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좋아하세요? :)

늦은 저녁 맥주 한 캔을 곁들인 하루 한편의 영화, 그리고 수다.
영화 이야기는 언제나 환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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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 45

허무한 이미지, 건조한 메시지 _ 9 : 나인, 셰인 액커 감독

# 0. 멋들어진 시각적, 철학적 이미지 몇 개만으로 80분짜리 장편 영화를 비벼보려 합니다만 에이... 그게 그렇게 쉽게 될 리가 있나요. '셰인 액커' 감독, 『9 : 나인』입니다. # 1. 감독이 뭘 하고 싶었던 건지 이해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1. 심미적 디자인의 봉제인형 몇 개가 고군분투하는 코즈믹 호러 풍의 포스트 아포칼립스 배경 위로, 2. 거대 기계를 상대로 다양한 직업군의 파티가 레이드를 뛰는 액션 어드벤처를 장르적 동력으로 삼아, 3. 각 캐릭터에 투영된 인간 본연의 철학적 가치들의 본질과 소중함을 역설하겠다. 는, 뭐 고런 영화죠. # 2. 문제는 이게 전부라는 점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3개의 중심축을 엮어 흥미로운 스토리텔링으로 구현하는 데 실패합니다. 상징은 상징에 머물러..

Film/Animation 2020.07.03

길가의 고양이 _ 고양이의 보은, 모리타 히로유키 감독

# 0. 사거리 혹은 오거리 정도 여러 갈래 길이 겹쳐 드는, 자동차보다는 걸어 다니는 사람이 더 많은, 북유럽풍 카페거리 느낌의 광장 한가운데 펼쳐진, 어느 노천카페 허름한 테이블의 낡은 의자에 걸터앉아, 한적하게 걸어 다니는 길고양이 몇 마리를 곁눈질로 힐긋 보며, 문득 든 상상을 자유롭게 떠오르는 대로 조립해 놓은 영화입니다. 후~ 숨차라. '모리타 히로유키' 감독, 『고양이의 보은 :: 猫の恩返し』입니다. # 1. 심드렁하게 드러누운 늘어진 뱃살의 '무타'처럼 늦은 휴일 오후를 보내며 상상의 나래를 펼친 것만 같은 영화입니다. 거친 질감의 싸구려 공책에 손이 가는 대로 쓰고 그리던 상상을 자유롭게 빚어낸 느낌의 영화입니다. 하울의 성처럼 다양한 길고양이들을 파편적으로 수집한 후, 그 모습들을 자유..

Film/Animation 2020.03.14

표류 _ 당신의 어항, 장은진 감독

# 0. 두 번 봤습니다. 좋아서는 아니구요. 뭔 소리를 하는 건지 몰라서 그랬죠. 영화는 내레이션으로 서사를 풀어놓는데요. 오프닝은 이렇습니다. “저는 우주를 만듭니다. 이것은 당신의 어항. 당신의 우주입니다.” ... 뭔 소린가 싶죠. 대사가 죄다 이런 식입니다. 갬성 돋는 형용들을 늘어놓듯 쏟아내는 데 귀에 박히는 건 하나도 없습니다. '장은진' 감독, 『당신의 어항』 입니다. # 1. 독창적인 표현을 하고 싶다면 서사는 친절해야 합니다. 독창적인 서사를 다루고 싶다면 표현은 친절해야 합니다. '이해준' 감독의 『김씨 표류기』나 '전고운' 감독의 『소공녀』 같은 영화들은 개성적이고 독창적인 연출과 표현을 시도하는 대신, 서사는 친절하게 전개합니다. '스파이크 존즈' 감독의 『her』과 같은 영화들은..

Film/Romance 2020.02.01

뼈를 주고 살을 취한다 _ 무드 인디고, 미셸 공드리 감독

# 0. 독특한 스타일과 파격적 상징과 직설적 은유가 쏟아집니다만 감흥은 없습니다. 영화와 대화하고 있다는 감각은 희미합니다. 스타일만 널브러져 있는 걸 바라보고 있다는 느낌에 훨씬 가깝습니다. 나름의 정서가 있긴 합니다만 관객에게 전달되지 못하면 아무 의미가 없는 법이죠. 누구도 들어주지 않는 메시지만큼 공허한 것도 없으니까요. 전체적인 맥락과 분위기를 리드할 선명한 스토리텔링이 없으면 이런 말도 안 되는 작품이 나옵니다. 미셸 공드리 감독, 『무드 인디고 :: Mood Indigo』입니다. # 1. 미친 것 같습니다. 미친 듯이 피곤합니다. 피아노를 치며 칵테일을 만드는 순간까지, 기껏해야 영화 시작 5분여 정도만 오호라? 하고 솔깃한 뿐입니다. 이후부터는 넘쳐나는 과잉에 체력이 쭉쭉 빨려나가는 느낌..

Film/Romance 2019.12.07

3분 20초 _ 미드나잇 인 파리, 우디 앨런 감독

# 0. 1970~80년대 모타운 음악들을 좋아합니다. 스티비 원더나 템테이션스, 인챈트먼트, 잭슨 5, 마빈 게이, 슈프림즈 같은 이름들이죠. 리뷰를 쓰는 지금은 'Superstition'으로 유명한 '스티비 원더'의 『Talking Book』 앨범 수록곡 'Lookin' for another pure love'이 흘러나오고 있네요. 서른 줄이 넘어가다 보니 새로운 노래들을 찾는 게 점점 힘에 부친 달까요. 안전하고 이상적이라 생각하는 특정 브랜드에 익숙해져 갑니다. 얼마 전만 해도 이 정도는 아녔던 것 같은데요. 갑자기 서글프네요. 물론 이건 제가 이상한 거구요. 보통 저의 세대에겐 버즈와 SG워너비로 대변되는 소몰이 창법 때의 음악이 향수를 불러 일으킵니다. 저보다 살짝 윗 세대분들은 야다나 얀 같..

Film/Romance 2019.09.27

인형극의 매력 _ 다크 크리스탈 : 저항의 시대, 루이 르테리에 감독

# 0. '짐 헨슨', '프랭크 오즈' 감독의 영화 의 프리퀄입니다. 만 사실 관심 없으시죠? 1982년에 개봉한 양키 꼬꼬마들을 위한 판타지 인형극을 본 우리나라 사람들이 몇 명이나 있을까요. 오래된 원작 역시 넷플릭스에서 함께 서비스하고 있긴 합니다만 이 드라마를 보실 분들 중 99.9999%는 전작을 보지 않으셨다는 데 500원 걸겠습니다. '루이 르테리에' 감독, 『다크 크리스탈 : 저항의 시대 :: The Dark Crystal』 입니다. # 1. 어느 것보다 흥미로운 지점은 굳이 프리퀄을 만들었다는 점입니다. 통상 감독이라면 '프리퀄'을 만들 바에야 '리메이크'를 하고 싶었을 텐데요. 40년 가까이 되어가는 원작을 리메이크한다고 해서 욕할 사람은 어디에도 없었을 테니까요. 원작의 주제의식을 계..

Series/SF & Fantasy 2019.09.12

나디아 여행기 _ 러시아 인형처럼, 레슬리 헤들랜드 제작

# 0. 제목 속 러시아 인형은 아마도 마트료시카Матрёшка를 말하는 거겠죠. 꺼무위키에서는 '어머니를 뜻하는 Мать와 작고 귀여움을 나타내는 접미사인 -ешка의 결합을 어원으로 하는 전통인형으로 다산과 다복, 부유함과 행운을 기원하는 러시아의 상징물'이라고 기술합니다만... 대부분 "그 왜, 오뚝이 같이 생겨 가지고 꺼내고 꺼내고 또 꺼내는 거"라고 하면 알아먹는 목각인형 말하는 게 맞습니다. '레슬리 헤들랜드', '나타샤 리온' 제작, 『러시아 인형처럼 :: Russian Doll』 입니다. # 1. 다복과 다산의 상징답게 인형들은 비슷하지만 다른 생김새를 하고 있는데요. 기본적으론 각각의 인형이 다음 인형을 낳는다고 보는 게 옳겠습니다만, 보기에 따라선 모母인형을 반으로 가르며 더 깊이 안으..

Series/SF & Fantasy 2019.09.04

꽃을 찢고 질문하다 _ 더 랍스터,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

# 0. 독특합니다. 고유의 분위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독창적인 이야기가 관객의 이목을 부여잡습니다. 서사가 어떻게 굴러가게 될지 전혀 예상할 수 없습니다. 대사 한마디 한마디가 귀에 꽂힙니다. 설정은 각자의 영역에서 자기 매력을 지키되 따로 놀지 않습니다. 완성도도 구비되어 있습니다. 이 영화를 통해 얻은 감동을 다른 영화에서 얻기란 매우 힘들어 보입니다. 이 영화는 누군가에겐 '요르고스 탄티모스'라는 이름을 평생 기억하게 할 계기가 되기에 충분합니다. 반면, '요르고스 탄티모스' 감독, 『더 랍스터 :: The Lobster』입니다. # 1. 기괴하고 불편합니다. 특유의 건조한 분위기가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말도 안 되는 설정 위에서 이야기는 밑도 끝도 없이 널을 뜁니다. 서사에 깊은 개연성..

Film/Romance 2019.09.03

부러우면 지는건가 _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 유아사 마사아키 감독

# 0. 보는 것만으로 취할 것 같은 술잔과 안주로 곁들여진 환상의 밤거리가 스크린을 수놓습니다. 몇 모금 삼키다 보면 언제부턴가 술이 술을 마시는 것마냥 잔이 절로 넘어가듯, 영화 역시 술에 술 탄 듯 물에 물 탄 듯 호로록 넘어가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검은 머리 아가씨가 응큼한 변태에게 펀치를 날리는 순간, 정신 차려보면 어느새 선배의 자취방을 건너 야속하게 오르는 스탭롤을 보게 되실 겁니다. '유아사 마사아키' 감독,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 :: 夜は短し歩けよ乙女』 입니다. # 1. 능글맞은 변태에게 얻어먹는 술과, 화려한 등불의 축제 거리와, 삼삼한 인생을 조미하는 궤변과, 힘차게 내딛는 달리기와, 어제의 당신과 오늘의 우리를 묶어줄 헌책의 바다와, 한눈에 반한 사랑이 담긴 사과로 내리는 비..

Film/Romance 2019.08.23

선함을 충전하고 싶을 때 _ 브루스 올마이티, 톰 새디악 감독

# 0. 최종 집계 17만 57명의 희생자가 나왔습니다. 희대의 망작 의 광풍에 휩쓸린 관객의 수죠. 이렇게 빨리 VOD로 넘어갈 줄 알았더라면 영화관에 가서 보지 말 걸 하는 후회가 드는군요. 보름이 넘는 시간이 지났지만 여전히 내상이 심각합니다. 영화를 보며 얻은 내상, 리뷰하며 곱씹어 보느라 다시 얻은 내상, 그렇게 쓴 엄복동 리뷰가 제 모든 포스팅 중에서 가장 높은 조회수를 거뒀다는 사실이 준 내상이라는 개노답 3형제의 크리티컬 한 다단 히트의 여파는 쉬이 가시질 않습니다. 하... 저는 지금껏 무엇 때문에 영화들을 리뷰를 했던 걸까요. 엄복동의 억지 눈웃음과 정석원의 탄탄한 엉덩이에 가위가 눌리는 나날들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지구가 평평하다 믿는 멍청이들의 다큐멘터리와, 이세계 로맨스물 팝콘무비,..

Film/Drama 2019.03.18

개콘식 공감물 _ 어쩌다 로맨스, 토드 스트라우스 슐슨 감독

# 0. 원래 계획은 를 리뷰하려 했습니다. 근데 관뒀어요. 창밖 미세먼지를 보자니 집 밖으로 한 발자국도 나가기 싫었기 때문이죠. 해도 해도 너무하네요. 편서풍대라고 대놓고 서해안 쪽에다 온갖 공단에 쓰레기 소각장까지 몽땅 몰아다 지어놓고 우리더러 국내 요인이나 찾아보라 말하는 중국의 뻔뻔함에 없던 암까지 생길 것 같습니다. 안 되겠네요. 오늘은 중국과 미세먼지가 없는 이세계물이나 하나 봐야겠습니다. '토드 스트라우스 슐슨' 감독, 『어쩌다 로맨스 :: Isn't It Romantic』입니다. # 1. 인기 없는 건축가였던 내가 이세계에선 로코 히로인? 이 영화는, 로맨틱 코미디를 극혐 하는 뚱실한 건축가 주인공이 훤칠한 소매치기를 지하철에서 우연히 만나 명치에 꽂힌 팔콘 펀치와 중요부위 어퍼컷을 맞교..

Film/Comedy 2019.03.08

걸작보다 뛰어난 범작 _ 스트레인저 댄 픽션, 마크 포스터 감독

# 0. 앞날을 알고 싶으신가요? 어떤 직업을 가지고 어떤 일을 겪으며 어떤 사람과 사랑을 하고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게 될지 궁금하신가요? 자신의 삶이 어떻게 굴러가게 될지 알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아직 찾아오지 않은 내일을 미리 알 수 있다면 모르긴 몰라도 사는 게 훨씬 안전하게 느껴지겠죠. 물론 혹시나 엉망진창이면 어쩌나 하고 살짝 불안해지기도 하지만 그래도 모르는 것보단 역시 아는 게 낫다 싶기도 합니다. 더구나 그렇게 쓰여질 자신의 앞날이 역사에 길이 남을 만큼의 완벽한 걸작이라면 어떨까요. 기승전결이 완벽한 서사와 훌륭한 내러티브로 짜여진 소설과도 같은 삶. 사람들이 두고두고 회자할 만큼 멋들어진 그런 삶을 살아낸 인간이라니. 더할 나위가 없을 것만 같네요. 네? 근데 그 걸작이 비극이라..

Film/Comedy 2019.02.06

빌 머레이의 옥중일기 _ 사랑의 블랙홀, 해럴드 래미스 감독

# 0. 한국어 제목은 대체 누가 지은 걸까요? 어느 분이신지는 몰라도 영화의 개봉 연도를 생각하면 연배가 제법 되실 것 같긴 합니다만, 실례를 무릅쓰고 여쭤보건대 선생님은 좀 맞아야 하지 않을까요? 세상에... 사랑의 블랙홀이라니. 아니, 의사 양반, 이게 무슨 소리야! '해럴드 래미스' 감독, 『사랑의 블랙홀 :: Groundhod Day』 입니다. # 1. 원제는 입니다. 우리에겐 성촉절이라 번역되는 기념일이죠. 북미산 마멋의 다른 이름인 그라운드 호그가 겨울잠에서 깨어나 동굴에서 나오다 자신의 그림자를 뒤돌아보면 겨울이 6주 더 이어지고 그냥 나오면 봄이 온다는, 뭐 그런 설화의 날입니다. 어쨌든 겨울과 봄의 경계 즈음에 있는 날이니까 우리로 치면 '경칩' 정도 되겠네요. Groundhog day..

Film/Comedy 2019.01.24

Be careful what you wish for _ 코렐라인, 헨리 셀릭 감독

# 0. 한국의 배급사들은 애니메이션 뒤에 부제를 안 달면 죽는 병이 걸린 게 아닐까요? 롤링이 버릇 다 버려놨습니다. 뭔가 해리포터스러운 발랄한 폰트, 어드벤처를 강조하는 부제, 가족영화라도 되는 듯한 발랄한 색감의 국내판 포스터에 낚여 많은 부모님들이 자녀들을 단추와 바느질의 가위눌림에 밀어 넣으셨죠. 영화는 '코렐라인'이라는 아이가 엄빠 따라 이사 갔다 환상의 세계로 가는 문을 넘어 눈이 매력적인 마녀에 홀리나 싶더니 결국 역관광에 성공하고 현실로 돌아와 행복하게 산다는 이야기입니다. 단순하죠. 크게 보면 나 , 나 최근의 등과 같은 아동용 어드벤처들과 별반 다를 바 없는 영화입니다. 환상의 나라를 돌아다녀봤자 재밌는 건 잠깐이고 결국 집 떠나면 개고생이니 엄마 아빠 말 잘 들어! 라는 초등학교 교..

Film/SF & Fantasy 2018.12.24

어린이용 엽떡 순한 맛 _ 벽 속에 숨은 마법시계, 일라이 로스 감독

# 0. 판타지물로서는 반지의 제왕 시리즈의 등장 이후, 액션 어드벤처물로서는 아이언맨의 개봉 이후, 동화라는 장르도 어른들의 주요 소비분야가 되면서 정작 어린이들을 위한 시장은 쪼그라들고 말았습니다. 미취학 꼬꼬마들이야 아빠가 들려준 스마트폰 속 뽀로로나 보면 된다지만 취학 아동이면서 아직 15세 물을 소비할 수는 없는 나이, 이때의 아이들은 오히려 영화 시장의 사각지대에 놓이게 되었다고도 할 수 있겠죠. 겨울왕국의 엽기적인 흥행엔 다 이유가 있습니다. 일라이 로스 감독, 『벽 속에 숨은 마법시계』입니다. # 1. 뭐랄까요. 어린이용 엽기떡볶이, 순한 맛 같습니다. 아시다시피 엽기떡볶이는 매운 음식 브랜드죠. 이 영화도 매워요. 아니, 정확히는 매운맛을 보여주려 노력은 합니다. 근데 타깃이 애들이어서 ..

Film/SF & Fantasy 2018.11.08