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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SF & Fantasy

마침내 도달한 중도의 평화 _ 3000년의 기다림, 조지 밀러 감독

그냥_ 2023. 2. 4.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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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매혹적이고 환상적이며 치명적인 극단들을 소거한 끝에 마침내 도달한 중도의 평화

 

 

 

 

 

 

 

 

조지 밀러 감독,

『3000년의 기다림 :: Three Thousand Years of Longing입니다.

 

 

 

 

 

# 1.

 

짝퉁 골동품을 타고 나타나 알리세아를 만난 지니입니다. 소원에 앞서 들려주는 시바 여왕과 귈텐과 제피르의 이야기는, 집착으로서의 매혹이자 극단으로서의 환상이며 비극으로서의 치명입니다. 불신과 맹신. 구속과 자유. 집착과 고독. 욕망과 체념. 과학과 동화. 이야기와 현실. 다양한 위상의 대립항을 놓고 각각의 극단이 가지는 불완전성을 교훈 삼는 세 편의 단막극을 전개합니다. 기나긴 시간과 드넓은 바다에 은유된 원망과 후회와 분노와 집착을 견뎌낸 끝에, 마침내 치우침 없이 도달한 중도의 평화를 그려낸 작품이라 말씀드릴 수 있겠죠.

 

분명한 것은 [평화]라는 점입니다. 과거 세 이야기의 핵심 정서가 사랑이기도 하고, 알리세아가 소원한 것이 세 여인에게 주었던 사랑이라는 것 때문에 로맨스라 오해될 수 있어 보이지만, 사랑은 핵심에서 비껴 나 있다는 생각인 것이죠. 지니와 알리세아가 관계하는 장면이 성애의 방식이 아닌 영혼의 조화처럼 연출된다거나, 소원으로 인해 역설적으로 지하실에서 죽어가던 지니의 모습, 두 인격이 안착하게 될 유예적 결말과, 일련의 결말이 전개되는 푸른 하늘 아래 녹음의 언덕은 작품의 방향이 사랑이라는 관계를 넘어선 다른 곳에 있음을 추측케 합니다.

 

두 사람은 더 이상 불신하지도 맹신하지도 구속하지도 자유에 얽매이지도 집착하지도 고독하지도 욕망하지도 체념하지도 않는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과학이자 동화이며 동시에 현실이자 이야기로서의 언덕에 오른 둘은, 영원의 단짝을 찾은 커플의 사랑이라기보다는 평화의 모습으로 이루어낸 영혼의 안식이라는 쪽으로 이해하는 것이 훨씬 편안하다는 것이죠.

 

 

 

 

 

 

# 2.

 

특별히 짚을만한 대립항이라면 역시나 [이야기]와 [현실]을 꼽아야 할 겁니다. 당장 주인공 알리세아의 직업부터가 서사학자니 말 다한 거겠죠. 돌이켜 보면 지니는 끔찍할 정도로 불우합니다. 앞선 단락에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온갖 종류의 극단에 휘둘린 끝에 3000년이라는 징벌의 바다에 짓눌려온 생이니까요. 그럼에도 관객과 알리세아는 지니의 이야기들을 황홀한 것으로 안전한 것으로 받아들이는데요. 그럴 수 있었던 건 이 모든 것들이 그저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야기의 안전함에 매료되어 그 속에 머물러 버리면 또 곤란합니다. 이야기 역시 하나의 극단일 뿐이고 그로 인한 참상은 두 번째 이야기 속 피에 굶주린 폭군이 된 왕자가 몸소 재연하고 있죠. 이야기는 매혹적이지만 현실로 환원될 수 있을 때 비로소 가치를 가집니다. 그런 현실 역시 재차 이야기로 승화되는 과정에서 또 다른 교훈을 발견하게 되죠.

 

구태여 제목에까지 집어넣은 3000년이라는 시간은 '이야기와 현실이 환원과 승화를 반복하는 과정'이라 축약할 수 있습니다. 또한 3000이라는 수의 압도적인 크기로 인해 그 자체로 '인간의 역사'를 은유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죠. 적당히 조합하면 인간의 역사란, 이야기와 현실을 공존시킨 끝에 교훈과 발전과 평화를 이루어 나가는 여정이라는 선량한 통찰에 도달하게 됩니다. 이는 틸다 스윈튼의 내레이션을 활용해 영화 속 알리세아가 지니를 만나는 서사 전체를 이야기로 환원시킨 이유라 할 수 있는 것이며, 동시에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으로서의 영화감독 조지 밀러의 직업 철학과도 연결되는 맛이 있다 할 수 있겠죠.

 

 

 

 

 

 

# 3.

 

주제의식에 대한 이야기는 이 정도로 하고 감상으로 돌아올까요. 교훈극 특유의 지루함이 장황한 내레이션과 만나 증폭되는 감이 없잖아 있긴 합니다. 다만 과감한 시각 연출과 적재적소의 음향, 관객 경험을 적절히 뒤흔드는 플롯 따위가 상당 부분 완화하고 있는 것 또한 분명하죠. 특히 시각 연출은 작품의 킬링 포인트라 할 수 있을 텐데요. 물질을 벗어나 이윽고 세계까지 잠식하고야 마는 과시적인 색감. 빛과 금속과 광물과 먼지와 액체를 넘나드는 다채로운 물성 표현. 지니의 존재와 시야를 일렁이는 위화감으로 표현하는 고유의 방식 등은 작품에 압도적인 생동감을 불어넣는 데 성공합니다.

 

특유의 탐미적인 스타일과 액자식 서사라는 면에서 타셈 싱의 <더 폴>의 기시감이 살짝 느껴지기도 한데요. 효과가 살짝 반감된 대신 편안하고 안전한 타협점을 찾은 작품이라 할 수 있을 겁니다. 열화라 평할 수도 있고, 대중화라 평할 수도 있을 테지만 모두 설득력은 있으니 평가는 관객 개개인의 몫으로 남겨도 좋은 거겠죠.

 

말 나온 김에 특유의 액자식 구성은 이야기의 매력뿐 아니라 영화 전체를 끌어안고 지니의 램프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느낌을 주는 맛도 있습니다. 관객은 이야기를 듣는 것을 넘어 그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착각을 느끼게 되고, 그것이 환상적인 시각 효과와 만나 단순히 영화를 관람하는 것이 아니라 지니의 요술 안을 체험하는 듯한 경험으로 승화된다는 것 역시 빼놓을 수 없는 장점입니다.

 

중도의 평화라는 다소 철학적인 결말이 특유의 동양적인 분위기 덕에 보다 쉽게 호응하는 감도 있구요. 지니의 크기에 주목한다면 집채만 하던 요정이 점점 사그라드는 이야기라는 면에서 작품의 방향성과 지니를 인지하는 알리세아의 인식과의 연관성도 소소하게 발견되기도 합니다.

 

 

 

 

 

 

# 4.

 

아쉬운 점을 짚어보자면 역시나 알리세아와의 네 번째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식이라 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시바의 여왕과 하녀 귈텐, 제피르의 이야기를 이어받는 알리세아의 소원이 논리적으로는 납득되지만 감정적으로 설득되는가에는 의아함이 있달까요. 네 번째 이야기의 분량을 대부분 현학적인 대담으로 끌고 가는 것 역시 최선인가 의문이 있구요. 결과적으로 과거의 환상적인 이야기를 보는 동안 흥미진진하다가, 되려 틸다 스윈튼이 나오면 지루해져 버리는 상황이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영화를 즐기는 동안에야 과거의 연출에 매료될 수도 있다지만, 끝나고 나면 어쨌든 알리세아와의 평화에 감동하며 극장을 나서게 만들었어야 했을 텐데요. 마지막 시퀀스의 통제력이 충분하지 못하기에 적잖은 수의 관객들은 앞선 세 이야기의 심미성에 감동하며 극장을 나섰으리라 추측됩니다. 애초에 목적이 판타지의 심미성에 있었던 <더 폴>과 같은 영화였다면 문제 될 것이 없었겠으나, 이 영화는 다른 방향의 주제의식을 제안한 작품이라는 면에서 부진한 결말이라 해도 할 말은 없는 거겠죠.

 

여담으로 <해피 피트> 같은 작품을 한 감독이라고는 하나 어찌 되었든 <매드 맥스>로 유명할 조지 밀러가 감독을 했다는 것 또한 특기할만합니다. 특히 흥미로운 것은 본인 입으로 Anti-매드 맥스적인 작품이라 말했다는 점인 데요. 매드맥스라는 작품이 하나의 극단으로 내달린 끝에 성취를 이루어낸 작품이고, 3000년의 기다림은 방법론적으로 볼 때 매드맥스와 대칭되는 극단으로 내달린 작품이라는 면에서 두 작품이 작품의 주제의식으로 연계되는 대립항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조지 밀러 감독, <3000년의 기다림>이었습니다.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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