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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Comedy

풍성한 가지, 앙상한 줄기 _ 킬링 로맨스, 이원석 감독

그냥_ 2023. 6. 26.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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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진짜 독특한 감독이긴 합니다.

솔직히 미친놈 같아요.

 

 

 

 

 

 

 

 

이원석 감독,

『킬링 로맨스 :: Killing Romance입니다.

 

 

 

 

 

# 1.

 

다음 씬은 커녕 다음 컷조차 예상되지 않습니다. 정확히는 예측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합니다. 정신 나간 농담들로 100분에 달하는 시간 동안 관객을 붙들어 매는 것을 상상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놀라운 데요. 그 아이디어를 밀고 나가 이 정도의 결과물을 관철해 냈다는 건 어쨌든 인정해야 합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감독은 미친놈이 맞는 것 같아요.

 

코미디라는 게 워낙 기호를 많이 타는 장르라 주관적 감상을 말씀드리는 것에 의미가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당장 세간의 평을 들여다봐도 호불호가 극심한 듯 보이니까요. 어쨌든 제법 좋았습니다. 혹자는 민망함을 표하기도 하던데요. 공감성 수치에의 내성이 0에 수렴함에도 개인적으론 민망함도 거의 느끼지 못했더랬죠. 흔히 ⑴ 예측 가능한 코미디를 모른 척할 것을 강요받거나, ⑵ 코드가 너무나도 유아적이거나, ⑶ 연기하는 배우가 먼저 부끄러워해 버리면 민망한 코미디가 나오기 마련일 텐데요. 이 작품은 온갖 괴상한 짓들을 일삼고 있지만 적어도 위의 세 케이스만큼은 능숙하게 피하고 있습니다.

 

 

 

 

 

 

# 2.

 

솔직히 배 잡고 뒹굴게 만드는 큰 웃음까지는 기대키 힘듭니다. 대신 안정적으로 따라갈 수 있을 정도의 잔웃음만큼은 <남자사용설명서> 못지않게 타율이 좋다 느껴집니다.

 

작정하고 치고 들어가는 포인트마다 자신감을 가지고 밀고 들어가는 힘이 인상적입니다. 기대하는 효과가 분명하고, 그 효과의 깊이가 마냥 얕지 않은 가운데, 따박따박 득점까지 성공하는 솜씨는 평가받아도 좋은 거겠죠. 미친놈처럼 널 뛰는 탓에 막 만든 듯 보이지만 그것은 표피적인 감상일 뿐입니다. 이 같은 테마의 작품을 만들면서 일정한 취향과 퀄리티를 유지한다는 것은 확실한 통제력이 있어야 가능한 일임에 분명합니다.

 

특히 좋았던 것은 (비슷한 류의 영화들과 달리) 낭비적이지 않다는 점입니다. 특정 목적으로 특정 캐릭터나 설정 따위를 데려다 태워버리고 치우는 식의 소모가 거의 없다는 것이죠. 지나간 시퀀스들을 휘발되도록 내버려 두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다시 상기하도록 유도하는 구성은 인상적입니다. 일련의 반복적인 경험은 이야기 중심으로 흘러가기 어려운 작품의 성격에도 불구하고 몰입감을 관객에게 요구한 후 보상케함으로써 작품에 대한 신뢰를 쌓는 데 기여합니다.

 

 

 

 

 

 

# 3.

 

중심 장르가 코미디인 것은 분명하기에 코미디에 대해 이야기를 드리고 있습니다만, 하나의 장르로 정의할 수 없을 만큼 무수히 많은 장르가 믹스되어 있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당장 뮤지컬도 있구요, 드라마도 있고, 스릴러도 있고, 판타지도 있고, 나름대로 액션까지 있죠. 각 파트 사이에 불균형이 발생하지 않도록 일정한 밀도를 보장하면서도 전환에 이물감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도 훌륭합니다. 장르의 효과를 대사에 얹은 내용의 전시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최적화된 구도를 비롯한 미장센과 과감한 화면비와 특유의 리듬과 편집으로 조력하고 있다는 것도 장점으로 짚을만하죠.

 

연기를 빼놓을 수는 없겠죠. 이하늬에겐 역시 이런 배역이 가장 잘 어울리는 옷인듯합니다. 전지현이 '지가 끝내주게 이쁘다는 걸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왈가닥'에 최적화된 배우라 한다면, 이하늬는 '망가지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 사랑스러운 푼수'에 최적화되어 있다 생각하는데요. 황여래가 딱 그런 인물이죠. 이선균은 본인이 민망해하고 있는 티가 살짝 새어 나오는 듯합니다만 연기력으로 넉넉히 수습합니다. 한동안 짜증 연기의 일인자라는 식의 밈이 있곤 했습니다만 이 배우는 그냥 장르를 가리지 않고 연기를 진짜 Johnna 잘합니다.

 

 

 

 

 

 

# 4.

 

듣기 좋은 이야기는 이쯤 할까요. 다음 씬은 커녕 다음 컷조차 예상되지 않는다 말씀드렸습니다만, 정작 큰 줄기의 스토리는 지나칠 정도로 진부합니다. 영화는 크게 세 조각으로 뚝 잘라 놓은 듯한 구성인데요. 첫 번째 파트는 에피소드식 단타성 코미디고, 두 번째는 여래와 범우의 좌절과 조나단의 업보 쌓기, 세 번째는 모두 함께 모여 위아 더 월드죠. 각각은 모두 지극히 단순하고 직선적이라 이야기로서의 재미는 조금도 기대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일련의 예측가능한 전개는 마지막 뇌절 앤딩과 만나 영화를 산으로, 아니 바다로 날려 보내고 말았죠.

 

캐릭터는 그 스토리보다 더 지루합니다. 황여래는 인형의 집에 갇힌 비운의 공주님입니다. 결국 배우로서의 자기실현에 도달하는 것만을 목적으로 하는 납작한 캐릭터죠. 김범우는 황여래의 오랜 팬인 사수생인데요. 해맑은 코미디 영화에서 결과적으로 서울대에 들어가 가족의 기대를 충족했답니다~로 흘러갈 리는 없으니 여래의 팬클럽 회원으로서 그녀를 해방시키는 기사님일 수밖에 없습니다. 중간중간 소소하게 내적 성장 이런 거 찍먹 하는 게 의외성의 전부죠. 조나단은 모두를 가로막는 지구 악당이었다가 마지막에 업보 청산용 권선징악 빔을 쳐 맞을 텐데요. 15세 관람가니까 대충 골탕 먹고 망신당하는 정도 보여주며 퇴장당합니다. 뻔하죠.

 

 

 

 

 

 

# 5.

 

특히 결말은 작품의 장단점을 모조리 보여주는 대목이라는 생각입니다. 아프리카로 돌아가려던 눈이 이쁜 돌싱 타조가, 가짜 콧수염 붙인 이선균을 데리고 하늘을 나는 데, 갑자기 스크린 속으로 들어가는 기적이 일어나, 태평양 한복판에 투척해 버린다는 결말은 아무나 상상할 수 있는 것도, 아무나 행동에 옮길 수 있는 것도 아님에 분명합니다.

 

다만, 일련의 결말은 영화의 이야기까지 모조리 태평양 한복판에 투척한 것과도 같습니다. 여래와 범우의 분투와 두 주인공에 투영된 서사와 주제의식까지 앤딩과 함께 모조리 휘발하고 있기 때문이죠. 여래의 경우 도입에서 백마 탄 왕자님 아니 태권도복 입은 이선균에게 구원받았던 공주님을 결말에선 남편 잃어 한 맺힌 타조가 구원해 줬을 뿐입니다. 그녀의 해방에 자신의 지분이 없기에 새로운 뮤지컬 영화 역시 아무런 감동이 되지 못하고 있죠. 범우 역시 마찬가지. 사수생이라는 설정도 결말의 해결에 기여하지 못하고 팬클럽이라는 설정도 동기 이상의 의미가 없다면 이 인물은 무엇을 위해 분투한 것인가라는 허탈함이 남을 수밖에 없습니다. 아무런 대책도 특별한 성장도 없는 상황에서 영화관에 앉아 쪼개고 있어 봐야 아무런 감동이 없을 수 밖에 없는 것이죠.

 

마무리가 좋아야 한다는 말은 비단 인간관계뿐 아니라 영화에도 넉넉히 적용됩니다. 결말이 좋으면 이전까지의 흠도 양해되는 경우가 있고, 역으로 실망스러운 결말이 이전까지의 장점까지 갉아먹는 경우도 흔하니까요. 이야기가 진부하고 캐릭터가 지루한 것까지야 그럴 수 있습니다만, 결말만큼은 지금의 것보다는 더 과감하게 승부를 봤어야 했다는 생각입니다. 작품을 정의하는 B급 코미디에 비해 충분한 장악력을 과시하지 못한 결말은, 영화관을 나서는 관객들에게 어정쩡한 영화라는 인상을 남겼다 하더라도 이상하지 않았을 테니까요. 이원석 감독, <킬링 로맨스>였습니다.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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