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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Drama

압박과 환희가 교차하는 완성의 순간 _ 보일링 포인트, 필립 바랜티니 감독

그냥_ 2023. 7. 14.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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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주인공은 단연 촬영입니다. 인물이든 환경이든 사건이든 요리든 그 무엇이 되었든 촬영 방식에 우선하지는 못합니다.

 

 

 

 

 

 

 

필립 바랜티니 감독,

『보일링 포인트 :: Boiling Point입니다.

 

 

 

 

 

# 1.

 

보일링 포인트의 가장 큰 특징은 역시나 롱 테이크(Long take)일 텐데요. 본론에 앞서 테이크(Take)가 뭔지부터 가볍게 짚고 가도 좋겠죠. 다음백과에서 제공하는 김광철 씨의 저서 영화사전은 '중간에 끊지 않고 촬영한 하나의 연속적인 화면 단위를 지칭하는 용어'라 설명하는 데요. 대충 카메라 녹화 셔터를 한번 누른 후 정지를 위해 다시 셔터를 누르는 사이를 의미하는 촬영의 최소 단위정도로 이해하면 무난하겠네요. 쇼트(Shot)라는 말도 비슷한 의미로 쓰이곤 하는데요. 테이크는 촬영 용어, 쇼트는 편집 용어입니다. 10초 동안 나무를 하나 '촬영'한다면 하나의 테이크라 할 수 있고 그것을 고스란히 영화에 옮긴다면 마찬가지의 하나의 쇼트라 할 수 있습니다만, 10초짜리 테이크를 '편집' 단계에서 두 조각 세 조각으로 쪼갠다면 쇼트는 얼마든지 늘어날 수도 있다는 식이죠.

 

롱 테이크를 이야기하다 보면 원 테이크라는 말도 함께 거론되기 마련인데요. 이름처럼 원 테이크는 개수의 개념, 롱 테이크는 길이의 개념입니다. 테이크가 하나면 원 테이크고 테이크가 겁나 길면 롱 테이크라는 것이죠. 길이와 횟수라는 전혀 다른 위상의 개념입니다만, 통상 원 테이크를 롱 테이크의 상위 개념으로 받아들인다 하더라도 큰 무리는 없습니다. 롱 테이크는 하나의 테이크의 길이를 의미하기에 모든 롱 테이크는 원 테이크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죠.

 

 

 

 

 

 

# 2.

 

컷(Cut)으로 쪼개진 것 없이 모든 화면이 하나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은, 관객이 보고 있는 화면을 편집이나 생략, 해석 따위가 개입할 여지없이 온전히 전달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말인즉 상황 속에 벌어진 모든 정보를 가감 없이 관객에게 전달하는, 현장감을 표현하는 데 탁월한 방식 중 하나라는 것이죠. 봉준호 감독이 살인의 추억에서 쓴 논두렁씬이라거나, 박찬욱 감독이 올드보이에서 쓴 장도리씬 등은 대표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롱 테이크는 비용의 개념도 포함합니다. NG가 났을 때의 위험이 짧은 테이크에 비해 클 수밖에 없으니까요. (물론 현대 편집 기술은 티 나지 않게 얼마든지 이어 붙일 수 있지만 지금은 논외로 합니다.) 위험은 테이크의 길이뿐 아니라 그 과정에 참여하는 협업의 규모에도 비례할 수밖에 없고, 그만큼 제작진 개개인에게 큰 부담으로 가중됩니다. 비단 제작진뿐 아니라 관객 역시 화면 속 하나하나를 위험의 관점에서 바라보게 됩니다. 오프닝에서 손님을 받기 전 재료를 준비하는 장면을 예로 든다면, 관객은 주방의 세세한 준비과정 따위보다 그 자체로 실수하면 큰일 나는 외우느라 힘들었을 긴 대사라는 위험으로 인지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죠.

 

 

 

 

 

 

# 3.

 

원 테이크라는 말은 다시 원 카메라(One Camera)라는 의미를 포함합니다. 당연하게도 카메라가 두 개 이상이라면 이를 이어 붙이는 과정에서 컷이 존재할 수밖에 없을 테니까요. 하나의 카메라는 다시 사각(死角)의 개념으로 이어집니다. 통상 다양한 카메라를 설치하고 촬영분을 교차편집하는 건, 다양한 시각을 조합해 정보의 사각을 줄이기 위함인데요. 카메라가 하나라면 무조건적인 사각이 발생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죠. 또한 원 카메라로 장편 영화를 찍어냈다는 것은 핸드헬드(Hand-Held Shooting)를 피할 수 없다는 말과도 같습니다. 작은 레스토랑을 90분 이상 돌아다니는 작품에서 모든 동선에 레일을 깔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요. 정리하자면, 영화가 동원한 롱 테이크라는 촬영방식은 단순한 세일즈 포인트가 아니라

 

⑴ 실수에 뒤따르는 높은 위험과 협업 과정의 부담감

⑵ 다방면에서 쏟아지는 수많은 문제에 대응하는 순발력의 요구

⑶ 위험으로부터 이탈할 수 없게 만드는 강제적인 실시간성

⑷ 필연적으로 발생하게 될 카메라 사각 영역의 함의

⑸ 이 모든 것들이 수많은 사람들의 손으로 이루어진다는 현장감

 

따위를 폭넓게 포괄합니다. 그리고 이 모든 가치는 작품이 그려내는 레스토랑 Jones & Sons를 끌고 나가야 하는 셰프들의 내러티브이기도 하죠. 일련의 촬영 방식은 단순히 기발한 프로젝트의 도전과제가 아니라 작품의 주제의식과도 밀접하게 닿아있습니다.

 

 

 

 

 

 

# 4.

 

특별히 흥미로운 것은 '외화면을 어디까지로 봐야 하는가'라는 점입니다. 통상의 의미대로라면 당장 화면에 담지 못한 식당의 다른 공간이라 할 수 있을 텐데요. 이 작품은 촬영 기법의 강력한 지배력 탓에 영화 촬영 현장으로 인지되기도 하기 때문이죠. 관객은 카메라의 눈을 빌려 식당을 바라보고 있지만, 실제 즐기게 되는 것은 식당에서의 갈등보다 이 갈등을 구현하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을 현장에 대한 상상일 가능성이 큽니다. 영화의 재미가 내화면의 레스토랑 보다 외화면의 촬영현장에 더 밀접하게 닿아 있다면, 왜 감독은 하필 레스토랑을 배경으로 시나리오를 쓴 걸까라는 의문에 대한 해답 역시 외화면에서 찾는 것이 합리적이겠죠.

 

영화가 그리고 있는 오버부킹 되어버린 크리스마스의 레스토랑은, 개봉일에 맞춰 영화를 완성시키기 위해 과로에 시달리는 현장의 알레고리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감독이 스스로를 이리저리 치이는 부족하고 나약한 메인 셰프 앤디로 묘사하는 우화라고 말이죠. 레스토랑에 등장하는 갈등들이 영화판에서 벌어질 법한 갈등들과 크게 닮아있다는 점은 이 같은 추측을 돕습니다. 제작과 운영과 마케팅이 분리되어 서로를 압박한다거나, 하필 5점 만점으로 평가받는 대목, 다양한 취향의 손님들이 찾아오는 와중에 경쟁자도 눈에 불을 켜고 있다거나, 특히 까탈스러운 평론가를 불편해하는 대목 따위는 노골적이라 할 수 있겠죠.

 

레스토랑 Jones & Sons라는 것이 영화 보일링 포인트의 제작팀을 비춰내는 거울이라는 건데요. 흥미로운 것은 은유되는 대상이 같은 공간에 동시에 존재한다는 점입니다. 어떤 면에선 은유와 직유를 구분할 수 없는 영상 언어의 한계에 도전하는 '직유의 영화적 구현'을 목표로 한 프로젝트처럼 보이기도 하는군요.

 

 

 

 

 

 

# 5.

 

다시 영화의 제목을 살펴봅시다. 비등점, 흔히 끓는점이라는 말로 더 익숙하실 과학 용어죠. 영화는 하나의 테이크로 이루어져 있고 이를 선분이라 가정한다면 당연히 꼭짓점은 시작과 끝 두 개뿐이고, 영화의 전반적인 내용이 갈등의 마찰열에 점점 더 가열되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면에서 앤디가 쓰러져버린 결말을 뜻할 것이라 추측하는 것은 자연스럽습니다. 임계에 다다른 인간이 터져버린 비극을 보일링 포인트에 은유하고 있다는 것이죠.

 

반면 외화면, 즉 영화 촬영의 입장에서 보면 어떨까요. 마지막 보일링 포인트는 앤디가 갈등에 짓눌려 폭발하는 순간이기도 하지만, 영화가 무사히 완성되어 모든 스탭이 손뼉 치며 환호하는 순간이기도 합니다. 수면 아래, 아니 카메라 뒤 은은한 노력들이 모이고 모여 비로소 끓어오르는 성취에 도달하는 긍정적인 에너지라는 것이죠. 화면 안에 영화인들이 느낄 압박감을 담아내면서 동시에 화면 밖에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애쓰고 있음을 공존시킴으로써, 영화라는 일의 매력을 입체적인 공간감으로 구현한 작품이라고도 할 수 있겠네요.

 

 

 

 

 

 

# 6.

 

감상의 기준에서 본다면 제법 극단적인 작품이라 해야 할 겁니다. 일정한 이해가 있어 촬영의 난이도를 공감하고 현장을 상상할 수 있는 관객층은 제법 흥미롭게 즐길 수 있었을 겁니다. 저 좁은 테이블 사이사이를 카메라를 짊어지고 어떻게 부딪히지 않고 다닌 거야? 라거나, 동선 계획은 골치 아팠겠는걸? 발아래 돌아다니는 전선만 해도 감당 안 됐을 텐데? 카메라 밖에서 인물 빼고 넣는 것 대단하다. 스위시 팬 폼 미쳤네.라는 식으로 말이죠.

 

영화를 보는 동안 우에다 신이치로의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를 떠올릴 수 있다면 제법 감각이 좋은 관객이라 해야 할 겁니다. 장르는 제법 차이가 있습니다만, 촬영의 영역을 담아내려 한다는 목적의식에서 맥락이 닿아있는 작품이니까요. 우에다 신이치로의 영화가 카메라를 계속해서 뒤로 뒤로 옮김으로써 프레임 바깥을 반복적으로 영화 안으로 끌어들이는 작품이라 한다면, 필립 바랜티니는 카메라를 계속 앞으로 밀어내면서 뒤의 공간을 상상하게 만드는 작품이라 할 수 있습니다.

 

반면, 영화가 주는 그대로 오버부킹에 치여 폭발해 버린 어느 레스토랑의 하루라는 내화면만을 즐긴 관객들에겐 제법 지루한 작품일 수 있습니다. 특별한 사건도 없고 인물도 없고 대부분은 주문서가 어쩌고 인플루언서가 어쩌고 하는 식의 컴플레인의 나열일 뿐인 데다 주인공 앤디와의 밀착 관계도 연약하기 때문이죠. 물론 이것 역시 관객의 탓은 아닙니다. 일련의 문제는 해당 방법론을 채택한 영화가 감수하고 짊어져야 할 몫이니까요. 필립 바랜티니 감독, <보일링 포인트>였습니다.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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