산 말투 자체가 빠른 데다, 사투리도 진하고, 야외라 잡음도 있는데, 사운드가 정교하지 못하니 불편합니다. 만, 그 문제가 전체적인 영화의 평가를 크게 갉아 먹을 만큼 치명적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드라마를 좋아하신다면 강 to the 추


어떤가요. 아직 못 보신 분들이 계신다면 영화를 예매하고 싶으시진 않으신가요? 부디 그러셨음 합니다. 억지춘향식 양산형 영화에 단호히 지갑을 닫는 것도 중요하지만, 공들여 열심히 만든 좋은 영화에 기꺼이 지갑을 열어주는 것도 중요하니까요. 두어 시간 영화 한 편 보실 시간이 나셨나요? 그럼 이 영화, 한번 보세요, 후회하진 않으실 겁니다. 그리고 보신다면, "일단 무조건 믿고, 끝까지 의심하십시오." 모처럼 만난 웰-메이드 한국영화. 김태균 감독, 암수살인 이었습니다.




참, 이 영화 유가족 분들과의 이슈가 있던데 잘 해결되었다고 하네요. 덕분에 찝찝함없이 티케팅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게 미리 미리 좀 잘하지.




암수살인 D

암수살인 C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는 "Daum 영화"와 "IMDb"에 공개된 이미지만을 활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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