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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SF & Fantasy

담음새 _ 마르셀 신발 신은 조개, 딘 플라이셔-캠프 감독

그냥_ 2023. 4. 12.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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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평범하고 소소한 아이디어를 비범하고 웅장하게 담아낸다.

 

 

 

 

 

 

 

 

딘 플라이셔-캠프 감독,

마르셀, 신발 신은 조개 :: Marcel the Shell with Shoes On』입니다.

 

 

 

 

 

# 1.

 

정확한 워딩이 기억나진 않는데요. 모 유튜브에서 '평론가는 영화를 분석적으로 보느라 재미는 덜 느끼지 않느냐'는 질문에 이동진 평론가가 대충 이런 식의 이야기를 하더라구요.

 

영화에 친숙하지 않은 일반의 관객들은 영화를 두 가지 기준에서 보게 된다. 하나는 스토리, 다른 하나는 연기다. 하지만 영화에는 스토리와 연기 외에도 셀 수 없이 많은 정보들이 있다. 이를 테면 쇼트나 편집, 구도나 플롯 따위의 흔히 연출이라 이야기하는 것들이다. 때론 스토리나 연기가 특출 나지 않음에도 훌륭한 영화들이 있고 그런 영화들 역시 대단히 재미있다. 그런 면에서 평론가는 세상에서 영화를 제일 재미있게 보는 사람들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다.

 

영화를 보고 난 후 문득 저 대답이 떠올랐더랬습니다. 혹자는 이동진 평론가의 대답을 듣고 에이... 아무리 그래도 스토리와 연기가 지루한 데 재미있는 영화라는 게 말이 되겠어? 라 의심할 수도 있을 텐데요. 그런 분들께 이런 영화도 있습니다 소개해드리면 좋지 않을까 생각을 했었더랬죠.

 

 

 

 

 

 

# 2.

 

분명 <마르셀>의 스토리와 연기는 특별하지 못합니다.

 

스토리는 지루합니다. 흔하디 흔한 <엄마 찾아 삼만리>, <하얀 마음 백구>식의 가족 찾아 떠나는 뭉클 드라마 + 조력자와의 따땃한 버디무비의 클리셰를 따라가고 있죠. 대체로 주인공은 학대하는 아빠 아니면 자혜로운 할머니가 키우고 있는데요. 할머니의 경우 대게 얼마 못 가 돌아가시기 마련입니다.

 

몇몇의 빌런이 만드는 무난한 긴장과 몇몇의 은인이 베푸는 느슨한 행운에 힘입어 우여곡절 끝에 가족을 만나게 되구요. 한데 모인 가족은 둘러앉아 할머니를 추모하는 가운데 노래를 부르게 될 주인공은 절대 음치인 법이 없죠. 주인공이 노래를 부르는 동안 온 가족이 청중을 자처하고, 우레와 같은 박수소리를 지나 혼자만의 공간으로 돌아간 주인공이 눈 부시게 산란하는 빛을 은은하게 올려다보며 영화는 막을 내립니다. 뻔하죠.

 

스토리는 지루하나마 존재하기라도 합니다. 연기는 연기라 할 만한 것조차 없습니다. 기본적으로 모형들을 매만져 만든 스톱모션이니까요. 대부분의 화면은 마르셀과 할머니의 피겨를 따라가느라 딘을 비롯한 사람들을 위한 공간은 거의 허락되지 않습니다. 그마저도 기껏해야 마르셀의 시점에 종속되는 식의 소극적인 용도로만 쓰이는 정도죠.

 

 

 

 

 

 

# 3.

 

캐릭터 디자인도 무심하기 짝이 없습니다. 주인공은 조개인데요. 신발을 신고 있어요. 발이 없는데 말이죠. 발 비스무리한 거라도 있는 애가 신발을 신고 다녀야 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초입부터 가시지 않습니다. 눈은 애꾸인데요. 조개껍질 입구에 황당할 정도로 큰 눈이 하나 달려있는 디자인이라 빈말로라도 호감이라 하긴 힘들죠. 말도 하는데요. 눈 위치는 양반인 것이, 입은 딱딱한 조개껍질 위에 냅다 얹어 뒀습니다. 무신경한 것도 이 정도면 재주다 싶어 감탄하게 되죠.

 

조개가 말을 하는데 누구도 위화감을 느끼지 않습니다. 기껏해야 유독 이쁘장하게 생긴 똘똘한 어린아이라도 만난 양 조금 신기해할 뿐이죠. 심지어 이 조개들은 그냥 말만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다를 바 없는 사유와 소통이 가능한 존재로 설정됩니다. 도구를 쓰는 정도를 넘어 책 읽고 농사를 지을 정도니(!) 말 다한 거죠. 혹성 탈출을 보면 미래 지구는 유인원에게 잡아 먹히던데요. 이 정도 지능이면 조개에게 먼저 잡아먹혀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겁니다. 엔딩에 다다르면 영화는 산으로 가다 못해 우주로 갑니다. 조개뿐 아니라 땅콩과 과자와 쿠키, 심지어 실타래(!)까지 뻔뻔하게 눈 달고 나타나 스케이트를 타고 있죠. 

 

 

 

 

 

 

# 4.

 

그런데 재미있습니다. 신뢰의 <A24>는 배신하는 법이 없죠.

 

영화는 소재보다 그 소재를 받아내는 담음새로 승부를 보고 있습니다. 뻔한 이야기를 먼지 낀 테이블이나 뿌연 차 대시보드와 같은 독특한 환경에 얹어 고유의 분위기를 창조합니다. 비호감일 수도 있을 캐릭터는 다큐멘터리 연출의 밀착감으로 넉넉히 극복합니다. 연기할 수 없는 미니어처임에도 강력한 내러티브와 탁월한 목소리 연기가 작품에 생동감을 불어넣습니다. 위에서 보신 '빈말로라도 호감이라 하기 힘든 신발 달린 조개'는 영화가 끝나면 나도 만나보고 싶은 사랑스러운 캐릭터가 됩니다. 물론 정품 피겨가 20만 원이 넘는 걸 보고 짜게 식기 전까지였지만요.

 

영화는 두 개의 세계가 충돌하는 이야기라 할 수 있습니다. 각각은 마르셀과 가족들의 판타지, 딘을 비롯한 사람들이 걸어다는 현실이죠. 영화의 초점을 판타지에 놓을 것인가, 사람들에게 놓을 것인가라는 기로 앞에서 대부분은 현실에 벌어진 판타지에 집중하기 마련인데요. 감독은 독특하게도 현실을 선택합니다. 스톱모션이라는 기법과 다큐멘터리라는 형식은 더없이 훌륭한 증거라 할 수 있겠죠.

 

스톱모션이 흥미로운 것은 제 아무리 판타지적인 소재를 다룬다 하더라도 각각의 프레임은 물리적인 모형이 버젓이 존재하는 온전한 현실이라는 점입니다. 관객은 영화 내내 의심의 여지없이 현실만을 보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판타지를 '인식'했을 뿐이라는 것이죠. 마르셀의 존재가 딘과, 딘의 유튜브를 보는 사람들과, 딘의 영화를 지켜보는 관객들의 '인식'과 '상상'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라면, 발이 없는 조개가 신발을 신고 다닌다거나 실타래에 눈이 달려있는 것쯤은 전혀 문제 될 게 없음이 당연합니다. 다큐멘터리는 스톱모션과 함께 관객이 보고 있는 것이 그 어떤 것이라 한들 현실이라는 점을 끊임없이 주지시킵니다. 

 

작품의 진짜 주인공은 조개 마르셀이 아닌 마르셀을 인지하고 상상하는 사람, 그런 사람들이 존재하는 세계 그 자체라 할 수 있습니다. 현실과 판타지의 경계를 무너트림으로써 펼쳐지게 된, 행복한 상상이 가득한 확장된 인식의 세계인 것이죠.

 

 

 

 

 

 

# 5.

 

지브리의 <고양이의 보은>을 이야기하며 '보는 동안의 감동보다 극장을 나선 후 우연히 만나게 될 길고양이들을 다시 보게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한 영화'라 말씀드린 바 있는데요. 유사한 목적의식의 영화라는 생각입니다. 영화의 핵심은 마르셀이라는 작은 조개에게서 가족의 소중함을 배운다거나, 할머니 말씀 잘 듣자는 교훈을 듣기 위해서라거나, 인생 배포 있게 나아가야 한다는 메시지를 얻기 위함이 아닙니다. 막이 내리고 나서 주변을 돌아볼 때. 화분이 보이고 양말 서랍이 보일 때마다. 먼지가 자욱한 테이블과 벽에 묻은 찐득한 소스를 볼 때마다. 머릿속에서 작은 조개가 스케이트를 타거나 암벽등반을 하는 모습을 상상하게 하는 것에 있습니다. 그 순간 관객과 관객의 세계는 그 자체로 하나의 시네마로 승화되는 것이죠.

 

이 같은 해석에서 사운드, 그중에서도 마르셀의 목소리를 담아내는 방식은 특히 재미있습니다. 목소리를 연기한 제니 슬레이트의 탁월한 연기력보다 흥미로운 것은 목소리에 거리감이 없다는 점이죠. 카메라에 더 가까이 있는 딘의 목소리에서도 느껴지는 공간감이 마르셀의 목소리에선 느껴지지 않습니다. 마르셀의 목소리는 그 순간 마르셀을 인식하던 누군가의 머릿속에서 들려온 목소리이기 때문입니다. 나의 상상이 만들어 낸 목소리는 작은 속삭임조차 귓가에 선명하게 들리는 게 당연합니다. 딘 플라이셔-캠프 감독, <마르셀, 신발 신은 조개>였습니다.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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