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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Romance

뉘앙스 ⅱ _ 캐롤, 토드 헤인즈 감독

그냥_ 2022. 10. 22.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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뉘앙스 ⅰ _ 캐롤, 토드 헤인즈 감독

# 0. 대상(Her)이 주체(She)가 되는 순간에 찾아오는 어른의 사랑 - 영화평론가 이동진, 그녀(Her) 한줄평 - 토드 헤인즈 감독, 『캐롤 :: Carol』입니다. # 1. 창살과 함께 영화는 시작됩니다. 감독은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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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테레즈의 '안심이 되냐'는 물음에 캐롤은 놀라운 사람이라 답하며 회피합니다. 두려운 게 있다면, 도와줄 것이 있다면 청하라는 말에는 단호하게 두려운 것이 없다 말하죠. 여행 캐리어는 캐롤의 깊고 은밀한 내면을 의미합니다. 그 속에 숨겨둔 총을 보여준 다음 두려움에 대한 대화를 풀어내게끔 편집했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캐롤은 내면에 두려움을 숨기고 있으며 그 두려움이 [총]이라는 아이템으로 연결되고 있음을 암시한다 이해할 수 있습니다.

 

테레즈와의 밀행을 증명할 증거가 하지에게 넘어간 것을 알게 된 캐롤. 분노에 찬 그녀는 총을 꺼내 들고 토미 터커의 방으로 찾아갑니다. 두려움이 폭로되는 순간의 강렬한 에너지가 표현된다는 점에서 중요한 장면이기도 합니다만, 이후 총을 테레즈가 대신 버리게끔 한다는 것 또한 중요합니다. 테레즈가 캐롤의 두려움을 목격했다는 점에서도, 그런 캐롤의 두려움이 결국 테레즈에 의해 극복되게 될 것임을 암시한다는 점에서도 의미 있는 전개라 할 수 있겠죠.

 

여담으로 토미 터커의 방을 유심히 관찰하는 것도 썩 흥미롭습니다. 토미는 바지 매무새를 가다듬는 모습인데요. 영화에서 남성성은 타인을 소유하고자 하는 욕구와 사고방식으로 연결되고 있다는 것을 짚는 디테일이라 할 수 있겠죠. 영역에 대한 영화이고, 적어도 그 어떤 폭력적인 사람이라 하더라도 프레임을 건너오거나 문을 열고 들어온 것에 반해, 토미는 도청기를 벽에 붙여 소리를 훔친 것으로 표현됩니다. 물리적이지만 않다 뿐이지 토미의 행동이 캐롤에겐 그 어떤 것보다 강한 폭력으로 느껴졌을 것임을 벽에 붙은 도청장치를 통해 은유하고 있는 것이죠.

 

이후 캐롤과 헤어진 후 테레즈는 집에 새로운 페인트를 칠합니다. 상처를 치유하는 것이 아니라 억지로 지우고 덮고 있음을 표현하는 것이죠. 캐리어 깊은 곳에 총을 숨겨두고 있던 캐롤은 겉으론 두렵지 않다 말하는 인물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대니의 말에 단호하게 두렵지 않다 말하는 테레즈 역시 내면 깊은 곳에 두려움을 가지게 되었음을 의미하고, 그 두려움은 상자 안에 곱게 담긴 캐롤의 사진으로 연결되죠.

 

 

 

 

 

 

# 7.

 

캐롤과 테레즈 외에 가장 중요한 인물은 친구 '애비'도 남편 '하지'도 아닌 [린디]입니다. 별다른 대사도 분량도 없는 캐롤의 딸이죠. 영화를 되짚어보면 캐롤이 린디를 사랑하는 방식은 하지가 캐롤을 사랑하는 방식과 사실상 동일합니다. 하지가 캐롤의 손을 잡아끌고 집에 불쑥 나타나는 것과, 캐롤이 린디를 마음대로 끌어안고 집어 드는 행동은 대상이 되는 사람의 의사가 반영되지 않는 선택이라는 면에서 본질적으로 같으니까요. 캐롤이 변호사와 만나는 장면마다 [윤리]라는 단어가 반복적으로 등장하는데요. 영화에서의 윤리란 말씀드린 구시대적 사랑의 방식을 축약한다 할 수 있겠네요.

 

앞선 단락에서 말씀드린 두려움에 대한 코드와, 영화가 윤리라는 개념을 활용하는 방식을 짚으며 법정 신을 보면 단순히 하지와의 분쟁뿐 아니라 여러 가지 입체적인 정보를 얻을 수 있습니다. 케이트 블란챗은, 캐롤을 격앙된 모습뿐 아니라 무언가를 대단히 두려워하는 사람, 그 두려움을 극복하려 안간힘을 쓰는 사람처럼 연기합니다. 그 두려움을 극복하는 방식이라는 것은 린디의 [양육권]을 포기하고 [접근권]만을 가지겠다는 것이었죠.

 

양육권은 소유권입니다. 딸의 프레임을 지배하는 것이죠. 반면 접근권은 바라보는 것, 즉 시선입니다. 딸의 프레임을 그대로 둔 채 린디의 영역을 귀하게 지켜보는 시선인 것이고, 테레즈와 나눈 사랑의 방식과의 깊은 연관인 것이죠. 법정 씬은 단순히 수많은 변호사들과 남편 하지에게 절규하는 것뿐 아니라, 테레즈와의 사랑을 겪은 캐롤이 하지의 압박을 지긋지긋해하던 자신이 린디에게 별반 다르지 않다는 스스로의 모순을 고백하는 순간이기도 합니다. 두려움을 넘어 진정한 사랑의 방식을 깨달은 자는 정신적 성장인 것이죠.

 

 

 

 

 

 

# 8.

 

도입에서 볼 수 있었던 두 사람이 만나던 장면으로 다시 돌아옵니다. 이야기를 시작과 끝으로 가두는 방식인데요. 이 영화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프레임인 셈이죠. 영화를 보기 전의 관객과 보고 난 이후의 관객은 같은 상황에서 같은 행동을 하는 두 사람 사이에 전혀 다른 뉘앙스를 읽을 겁니다. 사랑은 사려 깊게 상대의 뉘앙스를 읽는 것. 영화의 끝에 다다르면 테레즈와 캐롤의 사랑뿐 아니라 관객 역시 이 두 사람의 사랑을 사랑하게 되는, 멜로의 정석과도 같은 작품이라 할 수 있겠죠.

 

마지막 씬에서 캐롤은 사람들로 가득한 레스토랑 귀퉁이 테이블에 앉아 있습니다. 오프닝에서 백화점은 불쾌하다 말하던 캐롤을 기억하실까요. 그녀는 자신의 프레임을 침범 당하는 것에 스트레스를 크게 느끼던 사람이었지만 타인의 프레임을 인정하는 법은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던 그녀가 자신 역시 타인의 프레임을 침범하는 사람이었고, 다른 사람들 역시 저마다의 프레임을 존중받아야 하며, 그런 프레임들끼리 맞닿아 완성된 것이 곧 사회고 인생이라는 것을 깨닫는 결말입니다. 그런 관계들 속에서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프레임을 발견하고 그 프레임을 귀하게 여기는 마음이 곧 사랑이라는 진단이죠. 오프닝의 창살의 구조적 특성과도 회귀적으로 연결되는 대목입니다.

 

두 사람은 사랑과 함께 각기 다른 교훈을 발견합니다. 캐롤은 타인의 프레임을 넓게 확장하는 방식의 성장에 도달하게 되고, 테레즈는 타인의 프레임을 발견하고 귀하게 여기는 방식의 성장에 도달합니다. 그래서 결말에 테레즈를 바라보는 캐롤의 시선은 점점 확대되는 것이고, 캐롤을 바라보는 테레즈의 시선은 점점 좁아지는 것이죠. 그리고 그런 테마를 끝까지 적절한 핸드헬드를 곁들인 [시선]으로 표현한다는 면에서, 영화 <캐롤>은 미학적 완성도가 뛰어난 작품이라 해야 할 겁니다.

 

 

 

 

 

 

# 9.

 

앞선 글에서 미뤄뒀던 이야기를 짧게 해 볼까요. 개인적으로 캐롤은 명확한 레즈비언이지만, 테레즈는 범성애자에 훨씬 가깝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카메라를 다루는 방식에서 테레즈는 인물의 영역에 호기심을 가지다 특별한 프레임을 발견했을 뿐이라는 식으로 묘사될 뿐, 여성성에 대한 감화가 거의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죠. 프레임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영화의 테마 역시 그런 추론을 추동합니다. 개인의 영역을 존중하는 사랑의 보편성에 대한 영화에 훨씬 가깝기 때문이죠. 두 인물이 모두 레즈비언이라면 레즈비언에 대한 영화라는 식으로 서사가 축소되어 버릴 겁니다. 이성애자들의 사회에서 동성애자의 승리라는 식으로 매몰되기 딱 좋죠.

 

영화는 결국 세 가지 사랑이 완성되는 서사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캐롤이 테레즈를 사랑하는 것이구요. 둘은 테레즈가 캐롤을 사랑하는 것, 셋은 캐롤이 린디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첫 번째는 하늘에서 떨어진 듯 매혹적인 여성을 향한 레즈비언의 사랑이고, 두 번째는 동경과 연민 중간 어딘가에 놓인 범성애자의 사랑, 세 번째는 책임과 희생을 통할한 엄마의 사랑으로 각기 다른 위계와 성격의 사랑인 것이죠. 하지만 형태만 다를 뿐 사랑이란 감정의 본질은 동일합니다. 서로의 프레임을 지켜주는 것. 귀하게 여기는 것. 존엄히 여기는 것. 그래서 천천히 다가와 자신의 프레임을 창문 삼아 상대의 프레임을 지긋이 바라보는 것. 그 시선과 목소리의 뉘앙스로 서로를 쓰다듬듯 스며드는 것이 사랑인 것이죠.

 

 

 

 

 

 

# 10.

 

무엇을 어떻게 볼 것인가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얼마나 길게 볼 것인가 그리고 그 긴 시간 동안 무엇을 연상하고 감각하고 있는가에 있습니다. 오프닝 시퀀스에서 누구의 시점으로 인물을 담을 것인가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캐롤이 테레즈의 어깨에 손을 올리는 순간 지그시 누르는 디테일입니다. 캐롤이 먼저 자리를 나선 후 뒤돌아보기 전까지 캐롤이 떠난 빈자리를 지그시 쳐다보는 테레즈의 디테일입니다. 감독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는 이미 오프닝에 충분히 담겨 있었던 것이죠.

 

여담으로 [이름] 역시 프레임을 존중하는 방식을 표현하는 주요한 수단 중 하나라 할 수 있습니다. 지네트의 관계를 이야기하는 하지에게 캐롤이 무안을 주며 이름을 지적하는 장면이라거나, 처음 만난 캐롤과 토레즈가 서로의 이름에 대해 길게 대화를 나누는 장면은 대표적입니다. 이렇게 프레임이 중요한 영화이기에 사랑의 결실 역시 사랑한다는 [말]이라거나, 결혼이나 연애하자는 [관계]의 변화가 아닌, 집을 합치자는 [프레임]의 결합으로 귀결되게 되죠. 토드 헤인즈 감독, <캐롤>이었습니다.

 

# +11. 대상이 주체가 되는 순간에 찾아오는 어른의 사랑. 스파이크 존즈의 <그녀>에 대한 이동진 평론가의 한줄평과도 (장르는 크게 다르지만) 맥락이 일부 닿아있는 작품이라는 생각입니다. 인형을 사던 캐롤과 기차를 좋아하던 테레즈가 어른의 사랑에 도달하는 영화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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