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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SF & Fantasy

변경의 동물 _ 에브리띵 윌 체인지, 마튼 페지엘 감독

그냥_ 2023. 9. 8.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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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수십, 수천 세기가 흘러도 사건이 일어나는 건 현재뿐이다.

 

 

 

 

 

 

 

 

마튼 페지엘 감독,

『에브리띵 윌 체인지 :: Everything Will Change』입니다.

 

 

 

 

 

# 1.

 

모큐멘터리(Mockumentary), 우리에겐 페이크 다큐멘터리라는 이름으로 더 익숙하실 영화들이 있습니다. 연출된 상황극을 다큐멘터리의 기법으로 촬영해 마치 실제 상황처럼 보이도록 만든 작품들이죠. 파라노말 액티비티 같은 파운드 푸티지 물들도 큰 틀에서 모큐멘터리의 일종이라 할 수 있을 테고요. 아파르트헤이트를 은유했던 닐 블롬캠프의 디스트릭트 9이라거나, 딘 플라이셔-캠프의 마르셀 신발 신은 조개, 한가닥 하는 여배우들이 기싸움하던 이재용 감독의 여배우들 같은 작품들도 있었더랬습니다.

 

영화 <에브리띵 윌 체인지>는 페이크 다큐멘터리의 방법론을 뒤집어 놓은 작품이라는 생각입니다. 픽션을 다큐멘터리의 형식으로 풀어내는 것이 아니라, 다큐멘터리의 메시지를 픽션의 형식을 빌어 풀어낸 작품이라는 것이죠.

 

배경은 2054년, 자연 파괴로 인해 결국 인류를 제외한 모든 동물이 절멸한 세계입니다. 환경 문제를 등한시한 대가를 처절하게 치르게 된, 넓은 의미에서의 포스트 아포칼립스라 할 수 있겠죠. 거칠게 구분하자면 영화는 초반 20분과 나머지 1시간으로 분절된다 할 수 있을 텐데요. 앞부분은 '영화'적 상상과 연출을 통해 관객의 위치를 조정하는 과정, 이후는 본격적으로 생태주의 메시지를 '다큐멘터리'의 형식에 얹어 뚝심 있게 밀고 나가는 과정으로 이해하면 무난합니다.

 

 

 

 

 

 

# 2.

 

생태주의(Ecologism)는 작품의 존재 의의임에 분명합니다만, 그것을 풀어내는 방식이 특별하냐면 그렇지 않고 사실 특별할 수 없는 것이기도 합니다. 생태주의라는 것이 방법론에 있어서는 다소 논쟁적일지언정, 개념적으로는 상당 부분 정립된 이념이기 때문이죠. 오히려 영화적 관점에서 특징적인 발상이라 한다면 시점의 전환, 보다 정확히는 시제(時制)의 전환이라 하는 것이 맞을 겁니다. 실제 영화의 재미는 생태계 보호를 주장하는 메시지보다, 그 메시지를 전달하는 형식에서 더 크게 찾을 수 있습니다.

 

생태주의자를 골치 아프게 만드는 가장 큰 숙제는 역시나 '호소력'일 겁니다. 작품 스스로 묘사하고 있듯 인류의 얼굴을 향해 날아오는 환경 위기라는 주먹질이 너무나도 느리기에, 사람들에게 심각성을 설득하기 매우 어렵다는 것이죠. 영화는 그 대안으로 말씀드린 시제 전환을 시도합니다. 현재를 중심에 놓고 이대로면 미래에 문제가 생길 것이라 말하는 대신, 미래를 중심에 놓고 과거가 되어버린 현재를 역으로 추적하는 형식은 흥미롭습니다.

 

생태계 위험이 와닿지 않는 이유는 이후의 세상이 막연하기 때문일 텐데요. 시제를 옮김으로써 미래를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면 몰입의 차원이 다른 것은 당연합니다. 시제 전환의 효과는 존재의 아름다움을 그대로 보여줄 수 있다는 면에서도 유리합니다. 현재의 시점에서라면 아름다움은 당연한 것으로 합의된 것이기에 그들이 죽어가는 처참한 광경을 공격적으로 묘사할 수밖에 없을 텐데요. 이 영화는 이미 죽어 사라졌다는 전제 위에 성립하기에 살아있던 과거 존재들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것만으로도 문제의 심각성이 충분히 전달될 수 있었죠. 비판의 강도에 비해 저항감을 덜어내는 데에도 크게 기여합니다. 2020년의 인간이 같은 시대 인간을 힐난하는 순간 위선적이라거나 교조적이라는 식의 혐의로부터 자유롭기 어려울 텐데요. 화자가 포스트 아포칼립스에 태어나 기린이 어플 이름인 줄 아는 가상의 후손이 되어버린 순간, 또한 관객인 나의 시점이 그런 후손과 동기화되는 순간 저항감은 크게 완화됩니다.

 

 

 

 

 

 

# 3.

 

영화가 그리는 디스토피아와 포스트 아포칼립스 중간 어딘가의 세상은 그 자체로 흥미롭습니다. 옛날(영화의 기준에서 본 현재)에 만들어진 생태 다큐를 팝콘을 먹으며 보는 장면이 있는 데요. 그것이 그들에게 가상의 픽션을 보는 듯한 특별한 경험이라는 연출은 특히 서늘합니다. 위상을 치환시켜 지금의 현실을 누군가의 픽션으로, 상상 속 누군가를 실현 가능한 현실로 바꿔둔 작품의 방법론을 한눈에 보여주는 상징적인 시퀀스라 할 수 있겠죠.

 

2054년의 후손들이 과거 '동물'이라는 것들이 있었음을 외면하는 장면 또한 인상적입니다. 진실을 외면하는 것이 편리하다면 얼마든지 그럴 수 있는 인간의 본성을 지적하는 장면이라 통렬하면서도 씁쓸한 맛이 있죠. 그것을 단순히 집단을 비난하며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미개함'과 '미래의 아둔함' 사이에 놓인 '현생 인류의 선택'으로 환원시키는 구성 역시 특기할만합니다.

 

붉은 들판과 검푸른 바다는 강렬한 경고의 이미지와 더불어 진실과 거짓의 경계를 거슬러 올라간다는 면에서 매트릭스의 오마주 같은 느낌도 있고요. 다양성이 말살된 붉은색과 푸른색의 세계는 눈을 매료시키는 다양한 색감들로 완성되는 광활한 녹음과 대비되는 근거가 되기도 합니다. 감각에 대한 호소가 중요한 작품이니만큼 소리 또한 중요할 텐데요. 귀를 때리는 듯한 지저귐과 지속적인 사이렌 소리들은 강렬한 경고음으로 기능하고 있죠.

 

 

 

 

 

 

# 4.

 

연출에 생태주의적 개념을 일부 끌고 들어오는 방식 역시 흥미롭다 해야 할 겁니다. 당장 '기준점 이동'이라는 개념은 영화의 착점과도 같은 시제 전환으로 연결되고 있고요. 끊긴 길을 거슬러 올라가는 동선과 방주의 차용도 재미있죠. 방주는 홍수에서 살아남기 위해 생명을 태우고 있는 배라는 면에서, 종다양성과 해수면 상승 문제와도 이미지적으로 긴밀하게 연결됩니다. 일련의 종말적 세계관에 신화적인 엄숙함을 더하는 건 덤이죠.

 

역사를 거슬러가는 형식미는 씬 하나하나가 런타임이 흐름에 따라 사라지는 듯한 느낌도 부여합니다. 차 안으로 들어온 작은 벌 한 마리와 우주선 모형의 대비를 이후 우주비행사의 일화와 연결한 다음, 생태계의 상실을 우주에 고립된 호모 사피엔스의 비극으로 연결하는 내러티브 역시 훌륭합니다.

 

결말은 누가보다라도 백투 더 퓨쳐의 타임머신이었던 들로리안의 오마주라 봐야겠죠. 이 영화 전체가 2054년의 후손들이 보내온 메시지라는 메타 영화적 결말은, 작품의 내러티브와 주제의식을 통째로 끌어안고 현실의 문제로 떨어트립니다. 덕분에 단 하루라도 지금의 이 순간을 살고 싶었을 후손의 모습을 지긋이 보여주는 결말은 큰 울림이 있었죠. 영화 제목 역시 재미있는 데요. 지금 2020년이 생태계를 존속시킬 것인지 파괴할 것인지 선택하게 될 분기점임을 이야기함과 동시에, 변화의 동물이라 규정된 인간이 결국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화할 것이라는 희망을 은연중에 내비치는 것이기도 합니다. Everything과 Change만큼이나 Will이 중요한 작품이랄까요.

 

다만, 내레이션으로 풀어낸 의도와 동화 타령은 의미가 잘 전달되지 않았고요, 생태주의적 가치가 실현된 가상의 미래를 기사의 형식으로 줄줄이 늘어놓는 결말은 촌스럽습니다. 다큐멘터리에 크게 자리를 내어준 탓에 이야기 자체는 제법 빈곤하기에 자칫 지루하다는 것도 아쉽고요. 특히 2054년의 포스트 아포칼립스에 대한 상상력이 부족하다는 점은 엄연한 단점이라 해야겠죠. 마튼 페지엘 감독, <에브리띵 윌 체인지>였습니다.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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