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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cumentary/Scientific

신앙, 과학, 철학 _ 그래도 지구는 평평하다, 다니엘 J 클라크 감독

그냥_ 2019. 3. 6. 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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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가볍게 사상검증부터 하고 시작할까요. 여러분은 지구가 둥글다고 생각하시나요, 평평하다고 생각하시나요. 혹시 원반 주변으로 빙하에 둘러싸여 있다고 믿는다거나 아날로그시계처럼 '달'과 '해'라는 등불이 원반 위를 돈다고 믿으시진 않으신가요? 아마 대단히 높은 확률로 구체라고 생각하시겠죠.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당연한 이야기죠. 지구가 둥글다는 건 영국이 섬나라라는 걸 누구나가 알고 있는 것처럼 상식적인 이야기입니다.

 

 

 

 

 

 

 

 

'다니엘 J. 클라크' 감독,

『그래도 지구는 평평하다 :: Behind the Curve』입니다.

 

 

 

 

 

# 1.

 

지구는 구가 맞습니다. 의심의 여지가 없는 과학적 근거가 차고 넘치죠. '지구가 평평한 원반 모양이다'라는 명제는 분명 거짓입니다. 하지만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는 사람(이후 플래터 Flatter라고 하죠.)들이 존재한다는 사실' 그 자체는 참이죠. 흥미로운 일입니다. 지구가 혹시 평평한 것 아냐? 라는 논의는 무의미하겠지만 이 플래터들의 멘탈리티와 논리구조에 대한 탐구는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합니다. 감독은 다큐멘터리를 통해 이러한 '비과학적'인 사람들이 전하는 '비과학적'인 이야기를 '과학적'인 시선으로 풀어내려 합니다.

 

다큐멘터리 감독이 탐구하려는 대상을 어떻게 대하는가는 작품의 방향성을 규정하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다니엘 클라크는 지구가 평평하다고 주장하는 이론이나 그 주장의 모순점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데요. 영화가 함부로 이 인물들을 비웃지 않는 게 좋습니다. 무식한 사람들, 미친 사람들로 규정하고 조롱하면서 찍어 눌러버리려면 얼마든지 그럴 수 있었고 또 그런다고 뭐라 할 사람도 없었겠지만 감독은 그러지 않죠. 이 영화가 지구가 평평하다 말하는 사람들을 이겨보겠다고 덤비는 영화가 아니라 '나와는 다른 인간군에 대한 진지하고 순수한 호기심'이라는 주제에서 시작되었다는 걸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일련의 주제의식은 영화 마지막 20여 분에 다시 한번 더 철학적으로 확장되는 데요. 그건 뒤에 이야기하도록 하죠.

 

기본적으론 '플래터'들의 독특한 사고방식을 가감 없이 드러냅니다. 기초교육과 정부에 대한 무조건적인 불신, 지구가 평평하다는 믿음에 부합하는 근거만을 수집하고자 하는 확증편향을 소개합니다. 'NASA'가 '속이다'라는 뜻의 히브리어 '나샤브'에서 유래되었다는 둥, 지구에 대한 이야기가 뜬금없이 백신 반대운동으로 진행되어 나간다는 둥의 주장을 소개합니다. 한 '플래터'가 조지 오웰의 『1984』를 감독에게 추천하며 그중에서 빅브라더에 대한 내용을 자기 입맛에 맞게 마구잡이로 비틀어 해석하는 건 촌극이라 하지 않을 수 없죠.

 

 

 

 

 

 

# 2.

 

동시에 흔히 알려진 것과 상당히 다른 모습들도 정직하게 담아냅니다.

 

각자 이 유사과학 이론을 통해 자존감을 얻는 대목들이 있음을 소개합니다. 이를테면 공항 검색대를 절차 없이 통과했다던지, 어마어마한 수의 페이스북 그룹 인원수 라던지, 사람들을 계몽해야 한다는 깊은 소명의식 같은 것들 말이죠. 자존감을 강화하기 위해 의상이나 음악, 영화 따위를 열정적으로 만들기도 합니다. 뭔가 찐따처럼 지하실 방구석에 틀어박혀 무릎까지 닿을 듯한 다크서클을 하고 있을 것 같은 선입관과는 상당히 다른 모습이죠.

 

지능이 낮다고 치부해버리기에는 너무 '똑똑'한 사람들이라는 것도 의외입니다. 나름의 그럴싸한 논리로 자신의 주장을 펼치며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할만한 상당히 호소력 있는 과학 실험을 설계합니다. 공존하는 걸 상상하기 힘든 '논리적 지성'과 '신앙에 귀속된 논리'이란 극단이 한데 어우러져 있는 걸 목격하게 됩니다. 자신이 설계한 실험이 자신의 신앙적 믿음에 부합하지 않으면 원하는 결과가 나올 때까지 상당히 그럴싸한 방법론으로 가설을 재설계합니다. 이 과정을 통해 자존감은 더욱 상승함은 당연하죠.

 

높은 자존감은 자연스럽게 소속감으로 이어집니다. '플래터'들로만 이루어진 데이트 사이트의 존재는 폐쇄적일 것만 같은 이들에 대한 인상을 재고하게 만들죠. 괴팍한 사고방식과 별개로 나름의 풍부함이 있달까요. 음습하지 않고 스스로 유쾌하며 자생적인 콘텐츠를 생산합니다. 다큐를 보다 보면 문득 그 존재를 인정받고 있는 '신앙'과 뭐가 그렇게 다를까란 생각마저 들게 됩니다. 그냥 저러고 재밌게 살다가 가는 걸 굳이 나쁘다 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마저 하게 되죠.

 

사실 돌이켜보면 지구가 평평한들 둥근들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겐 별로 중요한 일이 아닙니다. 당장 갑자기 지구가 평평한 게 '사실'이었다고 밝혀진다 해서 평범한 우리들의 일상이 달라질 건 없겠죠. 직장인들은 여전히 똑같은 직장에 출근해야 하고, 자영업자들은 여전히 똑같은 가게 문을 열겁니다. 취준생이나 학생들에겐 시험 문제가 조금 달라질지는 모르지만, 시험에 목을 메야하는 일상 자체는 달라질 게 없죠.

 

다큐를 보다 보면 이 모든 것이 거대한 맥거핀이 아닐까란 생각마저 들더군요. 그냥 자존감을 키우고 삶을 적당히 소비 혹은 낭비하면서 소속감과 유대감을 얻을만한 근거가 될 무언가가 필요했을 뿐이란 거죠. 그런 목적이라는 걸 인정한다면 '평평한 지구 이론'은 상당히 매력적입니다. 여타의 아이템들에 비해 기존의 멤버들이 새로운 '동료'에 엄청 목말라 있으면서 동시에 압도적으로 낮은 진입장벽을 가지니까요.

 

 

 

 

 

 

# 3.

 

다큐는 과학자들이 이런 비과학적 인물들의 행동 원리를 설명하는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인물탐구로 넘어가는 거죠. '능력이 없는 사람이 잘못된 결정을 내려 잘못된 결론에 도달하지만 능력이 없으므로 자신의 실수를 알아차리지 못해 더 높은 확신에 빠진다'는 더닝 크루거 효과에 대한 이야기는 '플래터'들을 이해하는 데 상당한 설득력을 보입니다.

 

영화를 보며 나 역시 타인은 결코 이해하지 못할 어떤 이상한 신념, 그것도 잘못된 것임이 증명된 이상한 확신을 가지고 있지 않을까?라는 질문을 하게 되는데요. 얼마 지나지 않아 인간이란 원래 불완전 해 어떤 어처구니없는 신념 없이는 살 수 없는 건 아닐까? 라는 질문까지 이어지게 됩니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이 확실한 것일까? 라는 의심과 내가 알고 있는 것이 확실하다고 믿는 내가 확실한 것인가라는 의문이 머리를 어지럽힙니다. 비웃음을 사기 딱 좋은 '플래터'들을 비웃지 않는 영화의 태도는 혹시 관객이 가질지도 모를 이런 식의 사유를 방해하지 않습니다.

 

감독은 물론 어느 과학자도 확증편향에 휩싸인 이 사람들이 이상하지 않다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그게 문제가 아니라고 이야기하지도 않죠. 과학자들의 성실한 해설을 곁들여 충실히 논박하는 가운데 이런 이상한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의 나름의 논리와 사고방식을 탐구하려 합니다. "맞아. 얘네 지금 하는 이야기들은 말이 안 돼. 그 전제 위에서 얘네들의 사고방식을 '선입견 없이' 탐구해보자"라고 감독은 말합니다. 밸런스가 훌륭하군요.

 

 

 

 

 

 

# 4.

 

'플래터'들 안에서도 계파가 나뉘어 있다는 게 재미있니다. 심지어 그 안에서 다시 프렉탈 구조처럼 음모론이 숨어있다는 거죠. 음모론자들의 왕이 되고 싶은 플래터 '빌'이 또 다른 플래터 '마크'에게 "저자는 정부에 포섭된 스파이다"라고 몰아붙인다던지, 플래터 '패트리샤'에게 정부의 요원인 데다 심지어 트랜스젠더 파충류(!)라고 주장하는 음모론까지 등장합니다. 

 

음모론의 대상으로 매도당하는 '패트리샤'. 억울함을 이야기할 때의 모습은 지극히 상식적인 인물입니다. 사람이 어떻게 파충류일 수 있겠냐고, 자신이 정부의 스파이여서 얻을 게 뭐냐고 말하는 모습은 지성의 영역임에 틀림없습니다. 자신에게 음모론을 던지는 사람들은 자신이 어떤 방식으로 검증한다 하더라도 본인의 믿음을 거두지 않을 거라는 확증편향에 대한 논리를 전개하는 장면은 다소 놀라울 정도죠. 

 

열변을 토하는 패트리샤에게 감독은 묻습니다. '그래서 지구는 평평한 건가요?' 직전까지 상당히 합리적인 듯 보이던 그녀는 다시 어느새 음모론자로 돌아와 지구는 확실히 평평하다 말합니다. 이 부분을 보는 데 묘하게 싸늘합니다. 음모론 속의 음모론 속의 음모론이란 프렉탈 안에서 지금 제가 서 있는 곳이 프렉탈의 최상층이라는 보장이 어딨는 거지?라는 생각 때문이었죠. 저나 여러분 역시도 어쩌면 누군가 보기엔 '평평한 지구' 위에 서있는 건 아닐까요.

 

 

 

 

 

 

# 5.

 

마지막 20분. 한 과학자가 말합니다. '플래터'들을 대하는 데 어려운 건 그들의 논리를 논박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깔보지 않는 것'이라고 말이죠. 동의하지 않는 심지어 틀린 견해라는 것이 증명된 주장을 한다고 해서 그들을 깔보는 것이 과학자의 직업윤리에 위배되지 않는다 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의 무게는 무겁습니다. 당장 과학사에선 '에테르'나 '플로지스톤'과 같은 수정과 폐기의 역사도 있으니까요. 또한 이 질문의 요지는 '아직 새로운 지식을 미처 이해하지 못한 아이들을 비웃어도 되는가'라는 화두로도 확장됩니다. 아이들이 등장하자 철학적 무게감이 한층 깊어지는군요.

 

평평한 지구를 믿는 사람들은 대중으로부터 너무나도 쉽게 '미쳤다' 평가됩니다. 이들은 조롱이라는 절제되지 않은 감정을 마음대로 버려도 되는 쓰레기통처럼 대해지고 있죠. 연인에게 버림받고 가족에게 버림받고 결국 사회로부터도 격리됩니다. 이런 현상이 진짜 '과학적'인가라는 질문은 충분한 무게감이 있습니다. 사회는 도태된 사람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라는 주제의식으로 확장됩니다.

 

하지만 마냥 오냐오냐하는 것 역시 정답은 아닐 겁니다. 유사과학은 세대가 진행되면 진행될수록 더 강성화 되고 더 확장되어 나갈 테니까요. 불가능한 믿음을 가질수록 현실과 맞아떨어지지 않기에 더 거대한 대안 현실을 만들어내게 됩니다. 대안 현실이 거대화되면 거대화 될수록 그 불가능한 믿음은 전혀 예상치 못한 현실에서의 문제들과 충돌하게 하게 되죠. 당장 멀리 갈 것도 없이 '안아키'만 생각해봐도 유사과학에 대한 무조건적인 이해만이 능사인가라는 질문에 신중하게 됩니다.

 

 

 

 

 

 

# 6.

 

과연 음모론자들은 자신의 잘못된 신념을 버릴 수 있을까. 그 이전에 버리면 주류에서 인정해 줄까요? 전혀죠. 하지만 분명한 건 그들만의 커뮤니티에선 철저히 버림받을 겁니다. 이성과 자존감이라는 이중적인 문제입니다. 이들의 확증편향이 공동체 내에서의 인정 욕과 닿아 있다면 이건 특정 유사과학 이론에 대한 잘못된 생각 정도가 아니라 정체성의 문제로까지 확장될 테니까요.

 

영화는 상당히 많은 취재와 많은 이야기를 통해 식견의 범위를 효과적으로 넓혀줍니다. 하지만 더 많은 부분에서 더 많은 질문들과 고민들을 유도하기도 하네요. 좋은 다큐멘터리 영화라 할 법합니다. 영화의 주인공인 유명 플래터 '마크 서전트 Mark K. Sargent'는 당연히 실존인물이며 현재도 유튜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글을 쓰는 현시점에서 그가 전하는 '지구가 평평하다'라는 이야기를 듣기 위해 구독한 사람이 무려 7.5만 명이군요. 그들은 지금도 인간과 괴물, 과학과 신앙 그 중간 어딘가의 지점에서 고독하게 또 확신에 차 외치고 있습니다. "그래도. 지구는. 평평하다." '다니엘 J. 클라크 감독', <그래도 지구는 평평하다>였습니다.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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