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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Action

악역을 사는 사람은 없다 _ 캐시트럭, 가이 리치 감독

그냥_ 2024. 4. 28.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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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세상에 악역을 사는 사람은 없다.

 

 

 

 

 

 

 

 

가이 리치 감독,

『캐시트럭 :: Wrath of Man』입니다.

 

 

 

 

 

# 1.

 

가이 리치와 제이슨 스타뎀의 재결합이다. <록 스탁 앤 투 스모킹 베럴즈(1998)>, <스내치(2000)>, <리볼버(2005)>로 검증된 두 사람의 협업은 이목을 끌기 충분했지만, 그보다 더 주목을 끈 것은 16년의 공백이다. 각자의 시간 동안 두 사람 모두 나름의 성업적 성취에 도달하지만, 모든 일에는 명과 암이 있는 법이다. 스타뎀은 (이젠 놀림감이 되기까지 하는) 특유의 발성과 노출을 곁들인 액션에 갇혀 버렸고, 리치는 몇몇의 프로젝트를 지나는 동안 초기 스타일의 활력이 둔화되었다. 직전작 <젠틀맨(2020)>을 통해 과거의 영광을 찾으려는 가이 리치는, 기세를 이어 이견의 여지없는 페르소나에게 프러포즈한다.

 

영화 <캐시트럭>은 전형적인 액션 스릴러의 이야기지만 마치 미스터리 첩보물 같은 분위기를 연출한다. 네오누아르 풍의 작품은 팽팽한 긴장감과 마초적인 매력으로 가득하다. 최근 작품들의 경쾌함을 대신하는, 창백하고 어두운 푸른빛은 서늘한 철제 철창과 총기의 질감으로 세계를 감싼다. 주제의식과 별개로 감독의 연출력이 빛나는 액션은 썩 즐겁다. 불리한 상황을 풀어나가는 간결하고 현대적인 총기액션, 방탄슈트 입고 기관총 난사하는 스펙터클, 수송트럭으로 들이받는 소소한 카체이스까지 미국식 액션 영화의 니즈에 성실하다. 다소 생소한 영국인 음악가 크리스토퍼 벤스테드의 어둡고 육중한 음악적 기여와, 대미를 장식하는 '발퀴레의 기행'의 드라마틱한 임팩트 역시 인정되어야 한다.

 

 

 

 

 

 

# 2.

 

서사는 상당히 단순하다. 가족을 잃은 한 남자의 잔인한 복수가 전부다. 감독은 그것을 네 개의 쳅터와, 그보다 더 많은 시퀀스로 분절해 뒤흔든다. 서사와 플롯의 이질감에 대해 '리암 니슨의 스릴러를 타란티노가 조작한 듯하다.' 평한 누군가의 수사는 작품의 특징을 탁월하게 설명한다. 가이 리치 스타일의 플롯 조작은 언제나 일정한 호불호를 동반했지만, 역설적이게도 간결한 서사에 중화되어 범용성이 확대된 감은 있다. 단순한 이야기라는 콤플렉스의 반동으로 지나치게 미로 같은 회상과 트위스트가 동원되는 경우도 간혹 있으나, 감독은 자신의 숙련도를 증명하며 관객의 경험을 통제한다.

 

영화는 현금 수송회사 포르티코에 입사한 한 남자와 함께 시작된다. 전반부는 주인공 "H"의 미스터리함으로 견인된다. 차분한 그에게 신비로운 배경이 있음을 반복적으로 암시하는 것이다. 포르티코의 경비원은 데이브의 경고처럼 사냥감이지만, H의 실력은 그를 그 역할과 어울리지 않는 포식자로 보이게 만든다. 무난한 입사 성적과 뛰어난 현장 실력의 괴리, 꿍꿍이를 의심하게 만드는 방어적인 태도, 출입증을 훔쳐보는 등 미심쩍은 행동도 마찬가지다. 그의 활약에 대해 동료 일부는 의심을, 일부는 신뢰를, 일부는 동경을 보낸다. 관객 역시 그들과 마찬가지로 호기심을 가지게 되고 일련의 미스터리는 작품의 끝까지 이어진다. 영화의 핵심은 화려한 액션이 아니다. 그래서 '저 사람은 누구인가'라는 질문과 그 대답이다.

 

 

 

 

 

 

# 3.

 

악역을 사는 사람은 없다. 악역과 선역은 편의적 분류다. 제 아무리 흉악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도 자신이 악역을 자처하는 경우는 드물다. 그 사람은 그 사람 나름대로의 합리성에 따라 입체적인 인생을 살았을 뿐이고, 그것이 타인에 의해 악인으로 평가되었을 뿐이다. 주연과 조연도 마찬가지로 극의 편의적 분류에 불과하다. 드라마 속에선 회장이 주연, 비서가 조연일 수 있지만 현실에서의 비서는 직업일 뿐 그 사람 역시 자신을 우주의 중심에 놓고 자신의 인생을 주체적으로 설계하며 살아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보를 범주화하고 싶은 것은 자연스러운 욕구다. 누군가를 발견하면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 중요한 사람인지 중요하지 않은 사람인지, 우리 편인지 상대 편인지, 포식자인지 피식자인지 분류하고 싶어 하기 마련이고, 주인공 "H"를 만난 관객 역시 다르지 않다. 감독은 그러한 관객의 기대를 배반하는 방향으로 플롯을 유도한다. 쳅터가 진행됨에 따라 추가적인 정보가 더해지며 인물에 대한 관객의 평가는 반복적으로 무효화되고, 판단의 교란을 통해 인물의 입체성은 착실하게 누적된다.

 

 

 

 

 

 

# 4.

 

주인공은 수송트럭을 지키는 사람이지만, 동시에 수송트럭을 터는 갱단의 보스다. 복수는 정당하지만, 그 과정에서 무관한 사람까지 잔인하게 죽인 것도 사실이다. 순전히 본인을 위해 복수할 뿐이지만, 의도와 무관하게 FBI를 돕는데 기여하고 있기도 하다. 지옥에서 따온 듯한 닉네임 H와, 예수가 아니냐는 동료의 농담은 인물의 양가적인 입체성을 상징한다. 주인공의 복수는 부성애에 근거하는데, 만약 영화의 주제의식이 부성애에 있었다면 복수의 끝은 아내나 아들의 묘지를 찾는 것이 자연스럽다. 하지만 감독은 그를 부하의 차량에 태우며 마무리한다. 정당한 복수자이지만 동시에 악당임을 끝까지 지적하는 것이다.

 

하그리브스의 아들을 죽인 범인의 정체가 다른 갱단이 아닌 '굳이' 참전 용사인 것은 주인공의 안티테제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적을 죽인 영웅이었지만, 동시에 시민을 죽인 타락한 존재다. 흉악한 범죄의 가해자이지만, 사회에 포용되지 못한 채 범죄로 내몰린 피해자들이기도 하다. FBI는 일련의 유혈극을 이용한다. 영화 속에서 FBI는 선역인가 악역인가. 그런 분류가 의미는 있는 걸까.

 

주인공에 대해 누군가는 신뢰하기도, 의심하기도 한다. 누군가는 이용하기도, 두려워하기도, 원망하기도, 복종하기도, 분노하기도, 협박하기도, 협박당하기도 한다. 보스이면서, 부하이면서, 아버지이면서, 남편이면서, 범죄자이면서, 경비원이다. 패트릭 H 힐이면서, 동시에 메이슨 하그리브스이기도 하다. 주인공은 어떤 인물인가라는 반복된 질문과 전복은 결국 한 인간에 대한 객관적 진실이라는 것이 존재하는 것인가 원론적으로 회의하게 한다. 라쇼몽이다.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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