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좋아하세요? :)

늦은 저녁 맥주 한 캔을 곁들인 하루 한편의 영화, 그리고 수다.
영화 이야기는 언제나 환영입니다.

Film/Drama

미소를 잃은 사람들 ⅱ _ 소공녀, 전고운 감독

그냥_ 2019. 5. 20. 23:30
728x90

 

 

 

미소를 잃은 사람들 ⅰ _ 소공녀, 전고운 감독

# 0. 화려한 싱글라이프와 프로 가사도우미 '미소'의 등장입니다. 배우 이솜의 신비로운 마스크와 앳된 얼굴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희끗희끗한 흰머리와 전동 드릴에 걸린 진한 분홍색 청소솔이

morgosound.tistory.com

 

 

# 8.

 

힘든 사람들만을 조명하게 되면 자칫 경쟁에서 패배한 개인을 질책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인물들을 과장된 문법으로 표현함으로써 어떤 군상의 표상처럼 다루고자 하는 작품의 기조를 생각할 때 곤란한 일이죠. 감독은 마지막으로 미소를 으리으리한 대궐 같은 집에 살고 있는 전직 기타리스트, '정미'의 집으로 보냄으로써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합니다. 어디 부자는 늘 행복할 수 있는지 지켜보자는 거죠.

정미와의 첫 대화에서부터 미묘한 불쾌감이 감돕니다. 정미 자신은 인지하지 못하는 무례함이 느껴집니다. 타인을 배려하는 것이 그 자체로 목적이 아니라 자신이 타인을 배려하는 인격을 소유했음을 주장하기 위한 수단인 사람들의 그것들 말이죠. 솔직한 기타리스트 정미는 어느새 누리는 것들이 당연한 사람이 되어 있습니다. 정미는 앞선 네 명의 친구들과는 다소 결이 다릅니다. 과격하게 말하자면 마치 일부러 만들어진 괴물 같달까요. 다소 통속적인 맛이 있는 무성의한 캐릭터란 인상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군요.

 

여하튼 정미의 도움 덕에 미소는 살 곳을, 정미는 미소를 얻습니다. 역시 돈이 좋긴 좋아요. 물질적 여유가 마음의 여유와 무조건 합치되는 건 아니지만 물질적 풍요가 마음의 여유로 전이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만은 부정하기 어렵습니다. 미소는 다시 일도 하고 위스키도 마시고 담배도 태웁니다. 물론 사랑하는 남자 친구도 만나죠. 정미를 만남으로서 미소는 비로소 온전해집니다. 그런데 저런. 미소와 정미가 같이 있는 모습이 없네요.

 

 

 

 

 

 

# 9.

 

'한솔'은 사우디아라비아로의 발령을 지원합니다. 꿈꾸던 웹툰 작가는 그만두기로 하죠. 남들 하는 것 다 하며 살고 싶다 말하는 한솔과 영화 시작 추운 골방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던 표정 간의 간극이 선명합니다. 경제적 행복을 위해 폭력적 희생을 강요당하는 현실과 아직 앳된 소년의 얼굴을 한 한솔 간의 간극 역시 선명합니다. 하고 싶을 것을 관둬서 행복하다 말하는 상황이 역설적이고 또 비극적입니다. '생명수당'이라는 극단적인 단어가 미소뿐 아니라 관객의 가슴도 서늘하게 합니다.

 

영화 내내 쓴소리 한번 하지 않던 모두를 있는 그대로 품어줄 것만 같고 있는 그대로 이해해 줄 것만 같던 미소가 처음으로 격앙된 모습을 보입니다. 처음으로 미움을 담은 눈빛으로 사랑하는 남자 친구에게 배신자라 말합니다. 원래 가지지 못했던 미소를 품을 기회를 잃은 친구들과는 달리 한솔은 미소를 가지고 있었습니다만 결국 돈 때문에 미소를 포기하고 맙니다. 속상한 미소가 내던진 꼬치를 곱게 주워 드는 착한 청년의 행복을 왜곡시킨 건 누구인 걸까. 굳이 사우디 행을 자원했다 말하는 거짓말할 줄 모르는 순수한 청년의 행복을 왜곡시킨 건 누구인 걸까. 미소와 한솔의 대화는 흔한 커플의 다툼 이면에 숨겨진 사회에 남은 마지막 희망으로부터 배신당한 행복입니다.

 

 

 

 

 

 

# 10.

 

다시 정미의 집입니다. 정미 부부와 미소가 고급진 스테이크로 저녁 식사를 즐기는군요. 남편의 스테이크를 다듬는 정미에게 전에 볼 수 없었던 불안이 묻어납니다. 아이나 가사도우미를 대할 때의 태도와 남편을 대할 때의 태도가 극적인 대조를 보입니다. 남편은 정미가 가진 것들의 주인이자 물질을 얻는 대가로 정미 스스로 모시기를 자처한 주인입니다. '주인님'을 내던지고 여행을 떠난 미소와 대칭적이죠.

 

가진 것이 많은 정미는 잃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감추지 못합니다. 정미는 미소가 남편과 피우는 담배 한 대조차 참지 못하죠. 결국 미소는 매몰찬 멸시와 함께 미경의 집에서 쫓겨나듯 떠나게 됩니다. 빈방이 남아도는 대궐 같은 집에서 살고 있는 정미의 마음속엔 담배 한 대 끼워둘 만한 틈도 없습니다. 정미는 빈곤을 대가로 얻은 미소보다 불안을 대가로 얻은 물질은 선택합니다. 끝내 정미는 미소를 품어내지 못합니다. 재력으로 미소를 보유했을 뿐입니다. 일종의 장신구처럼 말이죠.

 

 

 

 

 

 

# 11.

 

메시지를 위해 친구들을 연민의 대상으로 풍자적 대상으로 다루었습니다만 이대로 영화가 끝나버리면 자칫 관객들에게 미소처럼 살라고 훈계하는 영화가 되어버립니다. 그건 곤란하겠죠. 감독은 이야기꾼이지 선생님이 아니니까요. 오해를 사지 않으려면 감독은 서사를 더욱 확장해야 합니다.

 

미소는 그동안 모은 돈을 보증금 삼아 다시 지낼 집을 찾아 헤매지만 결국 지낼만한 곳을 찾지 못합니다. 우리 사회의 미소는 낡고 더럽고 곤궁한 곳으로 내몰리리다 못해 자리를 얻지 못합니다. 감독은 문영이라는 이름의 개인에서, 현정이라는 이름의 가정을 지나, 대용이라는 이름의 관계를 건너, 록이라는 이름의 현실을 마주하게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정미'라는 이름의 물질을 디딤돌로 삼아, 우리 사회 전체가 미소를 품어 낼 수 있을까라는 주제의식으로 영화를 확장시키는 데 성공합니다.

 

 

 

 

 

 

# 12.

 

친구들에게 버림받고 세상으로부터도 버림받은 미소가 마지막으로 향하게 된 곳이 다시 업소녀의 집이라는 게 의미심장합니다. 업소에서 성매매를 하다 애아빠가 누군지도 모르는 아이를 배고 심지어 관계를 가졌던 손님들을 협박해 한 밑천 당겨보겠다고 말하는 민지. 미소가 만난 모든 사람들과 비교도 할 수 없는 도덕성의 인물입니다만 유일하게 그녀만이 미소의 얼굴을 보고 눈을 마주치고 자신의 꿈을 이야기하고 걱정하고 솔직한 눈물을 보이며 함께 밥을 먹습니다.

 

극단적 간극이 복합적인 감정으로 승화됩니다. 다른 모든 친구들보다 가장 망가져버린 인생이 유일하게 미소를 품어낼 힌트를 제시한다는 게 역설적입니다. 이 영화에서 민지의 도덕성을 논하는 건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첫 등장에서 보인 도저히 어울리지 않던 화려한 화장을 벗어던진고 깨끗한 새하얀 옷과 아이 같은 표정 솔직한 눈물 만이 남아 있을 뿐입니다.

 

그나저나 닭백숙 맛있겠네요.

 

# 13.

 

일자리도 잃고 한솔도 떠나고 여전히 지낼 집도 없는 미소. 스스로 언젠간 지낼 곳을 찾을 여행을 떠난다 믿던 미소가 백발의 모습으로 한강변에 텐트를 치는 장면에서 처연한 울림이 있습니다. 한강 넘어 저 수많은 집들 중 미소가 지낼 곳은 정녕 하나도 없는 걸까. 미소가 약을 끊으면서까지 위스키를 포기하지 않는 모습은 희망적이지만 동시에 한강변에 투박하게 펼쳐진 텐트는 비극적입니다. 이 영화는 미소의 희극이지만 우리의 비극입니다.

 

 

 

 

 

 

# 14.

 

여러모로 안국진 감독의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가 함께 떠오를 작품입니다. 집을 다루고 있구요. 사회에 대한 풍자적 성격이 강합니다. 역설적이고 모순적인 구조가 매력적이구요. 날 것 그대로를 전시하는 과감함도 살아 있습니다. 두 작품 모두 동화적인 연출을 통해 그런 불편할 수 있는 것들을 자연스럽게 풀어낸다는 점 역시 인상적이죠. 영화의 서사를 따라가는 게 버거울 만큼 풍부한 생각할 거리를 제시한다는 점도 훌륭합니다.

 

영화를 이끌어가는 파워풀한 단독 주인공이 있으면서 동시에 그 주변의 인물들과 환경에 더 주목하게 만든다는 점도 공통점입니다. 이솜과 이정현. 두 주연 배우 모두 인생 캐릭터를 만나 영화에 압도적인 생명력을 불어넣고 있습니다. 물론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는 스릴러로서의 서늘한 정서와 속도감 있는 폭력적 연출을 그 수단으로 삼고 있는데 반해 <소공녀>는 드라마로서 서정적이고 감성적인 연출을 수단으로 삼고 있다는 점은 차이점이지만요.

 

 

 

 

 

 

# 15.

 

때문에 종합적인 감상 역시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와 비슷할 것 같습니다. '자본에 잠식된 사회의 몰인간성과 소박하고 행복한 삶'이라는 평범한 주제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가지 못했다는 점이나 영화에서 묘사하고 있는 구체적인 양태들 역시 너무 관습적이라 지루하다는 점은 아쉬운 대목입니다. 영화가 전반적으로 너무 잔잔해 2/3 지점 즈음부터는 집중력을 살짝 잃게 한다는 점도 아쉽군요.

 

그럼에도 감독의 따뜻한 시선과 섬세한 이야기, 곱씹어 보게 만드는 대사들과 숨어있는 풍부한 상징, 한 명 한 명 빠질 것 없이 훌륭한 연기를 보여준 배우들과 그 가운데서도 압도적인 존재감을 보여준 주연배우들의 매력이 억지로 트집 잡은 단점들을 메우고도 남아 스크린을 넘쳐흐릅니다. 전의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최대의 단점은 그 작품이 안국진 감독의 첫 장편이라 다른 영화를 더 보고 싶은 데 그럴 수 없다는 점이라 했었는데요. 여기도 같은 감상을 남기지 않을 수 없겠군요. 그러니까 다음 장편은 대체 언제 나오는 건가요. '전고운' 감독, <소공녀>였습니다.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 본 블로그는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글에서 다루는 작품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댓글", "포스트를 자신의 블로그로 유인하는 데 이용하려는 댓글", "무분별한 맞팔로우 신청 댓글" 등은 삭제 후 IP 차단될 수 있습니다.

 

 

"좋아요", "댓글""구독"

 

은 블로거에게 큰 응원이 됩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