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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SF & Fantasy

미녀와 천사 _ 나의 엔젤, 해리 클레벤 감독

그냥_ 2023. 10. 24.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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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역시 피부 좋고 향기 좋으면 반은 먹고 들어갑니다.

 

 

 

 

 

 

 

 

해리 클레벤 감독,

『나의 엔젤 :: Mon Ange』입니다.

 

 

 

 

 

# 1.

 

판타지 로맨스 영화입니다. 주인공은 내내 홀딱 벗고 다니는 투명인간인데요. 유일하게 입는 옷이라곤 엄마의 빨간 드레스 하나뿐인 노출증 변태죠. 홀로 자식 키우는 엄마가 '나의 엔젤'이라 불렀다고 자기 이름 삼아버린 나르시시스트이기도 한데요. 한국에서 태어나 우리 똥강아지라 불렸으면 졸지에 영화 제목도 우리 똥강아지가 될 뻔했습니다. 후반부 접어들어 오만데 드나들 수 있는 능력을 살려 여자 알몸을 훔쳐보기까지 하는데요. 언제 잡혀 들어가도 할 말 없을 문제적 인물임에 틀림이 없죠. 그런데 이런 놈도 연애를 합니다. 결혼하고 애도 낳습니다. 미모의 여자친구랑 같이 데이트도 하고 수영도 하고 얼레리 꼴레리도 하고 할거 다 합니다. 아내가 남편에게 빠진 이유는, 목소리가 좋고 냄새가 좋고 피부가 좋아서라는데요. 역시 그루밍족이 대세긴 대센가 보군요.

 

그런데 말이죠. 혹시 영화를 보고 난 후 다른 작품이 하나 떠오르지는 않으셨나요. 저는 신기하게도 어느 유~명한 고전 애니메이션 한 편이 떠오르더라구요.

 

 

 

 

 

 

# 2.

 

<미녀와 야수>를 거꾸로 뒤집어 재해석한 작품입니다.

 

'이름을 대신하는 Beast'는 '이름을 대신하는 Angel'로 대체됩니다. 야수의 흉악한 외모는 아예 보이지 않는 투명한 모습으로 대비됩니다. 고전 동화 특유의 고풍스러운 분위기는 자연주의적인 신비로운 판타지로 변주됩니다. 화려한 야수의 성 역시 소박한 오두막으로 대비됩니다. 떠다니는 물건들은 주인공에 의한 것이기도 하지만 그냥 물건들이 알아서 떠다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데요. 이것들 역시 야수의 성에서 분주하게 다니던 하인들로부터 가져온 것이죠. 구태여, 공중에 뜬 숟가락, 케이크의 촛불, 움직이는 의자, 거울 달린 옷장 등을 중요하게 쓰고 있는 이유랄까요. 특히 오프닝과 앤딩의 마술은 요정의 저주로 시작해 저주가 풀리며 끝나는 원작에 대해 노골적인 오마주라 할 수 있습니다.

 

당연히 플롯도 뒤집혀 있습니다. 미녀가 야수를 찾아가는 서사는 집에 갇힌 소녀를 주인공이 찾아가는 이야기로 뒤집어 놓았구요. 미녀가 아버지를 구하며 시작하는 이야기는 엔젤이 엄마를 잃으며 시작되는 것으로 대칭되어 있죠. 흉악한 외모에 거리를 두던 미녀가 점점 내면의 아름다움을 사랑하게 되는 대신, 내면을 충분히 사랑하게 된 미녀가 외모에 놀라 절망하는 클라이맥스를 향해 흘러가고 있기도 합니다. 화려한 야수의 성에서 시작하는 이야기 역시 소박한 오두막에 도착하며 끝나는 형식으로 뒤집혀 있구요, 성이 '불'에 타던 미녀와 야수와 대조적이게도 나의 엔젤은 화면을 가득 채운 '물'로 마무리 짓고 있기도 하죠. 중반즈음 "너는 저들을 볼 수 있지만, 저들은 너를 볼 수 없으니 무서워할 거야."라는 엄마의 대사는 작품이 어디에 모티브를 두고 있는지 은근슬쩍 암시합니다.

 

물론 큰 틀에서의 주제의식은 비슷합니다. 내면의 아름다움을 발견한 두 사람의 서로를 구원하는 진정한 사랑. 뭐, 대충 그런 것이죠. 다만 디테일에서는 약간의 진보가 있습니다. 어쨌든 <미녀와 야수>는 날 때부터 아름다웠던 벨이 야수를 저주로부터 구원한다는 면에서 시혜적인 이야기라 할 수 있는 데다, 결말의 보상을 다시 왕자의 '아름다움'으로 돌려준다는 면에서 한계가 명확한 구시대적인 작품이기도 한데요. 그에 반해 <마이 엔젤>은 미녀의 관점에서 야수에게 시혜를 베푸는 대신 엔젤의 관점에서 끌고 나가는 작품이기도 하고, 결말에 이르러 엔젤이 저주를 극복하는 대신 그의 모든 것을 그 자체로 사랑하는 연습을 함께 해 나간다는 면에서 뚜렷한 차이가 있습니다.

 

특히 물은 그 자체로 표정을 묘사할 수 없는 인물의 내면에 투영된 슬픔을 상징합니다. 물의 기준에서 보자면 영화는 물이 없다가, 작은 세면대로 발전되었다가, 하늘에서 쏟아지는 비를 지나, 거대한 호수로 확장되는 이야기라 할 수 있는 데요. 마들렌은 엔젤의 슬픔을 치유하는 대신 그의 슬픔까지 온몸을 던져 사랑하게 되었다는 앤딩은 감동이 있습니다.

 

 

 

 

 

 

# 3.

 

얼핏 말씀드린 것처럼 영화는 철저히 비스트 아니 '엔젤'의 시점에서 전개됩니다. 특히 흥미로운 것은 모습을 지움으로 인해 자연스럽게 1인칭화 된다는 점입니다. 다소 부담스러운 아이 컨텍 장면들은 영화의 1인칭화가 감독의 의도된 결과물임을 성실히 증명합니다. 말인즉, 관객을 주인공의 감각에 붙들어 놓았다는 건데요. 정작 주인공은 내내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피동적 상황에만 놓여있습니다. 엄마가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구속한다거나, 기억을 잃고 혼자 내버려 둔 채 사망한다거나, 마들렌이 수술을 하러 떠나버린다거나, 약속한 시간이 한참 지나서야 돌아온다거나 하는 것들 말이죠.

 

그로 인해 관객은 영화를 보다 보면 (낭만적인 사랑과 별개로) 상황에 구속된 것만 같은 답답함을 느끼게 되는데요. 이는 그 자체로 자신의 정체성 일부가 저주처럼 옥죄는 듯한 뉘앙스를 주게 되고, 마지막 호수에서의 자유로운 수영으로 대비되어 강렬하고 원초적인 해방의 이미지를 완성합니다. 엔젤과 엔젤에 은유된 존재들에 대한 보다 높은 차원의 연민과 사랑인 것이죠.

 

혹은 2세라는 코드 역시 생각해 봄직합니다. 아버지가 있었다는 것에서 시작해 아이가 태어나는 것으로 막을 내리는 작품이니까요. 외모적 특성이 확률적으로 이어지고도 이어지지 않기도 한다는 면에서 작게는 못생긴 외모, 넓게는 장애를 극화한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마들렌이 앞을 보지 못하는 장애가 있었다는 설정은 이 같은 추측을 암시하는 맛이 느껴지기도 하죠.

 

 

 

 

 

 

# 4.

 

미녀와 야수를 적극적으로 차용하는 작품에서 가장 뚜렷한 오리지널리티라면 역시나 주인공이 투명하다는 점일 텐데요. 자연스럽게 왜 굳이 다른 것도 아닌 '투명하다'는 설정을 고른 걸까를 생각해 볼 수도 있을 겁니다.

 

못생겼든 장애가 있든 어쨌든 존재는 합니다. 반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존재 그 자체를 의심받게 되죠. 나의 존재를 증명하는 건 흘러내리는 빗물처럼 금새 사라지고 말 흔적을 제외하면, 나의 소리와 냄새와 맛을 기억해 주는 누군가뿐입니다. 그 사람이 어릴 적엔 엄마였고 커서는 마들렌이었던 것이죠. 즉, '존재'와 '인식' 사이에서 '사랑'을 통찰하는 작품이라 할 수 있습니다.

 

통상적으로 우리는 사랑스러운 존재를 사랑하기 마련입니다. 뒤집어 말하자면 사랑을 증명하는 것은 존재죠. 반면 영화 속 사랑은 인식이 결정합니다. 인식이 사랑을 증명한다면 나의 사랑은 내 것이 아닌 상대가 가지고 있다는 뜻이 됩니다. 수년이 지나는 동안 엔젤이 마들렌을 사랑할 수 있었던 건, 그의 존재를 인식해 줄 마들렌이 그를 기억하고 사랑하고 있었기 때문이듯 말이죠. 훨씬 상호적인 형태의 사랑이랄까요. 이처럼 영화가 인식에 대해 다루고자 함은 병에 걸린 엄마가 아들을 알아보지 못하는 장면을 통해서도 확인됩니다. 해리 클레벤 감독, <나의 엔젤>이었습니다.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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