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
솔직해서 오히려 상쾌한 메시지와 스타일의 주객전도
조 린치 감독,
『메이헴 :: Mayhem』입니다.
# 1.
분노 바이러스 감염 사태로 인해 8시간 동안 격리된 회사에서 벌어진 광기의 살육극이다. 모함으로 해고된 변호사 데릭 조(스티븐 연 분)와 부당한 계약의 피해자 멜리나 크로스(사마라 위빙 분)가 협력해 최상층의 메인 빌런 존 타워스(스티븐 브랜드 분)를 무찌른다는 단순하면서도 직관적인 서사다. 영화의 동력은 크게 둘을 꼽을 수 있다. 천민자본주의적이고 성과지상주의적인 기업 문화에 대한 과격한 비판으로서의 액션과, 소모품과 다를 바 없는 직장인에 대한 자조적 연민으로서의 코미디다. 승진을 위해 서로를 밟고 음해하는 불공정한 약육강식에 노출된 현대인의 스트레스를, 과장된 폭력과 블랙 코미디의 카타르시스로 전환한 B급 호러 액션 코미디 정도로 이해하면 무리는 없다.
# 2.
여기까지가 무난한 요약이겠으나 개인적으론 동의하지 않는다. 조 린치 감독의 영화는 네러티브를 풍성하게 하기 위해 스타일을 활용하는 것이 아니라, 스타일을 표현하기 위해 메시지를 핑계 삼고 있다 이해하는 것이 훨씬 자연스럽다. 작품을 보고 난 후 가장 강렬한 인상은, 감독은 그저 익스플로이테이션 필름(Exploitation film)의 스타일을 끌고 와 <배틀로얄>을 하고 싶었을 뿐이라는 것이다.
외딴섬을 수직으로 세운 것과 다를 바 없는 고층의 빌딩과, 교복 대신 양복 입은 직장인들의 살육극이 전부다. 죽이고 죽어줄 인물들을 과밀시키기 위해 좀비도 감염병도 아닌 어정쩡한 바이러스를 만들어 붙인 것에 불과하다. 싸울 동기와 진행 방향을 부여하기 위해 직장 문화의 스트레스를 끌고 온 것에 불과하다. 각각이 미쳐 풀 악셀을 밟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8시간이라는 작위적인 제한시간과 무죄 판결이라는 설정을 이리저리 기운 것에 불과하다. 온갖 사람들을 이리저리 갈아 마시던 영화가 평화롭고 한가로운 미술 교실로 마무리되는 결말에서 감동보다 가증스러움이 먼저 밀려오는 건 애초에 영화의 메시지가 스타일에 복종하고 있기 때문이다.
# 2.
일반적으로 메시지와 스타일이 유리되는 것은 유쾌한 경험이 아니다. 당위에 불과한 주제의식이 휘발되고 나면 스타일은 기반을 잃고 부유하기 마련이다. 특히 불쾌한 것은 대부분이 그런 선택을 하는 건 창작자의 편의 내지 프로덕션의 이익에 복무하기 때문이다. 적당히 먹힐 법한 메시지를 적당히 차용하고 적당한 클리셰를 비벼 적당한 수익을 도모하는 양산형 영화들에 관객이 지쳐하는 이유다.
본 작품의 개성은 이 지점에서 발생한다. 메이헴의 메시지와 스타일의 분리는 그것이 쉽기 때문도 아니고, 돈을 벌 수 있기 때문도 아니다. 그냥 좋아서, 만들고 싶어서라는 것이다. 그 순수성이 주는 상쾌함은 의외로 큰 강점이다. 드라마틱한 클로즈업과 와이드 앵글의 전환, 쉴 새 없이 몰아치는 사운드에는 캐릭터와 관객 이전에 감독의 설렘이 먼저 묻어나고 있다.
째깍째깍 조여 가는 8시간 타임어택은 이것이 가슴 뛰는 레이스임을 선언한다. 너무 노골적이라 오히려 반가운 던전식 스테이지 구성은 유쾌하다. 로그라이크류 레트로 게임을 연상시키는 단계별 카드 키 시스템과 호쾌한 공구 액션은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해고 담당자를 긴 낫을 든 리퍼에 비유한다거나, 이사회를 9인회라 명명하는 판타지스러운 설정, 이들의 투표라는 것이 엄지를 들어 목을 긋는 모션인 것도 대단히 서브컬처적이다. 각 층에서 보이는 폭력과 섹스의 혼재는 <황혼에서 새벽까지>(1996)와 같은 영화를 떠올리게 만들기도 하고, 일상적인 사무실 집기를 활용하는 액션의 창의성은 소소하게 성룡의 그것을 떠올리게 만들기도 한다.
# 3.
감독은 일련의 따로 노는, 좋게 말하자면 재기 발랄한 아이템들을 조지프 캠벨의 비교신화학적 플롯 위에 얌전하게 얹어 낸다. 평범하게 순종적이던 인물이 최상층의 최종보스를 만난 후 지하까지 추락하고 사명을 각성한 다음 동료와 함께 한 계단 씩 올라가는 플롯 말이다. <타짜>(2006)로 치자면 고니가 짝귀를 만나는 식의 기연의 역할로 it부서를 끌고 오겠다는 아이디어는 시트콤 <The IT Crowd>의 페이소스가 연상되는 듯 해 반갑다. 동료애를 쌓아나가는 과정은 최소한의 양심과 같은 드라마적 파트인데 그걸 굳이 뜬금 섹스로 풀어야만 했을까 싶긴 하지만, 뭐. 고맙다.
B급 액션 호러 코미디라는 장르 자체가 시나리오를 수행하는 것만으로도 개고생일 수밖에 없다. 무사히 만들어졌다는 것만으로도 배우진의 호연은 칭찬받아도 좋다는 것이다. 스티븐 연은 특유의 찌질함과 억울함, 이면에 숨겨진 내적 고민과 성숙 같은 것을 안정적으로 표현한다. 금발 백인 미녀의 매력과 퇴폐미를 겸비한 사마라 위빙은 다소 진지하고 지루할 수도 있었을 영화의 마스코트가 되어 개성을 불어넣는 데 큰 기여를 한다.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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