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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Comedy

시곗바늘 그 영화 _ 마침내 안전!, 프레드 C. 뉴마이어 / 샘 테일러 감독

그냥_ 2021. 8. 2.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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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무성영화 시대 슬랩스틱 스턴트 코미디를 이야기하며 '찰리 채플린'을 거론하는 건 영 심심합니다. 채플린이 위대한 영화인이라는 데에는 누구도 이견이 없을 테지만, 저 같은 홍대병 환자들에게 있어 그런 것 따위보다는 내가 얼마나 아는 척을 할 수 있느냐가 훨씬 더 중요하기 때문이죠.

 

한동안은 '버스터 키튼' 정도면 충분히 비빌 수 있었습니다. '위대한 무표정'이라는 별명과 <Our Hospitality>, <Sherlock Jr.>, <The General> 등의 대표작들을 '당연히 아는 것 아니냐'는 듯한 심드렁한 표정으로 나열한 다음, 이런 것들은 그리 중요하지 않으며 그가 가진 영화에 대한 순수한 열정과 용기, 인류사를 관통하는 통시적 가치들에 천착함으로 인해 어느 시대에서든 동시대성을 느끼게 만드는 표현, 창조적이고 도전적이며 이지적인 촬영 기법과 완벽주의자적 태도 등의 가치가 훨씬 유의미하다는 류의 어디선가 주워들은 평론 비슷한 소리를 곁들이면 '올~' 하는 소리와 질투의 눈빛을 동시에 받을 수 있었죠.

 

문제는 '키튼'마저 아름아름 유명해져버리고 말았다는 점입니다. 달리는 기차를 아슬아슬하게 비켜가는 장면이나, 스파이디도 패러디 한 운행 중인 자동차에 팔을 뻗어 올라타는 장면, 무너지는 건물 문 아래의 서있는 스턴트 등의 짤방이 너무 많이 퍼져버렸거든요. '버스터 키튼'이라는 이름까지는 기억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대충 이야기를 하다 '어! 그거 나 봤어!!'라는 반응이 나오면서 김이 팍 새고 말 겁니다.

 

모범 홍대병자로서 슬슬 업데이트가 필요한 시점인데요. 이럴 때 '해럴드 로이드'라는 이름과 이 영화를 떠올릴 수 있다면 아주 훌륭할 테죠.

 

 

 

 

 

 

 

 

'프레드 C. 뉴마이어', '샘 테일러' 감독,

『마침내 안전! :: Safety Last!입니다.

 

 

 

 

 

# 1.

 

동시에 수용할 수 있는 정보의 양에도 한계는 있습니다. 우리 주변엔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정보가 존재하지만 뇌가 그중 유용하다 판단되는 것들을 취사선택하고 있을 뿐이죠. 만약 오감을 모두 활용하는 평소와 달리 갑자기 한두 가지 감각이 제거되면 어떻게 될까요. 아마도 되려 다른 감각이 확장되는 생경한 느낌을 받게 될 겁니다. 암흑 카페에서 콜라를 마셨더니 전혀 다른 맛이 난다느니, 코를 막고 음식을 먹었더니 식감이 더 생생하게 느껴진다느니, 눈을 가리자 평소 의식하지 못하던 소리가 들린다느니 하는 이야기는 모두 그러한 예라 할 수 있죠.

 

제가 무성영화를 좋아하는 이유도 이와 같습니다. 단순히 현장음을 들을 수 없다는 페널티만 있는 게 아니라, 소리로 소통하지 못한다는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여러 가지 창의적인 표현들과, 그것을 발견하고자 하는 관객인 나의 시각적 수용 능력이 확장되는 감각이 썩 흥미롭거든요. 평소 즐겨보는 영화들에 비해 카메라 쇼트나 컷 편집, 배우의 움직임이나 표정, 공간과 구도의 디테일 등이 더 세세하게 잘 보이는 기분이랄까요. 좋게 말하면 범용적인 박하게 말하면 말초적인 아이템 덕에 웃고 즐기는 코미디로서 정줄 놓고 봐도 재미있지만, 코미디를 작동시키기 위해 카메라를 쓰는 상상력을 중심으로 본다 하더라도 또 다른 재미를 즐길 수 있을 겁니다.

 

 

 

 

 

 

# 2.

 

현대 영화들은 비현실적인 상황 연출을 [그린다]는 개념으로 극복합니다. 대표적으로 C.G죠. 반면 그래픽 및 분장 기술이 충분히 발달하기 전의 고전작품들은 위험천만한 상황에서 [속인다]는 개념을 적극 활용합니다. 착시죠.

 

물론 실제 위험을 무릅쓰고 촬영하는 경우들도 많았다고는 합니다. 윤리의식이나 안전의식이 현대에 비해 상당히 느슨한 시대였으니까요. <오즈의 마법사>를 찍으며 미성년자 주인공에게 마약과 줄담배를 강요했다거나, <벤허> 등의 작품을 찍으며 동물을 수백 마리씩 죽게 만들었다거나, 서두에도 소개한 '버스터 키튼'으로 대표되는 배우들의 슬랩스틱 등은 너무도 유명하죠.

 

하지만 일부에서 이런 단순 무식한 방법으로 정면 돌파하는 동안, 또 다른 일부에서는 카메라 프레임의 물리적 영역과 스크린의 평면적 특성을 적극 활용한 착시를 통해 문제를 극복하기도 합니다. 모르긴 몰라도 C.G에 익숙한 관객에겐 촬영 비하인드에 얽힌 에피소드들이 마치 현란한 손놀림의 마술사가 펼치는 트릭처럼 보일지도 모르겠네요.

 

# 3.

 

이 영화 역시 기본적으로 대부분의 스턴트는 주인공 '해럴드 로이드' 본인이 소화합니다. 후반부 건물을 오르는 장면 전까지의, 주연 배우를 저렇게 굴려도 되나 싶을 정도의 슬랩스틱들은 본인의 탁월한 운동능력으로 이뤄낸 성취들임에 분명하죠. 하지만 시곗바늘에 매달리는 장면으로 대표되는 '후반부 건물 오르기 시퀀스'의 위험 등은 구도와 착시를 적극 활용한 일종의 '트릭'으로 극복하고 있습니다. 아래 현장 사진처럼 말이죠.

 

당대엔 관객을 온전히 속여내기 위해 만들어낸 촬영 기법이었겠습니다만, 지금 관객 입장에서 내가 보고 있는 저 아스트랄한 장면들은 어떻게 촬영한 걸까를 역으로 상상해 보는 것도 아주 흥미로울 겁니다. 트릭을 상상하는 과정의 즐거움과, 실제 촬영 방식을 확인하는 동안의 감탄과, 알고 봤더니 트릭 없이 진짜 찍었다는 걸 알게 되는 순간의 경악 어느 쪽이든 말이죠.

 

 

 

 

 

 

# 4.

 

무성영화 시대 명작들의 매력이라 한다면, 특유의 도도한 원칙주의적 태도 또한 이야기할 수 있을 겁니다. 제가 특히나 좋아하는 부분은 코미디의 원칙을 고수하는 단호함에 있습니다.

 

코미디라면 모름지기 당사자의 겉모습은 우스꽝스러울지언정 본인은 절대 진지해야 합니다. 치열해야 합니다. 대상이 약자라면 더더욱 그러해야 하죠. 진지하고 합리적인 행동이 우스꽝스러워 보인다는 모순을 발견하는 과정에서 상황의 구조적 한계점이 포착되기 때문입니다.

 

당장 이 작품만 하더라도 주인공 '해럴드'는 영화 내내 진지하고 심지어 절박합니다. 그는 시골에서 도시로 상경한 인물이고 좁은 방에서 고층 빌딩의 노동자인 친구와 함께 살고 있죠. 집세는 밀려있고 일자리는 위태로우며 돈을 벌기는 버겁기만 한데 그 돈이 없으면 사랑을 잃게 생겼습니다. 하루 종일 한 푼을 아끼기 위해 몸으로 때우는 그가 일하는 공간은 값비싼 원단을 파는 백화점이고, 가난한 청년이 일하는 곳엔 호화스러운 드레스와 보석으로 치장한 부자들이 넘쳐나죠. 

 

이 같은 설정은 몸개그를 즐기는 코미디 영화에 <생존을 위해 끊임없이 속이는 자의 육체적 진심이 만든 아이러니>라는 주제의식을 효과적으로 더합니다. 현대의 무던한 코미디 영화들이 상대적으로 훨씬 여유로운 자본과 환경을 가지고 있음에도 이들 거장의 작품들에 미치지 못하는 건 당사자를 손쉽게 희화화하고 비웃으면서도, 그 속에 담긴 사회적 모순을 지적하는 데에는 비겁하기 때문이죠.

 

# 5.

 

특유의 소녀적 서정성 역시 매력적입니다. 개인적으로 어느 시대에나 그 시대만의 낭만이 빈틈없이 존재한다 믿는 편인데요. 1920년대의 낭만이란 시대의 과격함과 대조된 연약함과 섬세함이 특징적이지 않나 싶은 생각을 하게 되는군요. 단순히 스턴트 코미디뿐 아니라 여자 친구 '밀드레드'의 사랑스러운 움직임과 풍부한 표정, '해럴드'의 피로감이라는 정서적인 측면에 집중해 영화를 즐긴다 하더라도 충분히 재미있을 작품이란 생각입니다.

 

 

 

 

 

 

# 6.

 

여기까지는 무성영화 시대 슬랩스틱 코미디 일반에 대한 이야기에 가까웠다면, '해럴드 로이드'만의 고유한 매력은 역시나 서스팬스라 해야겠죠. 스스로도 말한 <스릴 시퀀스>를 뜻합니다. 단순히 물리적인 것뿐 아니라, 상황적으로든 사회적으로든 경제적으로든 시간적으로든 다양한 층위에서 인물이 쫓기고 내몰리도록 조율하면서 이를 액션 시퀀스에 연결해 관객을 몰아붙이는 솜씨는 과연 탁월합니다. 단순히 위험한 상황에 스스로 노출시키는 기행으로만 예상하신다면, '해럴드'가 묘사하는 다양한 정보 격차에 따른 서스팬스의 스펙트럼에 깜짝 놀라게 되실 겁니다.

 

 

 

... 개인적으론 '찰리 채플린'의 스타일을 가장 좋아하긴 합니다. 가장 경탄하며 본건 아무래도 '버스터 키튼' 쪽이라 해야겠죠. 하지만. 다 필요 없고 장르물로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흥미진진하게 볼 수 있는 작품이란 기준에서라면 전 채플린도, 키튼도 아닌 '해럴드 로이드'를 첫 손에 꼽겠습니다. '프레드 C. 뉴마이어', '샘 테일러' 감독, <마침내 안전!>이었습니다.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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