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좋아하세요? :)

늦은 저녁 맥주 한 캔을 곁들인 하루 한편의 영화, 그리고 수다.
영화 이야기는 언제나 환영입니다.

Film/Comedy

좀비는 거들뿐 _ 좀비랜드, 루벤 플레셔 감독

그냥_ 2022. 6. 2. 06:30
728x90

 

 

# 0.

 

Rule 17.

Don't Be a Hero.

 

 

 

 

 

 

 

 

루벤 플레셔 감독,

『좀비랜드 :: Zombieland』입니다.

 

 

 

 

 

# 1.

 

좀비 영화는 호러영화의 하위 장르 중 하나입니다. 좀비가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나는 상황에서의 조바심과, 사람들이 하나둘 희생되는 동안의 긴박감, 본성이 폭로되는 순간의 역설적 카타르시스를 즐기는 장르물이죠. 대체로 작품의 성패는 몰입도 높은 세계관 설정과 미술 및 연출의 퀄리티, 주인공 파티 중 일부가 리타이어 하는 방식의 독창성과, 폭력을 직면하는 순간의 감정선 등에 의해 결정됩니다.

 

대부분의 좀비 영화에서 좀비는 재난으로 기능합니다. 사회적 행동 아래 숨겨진 인간 군상을 끄집어내는 폭력적 계기 정도로 정의할 수 있죠. 세상 젠틀하던 인물이 자기 목숨이 경각에 달리는 순간 지체 없이 약자를 좀비에게 미끼로 집어던지는 모습이라거나, 역으로 무뚝뚝한 인물이 소중한 사람을 위해 숭고한 희생을 선택하는 모습 등은 익숙한 클리셰이실 겁니다. 일반적으로 좀비 영화하면 잔인하고 징그러운 묘사를 떠올리기 마련이지만 의외로 드라마와도 접점이 큰 장르죠.

 

 

 

 

 

 

# 2.

 

반면 <좀비랜드>는 보편의 좀비 영화와 전혀 다른 재미를 선사합니다. 클리셰를 뒤집은 코미디를 곁들인 '서바이벌 헌팅 액션'에 훨씬 가까운 작품이죠. 합에 따라 움직이는 홍콩 영화스러운 잡화점 액션씬이라거나, 록 페스티벌 방불케 하는 기념품 가게 때려 부수는 장면, 앤딩의 인형 뽑기 부스 안에 들어간 탤러해시가 쌍권총을 난사하는 장면 등은 이 작품의 정체성이 어디에 있는가를 분명히 합니다.

 

자연스레 좀비의 역할 역시 구별됩니다. 좀비랜드에서의 좀비는 재난이 아니라 환경을 단순화하는 조건으로 기능합니다. 사회적 행동을 부정해 본성을 탐구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관계의 의미를 탐구할 수 있도록 주변을 정리하고 압박하는 것이죠. 인물 설정을 살펴보면 방향은 더욱 분명해집니다. 사회적 인물들이 생존을 위해 개인으로 분리되어 갈등하는 보편의 좀비 영화들과 달리 이 작품의 서사는 히키코모리, 사이코 마초, 사기꾼 자매라는 고립된 개인이 사회적 관계를 형성해 나가는 과정이라 할 수 있으니까요.

 

개인적으로 좀비랜드를 들어 잘 만든 좀비 영화라거나 못 만든 좀비 영화라는 식의 평에 동의할 수 없는 이유입니다. 애초에 좀비 영화가 아니기 때문이죠. 당장 영화를 보신 분들 가운데 주인공 4명 중 누군가가 위험할 것이라 생각하신 분 계신가요? 아무도 없으셨을 겁니다. 주요 인물 모두 이렇게나 안전한 데 좀비 영화 일리가 있나요.

 

그래서 작품의 제목도 좀비 '월드'가 아닌 좀비 '랜드'입니다. 디즈니 랜드와 같은 테마파크의 이름인 것이죠. 클라이맥스를 퍼시픽 플레이랜드라는 놀이공원으로 장식한 것은 감독의 의도를 분명히 합니다. 이곳은 조작된 스릴을 맛볼 수 있는 안전한 공간. 폐점시간이 지나면 즐거운 추억과 가족의 소중함을 들고 무사히 집으로 돌아가는 테마파크입니다.

 

 

 

 

 

 

# 3.

 

이름 대신 목적지로 불린다는 설정은 흥미롭습니다. 

이름은 곧 정체성이라 할 수 있을 텐데요. 이들의 목적지는 모두 허상이기 때문이죠.

 

각자의 목적지에는 내적인 갈증이 투영됩니다. 콜럼버스는 부모를 찾아 콜럼버스를 향하는데요. 위치타에게 비관적인 이야기를 듣자 찾아가기를 포기합니다. 일반적으론 혹시 모르니 찾아가겠다 해야 자연스럽습니다만 너무 손쉽게 포기하죠. 그에게 부모는 찾아가야 하니까 찾아가는 곳일 뿐입니다.

 

탤러해시는 망각입니다. 좀비에 잃어버린 아들의 기억과 고통으로부터 달아나기 위한 도피처일 뿐이죠. 여행하는 동안 아들을 잊지 못한다면 필연적으로 새로운 여행을 떠나야 할 겁니다. 위치타와 리틀 락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공간입니다. 길을 잃은 인물들인 것이죠. 리틀 락이 진짜 가고 싶은 곳은 단란한 가족과 뛰노는 놀이공원, 위치타는 자신의 목적지를 동생에게 희생하고 있습니다.

 

그러던 이들이 일련의 과정을 거쳐 진짜 목적지를 찾게 됩니다. 콜럼버스의 진짜 목적지는 머리를 귀 뒤로 넘기게 해주고 싶은 위치타가 되구요. 탤러해시의 목적지는 죽은 아들 대신 살아남는 방법과 총 쏘는 법을 알려줄 수 있는 새로운 사람들이 되죠. 위치타의 목적지는 더 이상 거짓말을 하지 않아도 되는 믿을 수 있는 사람들이었고, 리틀 락의 목적지는 함께 놀이동산에서 놀아 줄 사람들로 변합니다. 설명할 수 없는 이유로 목적지를 내달리던 사람들이 자신의 이름을 되찾는 여정입니다.

 

 

 

 

 

 

# 4.

 

좀비 영화는 아닙니다. 좀비는 소품일 뿐이죠.

가족의 탄생이란 목적지를 향해 나아가는 외톨이들의 로드 무비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가족 구성이 맞아떨어지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보통 가족 영화들의 경우 고전적 역할 관계에 인물들을 끼워 맞추기 마련이거든요. '엄마 없는 아이'와 '아이 없는 엄마'가 만나 엄마와 아이의 역할로 조립되었다는 식으로 흘러가는 것이 일반적이죠. 흔히 가족 영화하면 끝나갈 무렵 앞줄에 앉은 새로운 자녀와 뒷줄에 선 새로운 부모가 단란한 가족사진을 찍는 장면 따위가 자연스럽게 연상되는 이유입니다.

 

반면 좀비랜드는 그런 식의 배치를 의도적으로 회피하고 있습니다. 콜럼버스와 탤러해시는 형제와 동료 중간 어딘가의 애매한 정서를 교류합니다. 콜럼버스와 위치타는 우정과 연애 감정을 동시에 공유하죠. 탤러해시와 리틀 락은 느슨하게나마 부녀 관계를 형성하는데, 또 리틀 락의 친언니인 위치타는 탤러해시와 동등한 눈높이에 있는 식입니다.

 

이들은 개인 간 서사에 따라 고유의 정서를 1:1로 나누고 있을 뿐 가족 구성원으로서의 위치나 도리나 책임으로부터 한없이 자유롭습니다. 정형화된 가족도로 설명할 수 없는 관계의 사람들이 정서적으로 융화되어가는 과정은, 가족이라는 것의 본연의 가치를 환기하게 한다는 면에서 일련의 소동을 통틀어 가족 영화라 칭하기에 부족함이 없죠.

 

 

 

 

 

 

# 5.

 

영화의 서사는 '개인'으로서 잘 사는 방법에 숙달된 사람들이

'가족'으로서 잘 살기 위해 규칙을 수정하는 이야기라 할 수 있습니다. 

 

콜럼버스의 생존 규칙은 좀비 영화의 클리셰들을 비트는 것이기도 하지만 무난하게 '개인'이 잘 사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굳이 좀비가 없다 하더라도 지구력이 좋아서 나쁠 건 없구요. 무슨 일이든 확실히 해서 나쁠 것도 없죠. 안전벨트를 맨다거나, 여행은 가볍게 떠난다거나, 유능한 동료를 사귄다거나 하는 것도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됩니다. 준비운동을 하거나, 퇴로를 확보하거나, 지퍼백이나 페이퍼 타월이나 여분의 속옷을 챙기는 건 현명한 일이죠. 무엇보다 작은 것들을 즐기며 사는 건 특히 중요합니다.

 

유용한 규칙으로 좀비를 돌파하던 영화의 결말은 각자가 자신의 규칙을 어기는 것으로 귀결됩니다. 마초 탤러해시는 갈길을 멈추고 콜럼버스를 태웠구요. 콜럼버스는 피에로의 뚝배기를 갈기며 영웅이 되었죠. 위치타 역시 자매 외에 아무도 믿지 말라는 스스로의 규칙을 어깁니다. 영화를 가득 메운 호쾌한 액션 장면들에도 불구하고 사실 영화의 가치를 함축하고 있는 명장면은, 네 사람이 자리를 바꿔가며 앞으로 앞으로 여행하는 동안의 행복한 표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 6.

 

액션은 기가 막히게 뽑았습니다만 가족 영화의 측면에서 캐릭터의 깊이가 밋밋하고 얕다는 점까지 부정할 수는 없을 듯합니다. 인물들은 시나리오가 미리 결정한 듯한 결과에 따라 가족을 찾을 뿐 정서적으로 교류하는 과정에 대한 묘사는 빈곤합니다. 뭐, 언제나의 '루벤 플레셔'죠.

 

감독 얘기한 김에 연기 얘기도 짧게나마 해 볼까요. '제시 아이젠버그'는 매번 느끼는 것이지만 참 독특한 배우입니다. 뭐랄까요. 연하게 연기하는 배우랄까요. 진하게 연기 잘하는 배우들은 많습니다. 숙련이 부족해 흐리게 연기하는 배우들도 많죠. 반면 선명하게 연한 연기를 하는 배우는 드뭅니다. 구름 한 점 없는 푸른 하늘 같은 특유의 스타일은 영화가 만드는 세계와 어우러져 대체할 수 없는 풍부함으로 승화됩니다.

 

'우디 해럴슨'은 제시 아이젠버그의 연한 배경에 진한 킥을 더하는 연기를 성공적으로 수행합니다. 탤러해시를 다른 배우가 맡았더라면 이 정도의 스타일과 리듬감을 영화에 불어넣을 수 있었을까 의심스럽습니다. '엠마 스톤'과 '아비게일 브레스린'은 같은 주인공 무리치곤 정당한 공간을 부여받진 못합니다만, 두 배우 모두 개인기로 나름의 결과를 만들어 냅니다.

 

# 7.

 

끝으로 날아갈 듯 가벼운 코미디에 생각할 거리를 숨겨두는 영화라는 측면에서 문득 <사랑의 블랙홀>이 떠오르기도 한데요. 물론 까불다 죽은 빌 머레이 때문이라 보는 것이 맞을 겁니다. 꼬장꼬장하고 괴팍한 영감님 오랜만에 또 보니 반갑군요. 루벤 플레셔 감독, <좀비랜드>였습니다.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 본 블로그는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글에서 다루는 작품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댓글", "포스트를 자신의 블로그로 유인하는 데 이용하려는 댓글", "무분별한 맞팔로우 신청 댓글" 등은 삭제 후 IP 차단될 수 있습니다.

 

 

"좋아요", "댓글""구독"

 

은 블로거에게 큰 응원이 됩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