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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Romance

결혼 바이럴 _ 조립, 신택수 감독

그냥_ 2023. 12. 14.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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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여름밤, 부부는 완수해야 할 과제가 있다.

(2019년 제23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신택수 감독,

『조립 :: assembly』입니다.

 

 

 

 

 

# 1.

 

감독은 평범한 사람들의 결혼 생활이라는 것을 크게 세 가지 감정으로 규정합니다. 비좁다. 피로하다. 그럼에도 사랑한다.

 

# 2.

 

창백한 도시는 피로감을 상징합니다. 멀찌감치 지나는 지하철을 내려다보는 구도로 담아 그들의 삶을 작고 소소한 것으로 연출합니다. 지하철에서 내려 트인 공간을 걷는 장면은 의식적으로 생략됩니다. 곧장 엘리베이터라는 좁은 공간에 인물을 집어넣고 그마저도 구석에 몰아 고립시킵니다. 인물을 거울에 반사시켜 안 그래도 좁은 공간에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들어차 있는 듯한 착시를 일으킵니다. 지쳐 고개를 숙이는 순간 거울 너머 함께 고개 떨구는 모습의 나열은 일련의 피로감에 권태감과 일상성을 더합니다. 현관 비밀번호를 까먹었다는 것은 물리적인 시간과 공간뿐 아니라 생각의 공간까지 비좁다는 것을 의미하고, 집으로 은유된 가족이 그 피로감에 밀려 튕겨 나올 수 있음을 경고합니다. 그 순간 다소 퉁명스러운 태도의 아내가 불쑥 문을 열어 남편을 맞이하는 데요. 이후 어떤 일을 겪든 어쨌든 긍정적인 결말일 것임을 암시한다 이해할 수 있겠죠.

 

이후 영화의 주체를 남편에게서 아내로 자연스럽게 전환합니다. 한눈에 봐도 정신없는 집안의 모습은 아내의 일상입니다. 전화가 되지 않는 남편, 정리되지 않는 신발, 널브러진 통지서 뭉치, 지저분한 화장실과, 아무 데나 놓는 수건, 너무 늦는 것에 대한 짜증과, 해야 할 일을 앞에 놓고 실 없이 먹을 것을 찾는 남편 등에 대한 묘사가 아내의 시점에서 차곡차곡 누적됩니다.

 

칼 같이 구분할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굳이 나눈다면 남편은 피로함에 회피하는 사람아내는 비좁아 불안해하는 사람이라 할 수 있을 겁니다. 이는 이후 아기 침대를 만드는 모습들, 이를 테면 조립 설명서를 무시하는 남편과 신중하게 읽는 아내, 공구 없이 나사를 조이지 못함에도 불안해하는 아내와 이를 한심하게 여기는 남편 등을 통해 조금 더 친절하게 묘사됩니다.

 

 

 

 

 

 

# 3.

 

조용히 잠든 아기는 비좁은 집에서도 가장 편안한 공간, 가장 넓은 공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아기의 평온은 부부에게 그만큼 중요한 것임이 공간의 크기를 통해 은유되는 것이죠. 그다음으로 넓은 공간을 차지하는 것은 거실 한복판의 피아노입니다. 아내의 자아를 상징하는 것으로 다른 것도 아닌 피아노라는 아이템을 선택했다는 것은 썩 흥미롭습니다. 잠든 아기는 다른 소리가 나게 해선 안 되는 존재이고, 피아노는 소리를 낼 때 비로소 의미가 있는 존재라는 면에서 양보할 수 없는 가치의 충돌을 청각적으로 대비시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부부의 사랑을 상징하는 행복한 사진은 복도의 좁은 벽면에 배치됩니다. 다른 중요한 것들에 밀려 있는 처량한 모습이기도 하지만, '눈물의 화장실'과 '잠든 아기의 방'과 '피아노의 거실'과 '과태료의 부엌'을 연결하는 공간이라는 면에서 가장 중요한 연결고리로서의 공간을 점하고 있는 것이기도 합니다. 환하게 웃고 있는 크고 작은 부부의 사진들은 그 자체로 감독이 제안하는 가족이 '조립'되기 위한 '설명서'입니다. 피로감에 회피하는 남편과 비좁아 불안해하는 아내는 발바닥이 다치는 모습과 화장실에서의 눈물로 파열하지만, 결국 서로를 구원하는 것은 당신입니다. 영화 내내 긴장관계로 치닫고 있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숨길 수 없는 서로를 위하는 마음들에 있습니다.

 

집 안에 들어서는 순간 꺾인 고개를 억지로 치켜드는 남편입니다. 언제나처럼 첫인사로 아내의 볼에 입 맞추는 남편입니다. 투덜거리면서도 남편 뒤치다꺼리를 하는 아내입니다. 무슨 비빔면이냐 타박하면서도 내심 너무했나 싶어 다 해놓고 먹어라 말하는 아내입니다. 괜스레 아내의 엉덩이를 때리며 장난치는 남편의 마음이자, 그의 농담이 신경 쓰이는 아내의 마음이죠. 거실 한복판에서 갑작스레 불꽃이 튀는 건 이 같은 마음이 성실하게 누적된 것을 표현하는 것에 불과하고, 그렇기에 감독은 상황을 로맨틱한 것이라기보다는 최대한 애잔하면서도 귀엽고 사랑스럽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후반부의 변주는 작품에 유의미한 완급으로 기여합니다. 주변의 거추장스러운 것들을 밀어내고 하는 섹스가 아니라, 땀이 비 오듯 내리는 피로감과 비좁은 공간을 비집고 하는 섹스라는 점에서 작품의 주제의식과 조응해 페이소스로 승화됩니다.

 

 

 

 

 

 

# 4.

 

이튿날의 엔딩입니다. 바깥에서의 일을 비좁은 집 안으로 가져가지 않으려는 남편, 에어컨 대신 선풍기 바람을 맞으며 아기를 돌보는 아내, 망가졌지만 어떻게든 이어 붙인 아기 침대는 감독이 조립한 단란한 가족이다. 세 가족은 앞으로도 한동안 피로하고 비좁을 테지만 끊임없이 사랑할 것이라는 선량함은, 맑고 투명한 햇살과 귀여운 아기의 움직임과 선선한 선풍기 바람으로 감각화되며 영화는 막을 내립니다.

 

전반적인 인상은 그 자체로 'DIY 아기 침대' 같은 작품이라는 생각입니다. 다소 도식적이지만 성실하고 안전합니다. 특별히 치밀하지는 않을지언정 단단하게 조립되어 있고, 다른 무엇보다 가성비가 훌륭합니다. 아기 침대가 아기의 안전을 받아내듯 영화의 선량한 시선은 그 자체로 평범한 가족들의 안녕을 받아내고 있기도 하고 말이죠. 내내 투덜거림에도 모든 인물이 한없이 귀엽고 사랑스럽다는 것은 작품 고유의 매력이라 하겠습니다. 신택수 감독, <조립>이었습니다.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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