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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Comedy

부서진 안경과 사라진 첼로 _ 돈을 갖고 튀어라, 우디 앨런 감독

그냥_ 2022. 6. 30.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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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로트와일러가 되고 싶었던 치와와의 유쾌한 모험

 

 

 

 

 

 

 

 

우디 앨런 감독,

『돈을 갖고 튀어라 :: Take The Money And Run』입니다.

 

 

 

 

 

# 1.

 

애니홀, 맨해튼, 카이로의 붉은 장미, 브로드웨이를 쏴라, 미드나잇 인 파리 등으로 익숙하실 우디 앨런의 두 번째 연출작입니다. 국내 영화로도 패러디될 만큼 유명한 제목의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의외로 우디 앨런의 연출작인 줄은 모르셨던 분들이 계시던데요. 냉소적이면서 서정적이기도 한 후기 작품들에 비해 초기 작품들은 이질적일 정도로 노골적인 코미디물이었기 때문일 겁니다. 감독 고유의 언어유희와, 채플린으로 대표되는 20세기 초 슬랩스틱 무성영화 작법의 오마주, 백신 부작용이랍시고 랍비를 들이미는 식의 막무가내 개드립을 적절히 엮어 낸 수작 코미디죠.

 

제멋대로 날뛰는 황당한 상황을 특유의 뻔뻔한 표정으로 우직하게 돌파하는 와중에, 언제나처럼 본인이 직접 연기한 정체성 갈등에 고통받는 찐따 주인공에 대한 변호와 연민을, 작고 소담한 로맨스에 생활감을 곁들여 녹여냅니다. 적지 않은 거장들은 초기 세 작품 안에 자신의 세계를 완성한 후 이를 성숙시키는 과정으로 필모그래피가 누적된다 평가받곤 하는 데요. 마찬가지로 우디 앨런의 세계 역시 시작부터 상당 부분 완성되어 있었다 할 수 있겠네요.

 

사실 영화를 이야기하는 사람에게 코미디와 호러는 썩 좋은 장르가 아닙니다. 글로 풀어놓을 수 있는 성격의 장르가 아니기 때문이죠. 코미디의 내용이나 작동 원리를 이야기하는 것도 무의미하거니와, 연출을 해부적으로 접근하는 것도 장르 목적에 반하니까요. 그러다 보니 '진짜 재미있어요.', '진짜 무서워요.' 말고는 딱히 할 말이 없거든요.

 

가치의 8할 이상이 유쾌한 병맛 코미디로 이루어진 이 영화 역시 마찬가지라 해야 할 겁니다. 따라서 작품을 즐기는 가장 좋은 방법은 랍비와 고릴라와 집시를 던져대는 은행 강도의 모험을 정줄 놓고 마음껏 즐기는 것이라는 것을 전제한 상황에서, 나머지 2할에 해당하는 '버질'이라는 인물의 드라마와 관련된 이야기를 소소하게 나눠보도록 하겠습니다.

 

 

 

 

 

 

# 2.

 

다큐멘터리 스타일의 내레이션이 극을 이끌어간다는 것은 작품의 가장 큰 특징입니다. 주변 인물들이 주인공 버질의 생애를 회고하며 증언하는 것을 재연 사이사이 인서트 하는 플롯이죠.

 

끊임없이 고립되고 도태되는 과정으로 점철된 주인공의 생애를 폭력적 언어로 규정하는 인물들로 하여금 다시 포위하고, 이를 차갑게 비평하는 해설자의 사무적인 목소리로 재차 고립시킵니다. 우스꽝스러운 분장을 하고 전혀 다른 방향의 기대와 욕망과 평가를 늘어놓는 엄마와 아빠의 괴리는 인물의 처지를 노골적으로 상징하죠. 일련의 방법론은 주인공을 가혹하게 내모는 것이기도 합니다만, 소심하고 왜소한 주인공을 모두에게 버려지게끔 만듦으로써 되려 관객들로부터 연민을 요구하는 방식이기도 합니다.

 

버질이란 인물은 성향과 기질과 현실의 충돌로 인한 다각적 괴리감으로 정의할 수 있습니다. 2019년에 개봉한 영화 중에 <럭키 몬스터>라는 작품이 있는데요. 함께 읽히는 바가 있습니다. 봉준영 감독의 도맹수와 우디 앨런의 버질은 사고 방식에 있어 적지 않은 접점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죠. 언제 기회가 되시면 럭키 몬스터를 찾아보셔도 좋겠네요.

 

여하튼 빚쟁이의 독촉에 시달리던 도맹수처럼 버질은 어린아이 때부터 도둑질과 구두닦이로 연명하는 슬럼가에서 태어납니다. 생존을 위해 포식자가 될 것을 강요하는 환경인 것이죠. 하지만 그곳에서 태어난 버질의 태생적 성품과 자질은 먹이사슬 최하단의 초식동물입니다. 그런데 본인은 또 육식동물이 되어 약육강식의 승리자를 갈망하고 있죠.

 

그래서 영화의 제목은 Take The Money And Run. 돈에 투사된 승리를 쟁취하고 싶고 싶은 욕망(Take the Money)과, 무서워 눈을 가린 채 달아나 버리고 싶은 기질(Run)입니다. 그 자체로 주인공의 캐릭터를 문학적으로 은유하는 탁월한 제목이라 하지 않을 수 없죠.

 

 

 

 

 

 

# 3.

 

감독은 다양한 아이템을 활용한 친절한 방식으로 버질의 캐릭터를 구축합니다. 안경, 첼로, 가짜 총 따위는 대표적이죠. 제 아무리 코미디라 한들 자전적 다큐멘터리의 포맷을 차용하고 있는 한 주인공에 대한 입체적 이해의 여부는 영화에 대한 감상과도 직결될 겁니다. 천천히 살펴보도록 하죠.

 

안경은 소심하고 나약한 성품입니다. 영화 내내 버질은 끊임없이 안경을 빼앗기는 데요. 흥미로운 것은 짓밟히기만 할 뿐 폭행을 당하거나 하지는 않는다는 점입니다. 폭력이라는 '관계'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소심하고 겁 많은 '성품'이 노출되는 것이 중요한 장면들이기 때문이죠. 안경이 짓밟히는 동안 버질은 눈을 질끈 감고 양팔로 얼굴을 가립니다. 본래의 기질에 더해진 유년기부터 누적된 상처로 인해 학습된 나약함은 인물의 정체성으로 고착화되죠.

 

안경 없이는 지근거리도 보지 못하는 그가 유일하게 스스로 안경을 벗는 장면은 루이스와의 첫 데이트입니다. 긍정적인 이유로 소심함을 극복하려는 시도는, 새하얀 드레스의 루이스라는 여인이 버질에게 연인 이상의 의미가 있음을 능청스럽게 은유합니다. 역으로 은행털이를 모의하다 경찰관에게 발각된 후 스스로 안경을 벗어 짓밟는 장면이 있는데요. 우스꽝스러우면서도 학습된 무기력함이 발현되어버린 자해적인 장면이기도 합니다. 안경을 빼앗기던 인물이 안경을 극복하려던 시도를 지나 스스로 안경을 짓밟는 인물로 추락하는 것이죠. 내면을 탐구하는 드라마라는 기준에서 가장 중요한 장면을 꼽아라 한다면 그렇게 두 장면을 고를 수 있으리라는 생각입니다.

 

 

 

 

 

 

# 4.

 

첼로는 섬세하고 자상한 예술가적 기질입니다. 비록 방식은 서툴더라도 상황은 폭력적이더라도, 그럼에도 다른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대화를 나누려 하는 수많은 순간들의 시발점인 것이죠.

 

엉망진창의 첼로 연주가 집 안에서 처음으로 흘러나온 음악 소리였다는 내레이션이라거나, 레슨비를 벌기 위해 도둑질을 감행했다는 대목은 이 인물이 가진 섬세한 예술가적 기질과 대비되는 가혹한 환경을 은유합니다. 유리창을 깨며 창 밖으로 버려지는 첼로라거나 거리의 깡패들로부터 악기를 빼앗겨 부서지는 대목은 키워보기도 전에 처참히 부서져 버린 가능성을 은유합니다. 도입에서 돈을 탈취하고 감옥에 들어간 이후로 다시는 첼로가 등장하지 않는데요. 영화 내내 지속적으로 짓밟히는 안경과 분명 차별적이죠. 본성은 훼손될지언정 사라지지는 않지만 기질은 한번 훼손되면 다시 살아나지 못합니다.

 

버질이 운명의 연인 루이스를 만나자 자신을 교향악단의 첼로 단원이라 소개하는 장면은 시종일관 재미있는 영화에서 몇 안 되는 서글픈 순간입니다. 회한이 되어버린 이룰 수 없는 꿈의 건조한 흔적인 것이죠. 이는 인터뷰의 어느 심리학자가 버질의 첼로를 남근과 여성에 비유하는 장면의 천박한 폭력으로 다시 한번 대조됩니다.

 

 

 

 

 

 

# 5.

 

무수히 등장하는 총은 욕망입니다. 문제는 자신의 것이 아닌 남의 것, 발사되지 않는 가짜 총이라는 것이죠. 총 모양 라이터라거나 비에 녹아 거품이 되어버린 비누 총이라거나, 그가 들고 있는 것이 Gun인지 Gub인지로 아웅다웅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버질의 욕망이라는 것이 얼마나 허구적인 것인지를 은유합니다.

 

앞으로 나아가는 퍼레이드에서 첼로를 연주하지도 함께 발맞춰 걷지도 못하는 모습은 그가 가진 기질과 욕망의 괴리를 상징합니다. 남들이 앞으로 걸어가든 말든 신경 쓰지 말고 제자리에서 첼로를 연주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했던 것이죠. 첼로가 부서진 후 '거리의 깡패단이라도 소속되고 싶었다. 거기서 자신의 남자다움을 과시하리라 생각했다'는 증언은 친절합니다. 간수의 옷을 껴입어 가짜 근육으로 으스대는 표정 역시 슬랩스틱 이상의 함의가 있는 것이라 해야겠죠.

 

짓밟히던 안경을 스스로 짓밟는 자의 이야기입니다. 어릴 적 끌어안았던 첼로가 무참히 부서져 사라지는 이야기입니다. 누구도 위협하지 못하는 가짜 총을 들고 돈을 가지려는 이야기입니다. 부서진 첼로의 잔해를 뒤로 하고 깨진 안경을 쓰고 가짜 총을 든 치와와가 로트와일러가 되기위 끊임없이 내달리는 이야기입니다.

 

 

 

 

 

 

# 6.

 

매 순간 고립되고 이탈합니다. 탈옥수 집단에서 고립되자 감옥에 다시 들여다 보내 달라 말하는 장면은 백미라 할 수 있겠죠. 영화는 주인공의 무수히 반복되는 [돈을 갖고 튀려는 시도들]로 정의할 수 있을 테지만, 되려 의미 있는 순간들은 [돈을 갖고 튀지 않았던 순간들]에 있습니다. 서툴지만 신발 닦기로 돈을 벌어 보려던 어린 날, 루이스와의 달콤한 데이트와 짧지만 단란했던 결혼 생활, 나름 직장을 구해보려 애쓰던 순간들과, 경찰이 되어버린 어릴 적 친구를 다시 만났을 때의 천진함입니다.

 

루이스는 버질 못지않은 불우한 유년기를 보낸 인물로 설정되는데요. 두 사람의 삶에 대한 태도는 의도적으로 대비됩니다. 한 명은 세탁의 장인이 되는 동안 한 명은 기계의 도움으로도 옷감 하나 개지 못하는 인물로 그려진다거나, 한 명은 감옥 안에 한 명은 감옥 밖에 있는 식이죠.

 

강렬하게 대비되는  두 사람이지만 감독은 두 사람을 연인으로 만듭니다. 문득 이때까지의 우디 앨런은 그래도 사랑을 믿었던 걸까. 라는 생각도 하게 되는군요. 이후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스타 코미디언이 되고 난 후에도 내적 갈등을 극복하지 못해 염세적으로 사회를 노려보는 찐따가 되기 전, 그래도 은행을 털고 나면 행복해질 수 있으리라 믿으며 비누 총을 깎던 시절의 우디 앨런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 작품의 가장 큰 의의 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디 앨런 감독, <돈을 갖고 튀어라>였습니다.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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