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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Drama

욕망의 항아리 _ 아이 엠 러브,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

그냥_ 2018. 9. 3. 0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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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캐스팅만으로 영화가 예상되는 배우들이 있습니다.

 

김명민이 아빠랍니다. 재난 터지고 가족 구하러 발버둥 치겠죠. 류승룡이 주연입니다. 약자를 바보로 묘사하다 얻어터지면서 눈물 짜내는 영화겠군요. 강하늘, 박서준 같은 배우들은 감독이 강요하는 '건강한 젊은이'를 기계적으로 연기할 겁니다. 조진웅은 바바리에 올백머리로 등장할 테고, 김윤석은 면도 안 하고 2시간 내내 뛰어다니겠죠. 임원희는 얼굴개그를 할 테고, 박철민은 말장난을 할 테고, 김정태는 누군가를 때리다가 마지막엔 역관광 당할 테고, 뭐가 됐든 고창석은 그 옆에서 귀엽게 웃고 있을 겁니다.

 

갑수 옹은 돌아가실 타이밍을 재고 있을 테고, 이경영은 두 상영관에 동시 출현 중일 테고, 김민교와 정상훈은 굳이 스크린에서까지 SNL을 찍고 있겠죠. 전지현은 쫄바지와 굵은 웨이브 머리를 휘날릴 테고, 김태희는 발연기를 눈부신 미모로 무마할 테고, 그 사이 김민희는 홍상수 감독과 데이트를 떠날 겁니다. 김수로나 차승원 등은 개인기로 적당히 웃기다가 마지막엔 갬성 드라마로 마무리하겠죠. 공형진이 나온다? 오랜만에 치고 빠지기 식 양산형 코미디 영화가 또 한편 나오나 보죠. 강예원이 나온다구요? 하지원도 나온다구요? 굳이?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

『아이 엠 러브 :: Io sono l'amore』입니다.

 

 

 

 

 

# 1.

 

물론 배우들 모두가 아티스트 일 수는 없습니다. 또한 한 가지 분야에 깊이를 더해가는 연기를 한다고 아티스트가 아니라 할 수도 없죠. 최민식은 주야장천 누아르만 찍어대지만 여전히 기가 막히게 멋있고 재밌잖아요? 리드코프 광고도 누아르로 찍었으면 욕을 덜 먹었을 텐데요. 성동일처럼 스스로를 연기 기술자, 전문직 종사자로 규정할 수도 있고 그게 나쁠 이유 역시 하등 없습니다. 배우의 이미지가 저딴 식으로 소모되는 덴 배우보단 감독의 탓이 훨씬 크기도 하구요.

 

하지만 관객 입장에서 캐스팅만으로 영화를 보기도 전에 캐릭터가 예측된다는 건 즐거운 경험은 아닙니다. 많은 관객들이 좋은 연기, 완숙한 연기만큼이나 도전적인 연기, 변화무쌍한 연기를 칭찬하는 이유겠죠. 개인적으로 누구나가 좋아하시는 송강호, 황정민, 이병헌 같은 배우 외에도 김상호, 배성우 같은 배우 역시 굉장히 좋아하는데요. 그에는 그들의 연기력뿐 아니라 다음 작을 기대하게 만드는 스펙트럼 때문이기도 합니다.

 

 

 

 

 

 

# 2.

 

그런 면에서 전 '틸다 스윈튼'을 굉장히 좋아합니다.

 

또라이 천사 가브리엘과 나니아의 하얀 마녀, 대처 빙의 한 메이슨 총리를 지나 꼬부랑 할머니 마담 D를 넘어 민대머리 에인션트 원까지 소화할 수 있는 배우는 온 지구를 탈탈 털어도 찾아보기 힘들 테니까요. 보넘-카터 누님이나 이자벨 위페르 느님 정도를 모셔오지 않는 한 말이죠. 캐릭터 보는 맛만으로 티켓값을 뽑아주는 배우라. 관객 입장에서 사랑하지 않을 수 없죠.

 

그렇다고 그녀가 스펙트럼 하나로 장사하는 배우라 생각하신다면 아주 많이 매우 엄청 진짜 완전 곤란합니다. 넙죽넙죽 시나리오 들어오는 족족 콜을 외치는 것 만으론 그녀와 같은 필모그래피를 만들 수 없죠. 혹시나 편견을 가지고 계시다면 이 영화를 한번 보실 것을 권합니다. 자연스러우면서 동시에 섬세하고 내면적이면서 동시에 역동적인 연기를 담은 정통 드라마의 불륜녀로 변신한 틸다 스윈턴을 말이죠.

 

 

 

 

 

 

# 3.

 

"당신이 알던 나는 없어요."

 

서사는 깔끔합니다. 부잣집 며느리 엠마가 잘생긴 요리사랑 눈 맞아서 바람피우다 아들한테 걸리고 화가 난 아들과 투닥거리다 사고로 죽자 에라이 이혼하는 이야기죠. 영화는 이해하기 쉬운 플롯과 몰입하기 쉬운 아이템에 몇몇의 장치들을 동원해 주인공 엠마의 내면을 극단적으로 뒤흔들고 그 모습을 관음적으로 관찰합니다.

 

엠마는 헌신적인 엄마입니다. 완고한 시아버지와 어려운 시어머니를 대하는 것도 익숙합니다. 남편의 뒷바라지는 습관이 되었고 자식들 챙기기는 것이 내면화된 소위 좋은 엄마, 보다 정확히는 '능숙한 엄마'죠. 하지만 헌신적이고 능숙한 만큼 무기력하고 기계적입니다. 값비싼 옷과 액세서리를 두르고 휘향 찬란한 저택을 분주히 움직이지만 그녀가 가족들에게 자신의 의견이나 취향을 이야기하는 장면은 마지막을 제외하곤 한 번도 나오지 않습니다. 그저 부잣집 사모님이자 후계자를 내조할 며느리, 자상한 엄마이자 따뜻한 예비 시어머니의 기능과 역할을 충실히 수행합니다. 그녀는 이탈리아로 시집 온 러시아 사람, 이방인. 가족 안에서 조차 그녀는 레키 가문에 고용된 이방인입니다. 사람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파티 홀의 뒤 그녀는 그곳에 갈 때면 거울 앞에 앉아 분주하게 화장을 합니다.

 

 

 

 

 

 

# 4.

 

가문의 후계자가 발표되던 눈보라가 치던 밤. 아들의 절친 셰프 안토니오를 만난 엠마의 내면에 변화가 일어납니다. 엠마는 안토니오를 찾아 낯선 도시 밀라노를 헤맵니다. 집에서는 한 번도 쓰지 않던 선글라스는 처음으로 자신을 위해 스스로 한 변장이죠. 방황하는 엠마는 결국 안토니오의 산속 식당에 다다릅니다. 격정적인 키스를 나누죠. 비로소 선글라스를 벗어던지고 명품 가방과 스카프를 내려놓습니다. 거세된 욕망이 다시 살아남으로 인한 절대적인 해방감. 엠마는 수십 년간 제어된 감정이 터져 나오기라도 한 듯 곱게 기른 머리를 싹둑 잘라내고 맨발로 산속을 마구 내달립니다. 억압되지 않은 자유로운 인간의 생명력이 영화를 지배합니다. 베드신은 대단히 노골적임에도 전혀 야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경이롭기까지 합니다.

 

이름을 묻는 안토니오에게 그녀는 러시아에서 불리던 원래의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다 합니다. 감독은 욕망, 욕구를 자아 그 자체로 규정합니다. 엄마와 절친의 밀회를 알게 된 아들에게 자신의 삶을 인정해 줄 것을 호소하던 엠마는 대화하는 과정에서 그만 사고로 아들을 잃습니다. 마지막으로 자신을 옭아매던 모성이 끊어진 엠마. 아들의 죽음에도 눈물을 보이지 않는 엠마는 무기력하게 가족에 복무하던 저택의 한 복판을 가로질러 안토니오에게로 떠납니다. 엠마는 남편 탄크레디에게 안토니오와의 사랑을 고백하며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이 알던 나는 없어요."

 

 

 

 

 

 

# 5.

 

"행복은 우리를 슬프게 하는 말이야."

 

딸 엘리자베타는 런던에서 활동하는 포토그래퍼입니다. 레즈비언이죠. 할아버지는 그녀가 그린 그림을 좋아하지만 그녀는 사진을 찍겠다 합니다. 그림은 고전적입니다. 필연적으로 화가가 대상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아니 보다 정확히는 어떻게 받아들이고 싶은 지를 투영합니다. 대상은 작가에게 복무하기 위해 존재합니다. 사진은 대상의 실체를 고스란히 담습니다. 사진사에게 저 사과가 커 보인다고 해서 사진에도 크게 나오지는 않죠. 사진은 현대적이며 동시에 본질적입니다. (물론 사진도 작가의 관점이 투영되긴 합니다만 이 영화에서는 그림과 대조적인 상징으로 쓰였다 보는 게 더 합리적입니다.)

 

못마땅해하는 할아버지를 아랑곳 않고 베타는 런던에서 사진을 찍겠다 선언합니다. 엠마에게 레키 가문이 브레이크, 안토니오가 핸들이라면, 베타는 엑셀레이터인 셈입니다. 베타가 말하는 "행복은 우리를 슬프게 하는 말이야."라는 말은, 누군가가 일방적으로 정의하고 강요하는 행복이 다른 누군가에겐 자아를 상실하게 만드는 욕망의 거세가 될 수 있음을 시사합니다. 가문을 지탱해온 공장이 팔리게 되어 걱정하는 오빠 에도아르도에게 동생은 "돈은 많아지겠네." 비웃습니다. 규율에 대한 통렬한 조롱이죠.

 

 

 

 

 

 

# 6.

 

"넌 존재하지도 않았어."

 

레키 가문은 상당한 부와 영향력을 얻는 대가로 소속원들을 기능적으로 복무하게 만듭니다. 구성원은 가문 내에서의 역할과 관계만으로 정의되고 각자의 인격은 철저히 지워지거나 수직적 위계에 복무하기 위해서만 발현됩니다. 혹시 영화를 보신 분 중에 엠마의 시어머니나 엠마의 아들 에도아르도의 약혼녀의 이름이나 그들의 욕구를 기억하시는 분이 계신가요? 아마 없으실 겁니다. 전혀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거든요. 그녀들은 엠마와 달리 가문의 온실에 완전히 순응한 인물, 혹은 순응하고자 하는 인물이거든요.

 

반면 엠마의 시아버지는 가문의 성취에 대한 자부심을, 엠마의 남편 탄크레디는 아버지에 대한 인정욕과 아들에 대한 경쟁심을, 엠마의 아들 에도아르도는 가문을 지켜야 한다는 사명감과 친구 안토니오와의 우정을 가감 없이 드러냅니다. 이들은 각자 자부심, 인정욕, 경쟁심, 사명감 등의 욕구를 스스로 가진 자들이죠. 그들에게 순응하며 살던 엠마가 알을 깨고 나오려 하자 탄크리디는 이렇게 말합니다. "넌 존재하지도 않았어." 의미심장하죠.

 

 

 

 

 

 

# 7.

 

감독에게 욕구는 곧, 삶이고 생명이며 자아입니다. 따라서 잃어버린 그래서 죽어버린 엠마에게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는 안토니오는 대단히 자연주의적인 인물로 묘사되죠. 그는 온실과 같은 레키 가문의 저택을 눈발을 헤치고 스스로 찾아온 남자이며, 황량한 도시를 벗어나 생명이 가득한 산속에서 요리하는 셰프입니다. 안토니오는 사실 기능적으로 플롯에 복무하는 캐릭터이긴 합니다. 엠마가 심리극을 주도할수록 안토니오는 더더욱 도구가 되죠. 뭐, 어쩔 수 없는 것이긴 합니다. 그래서 별로 할 얘기가 없네요.

 

대신 흥미로웠던 건 그를 묘사하는 아이템들이었습니다. 앞서 이야기했듯 황량한 눈발을 헤치고 나타나 건네는 케이크이라던지, 가업을 뿌리치고 굳이 산속으로 들어가 레스토랑을 열려고 한다던지, 엠마에게 새우요리를 한다던지, 시간성이 강하게 묻어나는 트럭과 그 뒤에 태운 강아지라던지, 굳이 강렬한 불꽃이 나오는 토치로 요리하는 모습을 넣는다던지, 심심하면 땀 흘리는 상반신을 노출시킨다던지 하는 것들 말이죠.

 

하나같이 주체적이면서 낭만적이고 생동감 있으면서 솔직한 아이템들입니다. 영화가 단순한 치정극을 벗어나 다소 철학적인 주제의식을 가질 수 있었던 건 '그저 안토니오는 잘생겼고 그래서 엠마는 반했어요.'를 벗어나도록 해 준 미학적 메타포들 덕이라 해야겠죠.

 

 

 

 

 

 

# 8.

 

치정극의 구조를 빌린 심리극인 덕에 엠마의 정서와 연기를 쫓아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즐겁습니다만 틸다 스윈튼의 연기만 주목하기엔 연출이 너무 아깝습니다. 적당히 생각나는 몇몇 장면을 중심으로 연출 얘기를 조금만 해봅시다.

 

시작부터 대단히 불안한 시청각적 경험을 제시합니다. 눈발이 날리는 인적 하나 찾기 힘든 죽은 듯 고요한 도시 위로 활기차면서도 불안한, 무언가 뒤틀린듯한 현악 소리를 쏟아냅니다. 이후 누가 누군지도 모를 등장인물을 저택에 쏟아붓고 그들에게 하나같이 무수히 많은 대사를 뱉어내게 합니다. 무슨 대회가 있었다는 둥, 누굴 만난다는 둥, 요리가 어떻다는 둥, 누가 온다는 둥. 하지만 그 모든 것들은 따라가지 않으셔도 좋습니다. 캐릭터를 구축하기 위한 미끼일 뿐이니까요. 어디서 피 냄새 안 나시나요?

 

무수히 많은 수다스러운 대사의 폭우에 이채로운 공간을 끼얹습니다. 혹여 다시 볼 기회가 있으시다면 이번엔 인물이 배치된 공간과 구도, 방향성을 주목해 보시길 권합니다. 이 인물은 왜 이 복도에다 뒀을까. 이 인물은 왜 여기서 옆으로 걸을까. 이 인물은 왜 문턱에 세워두고 비스듬히 배치했을까. 하고 말이죠.

 

엠마가 안토니오의 새우요리를 먹는 장면도 감각적으로 묘사된 흥미로운 장면입니다. 평평한 영화의 한가운데 툭 튀어나온 압정 같달까요. 엠마의 심정을 다양한 색감과 카메라 워킹을 동원해 시각적으로 표현해 전달하는, 손꼽힐 명장면이라는 생각입니다. 뭐랄까요.. 마약 같아요. 장면 전체가 말이죠.

 

그 외에도 창문과 커튼을 통해 엠마의 심리가 열려나가는 과정을 표현하는 것이라든지, 분장된 모습으로 부유하는 도시인을 멀리서 줌으로 당겨 관음 하는 연출 등도 흥미롭습니다. 영화를 보고 주제가 뭐가 됐든 이 감독의 다른 영화를 보고 싶다 생각할 수 있었던 건 이런 적극적인 연출들 덕일 겁니다.

 

 

 

 

 

 

# 9.

 

돈이 썩어가게 많은 집안에 취집을 가놓고 불륜이라니. 복에 겨운 이 아줌마의 불륜기가 단순한 아침드라마식 망상 포르노가 아닌 묘한 울림을 주는 건 우리에게 욕망을 천한 것, 혹은 부정한 것으로 바라보는 유교적 문화 DNA가 남아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란 생각도 듭니다만. 서두에 말씀드린 바와 같이 앞서 주저리주저리 떠든 모든 것들을 차치하고서 틸다 스윈튼의 연기만 집중해 보셔도 이 영화는 충분히 좋습니다. 노골적이지만 천박하지 않고, 추상적이면서도 구체적인, 공들여 가공된 손길로 날것을 이야기하는 영화, 그래서 다시 봐도 새로운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 <아이 엠 러브>였습니다.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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