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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Comedy

펜로즈의 계단 _ 신경쇠약 직전의 뱀파이어, 다비드 륌 감독

그냥_ 2020. 8. 7.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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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뱀파이어 신화와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을 함께 엮어낸 영화.

 

라고는 합니다만 뭘 알아야 이해를 하죠. 급하게 심리학 전공의 친구에게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이란 놈을 3줄 요약해 달라 했더니 돌아온 건 "그걸 알면 내가 교수를 하지. 개소리 말고 술이나 한잔 하실?"이라는 메시지였습니다. 뜻밖의 술값 지출은 감독에게 청구해야겠네요.

 

 

 

 

 

 

 

 

'다비드 륌' 감독,

『신경쇠약 직전의 뱀파이어 :: Der Vampir auf der Couch』입니다.

 

 

 

 

 

# 1.

 

평범한 현실과 신화적 무의식이 아닌, 뱀파이어가 존재하는 현실과 평범한 무의식이 만드는 역설적 세계관 속에 유로피언 B급 감성 코미디를 버무려낸 독특한 작품입니다. 네 명의 주인공 각자의 욕망과 교수의 잠꼬대, 최면과 꿈, 히스테리와 강박증, 불안, 그림자, '무엇이 정상인가'에 대한 반복된 물음 따위에서 무의식과 관련된 무수히 많은 학문적 코드들이 엿보이긴 합니다만,

 

앞서 말씀드린 대로 솔직히 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궁금하신 분들은 주변의 한창 취업준비 중일 심리학 전공자들을 들볶아 보도록 합시다.

 

 

 

 

 

 

# 2.

 

그나마 다행스러운 건 프로이트에 대한 이해 없이도 영화의 감상에는 큰 불편함이 없다는 점입니다. 테마는 뱀파이어와 프로이트이지만 주제의식은 본질이 담기지 않은 허구적 욕망에 매몰된 바보들의 우화라는 보편적인 아이디어이기 때문이죠.

 

자꾸만 '김용건' 선생이 떠오르게 하는 '게차 폰 쾨츠스뇜 백작'은 영원한 삶과 가공할 능력과 재력, 거기다 미모의 아내까지 둔 멋들어진 인물이지만 삶의 동기를 완전히 상실한 공허한 인물입니다. 그는 오래전 첫사랑 '나딜라'가 언젠가 환생할 것이라는 허황된 믿음에 기댄 채 죽지 못해 살고 있죠. 백작의 아내 '엘사 폰 쾨츠스뇜 백작부인'은 자신의 얼굴이라는 본질을 가지고 있지만 그걸 간접적으로 비춰볼 수 없음에 절망하고 또 집착하고 있습니다.

 

 

 

 

 

 

# 3.

 

화가 '빅토르'는 아름다운 여자 친구 '루시'와 함께 하고 있지만, 그것으론 만족하지 못한 채 금발에 드레스를 입은 이미지에 대한 성적 집착에 빠져 있습니다. 백작의 하인은 최면에 빠진 '루시'가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하다는 착각을 하고 있죠.

 

이웃 '세드라체' 부인은 자신과 하등 상관없는 다른 연인의 치정을 엿듣는 짓에 여념이 없고.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것만 같던 '프로이트 교수' 역시 시종인관 헛다리를 짚으며 자신의 상담자가 뱀파이어라는 것도 자신의 목에 뱀파이어의 엄니가 박혔던 것도 알아차리지 못합니다.

 

 

 

 

 

 

# 4.

 

주인공 '루시'는 개성적인 세 캐릭터 모두의 환상 속 인물입니다. 백작은 나딜라의 드레스를 입고서 스스로 뱀파이어가 되길 청하는 루시를 원합니다. 백작부인은 빅토르가 창조한 금발의 아름다운 얼굴을 가진 루시를 원합니다. '빅토르'는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는 금발의 모습을, 사건이 일어난 후에는 본래의 묶은 머리에 바지를 입은 루시를 원하죠. 하지만 이는 모두 손에 넣을 수 없는 허구적 집착에 불과합니다.

 

정작 '루시' 스스로 원하는 자신은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뱀파이어로서의 루시죠.

 

 

 

 

 

 

# 5.

 

가짜 루시에 집착하던 인물들은 꿈처럼 지나가 버릴 몇 번의 밤 동안 각자 자신의 욕망 속 루시를 손에 넣지만 강압적으로 조작된 루시는 갈증을 채워 주지 못합니다. 이성의 통제를 벗어난 허구적 욕망을 손에 쥔 대가는 가혹하기만 하죠.

 

백작은 그렇게나 집착하던 '나딜라'의 목걸이에 뱀파이어라는 정체성의 상징인 엄니를 잃게 됩니다. 백작 부인은 고대하던 얼굴 그림을 짧게 만끽하지만, 그것이 자신의 얼굴이 아님을 알고. 원래의 주인 '루시'를 해치려다 스스로 박아 넣은 말뚝에 목숨을 잃고 맙니다. '빅토르'는 그토록 꿈꾸던 금발의 '루시'를 만났지만 행복이 아닌 불안과 의심에 고통받게 되고, 욕심을 버리고 원래의 '루시'로 돌아올 것을 바라지만 돌아온 건 다락방에 거꾸로 매달린 여자 친구뿐이죠. 하인은 '루시'를 납치해 속성으로 배운 최면을 시도하지만 깊은 우물 속에 갇힐 뿐입니다. 물론, '루시' 역시 뱀파이어가 될 수 있는 수많은 기회가 있었음에도 결국 뱀파이어가 되지는 못하죠.

 

 

 

 

 

 

# 6.

 

각자의 인물들은 비현실적 희망에 매몰됨으로 인한 강박증과 편집증, 결여된 자의식의 반동으로서의 집착과 폭력성 그리고 히스테리, 과도한 소유욕을 해갈하기 위한 반복된 검증과 불안장애와 이상적 존재에 대한 맹신 따위의 병리적 모형을 대변합니다. 이들의 정신 상태와 변화에 대한 너무 무겁지도 또 너무 가볍지도 않은 표현들과 함의들을 즐기는 영화라 할 수 있겠네요. 

 

마치 펜로즈의 계단을 걷는 사람처럼 네 모퉁이에서 출발한 네 명의 주인공들이 각자 서로의 뒤를 쫓고 또 쫓지만 각자가 간절히 원하던 상대의 뒤를 잡지 못한 채 영원히 계단을 오르는 동안의 어리석음을 그린 서사랄까요.

 

 

 

 

 

 

# 7.

 

물론 복잡한 주제의식 따위를 논외로 한다 하더라도 영화는 평범한 코미디와 드라마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훌륭합니다. B급 코드 특유의, 투박하고 과격하지만 유쾌하고 쌈박한 코미디가 90분도 채 되지 않는 짧은 런타임을 단숨에 들이켜게 할 만큼 매력적입니다. 휙휙 날아다니는 사람들과, 펄떡이는 심장과, 가열한 부부싸움과, 구슬의 빗속에서 숫자를 세는 백작과, 쉴 새 없이 쏟아지는 텔레포트와, 레어 스테이크를 카프리썬처럼 짜 마시는 식사시간과, 아내가 던지는 접시를 피하는 대부님의 율동과, 엉금엉금 벽면을 긁는 미녀의 슬랩스틱과, 나딜라-다닐라-루실라로 이어지는 아재 개그식 말장난과, 귀염 뽀짝 한 교수의 부작용까지. 하나 같이 놓칠 게 없죠.

 

누차 말씀드린 대로 이 영화 역시 여느 컬트적 영화들처럼 취향은 탈 수 있습니다. 아니, 취향 많이 탈것 같습니다. 만, 그럼에도 아이템에서도 주제의식에서도 코미디로서도 뱀파이어물로서도. 한 번쯤 도전해 볼 법한 작품의 퀄리티는 마련해 둔 영화라 생각합니다. '다비드 륌' 감독, 『신경쇠약 직전의 뱀파이어』였습니다.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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