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좋아하세요? :)

늦은 저녁 맥주 한 캔을 곁들인 하루 한편의 영화, 그리고 수다.
영화 이야기는 언제나 환영입니다.

Film/Thriller

안전막 없는 트램펄린 _ 풀타임, 에리크 그라벨 감독

그냥_ 2023. 10. 14. 18:30
728x90

 

 

# 0.

 

그 어린 엄마는 잘 지내고 있을까

 

 

 

 

 

 

 

 

에리크 그라벨 감독,

『풀타임 :: À plein temps』입니다.

 

 

 

 

 

# 1.

 

싱글맘의 고단하고 치열한 일상을 스릴러의 긴박감으로 그려낸 드라마입니다. 이야기에 특별함은 없고 이야기를 즐기는 영화도 아닙니다. 캐릭터성이 강한 주인공을 탐구하는 류의 이야기도 아니구요, 연출에서 강한 개성이 발견되는 작품도 아닙니다. 영화는 평범하게 살아가는 평범한 싱글맘을 상정한 후 그녀의 평범한 일상에 치밀하게 집요하게 접근합니다. 두 아이를 혼자 키워내는 싱글맘이 느낄 법한 감정들, 이를테면 압박감이나, 고독감, 피로감, 조바심 따위를 해체해 각기 다른 현실적 레이어로 흩뿌려 투영하는 것에 집중합니다.

 

감독은 싱글맘의 스트레스를 주인공의 감정 묘사를 통해 간접적으로 전달하는 대신, 굳이 싱글맘이 아니라더라도 누구나 한 번쯤 느껴봤을 경험에 빗대여 은유할 것을 선택합니다. 이를테면 불안함과 조바심은 전력질주 하는 숨 막히는 순간에 비유한다거나, 새로운 직장을 얻는 과정에서 무너지는 자존감은 화장실 쓰레기통에 숨겨둔 옷가지를 꺼내는 장면에 비유한다거나 하는 식이죠. 방법론적인 면에서 보자면 영화는 싱글맘의 감정이라는 '원관념'을 비유하기 위한 무수히 많은 현실적 '보조관념'들을 재조직하는 시도라 정의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군요.

 

 

 

 

 

 

# 2.

 

싱글맘이 홀로 소화해야 하는 두 명분의 역할은 도입의 거친 숨소리, 알람 소리, 라디오 소리, 밀린 집안일, 두 명의 아이들로 소개됩니다. 파리 교외와 시내를 오가는 동선 역시 비슷한 의미를 비유합니다. 두 사람이 서 있어 마땅한 공간을 혼자 오가는 사람의 찢어지는 다리에 대한 물리적 표현이라 할 수 있죠. 가혹한 경제적 압박은 은행에서 걸려오는 전화라거나 이직에의 절실함, 전 남편에게 거는 양육비 독촉으로 친절하게 묘사됩니다.

 

주인공이 느끼는 심리적 압박은 운동성에 비유됩니다. 걷다가, 빠르게 걷다가, 마침내 전력질주하는 장면의 숨 막히는 모습은 상징적입니다. 사운드 역시 중요합니다. 정신 나갈 것만 같은 사이키델릭 사운드와, 익숙해질 법하면 치고 들어오는 핸드폰 진동음은 불안감을 감각적으로 비유합니다. 수많은 전화 사이에서 정작 필요한 연락은 되지 않음은 그녀의 처지가 일방적이고 피동적일 수밖에 없음을 증명합니다. 공간의 거리뿐 아니라 크기 역시 주요합니다. 파리라는 중심부에서 떨어진 교외, 그 안에 놓인 대출금 남은 집, 그 안의 화장실, 그 안의 악은 욕조는 인물을 심리적으로 고립시키고 옥죄는 영화적 점강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압박감은 시간에 비례해 가중되고 가속됩니다. 실제 시간보다 중요한 것은 감각하는 시간입니다. 8시간의 잠은 눈 감았다 뜨는 듯 짧게 느껴지므로 편집됩니다. 하염없이 길게 느껴지는 면접이나 상사와의 미팅에는 충분히 긴 런타임을 할애합니다. 인상적인 것은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생일날 정도를 제외하면 결코 길지 않다는 점입니다. 이는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기 힘든 처지를 '객관적'으로 묘사하기 이전에 아이들에게 충분한 시간을 들이지 못하는 엄마로서의 '주관적' 자책감을 표현합니다.

 

 

 

 

 

 

# 3.

 

부탁으로 시작해 부탁으로 끝나는 싱글맘의 하루는 누군가에게 도움을 구하는 사람의 쪼그라드는 내면에 상시적으로 놓여있음을 비유합니다. 돈을 버는 곳뿐 아니라 돈을 쓰는 곳에서조차 을(乙)인 것 역시 비슷한 의미를 내포합니다. 압박 면접과 이에 대항하는 발버둥의 대비는 경력 단절의 의미일 텐데요, 과거 회사의 이력이 족쇄가 되는 것은 사실 두 아이의 존재라거나 이혼 경력 따위가 족쇄가 되는 것을 부드럽게 에둘러가기 위함으로 이해할 수 있겠죠.

 

주인공은 정서적인 면에서 세 번 크게 무너집니다. 자기 잘못으로 인해 어린 싱글맘이 직장을 잃는 순간. 이력서를 수정하고 마트 캐셔로 지원서를 넣는 순간. 다른 싱글파파에게 입을 맞추는 순간이죠. 각각 첫 번째는 같은 처지의 누군가를 밟고 생존하는 순간의 윤리적 타격이고, 두 번째는 자기실현을 포기하는 사람으로서의 자존감의 타격, 세 번째는 혼자 할 수 있고 해야 한다는 엄마로서의 책임감의 타격이라 할 수 있습니다. 싱글맘은 단 며칠 사이에도 전방위적인 타격에 의해 서서히 허물어지고 있음을 이야기에 녹여 표현합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의 직유(直喩)로 말미암아 완성되는 단 하나의 은유(隱喩)입니다. 나약한 감정을 숨기는 경직된 표정. 그럼에도 숨길 수 없어 떨어지는 굵은 눈물. 누가 볼세라 다급하게 가리는 화장. 이 세 가지 모습의 충돌과 위화감은 그 자체로 작품의 가치를 정의합니다. 영화는 관객을 문학적인 그 한 장면에 도달하게 만들기 위한 우직한 뚝심이라 할 수 있는 것이죠.

 

 

 

 

 

 

# 4.

 

서두에도 말씀드렸듯 이야기는 제법 평이합니다. 파열은 교통 파업이 전부고 그마저도 우리에게나 특별한 일이지 파리에서의 파업은 일상이죠. 오히려 파업을 제외하면 주인공은 운이 좋은 사람이자,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도움을 받는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생각해 보면 누구도 주인공의 부탁을 거절하지 않습니다. 명백한 잘못도 눈감아주고, 사정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을 돌봐줍니다. 친구들도 기꺼이 일손이 되어주고, 그 외 주변인들 역시 억지스럽고 부당한 부탁들도 모두 들어주죠. 하다못해 생판 남들조차 히치하이킹은 거절하지 않습니다.

 

나쁜 운으로 내몰리는 것이 아니라 좋은 운으로 연결되고 있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작품에 비장미를 더합니다. 어느 누구도 싱글맘이라는 이유로 주인공을 차별하지 않음에도 불행합니다. 주인공의 모든 고단함은 오롯이 그녀가 처해있는 싱글맘이라는 처지에 근거하고 이는 그만큼 가혹하고 절망적이고 처참합니다. 이게 최선이라면 희망은 없는 거니까요. 오늘은 도움을 받아 넘겼지만 내일도 그러리라는 보장은 없으니까요.

 

주인공은 전력질주함에도 내가 달리는 속도보다 세상이 멀어지는 속도가 더 빠릅니다. 바쁠 때는 눈을 감자마자 깨고, 일이 없으면 누워도 잠이 오지 않습니다. 경제학 석사 출신의 시장 조사 전문가에서, 부자의 똥칠을 치워야 하는 호텔리어를 지나, 교외 작은 마트 캐셔로의 전직은 비가역적인 경제적-사회적 추락입니다. 파업은 사건의 계기이기도 하지만, 분투하는 주인공의 뒤를 받치는 환경이기도 하다는 면에서 개인의 위기를 사회의 위기로 연결하는 느슨한 소명의식이 투사되어 있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 5.

 

직장을 잃고 아이를 데리고 나간 테마파크에서 면접을 본 회사의 합격 전화를 받는데요. 안타깝게도 거대하고 화려하고 안전한 어트렉션의 테마파크는 그녀의 현실이 아닙니다. 작은 트램펄린. 조금만 방심해도 고꾸라지는 안전막 없는 트램펄린이 주인공의 현실이죠. 그곳에서의 합격 전화는 비현실적인 영화적 결말에 불과합니다. 실제 주인공의 이직에 아무런 개연성도 설득력도 없는 것은, 작품의 부실이라기보다는 비현실성에 목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홀로 울먹이는 주인공을 내버려 두며 영화가 끝나고 난 후. 마지막 발치를 잡아채는 건 주인공으로 인해 직장을 잃은, 두 아이를 키우는 어린 싱글맘입니다. 비현실적인 영화적 결말 덕에 어쨌든 또 한 고비를 넘긴 주인공의 뒤로 어린 엄마의 그림자를 던져두는 결말은, 영화를 통해 전달되었을 무수히 많은 감정들을 매달아 둔 채 끝맺음 짓는다는 면에서 그 탁월함이 있습니다. 에리크 그라벨 감독, <풀타임>이었습니다.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 본 블로그는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글에서 다루는 작품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댓글", "포스트를 자신의 블로그로 유인하는 데 이용하려는 댓글", "무분별한 맞팔로우 신청 댓글" 등은 삭제 후 IP 차단될 수 있습니다.

 

 

"좋아요", "댓글""구독"

 

은 블로거에게 큰 응원이 됩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