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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Romance

뉘앙스 ⅰ _ 캐롤, 토드 헤인즈 감독

그냥_ 2022. 10. 20.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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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대상(Her)이 주체(She)가 되는 순간에 찾아오는 어른의 사랑

 

- 영화평론가 이동진, 그녀(Her) 한줄평 -

 

 

 

 

 

 

 

 

토드 헤인즈 감독,

『캐롤 :: Carol』입니다.

 

 

 

 

 

# 1.

 

창살과 함께 영화는 시작됩니다. 감독은 자신이 펼쳐놓으려는 이야기의 환경을 똑같은 모양의 틀이 군집된 창살로 정의합니다. 거칠고 건조한 철제 질감과 오밀조밀한 구성은 단절감이나 통제력 따위의 이미지를 복합적으로 암시합니다. 정체성을 제약하는 압박감과 획일성에 대응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기본적으론 짙은 정서의 멜로 영화입니다만 못지않은 드라마적 깊이를 겸비한 작품인 것이죠.

 

다양한 형태의 [프레임]을 징검다리 삼아 풀어낸 작품이라 해도 과언은 아닐 겁니다. 대표적으로 창문을 꼽을 수 있을 테죠. 등장인물들은 각자의 상황에 따라 프레임을 점유하기도 빼앗기기도 합니다. 정신적인 순간에는 뿌옇게 흐린 모습으로, 방어적인 순간에는 커튼을 친 모습으로, 폐쇄적인 순간엔 굳게 닫힌 모습으로 은유됩니다. 공간감이 강조되는 동안엔 정체성을 입체적으로 투영하기도 하구요. 위력 관계를 직접적으로 묘사하기도 합니다. 때론 타인을 발견하는 창구로서도 재해석되는 등, 각각의 순간에 인물이 느끼고 있을 정서의 좌표를 섬세하게 치밀하게 은유하고 있죠.

 

 

 

 

 

 

# 2.

 

전반부 애비와 캐롤이 차를 타고 이동하는 장면입니다. 두 사람이 나누는 소소한 농담보다 중요한 것은 [오픈카]라는 점이죠. 영화에서 차량은 창문과 마찬가지 의미의 프레임으로 기능합니다. 두 사람이 탄 차량이 오픈카라는 것은 두 사람이 함께 하는 동안만큼은 온 세상이 하나의 프레임으로 확장되어 자유로움을 만끽하고 있음을 역설합니다. 평범한 친구 이상의 관계임을 암시하는 대목이라 할 수 있을 테고, 역시나 두 사람이 오래전 연인이었음이 이후 공개되죠.

 

파티장에 도착하자 캐롤은 호흡을 가빠하며 힘겨워합니다. 남편 하지와 춤을 추는 캐롤의 뒤로 오프닝의 창살이 연상될 법한 무수히 많은 프레임의 창들과, 똑같은 모습으로 춤추는 사람들의 패턴이 전개됩니다. 하지와 함께 있는 공간은 캐롤이 자신의 프레임을 잃어버리고 규격에 포위된 숨 막히는 공간, 두려움의 공간입니다.

 

지네트와의 짧은 대화는 작품을 관통하는 코드들이 동시에 전개되는 핵심적인 장면 중 하나라 할 수 있습니다. 고풍스러운 드레스의 지네트는, 배경이 되는 1950년대 고전적 성윤리의 프레임 안에 있는 인물입니다. 지네트는 프레임 안에서 담배를 태우는데요. 이 영화에서 [담배]는 욕망을 의미한다 이해하시면 무난합니다. 남편에게 담배 피우는 모습을 숨긴다는 것은 자신의 욕망을 통제하고 숨기는 데 길들여진 인물임을 뜻합니다. 캐롤은 지네트가 담배를 태우자 지네트에게 자리를 내어주고 자신의 프레임으로 이동합니다. 고전적 성윤리라는 프레임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는 인격인 것이죠.

 

연휴를 어떻게 보낼 거냐는 지네트의 물음에 캐롤은 혼자 있겠다 말하지만, 거짓말입니다. 아시다시피 캐롤은 테레즈와 함께 연휴를 보내게 되죠. 소소한 대화를 마친 후 캐롤은 담배를 빌려 물고 창 밖의 바라봅니다. 창밖을 보고 있지만 무엇을 보는가는 묘사되지 않습니다. 무엇이 되었든 간에 테레즈를 생각하고 있었을 테니까요. 테레즈를 생각하던 캐롤은 담배를 피웁니다. 그녀가 테레즈에게 욕망을 발견하고 있음이 연출되는 순간입니다.

 

 

 

 

 

 

# 3.

 

무슨 말을 하는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무엇을 보고 있는가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애초에 대사가 많은 작품도 아니거니와 영화의 대사는 몇몇의 순간들을 제외하면 사소하기 이를 데 없는 이유입니다. 말의 내용보다 말을 하는 상황의 맥락과, 마음이 담긴 목소리의 질감과, 말의 전후에 배치된 침묵의 뉘앙스가 훨씬 중요합니다. 보고 있는 것보다 그것을 통해 떠올리고 있는 누군가와, 지긋이 바라보는 시선에 녹여낸 뉘앙스가 훨씬 중요합니다. 소리의 뉘앙스는 테레즈가 선물하는 LP로 연결됩니다. 시선의 뉘앙스는 캐롤이 선물하는 카메라로 연결됩니다. 멜로의 정서를 화려한 수사의 말과 글로 기술하기보다는 뉘앙스를 물감 삼아 그려내는, 어떤 면에선 상당히 미술적인 영화라 할 수 있겠네요.

 

'테레즈와 대니의 장면'은 '캐롤과 지네트의 대화'와 대구를 이룹니다. 테레즈는 사진을 찍습니다. 사진은 피사체를 프레임 안에 담는 행위. 대상의 영역을 귀하게 여기는 마음입니다. 테레즈가 사람 사진을 찍지 않았다는 것은 캐롤을 만나기 전까지 온전한 사랑을 느끼지 못했던 미숙한 인물이었음을 친절하게 은유합니다.

 

대니와의 대화보다 중요한 것은 대니와 테레즈를 배치하는 방식입니다. 대니는 자신의 프레임을 이탈해 테레즈의 프레임 안으로 불쑥 들어가 키스합니다. 당황한 테레즈에게 대니는 불쾌하냐 질문하지만 그녀는 불쾌하지 않다 답합니다. 거짓말이죠. 테레즈의 진심은 말의 내용이 아닌 대니의 프레임으로부터 달아나 밖으로 나가는 행동에 담겨 있습니다.

 

 

 

 

 

 

# 4.

 

테레즈를 초대한 캐롤은 차로 마중을 나갑니다. 시시콜콜한 말을 건네는 캐롤과 달리 테레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습니다. 카메라는 천천히 흐르는 테레즈의 시점 쇼트를 정직하게 담아냅니다. 영화가 포착한 사랑이란 쓰다듬듯 따라가는 시선의 뉘앙스에 닿아 있음을 명확히 하는 연출입니다. 사람 사진을 찍지 않는다던 테레즈가 캐롤의 사진을 찍는 모습은 창밖을 내다보던 캐롤이 담배를 태우던 장면에 대응합니다. 서로에 대한 사랑의 감정을 발견하는 순간인 것이죠.

 

캐롤은 차에 크리스마스트리를 실는데요. [크리스마스트리]는 딸 린디에 대한 사랑을 상징합니다. 캐롤은 자신의 프레임 안에 테레즈와 린디를 모두 담고 있는데 그러기엔 너무 비좁고 버겁습니다. 린디에 대한 마음에 가려 테레즈와 온전히 시선을 주고받지도 못해 목소리만 간신히 닿을 뿐이죠. 스쳐 지나는 장면처럼 보이지만 이후 전개를 함축적으로 표현한 장면인 셈입니다. 실제 영화에서 갈등을 유발하는 존재는 짐짓 남편인 듯 보이지만 그는 캐롤의 내적 갈등을 대리하는 기능적 캐릭터에 불과합니다. 결말의 선택에서 드러나다시피 진짜 갈등의 본질은 하지와의 법적 승부가 아닌, 딸 린디와 애인 테레즈를 모두 담고 싶어 하던 캐롤의 변화와 선택이었죠.

 

캐롤의 집에서도 차 안에서의 구도는 연장됩니다. 캐롤은 화면 멀리 크리스마스트리와 화면 가까이 피아노를 연주하는 테레즈 가운데 앉아 있습니다. 캐롤이 린디와 테레즈 사이에서 갈등하고 있음을 은유하는 것이기도 하고, 테레즈 역시 바라보는 캐롤의 뒤로 린디의 존재가 아른거린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이후 캐롤이 테레즈의 집으로 찾아가는 장면이 있습니다. 두 사람은 잠시 대화를 나눈 후 지붕으로 자리를 옮기는데요. 테레즈와 함께 하는 동안의 프레임은 캐롤과 애비가 타고 있던 오픈카와 같이 지붕이 없는 열린 세상입니다. 자유롭고 상쾌한 바람도 불죠. 카메라는 천천히 위로 오르며 개방감을 적극적으로 연출합니다. 능숙한 캐롤의 프레임은 갈등하지만, 미숙한 테레즈의 프레임은 솔직합니다.

 

 

 

 

 

 

# 5.

 

다시 돌아와서. 갑자기 집으로 들이닥친 하지로 인해 첫 번째 데이트는 망가집니다. 이 순간엔 집과 방과 문과 복도 모두 프레임으로서 적극 활용됩니다. 하지가 내는 과격한 소리들은 프레임을 파괴하는 폭력성을 청각화합니다. 캐롤의 자리를 빼앗는 동선을 지나 카메라를 향해 다가오며 점점 몸집이 커지는 모습은 프레임을 침입하는 폭력성을 시각화합니다.

 

하지가 돌아가고 난 후 캐롤은 담배가 떨어졌다며 짜증을 냅니다. 앞서 담배는 욕망이라 말씀드린 것을 기억하신다면, 담배가 떨어졌다는 것은 욕망이 억압된 것으로 이해할 수 있겠죠. 집으로 돌아가는 기차에서 테레즈는 서럽게 웁니다. 캐롤의 프레임을 귀하게 여기던 테레즈가 그녀의 프레임이 위력에 의해 처참하게 부서지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이는 사랑하는 상대에 대한 특별한 연민이라기보다는 보편적 인간에 대한 보편적 연민에 훨씬 가까운 정서라 할 수 있을 텐데요. 분명한 동성애 캐릭터인 캐롤과 달리 테레즈에게만큼은 범성애적 해석이 가능케 하는 대목입니다. 이 부분은 다음 글 말미에 이동진 평론가와 관련된 논란과 엮어 짧게 이야기해 보도록 하죠.

 

집으로 돌아온 테레즈는 캐롤과 전화를 합니다. [전화] 역시 담배만큼이나 중요한 메타포라 할 수 있습니다. 뉘앙스가 중요한 작품에서 뉘앙스를 전달할 수 없는 매체이기 때문이고, 뉘앙스를 전달할 수 없기에 마음을 꼭꼭 눌러 담아 응축된 진심으로 표현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적어도 테레즈 앞에서만큼은 언제나 능숙하고 당당하던 캐롤이 Please... 라 애원하며 고백하는 유일한 순간인 이유죠.

 

 

뉘앙스 ⅱ _ 캐롤, 토드 헤인즈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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