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좋아하세요? :)

늦은 저녁 맥주 한 캔을 곁들인 하루 한편의 영화, 그리고 수다.
영화 이야기는 언제나 환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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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Comedy 85

부서진 안경과 사라진 첼로 _ 돈을 갖고 튀어라, 우디 앨런 감독

# 0. 로트와일러가 되고 싶었던 치와와의 유쾌한 모험 우디 앨런 감독, 『돈을 갖고 튀어라 :: Take The Money And Run』입니다. # 1. 애니홀, 맨해튼, 카이로의 붉은 장미, 브로드웨이를 쏴라, 미드나잇 인 파리 등으로 익숙하실 우디 앨런의 두 번째 연출작입니다. 국내 영화로도 패러디될 만큼 유명한 제목의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의외로 우디 앨런의 연출작인 줄은 모르셨던 분들이 계시던데요. 냉소적이면서 서정적이기도 한 후기 작품들에 비해 초기 작품들은 이질적일 정도로 노골적인 코미디물이었기 때문일 겁니다. 감독 고유의 언어유희와, 채플린으로 대표되는 20세기 초 슬랩스틱 무성영화 작법의 오마주, 백신 부작용이랍시고 랍비를 들이미는 식의 막무가내 개드립을 적절히 엮어 낸 수작 코미디죠...

Film/Comedy 2022.06.30

좀비는 거들뿐 _ 좀비랜드, 루벤 플레셔 감독

# 0. Rule 17. Don't Be a Hero. 루벤 플레셔 감독, 『좀비랜드 :: Zombieland』입니다. # 1. 좀비 영화는 호러영화의 하위 장르 중 하나입니다. 좀비가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나는 상황에서의 조바심과, 사람들이 하나둘 희생되는 동안의 긴박감, 본성이 폭로되는 순간의 역설적 카타르시스를 즐기는 장르물이죠. 대체로 작품의 성패는 몰입도 높은 세계관 설정과 미술 및 연출의 퀄리티, 주인공 파티 중 일부가 리타이어 하는 방식의 독창성과, 폭력을 직면하는 순간의 감정선 등에 의해 결정됩니다. 대부분의 좀비 영화에서 좀비는 재난으로 기능합니다. 사회적 행동 아래 숨겨진 인간 군상을 끄집어내는 폭력적 계기 정도로 정의할 수 있죠. 세상 젠틀하던 인물이 자기 목숨이 경각에 달리는 순간 지체..

Film/Comedy 2022.06.02

환생 했나? _ 스탈린이 죽었다!, 아만도 이아누치 감독

# 0. 죽은 줄 알았는데 말이죠. '아만도 이아누치' 감독, 『스탈린이 죽었다! :: The Death of Stalin』입니다. # 1. 역사적-정치적 사건의 내막과 암투를 다루는 작품들의 리뷰란 결국 장학 퀴즈 식으로 귀결되기 마련입니다. 저지른 악행들과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비참한 죽음, 스스로 만든 권위가 골든 타임을 놓치게 만드는 아이러니, 고상 떠는 취미와 대조되는 지저분한 실금, 독살을 의심해 의사들을 모조리 숙청하는 바람에 제대로 된 진료의 기회조차 받지 못하는 어리석음, 모함하고 비위 맞추는 데에만 능한 간신들과, 능력에 어울리지 않는 휘향 찬란한 직함과, 웃옷을 가득 채운 무수한 훈장의 요청 등이 실제로도 그러했답니다~ 라는 식이죠. 거기다 진중한 정치사극이 아니라 노골적으로 골려먹기..

Film/Comedy 2022.02.28

왓포드 역배 _ 습도 다소 높음, 고봉수 감독

# 0. 무더위의 짜증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거라면 [습도 높음] 정도로도 충분했을 겁니다. 그럼에도 작품의 제목은 습도 [다소] 높음. 분명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거겠죠. '고봉수' 감독, 『습도 다소 높음 :: The rain comes soon』입니다. # 1. 영화관을 공습하는 빌런들의 영화입니다. 영화판을 사수하는 어벤저스의 영화입니다. 이율배반적인 설정이 캐릭터 쇼에 풍성함을 더합니다. 에어컨도 돌아가지 않는 텅 빈 영화관을 박봉에 홀로 지키는 '찰스'를 모두가 무자비하게 괴롭힘에도, 마냥 불쾌한 것이 아니라 찡하고 짠한 건 본질적으로 이들이 미운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죠. 각각은 영화 상영이라는 사건을 지키기 위해 각자의 일상, 이를테면 아르바이트라거나 소개팅, 결혼 준비, 무료 음료수 따위를..

Film/Comedy 2022.01.12

그게 뭔데 씹덕아 _ 헤일, 시저!, 코엔 형제 감독

# 0. 앤딩 크레디트가 올라가는 걸 보며 생각했습니다. 아... 이 영화를 본 사람들은 다 죽었겠다. 평론가들은 좋아 죽었을 테고, 대중들은 지루해 죽었겠구나. '코엔 형제' 감독, 『헤일, 시저! :: Hail, Caesar!』입니다. # 1. 걸작 영화 만드는 공식을 알려드릴까요. 이리저리 베베 꼬인 철학 논문을 하나 가져다 살을 붙여 영상화하세요. 참 쉽죠? # 2. 철학이 영 복잡하고 어려우시다면 유명 감독과 함께 영화를 만드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일정 수준 이상의 명성을 쌓은 덕에 '까면 무식한 사람'이란 수식어가 붙어버린 몇 감독과 함께라면 이너 서클의 상호 감시와 견제가 무수한 악수의 요청으로 승화되는 모습을 어렵잖게 목격하실 수 있을테죠. 글로벌 PC질에 편승해 당위로 무장한 무거운 ..

Film/Comedy 2021.10.21

베이비의 죽음 _ 시바 베이비, 엠마 셀리그만 감독

# 0. 욕 아닙니다. '엠마 셀리그만' 감독, 『시바 베이비 :: Shiva Baby』입니다. # 1. [시바 Shiva]는 유대교식 장례문화의 일종으로 친인척이 사망한 경우 Aninut이라는 이름의 장례 절차를 치른 후 가지게 되는 7일간의 애도기간을 뜻합니다. 애초에 시바라는 말부터가 히브리어로 숫자 7을 뜻하죠. 솔직히 저나 여러분이나 피차 처음 들으셨을 겁니다. 어지간해선 한국인이 유대교 문화에 익숙하기란 쉽지 않으니까요. 말씀드린 바와 같이 엄밀하게는 '장례 후 고인을 보내는 동안의 마음가짐을 정돈하는 기간'이라고는 합니다만, 우리 입장에선 그냥 장례식과 동의어로 이해한다 하더라도, 이 영화를 즐기시는 데 큰 무리는 없을 겁니다. # 2. 어쨌든 시바가 열렸습니다. 엄마의 등쌀에 못 이겨 참석..

Film/Comedy 2021.09.11

무시하는 겁쟁이 _ 오목소녀, 백승화 감독

# 0. 촉망받던 유망주였지만 바둑 대회에서 실패를 겪은 후 기원 알바를 전전하던 주인공이 생활고를 극복하기 위해 오목 대회에 도전하는 영화입니다. 전반적으로 짧은 호흡의 가벼운 말장난 개그로 승부 보는 코미디물인데요. 57분 내내 한방의 훅 없이 잔펀치만 집요하게 때리다가 마지막에 따뜻한 메시지로 반창고를 붙여주는 영화라 말씀드린다면 무난하겠네요. '백승화' 감독, 『오목소녀 :: Omok Girl』입니다. # 1. 2014년 이후 만들어진 바둑과 인생을 엮는 다른 모든 창작물들처럼 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작품입니다만 감독은 '어차피 이렇게 된 거 아예 패러디물로 가볼까?' 라는 쪽으로 가닥을 잡은 듯합니다. 알파고 드립과 같은 잔잔한 농담뿐 아니라 후반부 클라이맥스를 장식하는 나 드립 등은 특히 노골..

Film/Comedy 2021.08.18

술래잡기 _ 해리의 소동,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

# 0. 맥거핀 [macguffin] 속임수, 미끼라는 뜻. 영화에서는 서스펜스 장르의 대가 알프레드 히치콕(Alfred Hitchcock)이 고안한 극적 장치를 말한다. 극의 초반부에 중요한 것처럼 등장했다가 사라져 버리는 일종의 ‘헛다리 짚기’ 장치를 말한다. 관객들의 기대 심리를 배반함으로써 노리는 효과는 동일화와 긴장감 유지이다. (후략) [네이버 지식백과] 맥거핀 [macguffin] (영화 사전, 2004. 9. 30., propaganda)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 『해리의 소동 :: The Trouble With Harry』입니다. # 1. 18분 50초. '윅스' 부인의 가게에 찾아온 '말로우'와 '아이비'입니다. 말로우가 식료품과 담배를 사며 돈이 없다 말합니다. 윅스 부인은 익숙하다..

Film/Comedy 2021.08.08

시곗바늘 그 영화 _ 마침내 안전!, 프레드 C. 뉴마이어 / 샘 테일러 감독

# 0. 무성영화 시대 슬랩스틱 스턴트 코미디를 이야기하며 '찰리 채플린'을 거론하는 건 영 심심합니다. 채플린이 위대한 영화인이라는 데에는 누구도 이견이 없을 테지만, 저 같은 홍대병 환자들에게 있어 그런 것 따위보다는 내가 얼마나 아는 척을 할 수 있느냐가 훨씬 더 중요하기 때문이죠. 한동안은 '버스터 키튼' 정도면 충분히 비빌 수 있었습니다. '위대한 무표정'이라는 별명과 , , 등의 대표작들을 '당연히 아는 것 아니냐'는 듯한 심드렁한 표정으로 나열한 다음, 이런 것들은 그리 중요하지 않으며 그가 가진 영화에 대한 순수한 열정과 용기, 인류사를 관통하는 통시적 가치들에 천착함으로 인해 어느 시대에서든 동시대성을 느끼게 만드는 표현, 창조적이고 도전적이며 이지적인 촬영 기법과 완벽주의자적 태도 등의..

Film/Comedy 2021.08.02

바보에게 바보가 _ 스몰 타임 크룩스, 우디 엘런 감독

# 0. He is arrogant. Like all people with timid personalities, his arrogance is ­unlimited. Anybody who speaks quietly and shrivels up in company is unbelievably ­arrogant. He acts shy, but he’s not. He’s scared. He hates himself, and he loves himself, a very tense situation. To me, it’s the most embarrassing thing in the world—a man who presents himself at his worst to get laughs, in order to f..

Film/Comedy 2021.07.29

뒤풀이 _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 리모트, 우에다 신이치로 감독

# 0. 앙코르까지 했으면 이젠 뒤풀이를 해야겠죠. 앙코르 _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 스핀오프, 나카이즈미 유야 감독 # 0. 보통 맛있는 음식은 두 번 먹어도 맛있습니다. 처음 먹을 때만큼은 아니더라도 말이죠. '나카이즈미 유야' 감독,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 스핀오프 할리우드 대작전! カメラ を止めるな! morgosound.tistory.com '우에다 신이치로' 감독,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 리모트 대작전! :: カメラ を止めるな! リモート大作戦!』입니다. # 1. 도전적인 프로젝트성 단편입니다. 언제나와같이 극중극 역시 같은 제목의 프로젝트성 단편이죠. 코로나로 인해 사회적 거리두기가 한창 진행되던 2020년 일본, '히라구시' 감독에게 원격으로 영화를 만들어 볼 것을 제안한 것으로 시작..

Film/Comedy 2021.07.15

맛없는 도시락의 역설 _ 4교시 체육시간, 예민희 감독

# 0. 이어폰을 낀 기환의 걸음걸이, 시선, 자세에서 느낌이 팍 옵니다. 크흑... 이것이 '진짜'라는 것인가. 중 세 번째 단편입니다. '예민희' 감독, 『4교시 체육시간 :: School Off』입니다. # 1. 전직 엘리트 찐따의 전문가적 식견으로 보건대 캐릭터 디테일이 썩 훌륭합니다. 특유의 어수룩한 말투, 뭘 해도 애매한 엉거주춤한 자세, 꾀병 부려 체육시간 제끼고 교실로 돌아오는 순간의 의기양양함 뿐 아니라 외부의 압력에 의해 왜곡된 겉모습과 내적 자아의 간극, 평소 들어온 말들과 해왔던 행동들이 자신도 모르게 투사되는 순간들에 대한 표현이 풍부하면서 또 자연스럽습니다. 아이템의 중량감을 통제하기 위해 인물의 희화화가 아니라 장르적 음악들을 적극 활용했다는 점도 세심하다 해야 할 듯하구요. ..

Film/Comedy 2021.07.09

너무 에드가 라이트 _ 개강, 왕천일 감독

# 0.  오랜만에 옴니버스입니다. 동국대 영상대학원 제작이라는 걸로 봐서는 학생 작품인 듯하네요. 옴니버스의 제목은 영화 속 누군가의 흑역사로도, 훗날 위대한 감독이 될 유망주들이 되돌아보며 흑역사라 말할 초기작이라는 뜻으로도 이해할 수 있는 거겠죠. 좋습니다. 중 첫 번째 단편입니다.        '왕천일' 감독,『개강』입니다.     # 1.  작품과 전혀 상관없는 사담을 잠시 해볼까요. 글을 쓰든 그림을 그리든 음악을 만들든 영화를 만들든. 분야를 막론하고 창작과 관련된 직업을 꿈꾸는 사람들이라면 공통적으로 타게 되는 일정한 테크트리가 있습니다. 입문할 때만 해도 마음만 먹으면 그럴싸한 작품을 얼마든지 만들 것 같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보는 것과 만드는 것 사이에는 어마무시한 간극이 있다는 걸..

Film/Comedy 2021.07.05

대환장파티 _ 디스 이즈 디 엔드, 에반 골드버그 / 세스 로건 감독

# 0.  둘 이상의 사람이 모여 순서대로 자리합니다. 앞사람이 말한 단어의 마지막 글자로 시작하는 새로운 낱말을 늘어놓아야 합니다.        '에반 골드버그', '세스 로건' 감독,『디스 이즈 디 엔드 :: This Is the End』입니다.     # 1. 단어의 길이에 제약이 없는 경우도 있지만 때론 두 글자면 두 글자, 세 글자면 세 글자 글자 수를 맞춰 게임을 하기도 합니다. 대체로 두음법칙은 적용 가능합니다. 같은 단어를 반복하는 것도 허용되곤 하지만 재미를 위해 썩 권장되지는 않습니다. 외래어나 외국어, 고유명사나 인명 등을 사용할 수 있게 하느냐, 그러지 않느냐를 놓고 변주를 줄 수도 있죠. 플레이어 간에 합의된 룰에만 부합한다면 모든 어휘는 허용됩니다. 다음에 왜 가 나오는지, 죄..

Film/Comedy 2021.04.07

물과 기름 _ 더 파티, 샐리 포터 감독

# 0.  예전엔 이런 류의 영화를 어떻게 소개해야 좋으려나 싶어 골치가 아팠습니다만, 이젠 딱 한마디면 손쉽게 소개할 수 있습니다. 완벽한 타인 같은 영화라고 말이죠.        '샐리 포터' 감독,『더 파티 :: The Party』입니다.     # 1.  서두에 말씀드린 대로 비스무리한 작품입니다. 개성 강한 예닐곱의 인물들이 등장합니다. 축하받을 만한 경사를 맞는 누군가가 호스트가 되어 지인들을 집으로 초대합니다. 초반엔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을 수다스럽게 나눌 테지만 딱히 집중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그저 캐릭터들을 관객에게 소개하는 작업이기 때문이죠. 얼추 15분여 동안 인물 소개가 적당히 끝나고 나면 차례차례 약속 장소에 도착한 인물들이 한데 모이게 됩니다. 처음엔 호스트를 축하하는 식의, 적..

Film/Comedy 2021.03.17

큰 잘못을 했나 보다 _ 무비 43, 엘리자베스 뱅크스 외 감독

# 0. 어느새 왓챠 피디아에 등록한 영화의 수가 네 자리를 훌쩍 넘어가네요. 확실히 일정 숫자 이상의 평점을 등록하면, 나름 신뢰할만한 추천 시스템이 갖춰진다는 게 왓챠의 최대 장점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물론 장르 편식을 유도한다는 치명적인 단점도 있긴 하지만요. , . 자투리 시간을 이용해 100분이 채 되지 않는 짧은 시간 동안 치고 빠질 수 있는 옴니버스식 코미디 영화라는 기준에선 썩 나쁘지 않은 추천입니다. 늦은 저녁 시계를 힐끗 쳐다본 후, 기분 좋게 냉장고 앞으로 걸어가, 다섯 개 만원 하던 편의점 맥주를 한 캔 꺼내 들었고, 영화를 봤습니다. 그리고 마음 깊이 반성했죠. 내가 왓챠에 뭔가 큰 잘못을 했나 보다. 최근에 넷플릭스나 구글 무비를 자주 찾은 바람에 화가 난 건가. 돈도 얼마 안 ..

Film/Comedy 2021.03.12

하드코어 빌런 _ 폴레트의 수상한 베이커리, 제롬 엔리코 감독

# 0.  마니아분들로부터 꾸준히 사랑받는 프랑스 영화입니다. 대부분은 다양한 장르의 실험작들과 도발적인 예술영화들, 혹은 특유의 고풍스러운 분위기나 역사성, 완성도, 자유로움 때문에 프랑스의 영화를 좋아하시는 듯합니다만, 솔직히 저는 그냥 우리가 가지고 있는 무의식적 도덕 경계, 그 상식을 일말의 주저도 없이 파괴하고 뛰어넘어 버리는 과격함 때문에 좋아합니다. 이 영화는 그 기대에 정확히 부응하는 작품들 중 하나라 할 수 있겠죠.        제롬 엔리코 감독,『폴레트의 수상한 베이커리 :: Paulette』입니다.     # 1.  본론에 앞서 도저히 이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가 없네요. 저는 도무지 모르겠습니다. 대체 왜 이러는 걸까요. 왜 마케팅을 이따위로 하는 걸까요. 포스터 좀 보세요. 분홍분..

Film/Comedy 2021.03.07

냉동 고추 바사삭 _ 11:14, 그렉 마크스 감독

# 0. 우연과 필연으로 명징하게 직조해낸 스릴 넘치면서 유쾌한 킬링 타임용 오락 영화. '그렉 마크스' 감독, 『11:14』입니다. # 1. 본 영화도 몇 편 안 되는 주제에 구미를 당기는 작품이 없다고 투덜거리면서 온종일 영화 목록을 뒤지는 건 바로 이런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서일 겁니다. 대작의 화려함이나 걸작의 유려함은 없지만 대신 세상 잃을 것 없는 놈들의 자유분방함과 창의적인 발상, 도발적인 전개로 함께 놀아보자 덤비는 이런 영화들 말이죠. # 2. 이게 바로 킬링 타임용 오락 영화입니다. 제작비만 오지게 때려 박았을 뿐 이야기는 클리셰 대충 비벼 만들어 놓고선 "영화는 영화일 뿐이잖아?" 라거나, "킬링 타임용 영화가 이만하면 됐지!" 라 말하는 감독들의 엉덩이를 시원하게 걷어 차는 것만 같은..

Film/Comedy 2021.03.03

유쾌하게 조롱당할 수 밖에 _ 디어스킨, 쿠엔틴 두피유 감독

# 0.  조르주는 전 재산을 털어 100% 사슴가죽 재킷을 구매한다. 덤으로 받은 캠코더로 영화감독 행세를 하던 그는 세상에서 유일하게 재킷을 입은 사람이 되기 위해 다른 사람들의 재킷을 없앨 계획을 세운다. 이 설명을 읽고 어떻게 안 볼 수 있겠어요.        '쿠엔틴 두피유' 감독,『디어스킨 :: Le daim』입니다.     # 1.  서두에 말씀드린 괴랄한 소개 그대로입니다. 조르주라는 이름의 남자가 순도 100% 사슴 가죽 재킷 하나에 전재산을 꼬라박습니다. 덥수룩한 수염의 털북숭이 호구를 낚은 사기꾼은 등쳐먹은 게 영 찝찝했던지 덤으로 캠코더를 하나 선물하죠. 사슴 재킷을 입고 신난 호구는 바에서 술을 마시는 데 웬 창녀가 직업이 뭐냐 묻자 영화감독이라 구라를 칩니다. 의자에 걸쳐둔 사슴..

Film/Comedy 2021.03.02

로코풍 스릴러 _ 맨해튼 미스터리, 우디 앨런 감독

# 0. 살인사건을 다룬 미스터리 스릴러라고 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시나요? 소름 돋게 만드는 서늘한 감각이 떠오르기도 하구요. 의지하게 만드는 주인공의 카리스마가 생각나기도 하는군요. 끔찍한 살인마의 잔혹함도 필수요소인 듯하고, 살인 사건에 얽힌 실체가 밝혀지는 순간의 웅장한 마무리 또한 생각이 납니다. '우디 앨런' 감독, 『맨하탄 미스테리 :: Manhattan Murder Mystery』입니다. # 1. 대체로 위와 같은 접근들은 모두, 미스터리 스릴러라는 장르가 지향하는 바를 달성하기 위한 정석적 방법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고요하고 오싹해야 관객이 긴장감을 가지고 영화에 몰입할 수 있을 테구요. 주인공에게 카리스마가 있어야 감정이입이 수월하겠죠. 살인마가 잔혹해야 사건이 빨리 해결되었으면 하..

Film/Comedy 2021.01.21

저비용 고효율 _ 강박이 똑똑, 빈센테 빌라누에바 감독

# 0. 저명한 심리 치료 전문가 '팔로메로' 박사를 만나기 위해 상담소를 찾은 중증 강박증 환자! 약속 시간이 되었건만 예기치 않은 비행기 연착으로 인해 박사는 나타나지 않고! 심지어 프로그램 오류로 인해 동시에 여섯이나 되는 환자가 한 자리에 모이게 되었다?! 기다리다 지친 환자들이 스스로 그룹치료를 통해 강박증을 극복하고자 하는데!! 빈센테 빌라누에바 감독이 여러분을 위해 준비한 웃음과 감동이 가득한 저예산! 휴머니즘! 메디컬! 코미디! 블랙유머! 캐릭터 쇼! 스페인 영화!! '빈센테 빌라누에바' 감독, 『강박이 똑똑! :: Toc Toc』입니다. # 1. 영화라기보다는 연극의 냄새가 짙게 풍깁니다. 신기하다 싶어 찾아봤더니 아니나 다를까 원작이 연극이었군요. 연극에서 영화로 재구성하는 과정 일체를..

Film/Comedy 2021.01.18

왜 부끄러움은 나의 몫인가 _ 차인표, 김동규 감독

# 0. 자학성 풍자개그와 병맛 코미디를 동시에 잡고자 했습니다만 풍자와 코미디가 실종되고 말았습니다. 남은 건 자학하는 병X 뿐이란 의미죠. 저런... '김동규' 감독, 『차인표 :: What Happened to Mr. Cha?』입니다. # 1. 애초부터 난이도가 너무 높은 아이템입니다. 스스로를 놀림감으로 삼는 풍자물을 만들려면 풍자의 대상이 되는 주인공의 높은 리얼리티가 필연적으로 동반되어야 하는데 리얼리티가 짙어지면 짙어질수록 병맛 코미디를 펼치기엔 되려 너무 힘들어지기 때문이죠. 그렇다고 병맛 코미디에 무리하게 포커싱을 했다간 자학개그들에 페이소스가 상실되며 풍자가 아닌 가상의 바보연기로 전락하고 말 겁니다. 이 영화가 정확히 그러하죠. 굳이 한 가지 선택을 해야 한다면 병맛 코미디 보다는 풍..

Film/Comedy 2021.01.08

아담 샌들러 홈커밍 _ 머더 미스터리, 카일 뉴어첵 감독

# 0. 아담 샌들러 + 제니퍼 애니스턴입니다. 전형적인 미국식 말장난 코미디물이라는 거죠. '카일 뉴어첵' 감독, 『머더 미스터리 :: Murder Mystery』입니다. # 1. 말장난 코미디이자 대리만족 포르노입니다. 범접할 수 없는 경제력을 가진 부호들 한복판에 떨어진 '나와 비슷한 삶을 사는 평범한 중산층 커플'이 그들 수준의 부를 맘껏 누리는 걸 보며 대리만족을 즐기는 영화죠. 여기서 멈추면 영화가 끝나고 난 후 부러움과 질투심, 열패감과 같은 부정적 감정만 남게 될테니 끝나기 전에 현실로 돌아와 으쓱할 수 있도록 부자들에게 어떤 식으로든 한방 먹이며 자존감을 회복할 겁니다. 그 한방이라는 것은 언제나 돈보다 더 의미 있는 가치를 역설하는 훈계질로 귀결될 가능성이 클테죠. # 2. 세부적인 방..

Film/Comedy 2020.11.15

의식의 흐름 _ 죽지않는 인간들의 밤, 신정원 감독

# 0. 타고나길 공부와는 거리가 먼 학생이었습니다만 수능은 유난히도 거하게 조졌었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매년 시월 즈음해서 슬럼프에 허덕이는 빌어먹을 바이오리듬의 인간이라는 걸 알게 되었지만 당시는 무지 당황스러웠던 기억이 나는군요. 여하튼 그 때문에 직장생활을 할 때나 프리랜서 생활을 할 때나 연중에 휴일을 거의 가지지 않다가 시월에 몰아 쓰는 게 버릇이 되고 말았습니다. 올해는 코로나 때문에 휴가를 몽땅 집안에서 태웠습니다만 작년엔 제주를 다녀왔었더랬죠. 자전거를 타고 일주를 했었는데 그거 해보겠답시고 여행도 전부터 운동을 미리 하느라 똥줄 탔던 기억입니다. 참, 그러고 보니 그때 당시 한창 다니던 피트니스 클럽이 최근에 문을 닫고 그 자리에 빵집이 생겼더라구요. 쓱 스쳐 지나가는 길에 소시..

Film/Comedy 2020.11.01

리디아를 위하여 _ 비틀쥬스, 팀 버튼 감독

# 0.  판타지의 거장은 아이러니 하나를 다뤄도 이렇게나 현란하게 요리합니다.        '팀 버튼' 감독,『비틀쥬스 :: Beetlejuice』입니다.     # 1.  유령이 된 아담과 바바라 부부는 마치 사람 같아 보입니다. 그들은 시종일관 평범한 사람의 복식과 평범한 사람의 상식으로 행동합니다. 125년간 지내게 될 집을 가장 아끼며 가꾸는 이들은 이 유령 부부입니다. 유령은 '잘 살고' 싶어 합니다. 괴팍한 불청객들이 부부의 화목한 집에 침입하는 걸 보며 '못 살겠다' 투정합니다. 유령 부부는 무려 사람 들린 집에 살게 된 자신들의 팔자를 형벌이라 말합니다. 저택을 사들인 사람들, 찰스와 델리아 가족은 되려 유령 같아 보입니다. 가족은 괴기한 예술철학과 오컬트, 고스, 혹은 돈 따위에 빠져있..

Film/Comedy 2020.09.03

리빙 포인트 _ 마스크, 척 러셀 감독

# 0.  판타지 만화 혹은 게임 원작 영화라고 하면 큰 기대감이 들지 않는 건 어쩔 수 없는 듯합니다. 나 같은 수작들이 없는 것은 아니거니와 설령 평가는 좋지 않다 하더라도 원작 팬덤의 세에 힘입어 손익분기점을 넘은 작품까지 포함한다면 제법 수가 되긴 합니다만, 그럼에도 타율이 좋다 이야기하기엔 좀 민망하죠. 때문에 적지 않은 수의 원작 팬들은 아예 자신이 애정하는 작품이 영화화되지 않길 바라기도 합니다. 괜히 개판으로 만들어놔서 시리즈에 오점을 남기는 게 싫거든요.        '척 러셀' 감독,『마스크 :: The Mask』입니다.     # 1.  만화나 게임 원작 영화가 흥행하기 힘든 이유는 표현의 질감과 수용자의 마인드, 경험적 목표 따위가 본질적으로 달라도 너무 다르기 때문입니다. 만화 ..

Film/Comedy 2020.09.01

펜로즈의 계단 _ 신경쇠약 직전의 뱀파이어, 다비드 륌 감독

# 0. 뱀파이어 신화와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을 함께 엮어낸 영화. 라고는 합니다만 뭘 알아야 이해를 하죠. 급하게 심리학 전공의 친구에게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이란 놈을 3줄 요약해 달라 했더니 돌아온 건 "그걸 알면 내가 교수를 하지. 개소리 말고 술이나 한잔 하실?"이라는 메시지였습니다. 뜻밖의 술값 지출은 감독에게 청구해야겠네요. '다비드 륌' 감독, 『신경쇠약 직전의 뱀파이어 :: Der Vampir auf der Couch』입니다. # 1. 평범한 현실과 신화적 무의식이 아닌, 뱀파이어가 존재하는 현실과 평범한 무의식이 만드는 역설적 세계관 속에 유로피언 B급 감성 코미디를 버무려낸 독특한 작품입니다. 네 명의 주인공 각자의 욕망과 교수의 잠꼬대, 최면과 꿈, 히스테리와 강박증, 불안, 그림자,..

Film/Comedy 2020.08.07

조진웅 쇼 _ 퍼펙트 맨, 용수 감독

# 0.  명확한 증거도 없이 당사자가 부정하는 상황에서 작품에 표절이라는 굴레를 씌우는 게 그리 보기 좋은 모습 같진 않습니다만, 사실 여하와는 별개로 이 작품이 관객으로 하여금 기시감을 강하게 불러일으킨다는 점까지 부정할 수는 없는 거겠죠. 굳이 올리비에르 나카슈, 에릭 톨레다노 감독의 을 거론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이 영화는 2000년대 초반 조폭 코미디물과 JK 식 공장제 영화의 승리 공식에 대한 기시감을 너무 많이 불러일으킵니다.        용수 감독,『퍼펙트 맨 :: Man of Men』입니다.     # 1.  늘 그렇습니다. 훌륭한 성취를 거둔 외화 두어 편이 자꾸만 눈앞에 아른거리지만 다행스럽게도 감독은 해당 작품을 알지 못합니다. 어차피 외국에 팔 것도 아니니 국내 관객 어필용 현지화를..

Film/Comedy 2020.08.05

스타일리스트의 매력 그리고 한계 _ 메기, 이옥섭 감독

# 0. 에헤이~ 상상력이 많으면 그 인생 고달퍼~ '이옥섭' 감독, 『메기 :: Maggie』입니다. # 1. 교회의 십자가는 누군가의 바람에 의해 병원이 됩니다. 재개발지의 푸른 장막은 누군가의 사명감에 의해 해수욕장이 됩니다. 타인의 성기가 찍힌 X-ray는 누군가의 부끄러움에 의해 주인이 뒤바뀝니다. 병원 식구들의 병가는 누군가의 의심에 의해 섹스 스캔들을 면피하기 위한 꾀병이 됩니다. 펜던트의 사진은 누군가의 선입견에 의해 딸의 것으로 오해됩니다. 어린 소녀는 얼토당토않은 소문에 의해 살인미수라는 오명을 쓰지만, 그녀 역시 친구가 아빠에게 떠밀려 건물에서 떨어진 것이라 근거 없이 확신하고 있습니다. 사과를 깎다 다쳤다 말하는 사람의 말을 믿었지만 그의 배에서 나온 건 총알이었고, 사람을 믿어야 ..

Film/Comedy 2020.07.27

달이 아름답네요 _ 집에 돌아오면, 언제나 아내가 죽은 척을 하고 있다, 리 토시오 감독

# 0. 코스프레에 재능 있는 아내와 연기파 직장인 남편입니다. 저 정도 손재주와 미모면 그냥 직장 생활 관두고 유튜버로 전직하면 떼돈 벌거 같은데요. 아직 한창인 3년 차에 이혼 같은 뻘소리 하지 말고 저랑 골드 버튼이나 노려보는 게 어때요? '리 토시오' 감독, 『집에 돌아오면, 언제나 아내가 죽은 척을 하고 있다 :: 家に帰ると妻が必ず死んだふりをしています』입니다. # 1. 범용성 높은 가족 코미디를 늘어놓은 후 마지막 신파의 폭풍으로 한방을 노리는 한국식 드라마 영화들에 반해, 일본의 드라마 영화들은 만화적인 모에캐의 카와이かわいい한 덕후 감성으로 분량을 때운 후 안분지족安分知足식 교훈극으로 승부를 보고자 하는 게 일반적입니다. 이 영화는 그런 보편적인 일본 드라마 영화의 좋은 예라 할 수 있겠네요..

Film/Comedy 2020.07.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