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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Romance

아키라정전 _ 사랑의 이발소, 모리타 요시미츠 감독

그냥_ 2022. 11. 18.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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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로망 포르노(ロマンポルノ)를 아시나요?

 

 

 

 

 

 

 

 

모리타 요시미츠 감독,

『사랑의 이발소 :: ピンクカット・太く愛して深く愛して입니다.

 

 

 

 

 

# 1.

 

1980년대 일본. 닛카쓰(日活)라는 이름의 영화사가 제작한 영화들이 있습니다. 6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제법 잘 나가던 역사와 전통의 닛카쓰는 70년대 들어 도산 위기에 처하는데요. 그래서 찾은 회심의 활로가 바로! 성적 욕망을 자극하는 저예산 고효율 말랑말랑 소프트코어 포르노를 양산하자는 것이었죠. 결과는 대성공. 천편이 훌쩍 넘는 작품을 찍어내다 못해 전용 극장까지 만들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더랬습니다. 이후 80년대 들어 VHS 보급과 노골적인 하드코어 AV의 출현, 검열의 압박 등에 밀려 사라지긴 했지만 말이죠.

 

목적이 분명한 만큼 제작 법칙은 단순하고 절대적입니다. 700만에서 750만 엔 사이의 저렴한 제작비. 70분 남짓의 짧은 런타임. 10분에 한 번씩은 반드시 섹스신이 등장할 것. 통칭, 로망 포르노인 것이죠. 지금부터 이야기하려는 영화 <사랑의 이발소> 역시 로망 포르노 중 하나입니다. 따라서 당연히 저예산이구요. 런타임은 68분. 10분에 한 번씩 므흣한 장면이 성실하게 따박따박 등장하고 있죠.

 

 

 

 

 

 

# 2.

 

말씀드린대로 소프트코어 순애물입니다만 영화는 치정이라기보다는 거래, 보다 정확히는 소비의 관점에서 전개됩니다. 감독은 일련의 관계를 소비지상주의적 관점에서 정의합니다. 영어 공부, 하와이 여행, 마카다미아 초콜릿, 프런트 훅 브라 등의 코드들은 영화가 개봉하던 당시 1980년대 일본 버블 경제기의 허구적 풍요에 도취된 소비의 시대를 관통하고 있죠.

 

여주인공 마미는 소비주의 논리를 완벽히 이해한 승리자로 묘사됩니다. 모든 것은 협상과 거래로 다뤄지고, 그 과정에서 어느 것 하나 손해보지 않는 데 성공하는 영리한 인물이죠. 경제학과를 졸업했다는 설정이라거나, 능숙하게 장부를 다루는 모습, 교수와의 마지막에서 졸업을 했기에 오르가슴은 없다 말하는 장면 등은 상징적입니다. 반면, 남주인공 아키라는 소비할 능력이 없어 소비되는 것을 선택하는 처량한 인물입니다. 그는 허름한 맨션에 사는 것으로 소개되는데요. 분홍빛이 화려한 이발소와 대비되는 잿빛 건물보다 중요한 것은 앞을 가로지르는 기찻길입니다. 거칠게 내달리는 기차는 강력한 단절의 이미지입니다. 주인공은 영화의 세계뿐 아니라 영화가 상영되던 당대 일본으로부터도 분리되고 도태된 인물인 것이죠.

 

영화를 처음 접한 관객은, 주인공 남자가 사랑의 이발소라는 서비스를 소비하는 작품을 기대하기 마련일 텐데요. 되려 남자 주인공이 사랑의 이발소와 그곳의 주인 마미에 의해 소비되는 이야기라는 면에서 의외성이 발생합니다. 남녀 가릴 것 없이 소비되는 인간들 사이에서 영화 내내 가장 많이 소비되는 두 사람, 마미와 아키라가 서로를 게걸스럽게 소비하며 행복해하는 결말은 역설적입니다. 그리고 다시, 이들 모두를 노골적인 목적과 경제적인 비용으로 소비하는 관객으로 말미암아 비로소 완성되는 작품이라 할 수 있을 테죠.

 

 

 

 

 

 

# 3.

 

여기까지는 그리 어렵지 않은 작품 내적인 이야기라 할 수 있을 텐데요. 미로운 것은 로망 포르노를 만드는 감독 자신의 처지를 투사한 메타 영화처럼 읽히기도 한다는 점입니다. 이를테면 주인공 아키라를 '갓 서른 남짓의 초짜 감독 모리타 요시미츠의 분신'이라 가정해 보자는 것이죠.

 

아담하고 젊고 매력적이며 이해에 밝고 계산적인 여주 마미는 그 자체로 로망 포르노입니다. 마미의 이발소는 그런 로망 포르노들이 의자(객석)에 앉은 손님들에게 기계적으로 서비스를 제공하는 닛카쓰 영화사쯤 될 테죠. 어려서 마미의 부모가 돌아가시고 이발소를 물려받았다는 설정은 과거 나름의 영광을 누렸지만 지금은 몰락해버린 닛카스의 역사를 은유한다 이해하면 무난합니다. 아키라가 취업하길 원하는 대기업은 청년 모리타 요시미츠가 꿈꾸던 과시적이고 번듯하고 멀끔한 메인스트림 영화 감독을, 전 여자 친구 유카는 그런 시네마에 대한 순수하던 시절의 동경이라 할 수 있겠죠.

 

 

 

 

 

 

# 4.

 

취직에 좌절하는 아키라는 메인스트림 영화를 감독하는 데 번번이 실패한 감독의 처지를 은유합니다. 돈이든 성적이든 대가를 주고받는 식으로만 이루어지던 관계들과 달리 아키라와 유카는 아무런 비용 없이 사랑을 나누는 유일한 관계인데요. 청년 모리타와 시네마 사이의 순수성을 의미한다 이해하면 무난하겠죠. 아키라가 마미를 겁탈하려 하지만 실패하는 대목은 자신의 욕망으로 로망 포르노를 휘두르려고도 시도해 봤지만 실패했음을 의미합니다. 되려 그는 마미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즉, 로망 포르노에 고용되어 영화적 기교를 공급하는 노동자로 전락하고 맙니다. 직접 보고 계신 것처럼 말이죠.

 

헤어진 유카의 새로운 새로운 남자 친구는 원래의 아키라가 꿈꾸던 이상적인 감독으로서의 모습이라 말씀드렸는데요. 번듯한 차를 타고 나타나 유카를 품에 안은 남자에게 주먹질 하고 돌아서는 아키라는 득의양양한 표정이지만, 호쾌한 표정과 달리 상황은 자조적인 정신승리 밖엔 되지 않는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자신의 꿈을 폭행한 후 좌절감이라는 이름의 샴페인을 터트리는 모습은 루쉰의 아Q에 대한 오마주라 해도 과언이 아닐 지경이죠.

 

섹스를 할 때마다 되뇌는 좌로 세번 우로 세번은 로망 포르노의 법칙을 따를 수밖에 없는 자신에 대한 비장미 넘치는 조롱 즈음될 텐데요. 구령에 맞춰 조련하는 듯한 마미의 리드는 처절함을 더합니다. 영화는 갑자기 뮤지컬 영화라도 되는 것마냥 춤을 추며 막을 내리는데요. 마지막의 춤은, 영화에 대한 사랑(합격 통지서)을 갈기갈기 찢은 감독이 닛카쓰사(이발소)에 고용되어 만든 무대. 관객이 60여 분간 본 영화 <사랑의 이발소> 그 자체를 은유합니다.

 

 

 

 

 

 

# 5.

 

그럴싸 한가요? 만약 제 이해가 감독 모리타 요시미츠의 의도와 같다면 이 영화는, 갓 서른 넘은 나이부터 애로 영화나 만들고 있는 자신의 처지에 대한 짙은 자조와 함께, 자신을 고용한 영화사를 유사 성행위를 판매하는 싸구려 이발소로 매도하는 날 선 풍자라 할 수 있을 텐데요. 흥미로운 것은 영화사를 조롱하는 영화가 그 영화사의 돈과 이름을 달고 버젓이 개봉되었다는 점입니다. 이유는? 도입에서 말씀드린 세 가지. 저예산, 짧은 런타임, 10분에 한번 섹스신이라는 법칙을 충실히 지켰기 때문이죠.

 

강력한 조건이라는 것은 역설적으로 그런 조건을 만족하기만 한다면 무엇이든 해도 좋다는 뜻이되기도 합니다. 위의 세 가지 법칙만 지켜준다면 영화사를 퇴폐 이발소로 조롱해도 상관없다는 식인 것이죠. 만약 감독 스스로 성적인 코드를 쓰는 데 불편함만 없다면 세가지 제약조차 사소하게 느껴졌을 겁니다. 로망 포르노라는 이름이 가지는 극단적으로 낮은 기대치까지 감안하면 아이러니하게도 그 어떤 프로젝트보다도 자유롭게 영화를 찍을 수도 있는 토양이 되었던 셈이죠. 실제 명망 있는 일본 감독들 가운데 적지 않은 수가 초기작 중 로망 포르노를 필모그래피에 올리고 있는 이유랄까요.

 

2016년. 시오타 아키히코, 소노 시온, 유키사다 이사오, 시라이시 카즈야, 나카타 히데오라는 쟁쟁한 영화감독 다섯이 모여 프로젝트를 선보입니다. 이름하야 로망 포르노 리부트 (Roman Porno Reboot). 이들이 일련의 프로젝트를 기획한 것은 갑자기 싼마이 에로 영화를 찍고 싶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 시대 자유로움에 대한 동경 때문이지는 않았을까 상상합니다. 부산국제영화제를 통해 소개되었던 다섯 편의 재기 발랄한 영화들은 글을 쓰는 지금 왓챠에서 서비스되고 있습니다. 하나같이 B급 에로 영화라고 무시하고 지나치기엔 아까운 작품들이죠. 모리타 요시미츠 감독, <사랑의 이발소>였습니다.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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