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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Comedy

리디아를 위하여 _ 비틀쥬스, 팀 버튼 감독

그냥_ 2020. 9. 3.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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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판타지의 거장은 아이러니 하나를 다뤄도 이렇게나 현란하게 요리합니다. 평범한 캐릭터가 어째 단 하나도 없습니다. 상식적인 설정 또한 하나도 없습니다. 편의적인 전개도 일절 찾을 수 없고 결말 역시 관객의 예상과는 완전히 따로 놉니다. 물론 2020년의 시각에선 익숙한 설정이라 할법한 표현이 몇 있을는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이 영화가 개봉된 시기는 1988년. 지금으로부터 무려 33년 전이죠.

 

 

 

 

 

 

 

 

'팀 버튼' 감독,

『비틀쥬스 :: Beetlejuice』입니다.

 

 

 

 

 

# 1.

 

유령이 된 아담과 바바라 부부는 마치 사람 같아 보입니다. 그들은 시종일관 평범한 사람의 복식과 평범한 사람의 상식으로 행동합니다. 125년간 지내게 될 집을 가장 아끼며 가꾸는 이들은 이 유령 부부입니다. 유령은 '잘 살고' 싶어 합니다. 괴팍한 불청객들이 부부의 화목한 집에 침입하는 걸 보며 '못 살겠다' 투정합니다. 유령 부부는 무려 사람 들린 집에 살게 된 자신들의 팔자를 형벌이라 말합니다.

 

저택을 사들인 사람들, 찰스와 델리아 가족은 되려 유령 같아 보입니다. 가족은 괴기한 예술철학과 오컬트, 고스, 혹은 돈 따위에 빠져있습니다. 그들 모두는 과장된 복식을 한 채 신경쇠약, 히스테리, 우울증 따위의 병리적 행동을 보입니다. 유령이 가꾸고 지키고자 하는 집을 사람들은 거칠게 스프레이를 뿌리며 파괴합니다. 곱게 칠한 페인트칠을 비웃듯 엄마가 만든 괴물의 발톱은 과격하게 집을 부숩니다. 자신의 집에 깃든 유령의 존재를 알게 된 가족은 두려워 하기는커녕 이들을 활용해 환상의 테마파크를 만들고자 합니다. Bio-Exorcist를 자처하는 '비틀쥬스'의 등장은, 유령과 딜을 하는 것도 모자라 아예 유령을 소환해 소유하려는 사람들과 그런 사람들로부터 집과 자신을 지키려는 유령 간 아이러니의 화룡점정이라 할 수 있겠죠.

 

 

 

 

 

 

# 2.

 

팀 버튼이 그리는 <비틀쥬스>의 세계는 일반의 상식을 호쾌하게 부정합니다. '선량한 살아 있는 존재'와 '악독한 죽은 존재'의 대립이라는 고전적인 통념을 근간에서부터 파괴합니다. 이승은 삭막하고 정적이지만 저승은 되려 화려하고 생동감이 넘칩니다. 이승은 규범적이고 형식적이고 계산적이고 과시적이지만 저승은 솔직하고 유쾌하며 감성적이고 관계중심적입니다. 이승은 관념적이고 기하학적인 세상으로 묘사되지만 저승엔 되려 사무실과 담당자와 대기열 따위의 촘촘한 리얼리티로 표현됩니다.

 

평범한 호러 영화에서라면 유령을 보고 놀랬어야 할 타이밍마다 사람들은 되려 유령을 개무시합니다. 혼신의 노력을 다한 호러 쇼에 되려 즐거워하며 박장대소합니다. 집 밖을 벗어나려는 부부의 앞을 가로막는 무시무시한 모래벌레는 등장부터 '바바라'에게 쳐 맞으며 체면을 구기죠. 귀신 들린 다락방을 향하며 긴장감을 올려야 할 타이밍엔 되려 "유령이 우릴 쫓아내고 싶은가 보지 뭐!"라며 너스레를 떱니다. 작품 속 가장 괴기스러운 변장은 담당자 '주노'의 사무실에서 무미건조하게 공개됩니다.

 

모험과 추론을 통해 성취해야 할 다음 공간으로의 어드밴처는 친절하게 안내서에 소개되어 있습니다. 관객은 바바라와 함께 설명서에 적힌 내용을 실행에 옮기는 남편 아담에게 핀잔을 주지만 벽돌문은 아랑곳 않고 덜컥 열리죠. 가장 공을 들여 소개되어야 할 주인공은 스펀지와 골판지 모형 아래서 볼품없이 등장합니다. 그렇게 등장한 주인공은 엑소시스트로 개그나 치고 있구요. 사람을 공포로 몰아넣어야 할 무시무시한 해결사의 이름은 겨우 '비틀쥬스. 절대 도움을 요청해선 안될 금기의 해결사는 영화 내내 모형 마을 안에서 코딱지만 한 크기로 툴툴거리기 바쁩니다.

 

 

 

 

 

 

# 3.

 

반전된 세상은 여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영화에서 가장 괴기한 물건을 만드는 최대 빌런은 유령이 아닌 사람 델리아입니다. 되려 귀신은 화목한 춤과 노래를 선사하죠. 리디아는 유일하게 유령을 볼 수 있지만 그들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합니다. 유령 부부 역시 자신을 볼 수 있는 그녀를 딸처럼 아끼고 사랑하죠. 평온한 전원생활보다 죽고 난 이후의 삶(?)은 더욱 고달픕니다. 산 사람을 위한 안내서는 따로 없지만 죽은 사람을 위한 두꺼운 안내서를 공부하지 않았다간 큰 코를 다치게 됩니다. 죽은 사람은 죽고 싶어 하지 않고 산 사람은 살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아담과 바바라 부부에게 집을 내놓으라 보채는 중개사 제인은 사람이지만 그녀는 마치 유령처럼 창문 너머 등장합니다. 유령과 같은 사람을 쫓아내던 부부는 되려 본인들이 유령이 되어 정당하게 집을 산 사람들을 쫓아내게 되죠. 사람은 강아지를 살리기 위해 핸들을 꺾었지만 그 덕에 살아난 강아지는 야속하게도 부부의 차를 물에 빠트립니다.

 

사람을 공포로 몰아넣어야 할 빌런은 되려 딸에게 결혼을 청하고, 땅 속에서 등장해야 할 모래벌레는 지붕을 뚫고 나타나 비틀쥬스를 집어삼킵니다. 유령의 손아귀를 벗어나 현실의 가족으로 돌아가야 할 딸은 되려 유령의 품에 안겨 새로운 가족이 되고. 리디아는 현실의 가족과 유령 가족 중간 어딘가 즈음의 허공에서 춤을 추며 영화는 막을 내립니다.

 

 

 

 

 

 

# 4.

 

좋게 말하면 촘촘한 과격하게 말하면 강박적인 이 모든 비틀린 아이러니들은 모조리 한 가지 목적에 복무합니다. 귀신을 볼 수 있는 우울증에 걸린 고스 소녀, 리디아에 대한 설득이죠.

 

모든 인물의 관계와 설정은 리디아의 시선과 정서를 중심으로 조립되고 기능합니다. 그녀가 스스로 고립된 인격으로 성장하게 된 배경과, 고스에 탐닉하고 사진을 찍고 심지어 유령과 교감할 수 있게 된 환경과, 그녀와 같은 인격에게 필요한 보호와 이해의 방식에 대해 묘사합니다. 부모가 딸의 (설령 허황되어 보일지언정)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지 않음으로 인해 치르게 될 비용과, 다소 독특해 보이는 취향 안에 숨어 있는 통통 튀는 매력을 설득합니다. '정상적이고 규범적인 모습으로의 교정'이 아닌 '가장 자기 자신다울 수 있는 모습에 대한 인정과 응원'이라는, 시대를 감안할 때 충분히 혁신적인 양육 방식에 대해 제안합니다. 영화의 마지막 '리디아'에게 입혀진 붉은 드레스는 팀 버튼 특유의 스타일 뿐 아니라,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와 소녀에게 가지는 깊은 애정을 동시에 엿보게 하죠.

 

영화는 이승과 저승을 오가는 다크 판타지이자, 온갖 말장난과 슬랩스틱이 난무하는 코미디이며, 특유의 괴기한 분장과 표현을 즐기는 호러물입니다만. 동시에 다른 어느 작품 부럽지 않은 드라마적 깊이 또한 가지고 있는 영화라 할 수 있습니다.

 

 

 

 

 

 

# 5.

 

사실 팀 버튼의 초반 필모그래피는 뚜렷한 하나의 메시지의 변주라 해도 무리가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그의 영화 대부분은 어떤 배경, 어떤 장르의 작품인가와 별개로 

 

고독하고 불행한 유년기를 거쳐오는 동안

음울하고 괴짜스러운 성격과 취향을 가지게 되었지만,

그 이면에 연약하면서도 섬세한 예술가의 영혼을 키워나간 소년의 인격에 대한

소개와, 변호와, 사랑과, 설득의 여정

 

이라는 자기 고백적인 테마로 일관되게 귀결하기 때문이죠. 리디아는 이후 감독의 필모그래피에서 활약하게 될 <가위손>에서의 가위손, <배트맨 리턴즈> 에서의 펭귄, <크리스마스 악몽>에서의 잭 스캘링턴과 같은 캐릭터들의 어머니라 할 수 있을 겁니다.

 

# 6.

 

이 작품을 팀 버튼의 <공동경비구역 JSA>이자 <살인의 추억>으로 이해합니다. 위대한 아티스트의 등장을 성대하게 알리는 작품이면서 이후 자기 색깔을 듬뿍 담은 스타일리시한 작품을 펼쳐놓을 수 있게 만들 상업적 기반으로서 말이죠. 비틀쥬스는 팀 버튼 최고의 영화는 아닐는지 모르지만 아티스트 팀 버튼의 시작을 이해하는 데에는 아주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영화라는 생각입니다.

 

물론 위의 조잡한 생각들 따위 모조리 치워놓고 보더라도 판타지 코미디만으로도 충분히 유쾌합니다. 세상 지저분하고 부산스러운 비틀쥬스의 잔망스러움과 아담과 바바라 부부의 귀여운 어드밴처와 팀 버튼 특유의 유쾌한 상상력이 가득한 묘사는 30년이 넘는 시간을 가뿐히 극복합니다. 팀 버튼 감독, <비틀쥬스>였습니다.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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