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좋아하세요? :)

늦은 저녁 맥주 한 캔을 곁들인 하루 한편의 영화, 그리고 수다.
영화 이야기는 언제나 환영입니다.

Documentary/Social

겁쟁이 _ 스카이워커스, 제프 짐발리스트 감독

그냥_ 2024. 7. 26. 06:30
728x90

 

 

# 0.

 

자신 있게 못하는 늘 숨어만 있는

나는 겁쟁이랍니다.

 

 

 

 

 

 

 

 

제프 짐발리스트 감독,

『스카이워커스 사랑 이야기 :: Skywalkers: A Love Story』입니다.

 

 

 

 

 

# 1.

 

수학은 인간이 구축한 것 중 가장 일관되고 엄정한 논리체계다. 과학, 공학, 경제학 등 정교한 논리구조를 요구하는 학문들이 수학을 일종의 언어로서 필수적으로 활용하는 이유다. 흥미로운 것은 엄격한 체계일수록 단 하나의 오류만으로도 손쉽게 붕괴된다는 점이다. 어째 숫자보다 알파벳과 로마자가 더 많이 보이는 방대한 현대 수학조차, 고작 [1+1=3]이라는 잘못된 명제 하나의 침입에 허망하게 무너진다. 마찬가지로 다큐멘터리가 부조리로 가득한 것은 그릇된 명체 하나를 끌어안는 과정에서 생긴 논리적 오류다. 지붕에 오른다는 건조한 뜻의 루프토퍼(Rooftopper) 대신 하늘을 걷는다는 뜻의 스카이워커스(Skywalkers)라 자평하는 것처럼, 두 주인공은 자신의 범죄행각을 낭만적 허영으로 합리화하기 위해 억지를 부린다.

 

영화는 자신들의 행동이 위험하기 때문에 비판받는다 호도하지만 착각이다. 위험한 것으로만 치자면 안겔라 어머니의 직업이었다던 서커스 단원도 충분히 위험하다. 험준한 산을 등반하는 산악인도, 고도 수천 미터에서 뛰어내리는 스카이다이버도, 수심 수백 미터를 탐험하는 스쿠버다이버도, 장르적인 사고 현장을 연기하는 스턴트퍼포머도, 줄 하나에 매달려 장치를 정비하는 고압전선정비사도, 고층 빌딩의 미관을 관리하는 로프공도, 화마와 사투하는 소방관도 모두 위험한 직업이지만 이들 모두 불법이 아니다. 오히려 기예나 기록, 헌신을 칭송받기까지 한다. 반면 마찬가지로 위험한 루프토퍼는 존중받지 못한다. 남에게 피해를 주기 때문이다.

 

영상은 타인에게 피해를 준다는 엄연한 사실을 가리기 위한 애처로운 합리화로 점철된다. 예술이라 합리화하고, 서커스와 다르지 않다 합리화하고, 불우한 가정환경으로 합리화하고, 숭고한 자아실현이라 합리화한다. 이 모든 것은 자기 주도적인 삶을 살아갈 천부인권으로서 위대한 인간성의 표출이라 주장하는 동안, 자신들을 방해하는 무리를 부도덕한 것인 양 호도하는 모습은 한심하다. 공사 중인 건물에 침입하다 붙잡혀 구치소에 갇히는 것을 독립운동이라도 한양 낭만적인 것으로 치장하는 모습은 황당하다.

 

 

 

 

 

 

# 2.

 

2021년 항공사 에미레이트에서 광고 프로모션을 하나 진행한 적이 있다. 828m(2,717ft) 높이의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 부르즈 할리파(Burj Khalifa) 정상에 선 승무원이 러브 액츄얼리처럼 패널을 넘기는 광고로, 프로모션의 책임자였던 팀 클라크 대표는 승무원의 침착함과 자신감을 통해 항공사의 서비스와 안전을 상징적으로 표현했다 소개한다. 해당 프로젝트의 핵심은 겉으로 드러나는 출연자의 용기뿐 아니라, 야심 찬 기획을 실현하는 사람들의 끈질긴 협업과 신중한 준비의 과정에 있다. 정당하고 합법적인 방식으로 안전장치를 완비한 상황에서도 얼마든지 고층 빌딩에 오른 인간의 기상을 표현할 수 있다면, 비겁한 루프토퍼 따위가 설 자리는 없다.

 

다큐멘터리의 아이러니는 과격하고 무모한 행동 뒤에 가려진 숨길 수 없는 비겁함이다. 자신의 행위를 책임질 염치도, 자신의 이상을 실현할 실력도, 서커스나 스턴트에 도전할 용기도 없는 사람의 비겁함 말이다. 갑자기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물을 타는 장면은 백미다. 검열을 피하기 위해서라며 고뇌하는 척 하지만 누가 봐도 징집을 피하기 위한 졸렬한 도망이다. 심지어 남자 주인공인 바냐는 우크라이나계이지만 민족의 안위보다는 사랑하는 여자친구와의 범죄행각이 더 달콤하다. 후반부는 쿠알라룸프르의 메르데카(Merdeka Tower)를 침입하는 범죄 기록으로, 최대한 장르적으로 미술적으로 보이기 위해 애를 쓰지만 가치는 없다.

 

 

 

 

 

 

# 3.

 

결국 두 사람이 스스로 정당화한다 믿는 유일한 동아줄은 무수히 반복 거론되는 '후원자'와 '팔로워'다. 바보가 아니면 할 이유가 없는 신기한 바보짓을 구경하고 시험하는 것 이상의 의미가 없건만 그들의 망상 체계 속에서 자신은 세상을 구원하는 슈퍼스타다. 루프토퍼의 모순을 가장 잘 보여주는 대목은, 그 잘난 후원자와 팔로워 중 단 한 명도 다큐멘터리에 얼굴을 비추지 않는다는 것이다. 영화 내내 지극히 편협하고 이기적인 두 사람이 서로 다퉜다 화해했다 반복한다. 그 어떤 대인관계도 없고 오직 걱정하는 가족뿐이다. 이 따위가 자유로운 삶, 예술적인 삶이라 주장하는 것은 자유와 예술에 대한 모욕이다.

 

예술에게 표현은 수단일 뿐이다. 예술이란 무릇 그것에 투영된 영감과 철학이지만 다큐멘터리엔 아무것도 없다. 마치 예술을 하고 있는 것만 같은 착각과, 그 착각을 공유하는 철없는 또래 범죄자와의 투정으로서의 설익은 사랑이 전부다. 고작 한 시간 반짜리 영상임에도 지루한 것은 자신들이 얼마나 고생하고 있는지에 대한 과시뿐, 아무런 지적 내용이 없기 때문이다. 다른 무엇보다 우스운 것은 행위로 시작한 영화가 관계로 끝맺음됨에도 문제의식이 없다는 것이다. 관계가 없다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스스로  반증하는 것밖에 더 되나.

 

다만, 작품으로 돌아오자면 그래서 진실성만큼은 충만하다. 미친 범죄자들인 것과 별개로 당사자들은 진심으로 그렇게 믿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지구는 평평하다>(2018) 때와 마찬가지로 관찰자로서는 흥미로운 경험이라 평해도 이상할 것은 없다. 육체적인 자유로움을 추구한다면서 정신적으론 가장 폐쇄적인 삶을 살고 있는 아이러니, 더 넓은 세상을 보는 듯 하지만 고작 한 뼘을 더 넓게 보기 위해 스스로 감옥에 가두는 바보들의 이야기라고 말이다. 더해서 조금 더 능동성을 가지고 '명백한 불법을 저지르는 사람의 다큐멘터리는 상영될 수 있는가'와 관련된 표현의 자유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수 있다면 훌륭하다. end.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 본 블로그는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글에서 다루는 작품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댓글", "포스트를 자신의 블로그로 유인하는 데 이용하려는 댓글", "무분별한 맞팔로우 신청 댓글" 등은 삭제 후 IP 차단될 수 있습니다.

 

 

"좋아요", "댓글""구독"

 

은 블로거에게 큰 응원이 됩니다!  감사합니다! :))))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